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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그 날 아침, 나는 여느 때처럼 정장을 입고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디지털로 표시된 글자가 맨 꼭대기인 8층부터 점점 내려온다.


나는 빛나는 아래쪽 화살표를 바라보며, 덜 깬 아침잠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왠지 느린데...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엘리베이터의 문자판은 1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대체 뭘 멍하니 있던거야, 나란 놈은.


나는 나의 멍청함을 탓하며 한 번 더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문자는 1에서 변할 기색이 없었다.


조금 초조해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버튼을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움직일 기색이 없다.


아침부터 고장인가...




여름부터 들어와 살고 있는 이 맨션은, 재개발을 거친 건물이었다.


낡은 건물을 콘크리트 구조만 남기고 내부와 외부를 모두 재개발 한 것이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새로 지은 것 같지만, 건물 자체는 낡은 셈이었다.




원래 건물이 낡다보니 이런 일이 많은 것일까...


나는 약간 불안함을 느끼며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포기하고 계단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1층까지 내려와 엘리베이터를 보자, 여전히 문자판의 표시는 1인채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버튼을 눌러 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출근하며 관리실에 들러서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는 것을 알렸다.


[바로 정비 회사에 연락해서 고치겠습니다.] 라고 관리인은 미안한 듯 말했다.




전철에 올라탈 무렵, 이미 나는 그 사건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 날은 제출 자료의 핵심인 수치 산출을 하는 날이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꽤 걸리다보니 새벽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회사를 나와 택시를 타고 맨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2시 반이 넘었을 때였다.


지친 발걸음으로 맨션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 나는 아침의 사건을 떠올렸다.


아직 엘리베이터가 안 고쳐졌으면 6층까지 걸어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의 앞으로 간다.


조심스레 버튼을 누르자, 화살표 버튼이 빛나며 문이 열린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6층 버튼을 누른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옷 갈아입고 바로 자자.


그렇게 생각하며, 6층으로 올라가는 문자판을 보고 있었다.




...3...4...5...6...


예상과는 다르게, 엘리베이터는 6층을 넘어서도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6층 버튼은 여전히 빛난 채 그대로다.




7...


그 상황에서 내가 먼저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방금 전까지 안도하고 있는 것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내일 아침 관리인에게 잔뜩 화를 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 엘리베이터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떠올라 조금 무서워졌다.


8...


맨 꼭대기인 8층에 도착하고 몇 초 후, 문자판에 숫자가 사라지고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6층 버튼의 빛도, 문자판과 함께 꺼져버렸다.


나는 열림 버튼을 계속 눌렀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그래서 모든 층의 버튼을 하나 하나 다 눌러 보았다.


엘리베이터는 어떠한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심지어 버튼에 불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혼자 힘으로 탈출하는 것은 포기하고, 비상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지지직거리는 스피커의 잡음 같은 것이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어딘가에 연결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응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3분 정도 지났는데도 대답이 없다.


나는 조금 초조해져서 그 버튼을 마구 눌렀다.




[...네.]


스피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마음을 놓았다.


[미안합니다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아서 안에 갇혀버렸습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까요?]




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소리는 나지 않고, 희미한 잡음만이 들려올 뿐이다.


[저기요,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한 번 더 물어봤지만 역시 응답은 없다.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엘리베이터 안에 울려퍼진다.


그리고 30초 정도 지났을까.




그 잡음 사이에 무엇인가 이상한 소리가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몇 초마다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나는 그것을 알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기묘한 소리였다.


끅끅거린달까, 꽥꽥거린달까.


소리라고 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것이 몇 초 간격으로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는 마치 어릴 적에 장난으로 개구리를 밟았을 때 나던 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 소리가 몇 번 정도 계속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소리는 끊겼다.




회선이 끊어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버튼을 눌렀지만,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문을 밀거나 열어 젖히려 했지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냈지만 엘리베이터 안이어서인지 전파가 잡히지를 않았다.


야근 때문에 피곤했던 나는 탈출하기 위해 힘을 쓰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결국 나는 아침에는 누군가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것을 눈치챌 것이라 생각하고 바닥에 주저 앉았다.




