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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좀 무서운 일이 있었다.

이제 좀 진정되어 글을 남겨본다.

나는 건강을 위해 매일 밤 걷고 있는데, 운동 코스 도중에 지하도가 있다.



철도 밑을 지나가는 길로, 높이는 2m, 길이는 10m 정도.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지만, 전등이 많아 밝은 덕에 그리 무섭지는 않다.

그날도 평소처럼 지하도를 지나가려 하는데, 출구 근처에 누군가 있는게 보였다.



방금도 말했지만, 그 지하도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물어서 호기심에 바라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멈춰 서 있었다.

벽을 바라본채로.



당황해서 나도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한동안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도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어, 터널처럼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마 그 사람이 무언가 중얼거린게 울려서 들린 것이겠지.

그러더니 그 사람은 갑자기 내 쪽으로 돌아서서는 무언가 중얼중얼 되뇌이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겁이 나서 등을 돌려 달아났다.



그 사람과 나는 좀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달려서 도망치면 금방 떨쳐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중얼거리는 소리는 멀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크게 들려왔다.

달리면서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들려온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소리를 지우기 위해 스스로 [아...!] 라던가,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집까지 어떻게든 전력질주해서 도망쳤다.

집 현관문을 열 무렵에는 중얼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황급히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한숨 돌렸다.

한동안 그 자리에서 도대체 그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인가, 귀신인가.



뭐, 어찌 됐든 도망쳤으니 상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거실 미닫이 문을 열었다.

그 사람이 벽을 향해 서 있었다.

거실 벽에 이마를 대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무언가를 중얼중얼 되뇌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다시 도망쳤다.

그리고 그대로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를 이상한 것한테 쫓기고 있어. 무서워 죽을 거 같아.]



벌벌 떨면서 편의점까지 온 친구에게 말하자, 친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겁에 질린 내 모습을 보고 믿어주었다.

나는 이미 귀신이라고 어느정도 믿고 있었지만, 친구는 스토커나 미친 사람일 가능성도 있으니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게 더 현실적일테니, 나는 경찰에 연락하기로 했다.



이상한 사람에게 쫓겨서 도망쳤는데, 집에 와보니 그 사람이 있었다고 신고하자 경찰이 와주었다.

우리는 경찰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보니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당분간 인근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

겁에 질린 나를 위해, 친구는 하루 묵고 가기로 했다.

나는 안심하고 잠을 청했다.



늦은 밤, 여러모로 피곤했을텐데도 잠에서 깨고 말았다.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잘 생각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그런데 친구가 자고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화장실이라도 갔나 싶어 주위를 둘러 보았다.

친구는 서 있었다.

깜깜한 방 안, 벽에 이마를 대고서.



무언가 중얼중얼 되뇌이고 있다.

나는 아까 지하도에서 마주쳤던 사람이 떠올라 너무나도 무서워졌다.

결국 친구를 내버려두고 다시 밖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도망치는 와중 미안하다는 말을 몇번이고 마음 속에서 거듭했다.

다시 편의점 앞에 도착하자, 숨이 차고 무릎이 벌벌 떨렸다.

가게 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아, 주차장 콘크리트 블록에 쪼그려 앉아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사이, 친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생각해보았지만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30분 정도 지나자, 친구를 버리고 왔다는 생각에 무서웠지만 집에 돌아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 내내 만약 이렇게 됐으면 어떻게 하나, 저렇게 됐으면 어떻게 하나, 온갖 생각에 마음을 졸였다.



두려움에 떨며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자, 집 안은 조용했다.

작게 친구 이름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큰맘먹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친구는 자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볍게 코를 골면서.

나는 마음이 놓인 나머지 눈물이 났다.

아까 있었던 일도 혹시 그냥 내가 잠결에 착각한 건 아니었나 싶었다.



안심이 되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나는 그대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친구는 이미 일어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가 [좋은 아침.] 이라고 말을 건네자,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구는 어젯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 속에서 친구는 콘크리트 같은 벽에 이마를 대고 서 있었다.

그리고 [다음!] 이라던가, [빨리!] 라던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옆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는 그 누군가를 잡기 위해 쫓아가는 내용의 꿈이었다고 한다.

친구는 [어제 그런 일을 들어서 그런가?] 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친구에게는 그저 이상한 사람이 쫓아왔다고만 말했을 뿐, 벽을 향해 이마를 대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안했으니까.

전날밤 있었던 일과 친구의 꿈, 그리고 밤 중에 벽에 이마를 대고 있던 친구의 모습...

너무나도 일치했다.



그 후 아직까지 친구에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유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얼굴로 친구를 대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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