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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비밀로 가르쳐 준 이야기다.


10여년 전 어느 밤, 문득 눈을 떴는데 가위 눌린 것처럼 몸이 움직이질 않더란다.


그리고 그 위에서 누군가가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나.




손에 무언가가 닿는데, 차갑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필사적으로 눈을 뜨자, 대학교 때 사귀던 여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 여자는 아버지와 헤어진 후, 사고로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터였다.




아직도 나를 원망하고 있는건가, 라고 아버지가 생각한 순간.


그 여자가 배에 손을 푹 집어넣고 마구 헤집었다.


아버지는 엄청난 고통에 깨어났다.




여자는 사라지고 격통만이 남았다.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도 아픔은 사라지질 않았다고 한다.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는 없었고.




게다가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여자는 나타나 뱃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버지는 아픔과 수면부족으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실수연발이었다고 한다.


결국 상사가 잔뜩 화가 나서 [당장 병원 갔다와!] 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마지못해 병원으로 향했다나.




아버지는 이전부터 허리 쪽이 안 좋았던터라, 일을 열심히 해 요통이 심해진거라 여겼다.


정형외과를 찾아가자, 의사 역시 요통일 거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마침 의사가 수다쟁이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 무심코 [꿈일지도 모르지만...] 이라며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여자 귀신이 나와서 배를 마구 헤집어 놓은 뒤부터 통증이 심해졌다는 이야기를.


[그런 건 무슨 예고일 수도 있어요. 혹시 모르니까 배 쪽도 진단을 받아보세요.]




의사의 말에 따르면, 귀신 그 자체는 환각일 거라고 했다.


다만 그 환각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니, 자신의 배에 대한 아픔이나 불안이 무의식적인 형태로 나타났을 거라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해,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내과를 찾아갔다고 한다.




거기 의사는 꽤 젊은 의사였다.


이번에도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의사는 [귀신이요?] 라고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럼 안심할 수 있도록 MRI를 찍어보시죠.] 라고 권해왔다.




MRI 촬영 결과, 췌장에 확실치 않은 그림자가 보인다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곧바로 전문 의료인원이 있는 병원을 소개해줬고, 거기서 검사를 받은 결과...


아버지는 췌장암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흥분해서 [췌장암을 초기에 수술할 수 있다니,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라고 말했단다.


실제로 췌장암은 자각증상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꽤 악화되고 나서야 발견된다고 한다.


이 정도 초기 단계에서는 통증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정형외과 의사의 판단이 훌륭했다는 게 큰 병원 의사의 말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전이도 없고, 후유증도 없이 깨끗하게 암세포를 들어냈다.


인슐린 주사는 매일 같이 맞아야 하지만, 그걸 빼면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그때 그 전 여자친구 귀신이 과연 아버지의 환각이었는지, 병을 가져온 것인지 병이 있다고 알려준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일단 이 이야기는 어머니한테 평생 비밀로 해두라고, 아버지는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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