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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이던 80년대 무렵 이야기다.


친구 A,B와 함께 천체관측을 하게 되었다.


B가 생일선물로 천체 망원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와 A네 집은 주택가였고, B네 집은 약간 떨어진 외곽에 있었지만, 집 뜰에서는 영 마뜩치가 않았다.


결국 B네 집 근처 신사에서 천체관측을 하기로 했다.


여름방학 중이었기에, B네 집에서 하루 묵는 것도 겸해서.




10시 가까이 게임을 하다, 슬슬 출발하기로 하고 벌레 쫓는 스프레이랑 이거저거 챙겨서 신사로 향했다.


경내에 들어서자 벌레 우는 소리만 약간 들릴 뿐 조용했다.


천체 망원경을 설치하고, 회중전등을 끄자 주변은 깜깜해졌다.




처음에는 별자리 이름도 알아보고 이것저것 시끌벅적하게 놀았지만, 점점 질리기 시작했다.


저배율의 천체 망원경으로 올려다봐야 거의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니.


슬슬 돌아갈까 싶어 회중전등을 찾았지만,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관리를 맡았던 A가 [어디 있지?] 라며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디에선가 [쾅... 쾅...]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무슨 소리일까.




A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필사적으로 주변을 찾는 사이, 나와 B는 그 소리가 신경 쓰여 소리가 들려오는 신사 구석으로 향했다.


우리는 신사 앞 기둥문을 나와, 왼편 광장에서 천체관측을 하고 있었다.


소리는 오른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소리가 나는 쪽에서는 불빛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무엇인지 눈에 들어왔다.


소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나는 축시의 참배[각주:1]가 뭔지 알고 있었기에 초조해졌다.


B는 잘 몰랐던지, [저거 뭐야?] 라고 물어왔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겨우 참아가며, 위험한 것 같다고, 돌아가자고 B에게 말하려던 순간.




뒤에서 A가 [야! 회중전등 찾았다!] 라고 소리치며 회중전등 불빛을 빙빙 돌리며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쾅... 쾅...] 하는 소리가 멈췄다.


들켰다...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도망치자!]


내가 소리치자, A와 B는 당황한 듯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내가 죽어라 달리는 걸 보고 당황했는지, A는 울면서 나를 따라왔다.


그러나 B는 [천체망원경!] 이라고 말하고는 광장 쪽으로 가버렸다.


기둥문을 지나, 계단을 내려와 주차장까지 도망친 우리는 B를 기다렸다.




1분 정도 기다렸지만, B는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지 A에게 물었지만, 애시당초 A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나를 따라온 것 뿐이라 별 의견이 없었다.


돌아가서 B의 부모님에게 말해야 할지, 우리 부모님한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계단 위에서 불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B가 천체망원경을 든 채, 울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손에 촛불을 든 소복 입은 여자가 있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참아가며 B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흐느껴 우는 B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A가 회중전등으로 비쳐보니, B는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는 갑자기 [미안해...] 라며 사과했다.


여자도 엉엉 울고 있었다.


5분 정도 지나, 다들 침착해지고 나서 여자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축시의 참배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들켜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신 우리를 죽이려는 거라 지레짐작했지만, 정작 여자는 "아, 실패했구나." 하고 체념하는 정도였단다.


하지만 그 후 큰 소리가 나서 놀라 광장으로 가보니, B가 굴러 넘어져 상처투성이가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엉엉 우는 B를 보니 자기 탓인것 같아, 책임을 느낀 나머지 여자도 통곡했단다.


다행히 B는 여기저기 까진 것 뿐, 큰 상처는 없는 것 같았다.


상처를 물로 씻어내자, B는 눈물 하나 없이 말짱했다.




그 후 주차장에 있던 자판기에서 여자가 음료수를 사줘서, 약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시내에 사는 OL로,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단다.


그래서 그 상사를 저주할 마음으로 축시의 참배를 했던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고, 자판기 불빛 아래로 본 얼굴은 오히려 미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소복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냥 평범한 흰 옷이었다.


그 후, [혹시 B의 상처가 덧나기라도 하면 연락하렴.] 이라며 전화번호를 받았다.




[밤 8시 이후나 일요일에만 받을 수 있지만 말이야.]]


나는 다친 B 대신 천체망원경을 들고 B네 집으로 향했다.


B네 부모님에게는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B는 까진 상처도 다 나았다.


나는 여자에게 연락을 해주기로 했다.


예쁜 사람이었으니, 한번 더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고.




아마 나말고 다른 친구들도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번호를 내가 받았다는 이유에서 나한테 굳이 전화를 떠넘긴 것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고,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 라고 몇번씩 사과했다.




나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정말 기쁜 듯 이렇게 말했다.


[맞아맞아, 그 때 그 저주, 효과가 있었지 뭐니?]




나는 차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수 없었다.


결국, 그날을 마지막으로 그 여자와는 연락한 적이 없다.



  1. 丑の刻参り. 축시,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에 신사 신목에 짚인형을 못으로 박아 상대를 저주하는 행위. 누군가에게 들키면 그 저주의 효력이 사라진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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