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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필 무렵이 되면 추억이 떠오른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장난꾸러기 친구 3명과 친했고, 우리의 우정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A, B, C와 나.



그리고 또 한 명,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사쿠라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사쿠라는 우리들 사이에서 떠받들어질 정도의 존재는 아니었지만, 딱히 따로 친한 여자아이가 있던 것도 아닌데다, 그녀는 꽤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탓에 다들 [사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서로 그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 답답하지만, 돌아보면 그리운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 우리 5명은 축제가 끝난 뒤 술을 사서 근처 공원에서 마시게 되었다.

술기운이 올라서인지, 어느덧 화제는 담력시험으로 넘어가 있었다.

근처 숲 속에는 무덤이 있었고, 그 무덤 앞에서 합장을 하면 무서운 꼴을 한 여자가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보면 미쳐버린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도시전설처럼 유행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우리끼리 한 번 가보자구.]

그 무렵, 우리 사이에서 가장 폼을 잡기 좋아하던 C가 말했다.



조금 경박한 성격의 B는 어째서인지 기운 없이 [그만두자...] 라며 비 맞은 강아지마냥 C를 바라 보았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 신경도 뛰어난데다, 정의감도 강해서 우리 사이에서는 리더 격이었던 A는 가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사쿠라에게 [너는 어떻게 할래? 돌아갈까?] 라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어땠냐고 하면, 사쿠라와 함께 가서 내가 얼마나 용기가 있는지 보여줘서 환심을 사고 싶었다.



아마 당시에는 다들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A의 질문에 고개를 젓는 사쿠라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갈래! 너희들만 가면 혼자 남아서 불안하잖아.]



결국 사쿠라도 같이 가기로 해서, 우리들은 숲으로 향했다.

거기서 어떤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상상조차 못한채.

숲 속을 가로질러 묵묵히 나아간다.



술기운도 서서히 옅어져 말수가 적어진다.

운 좋게도 사쿠라는 내 옆에서 걷고 있어서, 내 셔츠의 소매를 잡고 있었다.

한밤 중의 숲 속에서, 우리는 달빛과 A가 들고 있는 랜턴의 가냘픈 빛만을 의지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겨우 소문의 그 무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합장을 하는 거였나?]

C는 아직 술이 덜 깬 건지, 무서움을 애써 참는 것인지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장난스런 모습으로 무덤에 다가간다.



B는 이미 얼굴이 창백해져서 [돌아가자...] 라며 나와 A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A는 침착하게 냉정을 유지하며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사쿠라는 변함없이 내 소매를 잡고 있었지만, 겁에 질린 탓인지 셔츠가 뜯어질 것 같이 꽉 잡고 있었다.



소매를 잡은 손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으아아아악!]



B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순간 우리는 공포와 긴장의 극에 달해 토끼처럼 도망치기 시작했다.

누가 어떻게 도망쳤는지, 어디를 어떻게 달렸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저 어두운 구름에 휩싸인 채, 주변은 돌아볼 생각도 못하고 그저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나는 겨우 숲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공원에 돌아와 망연자실해 있자, 잠시 뒤 A가 나타났다.



[다른 녀석들은? B랑, C랑, 사쿠라는 어디 갔어? 같이 안 온거야?]

A에게 추궁당한 나는 혼자 도망친 것을 후회하면서, 못 봤다고 대답했다.

A는 혀를 차고 함께 찾으러 가자고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A라도 무서웠던 것인지, 도망치는 와중에 랜턴을 떨어트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결국 공원에서 가장 집이 가까웠던 내가 랜턴을 가지고 와서 다시 숲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집에서 랜턴을 가지고 공원에 돌아왔을 때는 C도 간신히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C도 나처럼 B와 사쿠라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게다가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싫다는 것이었다.

[장난하냐? 애초에 거기 가자고 한 건 너였잖아!]



A는 C에게 잔뜩 화를 냈다.

C는 난처하다는 듯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라고 계속 사과했다.

[그렇지만 난 봤단 말이야. 여자 같은 그림자가 무덤 뒤에서 나오려고 했어...]



평소에는 짓궂게 우리를 비웃던 C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당장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자가 얼굴을 들려는 순간 B가 소리를 질러서, 너무 무서웠어...]

그 이야기를 듣자 나도 아까 전의 광경이 떠올라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졌다.



다시 숲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C.

가서 친구들을 찾아야 한다는 A.

이쪽도 저쪽도 아닌 애매한 나.



3명이 의견의 합의를 보지를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을 무렵, 숲 속에서 흙투성이가 된 B가 터벅터벅 걸어 왔다.

숨을 거칠게 몰아 쉬고, T셔츠는 찢어진데다 여기저기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괜찮아?] 라며 달려가서 [사쿠라는?] 이라고 B에게 물었다.



B는 울면서 [모르겠어.]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부모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했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 날 밤은 동네 사람들이 총출동해서 사쿠라의 행방을 찾았지만 사쿠라는 찾을 수 없었다.



문제의 무덤 주변을 중점적으로 수색했지만, 단서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그 후 몇 주간에 걸쳐 수색은 계속 되었지만, 사쿠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매일 숲에 모여서 사쿠라를 찾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는 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쿠라의 시체를 찾는 게 아니라, 사쿠라를 찾는거야!] 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계속 찾았다.

결국 사쿠라가 발견된 것은 다음해 봄, 벚꽃이 필 무렵에서야였다.

사쿠라는 숲의 출구 부근에서 뼈만 남은 채 발견되었다.



옷과 소지품을 확인한 결과 사쿠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숲 속은 빠짐없이 찾았는데 왜 진작 찾아내지 못했을까.

