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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힘을 다해 도망쳤다.


닿으면 죽는다는 도플갱어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믿고 의지할 존도 없다.




주변에는 온통 적뿐이다.


좁은 빌딩 옥상에서, 도망갈 곳이 있을리 없다.


나는 출입문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잠겨있었다.


손잡이는 꼼짝도 않는다.


뒤에서 또다른 내가 다가온다.




저놈에게 닿으면 나는 죽는다.


[이봐, 이제 됐잖아! 시간 끌지 마라!]


거구의 남자는 초조한 감정을 드러내며 고함친다.




도플갱어가 다가온다.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칠 방법을,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옥상 펜스를 넘었다.




[이건 꿈이야. 꿈. 현실이 아니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눈앞에는 나락의 광경이 펼쳐진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건물은 높았다.


뒤를 돌아보자, 도플갱어가 서서히 걸어오고 있다.


그때, 갑자기 미치광이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웃고 있었다.


나는 분노가 폭발하는 걸 느꼈다.


살아남을테다.




나는 절대 죽지 않아.


반드시 살아남을거야.


나는 소리를 질렀다.




뛰어내릴테다.


여기서 뛰어내릴거야.


[이봐! 분명 여기는 현실이 아니야. 하지만 떨어지면 꽤 아플텐데? 견딜 수 있겠냐?]




거구의 남자는 내게 묻는다.


[너만은 절대 용서 못하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격통.


그 아픔을 설명할 단어는 이것 밖에 없을 것 같다.


빌딩에서 뛰어내린 나는 다리부터 떨어져, 지면에 머리를 부딪혔다.




마치 개구리처럼 비참한 꼴로 바닥에 달라붙는다.


내 주변에는 붉은 피가 퍼져간다.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끔찍한 고통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다 죽어가는 개구리가 경련을 일으키 듯, 내 몸은 조금씩 흔들렸다.


내 시야 끝에는, 건물 출구로 나오는 도플갱어의 모습이 보였다.




[오지... 마...]


곧 꺼질 듯한 촛불이 된 것 마냥, 나는 중얼거렸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하지만 가차없이 도플갱어는 내게 다가와, 내 눈앞까지 온다.


도플갱어가 나를 내려다본다.


몸은 아픔에 지배당해, 더 이상 도망조차 칠 수 없다.




나는 도플갱어를 죽어라 노려봤다.


나 자신에게 패배하고 싶지 않았다.


도플갱어는 주저 앉아, 내 등에 손을 얹고 [찾았다.] 라고 말했다.




녹아들듯, 도플갱어는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완전한 동화.


놈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 감각.




도플갱어는 내게 녹아들어, 내 마음을 지배한다.


그 순간, 존이 말했던 "도플갱어한테 닿으면 무조건 죽는다" 는 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온몸에 암흑이 펼쳐진다.




나는 끝났다.


끝나버렸다.


마음이 찢어질듯한, 어두운 심연에 나는 내던져졌다.




내 안에서는 썩어버린 감정만이 넘쳐흐른다.


나는 몽롱해졌다.


살아봐야 희망 따위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에 있어봐야 어쩔 수 없는 걸.


죽는게 낫겠다.


그저 죽고 싶었다.




정말 그것 뿐이었다.


뭐라도 좋아.


죽을 수 있다면, 로프던 휘발유던 내게 던져줘.




자살하고 싶어.


자살하게 해줘.


뭐든지 할게.




그러니까 나를 자살시켜 줘.


나는 도플갱어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었다.


[형씨.]




아침, 존이 불러 나는 눈을 떴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호텔방이다.


여기는 어제 내가 묵은 호텔방이다.


나는 온몸을 만져보았다.




어디에도 상처는 없다.


존이 커피를 내민다.


[형씨, 괜찮아요?]




나는 분명 도플갱어에게 지배당했었다.


하지만 지금 죽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살아난건가?




상황파악이 전혀 안됐다.


