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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호텔 20층 방.


깔끔한 인테리어가 빛나는 이 곳에, 안 어울리는 남자가 둘 있다.


한명은 공포로 벌벌 떨고 있고, 다른 한명은 머리를 움켜쥔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나와 존이다.


우리는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를 느끼고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내 마음 속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도망쳐야할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존, 사채든 뭐든 끌어다 쓸게... 200만엔 준비할 테니까, 사장한테 제령해달라고 부탁해 줘...]


존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고개를 저었다.




[무리에요, 형씨. 사장은 한번 말한 건 절대 주워삼키지 않는 사람이라고요. 나보고 제령을 하라고 한 이상, 설령 나나 형씨가 죽어도 사장은 개입하지 않을겁니다.]


나는 테이블에 주먹을 내리쳤다.


[장난치냐! 내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형씨.]


[너도 그 여자한테는 못 이긴다면서!]


[형씨.]




[200만으로 모자라면 300만이라도 만들어 볼게! 그러니까 날 살려줘!]


[형씨!]


존은 소리를 치며 일어섰다.




[나를... 믿어주세요.]


[너를... 믿으라고...?]


존은 진지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한다.




그 날카로운 눈빛에 나는 당황했다.


[내가 형씨를 지킬 겁니다. 형씨는 내가 반드시 살려낸다고요. 설령 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형씨는 내가 살려낼 거에요.]


나는 곤혹스러웠다.




이 녀석, 왜 그렇게까지 말하는거지?


[왜 그렇게까지 나를 지키겠다는거야? 너도 위험하다면서?]


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제령을 할 때는 대개 수호령의 힘을 빌리게 됩니다. 형씨 아버님이요. 아버님하고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존이라는 이름... 형네 집에서 옛날 기르고 있던 개 이름이랑 같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님은 웃으셨어요. 나는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형씨 아버님이랑 이야기하는 사이에 아버님한테 감화된 건지도 몰라요. 지금은... 형씨가 진짜 내 형처럼 느껴진다구요...]


[너...]


[아버님이 형씨를 지키고 싶어하는 건 분명합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 가족들을 떠올렸어요. "미안하다" 는 마음으로 가득하셨죠. 그래서 지금도 아버님은 형씨를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싸우고 계신거에요. 저도 그 마음에 부응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존이 내 어깨를 잡는다.


[나를... 믿어주세요.]




내 어깨를 잡은 존의 손은 미지근했다.


늦은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어떻게 될까 무서웠다.




[존, 우리 아버지는 괜찮으셔? 저런 여자랑 싸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잖아.]


존은 노트북 키보드를 치면서 대답한다.


[여자는 형씨말고 가족분들한테도 침입하려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형씨는 내가 지키기로 하고, 아버님은 지금 다른 가족들을 지키고 계세요.]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그 여자, 가족들한테까지...]


[괜찮아요. 아버님이 지켜주실테니까.]




나는 컵의 물을 마셨다.


[저기, 존. 수호령이 아버지라는 건 알 거 같아. 하지만 네 수호령은 어떻게 되는거야? 그... 너는 가족이 없다고 했었잖아...]


[있어요. 제 수호령은 사장입니다.]




[어? 그 사람 살아 있잖아?]


[수호령도 악령도,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는 별 상관 없어요. 영혼이라는 말을 들으면 죽은 사람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거든요. 전에도 말했죠? 악령은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에 의존해서 존재하고, 수호령은 따뜻한 기억에 의존해서 존재한다고요. 저한테는 사장과 함께한 따뜻한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내 안에서 형성된 사장의 이미지가, 수호령으로 자리잡은거죠. 이건 저 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컵안의 물을 바라봤다.




이 녀석을 만나고, 이상한 이야기만 듣게 되는구나.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진다.


나는 놀라 소파에서 미끄러 떨어졌다.




[이런 시간에 누가 온걸까?]


존이 일어나 현관문으로 향한다.


[야, 괜찮은거야? 그 여자면 어떻게 해!]




존은 미소지으며, [괜찮아요.] 라고 대답했다.


문을 열자, 거기에는 사장이 있었다.


사장은 방안에 들어와 소파에 앉더니, 담배에 불을 붙인다.




[상태는 좀 어때? 젊은 노숙자 친구...]


젊은 노숙자 친구라...


어쩐지 이 사람한테는 완전히 기가 눌릴 것만 같다.




존은 글라스에 와인을 따라, 사장에게 건넨다.


[이런 새벽에 무슨 일이에요, 사장.]


[아, 네가 메일로 보낸 계획서를 읽었거든... 뭐, 나쁘지 않더라.]




[감사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착각을 했어.]


[착각이요?]




존의 표정이 흐려진다.


[뭐, 어쩔 수 없는거야. 나도 그걸 깨달은 건 아까 전이었으니까. 네가 못 알아차린 것도 무리는 아니지.]


