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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8

[번역괴담][2ch괴담][471st]19 지장

괴담 번역 2014. 9. 8.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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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히로시마의 어느 시골에 있다.

그런데 왠지 이웃 마을과 사이가 나쁘다.

우리 마을을 A마을, 이웃 마을은 B마을이라 해보자.



기묘하게도 양 마을 사이가 그렇게 나쁜데도, 왜 그런지 아는 사람이 없다.

A마을 거주자에게 묻던 B마을 사람들에게 묻던 제대로 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저 나오는 이유랍시곤 선조대부터 서로 적대하고 있었다는 것 뿐이다.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선조의 원한이 아직도 두 마을을 대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A마을과 B마을 사람들은 서로 간에 결혼하는 게 금기시되어 있다.

그 뿐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 시절쯤까지 올라가면 [B마을에는 발도 들여놓지 말거라!] 라고 엄포를 놓을 정도였다고 한다.



딱히 두 마을 모두 과거 차별을 받던 부락 같은 것도 아니다.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왜 가면 안되는데?] 라고 묻자, [B마을에 가면 저주를 받아 재앙을 받느니라!]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아버지 왈, A마을과 B마을 사이의 도조신을 넘어 상대 마을로 가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B마을 어느 사거리에선 사고가 잦은데 언제나 사고를 내는건 A마을 사람이라는 것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B마을로 시집을 갔던 여성이 요절을 했다느니, B마을의 강에서 가끔 익사체로 발견되는 이는 늘 A마을 사람 뿐이라는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소문이 잔뜩 떠도는 것이다.

솔직히 난 재앙 따위는 믿지 않았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B마을에 가면 왜 저주를 받는다는건지 물어봤었다.

할아버지는 [19 지장이 저주를 내리가 때문이로다.] 라고 대답했다.

19 지장이란 B마을 신사에 있는 19개의 지장보살상이다.



나도 본 적이 있지만, 그저 낡아빠진 보통 지장보살이었다.

[왜 지장보살님이 사람한테 재앙을 내리는데?]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알 수 없다.] 라는 뜨뜻미지근한 것 뿐이었다.



당연히 이런 이유도 모를 구습이 젊은이들에게 먹힐리가 없다.

나 역시 B마을 사는 친구들과 놀러다니곤 했으니.

B마을 친구에게 [너네도 우리 마을 오면 안 된다고 어른들이 막 그러냐?] 하고 물어봤지만, 친구들은 [그게 뭔소리냐?] 라는 대답 뿐이었다.



그런 꼴이니 나는 점차 할아버지의 낡은 믿음을 무시하고, 신경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형과 함께 B마을의 강에 물놀이를 갔다.

할아버지가 알면 노발대발할 일이지만, 솔직히 우리에겐 별로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도착해 강에 들어간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갑자기 형이 [야, 나가자] 라고 말했다.

전혀 영감 따윈 없는 나와 달리, 형은 어릴 적부터 무척 영감이 강했다.

[왜 그러는거야? 이제 막 놀기 시작했는데...]



[됐으니까 빨리 나와!]

나는 형의 진지한 얼굴에 놀라, 옷도 못 입고 대충 손에 든 채 저멀리 가는 형을 쫓아 뛰었다.

[저기, 형. 왜 갑자기 가는거야?]



[너한텐 안 보여?]

[엥?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새까만 그림자 같은게 20명 가까이 있었어. 그게 우리를 보면서 어마어마한 적의를 내뿜고 있었다고.]



20명 가까운 그림자...

그 말을 듣자 내 머릿속에서는 19 지장이 떠오르며 오싹해졌다.

하지만 왜 두 마을의 사이가 나쁜지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훨씬 지나,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후였다.



A마을의 신사에서 어떤 문헌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은 무로마치 시대 후기, A마을과 B마을 간에 강의 이용권을 놓고 벌어진 다툼에 관한 문서였다.

A마을이 B마을에게 승리를 거뒀다는 이야기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무사만 무기를 지참할 수 있게 법이 바뀌기 전이었으니, 당시의 농민은 농민이라 하더라도 칼을 지니고 무장한 존재였었다.

병농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농민과 무사 간의 경계 자체가 모호하다.

그렇기에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대단히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일로 기록을 해둔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해 에도시대.

농민들에게 헛바람을 불어 넣을 불온한 문건은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께름칙한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 문서는 A마을의 신사에 남몰래 숨겨졌던 것이다.



이 문헌은 중세사에 있어 농민이 단순한 소수의 약자만은 아니었다는 증거로, 나름대로 지역 뉴스에도 나오고 타 지방의 사학자들도 문서를 보러 방문할 정도였다.

그리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A마을과 B마을이 강의 이용권을 두고 싸웠다. A마을이 기습을 해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용권을 빼앗았다. A마을의 피해는 경미해 5명이 경상을 입었다. B마을의 남자 16명을 베었고, 싸움에 휘말려 여자 둘과 아이 하나가 죽었다. 19명 중에는 B마을 촌장이자 신사의 신주였던 J가 당주도 포함되었다.]



19 지장이 저주를 내린다던 할아버지의 말은 잘못 된 것이었다.

19 지장은 당시 죽었던 19명의 B마을 사람들 혼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형이 보았던 그 그림자와 A마을 사람들이 B마을에서 겪는다는 재앙들을 생각해보면...



아직까지도 지장보살님조차 달랠 수 없는, 억누를 수 없는 깊고 깊은 원한이 남아있는 것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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