[혼란스러운가보네요. 형씨, 이제 괜찮아요. 겨우 나한테도 보였어요. 저놈이 형씨의 적이었군요.]


존의 말에 나는 놀랐다.




[무슨... 소리야, 존?]


[형씨한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일시적으로 방화벽을 약화시켰었어요. 아니나다를까, 적의 핵심이 바로 형씨한테 침입해오더군요. 목적대로였습니다.]


나는 존이 말하는 걸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럼 일부러 그놈을 유인했었다는거야?]


[네. 형씨는 미끼가 되어주신겁니다. 물론 형씨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어요. 그 때문에 대책을 세워두고 함정을 판거구요.]


뭐가 뭔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커피를 한모금에 들이켰다.


[냉정하게 얘기해 보자, 존. 나한테 뭘 했다는건데? 설명해줘. 뭘 했어?]


존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적은 형씨를 잡으려고 도플갱어를 썼어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이죠. 상당한 실력자라는 추론은 여기서 나온거구요. 하지만 사장은 거기서 한발 더 나갔습니다. "적은 자신과 동등한 능력자와 만난 적이 없을 것이다" 라는 추리를 한거죠. 형씨를 향한 음습하고도 과도한 공격을 통해, 힘은 최상급이지만 경험은 부족한 인간일 거라고 생각한거에요. 그래서 함정을 친거구요.]


존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적이 형씨의 도플갱어를 쓴다면, 우리도 형씨 도플갱어를 만들어내면 되는거죠. 적은 설마 자기말고도 도플갱어를 부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할테니까요. 아마 전혀 의심하지 못했을겁니다.]




[도플갱어? 뭐가? 어떤게? 뭐가 도플갱어였다는거야?]


나는 다시금 존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형씨가 그 빌딩 옥상에 불려간 시점에서, 이미 형씨는 사장이 만든 도플갱어였어요. 의식이 없는 인형이라면 의심을 받을게 분명하니 반 정도만 형씨 의식을 불어넣었고요. 형씨한테는 끔찍한 일이었겠지만, 그 덕에 나랑 사장이 놈을 지켜보고 있어도 들키지 않았어요. 이제 희망이 보입니다. 사장이 적 핵심을 추적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서부터는 본업인 탐정 일이 빛을 보는거죠.]


나는 아연실색했다.


그러면 좀 사전에 말을 해주던가.




낮, 나는 한장의 식빵을 앞에 두고 곤란해하고 있었다.


한동안 변변한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도, 식욕은 전혀 솟지를 않았다.


한장의 식빵조차 지금 내게는 너무 무겁다.




[저기, 존. 아까 "사장이 적 핵심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고 말했잖아.]


스파게티를 빨아들이며, 존은 대답한다.


[네. 사장은 아침 비행기로 홋카이도에 갔어요.]




[홋카이도?]


[사장은 그 남자한테 침입해서, 어디 있을지 알아냈거든요. 아마 그 남자도 지금쯤은 거품물고 있을겁니다. 사장한테서는 절대 도망칠 수 없어요.]


[저기, 존. 그 녀석은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인거야? 저런 걸 사람이 할 수가 있는거야?]




존은 스파게티를 먹어치우고, 카레라이스에 손을 뻗는다.


[저도 놀랐습니다. 사장 말고 저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저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멋대로 날뛰고 있었다니 정말 무서워지네요.]


존은 카레라이스를 먹어치우고, 돈까스 덮밥에 손을 뻗었다.




이상하게 존은 계속 먹기만 한다.


[야, 존. 너 너무 먹는거 아냐?]


식욕이 없는 나로서는, 존이 먹어치우는 모습이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앞으로는 체력 싸움이라니까요. 먹어둬야만 합니다. 저녁까지 사장이 적 핵심을 제압할거에요.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클라이맥스에요, 형씨.]


그렇게 말하며, 존은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나는 식빵에 버터를 발라 먹기 시작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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