[무슨 말씀이신가요, 사장.]




사장은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어낸다.


긴장된 분위기가 방안에 가득했다.


사장은 와인이 든 글라스를 입에 댔다.




붉은 와인이 든 글라스를 유연히 다루는 손가락 움직임이 인상 깊었다.


[아까 전에 이 젊은 노숙자 친구의 도플갱어가 나타났었지.]


[네. 저도 강제적으로 보고 말았습니다. 저도 침입당했던 거 같아요.]




존은 분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네가 현장 실습을 시작할 때, 안전장치 삼아 젊은 노숙차 친구에게 미리 방화벽을 심어뒀었어. 만약의 일을 고려해서 말이야. 하지만 그게 돌파당한데다 놈은 도플갱어까지 만들어냈지.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더러운 여자한텐 그런 힘이 없을 거였거든. 뭔가 위화감 못 느꼈어, 존?]


[확실히 저도 놀랐습니다. 설마 사장의 방화벽이 찢어질 줄이야... 하지만 위화감이라니 무슨 이야기인가요? 뭔가 있는 건가요?]




사장은 깊게 연기를 들이마셨다.


[그 더러운 여자는 중심에 놓여있긴 하지만 핵심은 아니야. 그게 문제인거지. 나도 방금 전까지는 몰랐을 정도로, 핵심은 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 아마 그 녀석은 살아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게다가 실력도 만만치 않아. 생각 이상으로 까다로운 문제였던거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쩐지 이야기는 내가 예상도 못한 곳으로 뻗어나가는 듯 했다.


[그 핵심은 나한테 맡겨. 이 사건은 젊은 노숙자 친구가 의뢰한 것 이상이야. 공짜로 해주는 건 짜증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그냥 내버려두기엔 너무 위험해. 다만 그 더러운 여자랑 하수인 세놈은 존 네가 책임지고 제령해라. 알았어? 영혼을 정화한다던가 그런건 생각하지 말고, 제령에만 전념하라고. 알았어, 존?]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글라스를 가볍게 놀려 와인을 모두 마셨다.




사장이 방에서 나가고, 다시 나와 존 둘만 남는다.


떠나가며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아버님 성묘 좀 가라. 쓸쓸해 하고 계신다고. 그리고 가서 좀 자. 다크서클 장난 아니네.]




그러고보니 최근 온갖 일들이 겹치는 바람에, 아버지 성묘도 제대로 가질 못했었다.


이 소동에서 살아남는다면, 꼭 성묘하러 가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어쩐지 몹시 지쳐 있었다.


자는 것은 두려웠지만, 감겨오는 눈꺼풀은 이길 도리가 없었다.




나는 어느덧 잠에 빠져 있었다.


눈을 뜨자, 나는 어느 빌딩 옥상에 서 있었다.


[여기는...?]




새벽, 빌딩 옥상에 차가운 바람이 분다.


[존! 이봐, 존!]


큰소리로 존을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질 않는다.




나는 근처를 바라보다, 시야 구석에 무언가 있다는 걸 꺠달았다.


그 순간, 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강한 충격이 나를 덮쳤다.


나는 힘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지면에 쓰러진 나를, 처음 보는 거구의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너는...?]


남자는 주저앉아 내 머리채를 붙잡는다.




[발버둥치지 마라. 왜 가만히 죽지 않는거지?]


남자 뒤에는 미치광이 여자와 의사, 경찰관, 간호사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나도 방금 전까지는 몰랐을 정도로, 핵심은 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


나는 사장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녀석이구나.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네놈인가! 네놈이 나를!]


남자는 내 머리를 땅에 마구 찍는다.




나는 머리에 미지근한 게 흐르는 걸 느낀다.


그럼에도 나는 남자를 노려봤다.


용서할 수 없다.




나를 이딴 일에 말려들게 만든 이놈을 용서할 수 없었다.


[네놈만은... 네놈만은 절대로 용서 못해!]


남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네가 나를 용서하고 말고 하는게 아니야. 내가 너를 죽이는가 아니냐다. 귀찮은 남자를 끌고 오다니. 적당히 해둬. 나도 화가 나 미칠 지경이라고. 네놈 가족까지 데려오지 않으면 여동생도 만족 못할 거라고. 그냥 가만히 죽었으면 좋았을텐데 일이 귀찮아졌잖아.]


남자는 이를 갈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가족한테 손대는 것만은 절대 용서 못해!]


남자는 내 팔을 떨쳐낸다.


[네놈 애비도 그런 말을 했었지. 부모자식이 멍청한 것도 매한가지군. 이제 됐다. 나도 진심으로 너를 죽이고 싶거든.]




내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뒤를 보자, 거기에는 내가 있었다.


도플갱어다.




"형씨! 저놈한테 절대 닿으면 안됩니다! 만약 닿으면 나도, 사장도 형씨 생명을 구할수가 없어요!"


나는 존의 말을 떠올리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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