가방에서 마시다 넣어뒀던 생수병을 꺼내 한 입 마신다.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새벽 3시였다.


아침에 사람들이 출근하려면 적어도 3시간은 기다려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일단 조금 쉬기로 했다.


복잡한 생각은 그만두고 눈을 감으려 하는데, 또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마음 깊이 안도했다.


그리고 내가 했던 온갖 헛수고를 떠올리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다시 고장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나는 허둥대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나온 직후, 나는 내가 이상해진 것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현기증 때문에 넘어질 뻔 했다.


등 뒤에서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것이 느껴진다.


내 눈 앞의 풍경은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왼편에 안쪽까지 늘어선 방문과 창문들.


오른편에 보이는 야경.


이것 자체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왼편에 늘어선 문들은 평상시 보아오던 새 것이 아니라, 매우 오래된 것 같은 낡고 무거운 철제 문이었다.


깨끗한 타일이 붙여져 있던 외벽은, 군데군데 금이 가고 페인트가 벗겨져 무너질 것 같은 회색의 시멘트 벽으로 변해 있다.


그리고 멋진 조명으로 비추고 있던 전구는 사라지고, 몇 개의 낡은 형광등이 당장이라도 꺼질 것 같이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자 등에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한기가 서려왔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 곳에서 도망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마구 눌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포기하고, 계단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계단 앞에는 두꺼운 방화문으로 막혀 있어, 밀고 당겨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휴대 전화로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화면에는 본 적 없는 에러 표시만 나오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 곳에서 도망가기 위해 나에게 남은 유일한 수단은, 엘리베이터 반대쪽에 있는 또 하나의 계단 뿐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그 기분 나쁘게 이어진 낡은 방들 앞을 지나가야만 한다.


나는 그것이 너무 싫었다.




원래 내가 살던 맨션과 같은 구조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계속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안 쪽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대로 서 있느니 한시라도 빨리 이 곳을 떠나고 싶었다.


창문, 문, 창문.


창문, 문, 창문...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창문이 두 개.


이 구조는 내가 사는 맨션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계단까지 가기 위해서는 8개의 문을 지나가야 한다.




흐릿하게 명멸하는 형광등 때문에 안 쪽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같은 구조라는 예측이 맞을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걷는다.


점멸하는 형광등의 빛이 금이 간 벽이나 녹슨 문을 기분 나쁘게 비춘다.




창문은 닫혀 있고, 창의 격자는 잔뜩 녹슬어 있다.


첫번째 문을 지날 무렵, 나는 오른편에 보이는 야경의 변화를 눈치챘다.


수도권인 이 곳은 아무리 새벽이라고 해도 불이 켜진 곳이 많을 터였다.




이 맨션 주변만 해도 가로등이나 아직 자지 않는 사람의 집에서 빛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오른편에 보이는 것은 완전한 어둠 뿐이었다.


빛은 하나도 안 보인다.




새벽 3시라고는 해도 등불 하나 켜져 있지 않을리가 없다.


나는 더욱 겁에 질렸다.


이상한 세계에 혼자 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나는 근거도 없이 이 앞에 있는 계단이 출구라고 믿었다.


2번째 문을 통과할 때, 나는 앞에서 무엇인가의 낌새를 눈치챘다.


그것은 소리였다.




규칙적인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들어본 적 있는 소리다.


그것은 엘리베이터의 스피커에서 들려왔던 그 소리다.




정적 속에 그 개구리를 밟는 것 같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는 아무래도 3번째 방 근처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 소리는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들려왔다.




나는 3번째 문 근처에 멈춰 섰다.


그 문 끝에 있는 창문이 열려 있는 것 같다.


소리는 거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창문에 가까워졌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다.


나는 격자 너머로 살그머니 창을 들여다 보았다.




들여다 본 방은 깜깜했지만, 안 쪽 방의 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앞의 방에서는 희미한 빛이 보였다.


안쪽 방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머리가 긴 여자가, 등을 돌리고 앉아서 양손을 높이 들었다 흔들며 내리고 있었다.