우리는 자책하면서 장례식에 참석했다.



사쿠라의 부모님은 우리를 전혀 탓하지 않고, 딸의 친한 친구로서 대해주셨다.

그것이 얼마나 괴롭고 어려운 일일지, 당시의 우리도 아플만큼 느끼고 있었다.

A가 사쿠라의 부모님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우리는 사전에 같이 정했던 부탁을 했다.



[혹시 사쿠라의 뼛조각을 나눠주실 수 있으십니까?]

사쿠라의 부모님은 어안이벙벙해져서 A를 바라본다.

[다섯명이 늘 같이 놀던 공원 벚꽃나무 아래에 사쿠라를 묻어주고 싶습니다.]



내가 말을 이었다.

[너희 기분은 알겠지만, 납골묘를 관리할 스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부모님이 당황해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주지 스님이 [가족만 허락한다면 저희는 상관 없습니다.] 라고 허락해 주셨다.



우리는 장례식이 끝난 뒤 울면서 사쿠라의 일부를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에 묻었다.

그 후 우리들은 진학, 취직 등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나와 A는 대학에 갔고, B는 백수로 남았고, C는 취직을 했다.



서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 점차 사쿠라의 비참한 죽음은 마음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래도 무언가 기념할만한 날에는 공원을 찾아 그 벚꽃나무 아래 앉아서 사쿠라를 생각하며 말을 걸기도 했다.

제멋대로기는 해도 사쿠라와의 아름다운 추억만을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다음해 성인의 날.

오랜만에 4명이 다 모여서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옛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슬슬 취기가 올라올 무렵, C가 갑작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사쿠라 만나러 갈까?]

A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너, 잘도 그런 소리를...]



당황해서 C가 해명한다.

[아니, 공원에 가보자는 거야!]

B는 그 때처럼 여전히 내켜하지 않았다.



[유, 유령이라도 되서 나오면 어떻게 해...] 라며 무서워하고 있었다.

C는 B의 등을 두드리며 [야, 사쿠라라면 귀신이라도 만나고 싶다!] 라고 웃었다.

C 나름대로 그 사건을 추모하고 싶어하는 거라고 여긴 나와 A는, 같이 공원에 가기로 했다.



네 명이 다같이 공원에 온 것은 사쿠라를 묻은 그 날 이후 처음이었다.

밤바람은 술로 데워진 몸을 가차없이 식힌다.

벚꽃나무 아래는 무척 추워서, 아직 봄은 멀었다는 생각만 든다.



[사쿠라, 만나고 싶다...]

C가 중얼거렸다.

[어릴 때부터 계속, 좋아했었는데...]



이어진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말하고 싶었었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나도야.] 라고, A가, 그리고 내가 말한다.



마지막으로 B가 말하고, 우리는 누구 하나 먼저랄 것 없이 합장을 했다.

[으아아아악!]

그리고 그 순간, 그 날처럼 B가 소리쳤다.



벚꽃나무 뒤에서 사쿠라가 그 날 그 모습 그대로 천천히 나타난 것이었다.

그 날과 다른 것은, 분노에 가득 찬 표정과 몸 전체에 가득한 상처들뿐.

그리고 다리 사이에서 배어나오는 파과의 혈흔이었다.



사쿠라는 천천히 우리들에게, 그 중에서도 B에게 다가간다.

B는 깜짝 놀라 기겁한 것인지,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나와 A, C는 가위에 눌린 것마냥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용서해 줘! 용서해 줘!]

B는 벌벌 떨면서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쿠라는 B의 눈 앞까지 다가가더니, B 속에 비집고 들어가듯 슥 사라졌다.



순간 B가 무서운 기세로 구토를 시작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토한다.

피도 섞여 나오고 있었다.



다 토하고 나자 이번에는 말도 안 되는 모습으로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B의 입 안에서 피와 살점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혀와 입 안을 씹어 뱉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무렵, B의 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음소리를 내며 흰자를 치켜떴다.

간신히 B의 곁으로 달려간 우리 머리 위에서, [미안해.]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올려다 본 위에는 아름다웠던 모습 그대로의 사쿠라가 있었다.



희미하게 눈물을 머금은 채, 사쿠라는 사라졌다.

[사쿠라! 가지마!]

A가 소리쳤다.



C는 쓰러져 있는 B에게 달려가 정신을 잃은 B를 후려갈겼다.

[네가! 네가! 왜 그런 짓을!]

C는 울면서 B를 계속 때렸다.



나는 그것을 말릴 수조차 없었다.

B는 그 후 구급차로 후송되어 어떻게 목숨은 건졌지만, 입 안과 내장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광대뼈도 부러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정신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상처가 회복된 후에도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C는 B가 입은 상처의 책임을 모두 지게 되어 상해죄로 체포되었지만, 취중에 일어난 가벼운 싸움으로 취급되어 벌금형으로 끝났다.

봄이 되고 나와 A는 다시 공원을 찾았다.

사쿠라는 무사히 천국에 갈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뒤에서 A가 말했다.

[사쿠라는 강했어... 그 날 무덤 뒤에서 여자가 나왔을 때, 나도 무서워서 도망치고 말았지만, 그 와중에 문득 뒤를 돌아봤다가 봤거든. 사쿠라가 뒤늦게 겁에 질려 도망치던 B를 기다리고 있던 걸... 그런데도 B 그 자식은 사쿠라를...]

A의 목소리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과 허무함이 배어있었다.



나는 벚꽃나무에 손을 모아 빌었다.

부디 사쿠라가 천국에서는 행복하기를.

해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환하게 웃던 사쿠라의 모습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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