일심불란하게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며, 여자는 몇번이고 양 손을 흔들며 올렸다 내리고 있었다.


손을 내릴 때마다 들려오는 개구리의 단말마.


자세히 보니 여자는 사람을 올려놓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의 것이 아닌 다리가 이 쪽 방향으로 보이고 있다.


그리고 높이 치켜올린 양 손에는 부엌칼 같은 것이 들려 있다.


마음껏 내려 찍히는 부엌칼.




켁켁거리는 소리는 폐가 찍혀서 충격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일 것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미동조차 없다.


하지만 여자는 신경 쓰지 않고 부엌칼을 계속 내리 찍는다.




그것을 알아차린 나는 무심코 뒤로 물러났다.


끼익하고 바닥에 구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가리고 몸을 숨겼다.




귀를 기울여서 방 안의 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심장은 미친 듯 뛰어서 박동이 들려올 정도다.


마음을 안정시키려 노력하며,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내 심장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안정을 되찾은 나는, 자세를 낮추고 신중히 그 곳을 빠져 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지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 안 쪽에서 다다다닥하고 현관을 향해 엄청난 기세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계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4번째 문을 지나갈 무렵, 뒤에서 쾅하고 무거운 문을 거칠게 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나는 필사적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죽을 힘을 다해 뛰고 있는데도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져만 온다.


6번째 문쯤 오자 이미 발소리는 내 바로 뒤에서 들리고 있었다.


심장과 폐가 터질 것만 같다.




7번째의 문을 지나치자, 계단이 보였다.


저기까지만 가면 살 수 있어.


계단으로 가면 안전하다는 보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렇게 믿으며 달렸다.




마지막 문을 통과할 무렵,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바로 내 옆에서 들려 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부엌칼이 등에 꽂힐 것 같은 공포에, 나는 아무 소리나 지르며 달렸다.


그리고 계단을 한 번에 뛰어 내리려고 한 순간, 나는 뒤에서 무엇인가가 나를 잡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떻게든 계단으로 온 힘을 다해 뛰어 내린다.


몸의 밸런스가 무너져 이상한 자세로 공중으로 날아 오른다.


그리고 등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계단 위에서 끔찍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여자가 보였지만, 나의 의식은 곧바로 희미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당황해서 주변을 살폈지만, 평상시와 똑같았다.




몸이 여기저기 아팠지만, 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천천히 계단으로 내려갔다.


아무래도 나는 8층과 7층 사이의 계단에서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계를 보자 아침 6시였다.




집에 겨우 도착하자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나를 걱정했던 것인지 바로 아내가 나왔다.


몸을 겨우 움직이는 나를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아내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도저히 그 사건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술에 취해 계단에서 떨어진 채 자버렸다고 했다.




아내는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곧바로 타박상을 응급처치해 주었다.


그 날은 도저히 회사에 나갈 몸 상태가 아니었기에 나는 회사를 쉬었다.


만약을 위해 병원에 가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에 의지하면서 엘리베이터의 앞에 왔을 때, 나는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엘리베이터는 평범하게 도착해서 평범하게 우리를 옮겨다 주었다.


그 사이, 나는 고통조차 잊을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관리인이 있었다.


관리인은 아내에게 부축받고 있는 나를 보고 걱정하며 말을 걸어 온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관해 물었다.




어제 정비 회사에서 사람이 왔었지만, 고장은 없었다고 관리인은 말했다.


나는 그 사건이 정말 있던 것인지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피로 때문에 꿈이라도 꾼 것이었을까.




회사를 이틀 쉰 나는, 아직 여기저기 쑤시는 몸으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장을 입기 위해 윗도리를 옷걸이에서 꺼냈을 때,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그 이후 나는 계단으로만 다니고 있다.




최대한 빨리 이 맨션은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갈 생각이다.


역시 그 사건은 모두 현실이었던 것이다.


내 정장 윗도리에는, 거무스름하게 갈라진 손톱이 매달려 있었다.







Illust by dog_foot(http://blog.naver.com/dog_foot)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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