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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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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면서 딱 한 번, 기묘한 체험을 한 적이 있다.

가위눌림이라는 현상은 많은 이들이 겪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가위눌림은, 실은 잠을 자고 있는데도 뇌가 착각을 해 깨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명된다.



그리고 나도 그 해석에 동의하는 바였다.

그리고 거기서 호기심이 생겼다.

만약 가위에 눌렸을 때, 그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이었다.



흥미가 생긴 나는 내가 자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 가위에 눌리는 순간을 관찰하기로 했다.

자기 전에 카메라를 적당한 위치에 설치하고, 자는 동안 가위에 눌리면 일어나서 카메라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위를 자주 눌리는 것도 아니었기에, 한 두 달 가량은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 밤, 마침내 때가 왔다.

그 날은 특별히 지친 것도 아니었고, 딱히 가위에 눌릴 거라는 예감도 없었기에 평소처럼 잠에 들었던 터였다.

하지만 잠에 들고 4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가위에 눌릴 때 느껴지는 특유의 기분 나쁜 감각이 나를 덮쳤다.



곧바로 의식이 돌아오고,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드디어 가위에 눌렸구나, 하고 흥분하는 한편,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감정이 마구 뒤섞인다.

이 실험의 목적은 단순히 가위에 눌리는 게 아니라, 얼마나 이 현상을 지속시켜 기록으로 남기는가에 달려 있다.



오랫동안 가위에 눌려있지 않으면, 동영상을 틀어도 잠시 지나가고 말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몸을 안정시키지 않으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왠지 묘하게 냉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서, 가위에 눌리고서 그렇게 5분 가량을 있었다.



슬슬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오고, 슬슬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 내게는 가위에 눌리는 것 말고도 계획이 하나 더 있었다.

가위에 눌린 상태에서, 소리를 힘껏 지르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가위에 눌린 상태에서 힘껏 소리를 지를 경우, 그것을 찍은 영상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정말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머릿 속에서 소리를 질렀다고 상상만 할 뿐, 실제로는 가만히 누워만 있는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나는 가위눌림 끄트머리에, 온 힘을 쥐어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 자신의 감각으로는 확실히 소리를 질렀다는 느낌이었다.

그와 동시에 힘이 다 했는지,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더니,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묘하게 몸이 나른하다.

그토록 기력을 쥐어짰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당장이라도 찍어놓은 영상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우선 출근이 급했기에 퇴근 후에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드디어 어제 찍은 동영상을 확인한다.

두근두근대며 기대했지만, 그래봐야 어차피 내가 자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는 것 뿐이겠지.

다만 소리를 질렀던 시점의 영상이 무척 궁금했다.



카메라를 PC에 연결하고, 파일을 확인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대개 카메라로 찍은 동영상은 "일련번호.avi" 형태로 저장된다.



그리고 카메라 안에는, 며칠 전에 찍고 지우지 않았던 실험용 동영상 몇 개와, 어제 찍은 동영상 파일만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폴더 안에는 [ssggggg34333333333333], [B9めn項sSもp懺れ履水] 등 완전 이상한 이름의 파일이 30개나 있었다.

심지어 확장자도 없다.



당연히 더블클릭해봐도 실행이 되지 않는다.

시험삼아 이름을 바꿔 뒤에 ".avi"를 붙여 봤지만, 재생할 수 없는 파일이라는 창이 뜰 뿐이다.

어쩔 수 없이 그 중 유일하게 "일련번호.avi" 형태로 저장된 파일을 연다.



일련번호와 저장일로 미루어 보니, 어제 찍은 영상인 듯 했다.

재생이 시작되고, 내 방의 모습이 나타난다.

촬영 시점은 침대에서 자고 있는 내 발 끝에서, 내려보듯 찍혀 있다.



화면 아래 쪽이 내 발 쪽이고, 화면 위 쪽은 내 머리 쪽이다.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동영상을 배속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어라, 하고 당황했다.



동영상의 총 재생시간이 하단에 표시되어 있는데, 4시간 남짓이었다.

분명 내가 잠에 든 시간과, 일어난 시간을 감안하면 7시간 정도 분량이 촬영되어 있어야 한다.

그게 묘하게 짧은 것이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일단 계속 배속 재생으로 영상을 본다.

그 사이, 침대에서 자고 있는 나는 종종 뒤척이거나 미묘하게 움직일 뿐, 딱히 큰 변화는 없었다.

동영상이 3/4 정도 재생될 무렵까지 배속으로 영상을 틀었지만, 아무 변화도 없다.



하지만 어제 내 감으로는 이 무렵에 가위에 눌렸었다.

곧 가위에 눌리는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그 부분부터 정상 속도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재생 시간이 3시간 30분을 넘어갈 무렵, 이변이 일어났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뒤척이던 내가, 몸을 돌리다 그대로 멈춰버렸다.

몸을 돌리다 오른손을 하늘에 올린 채, 몸이 딱 굳어 있는 것이다.

당황해서 재생바를 확인했지만, 재생 자체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는데, 화면 속의 나는 혼자 부자연스럽게 팔을 공중에 든 채, 일시정지라도 한 것 마냥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혹시 이게 가위에 눌렸을 때의 모습인걸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에, 가슴이 덜덜 떨려왔다.



가위눌림은 단순한 뇌의 착각이 아닌걸까?

설마 실제로 몸이 경직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른채 그저 멍하니 동영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몸이 굳고 나서 3분 가량 흘렀다.



화면은 여전히 똑같다 싶었지만, 뭔가 이상하다.

이 위화감은 뭘까, 하고 의문을 느끼고 있을 무렵, 문득 깨달았다.

자고 있는 내 발 밑, 이불 속에서, 무언가 검은 것이 나와 있다.



대단히 느린 움직임이었기에 한동안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분명히 내 몸이 아닌 무언가가, 내 발 밑으로부터 나와 있었다.

이윽고 그것이 천천히 움직이며, 검은 부분 외에 하얀 부분도 영상에 잡히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머리카락과 이마 같다.



사람의 얼굴이다.

사람의 얼굴이, 내 발 밑, 이불 속에서 거꾸로 천천히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 동영상을 꺼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동영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동영상을 끝까지 봐야한다는 것처럼, 정지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몸이 자유롭게 움직여주질 않는다.



마치 깨어있는 상태에서 가위에 눌린 것처럼.

이윽고 그 얼굴은 이불에서 반쯤 빠져나와,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두 눈에서는 전혀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쩐지 카메라 너머로, 지금 이 영상을 보고 있는 나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그 사이, 동영상 속에서 팅팅팅하는 금속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피식, 파식하는 파열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보다가는 너무 위험하다.

저 얼굴이 전부 나오면 끝장이다, 하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제발 멈춰줘!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멈춰!

마음 속으로 계속 소리친다.



동영상의 재생 시간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제발 멈춰!

이대로 저 얼굴이 다 나타나기 전에, 동영상이 끝나기만을 빌던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화면에 나타났다.



화면 한구석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 카메라 스위치를 눌러 녹화를 정지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화면에 찍힌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

화면에 나타난 나는, 무표정인 채로 카메라에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눌렀다.



그것을 보자 나는 공포와 혼란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자 이미 아침이었다.

하지만 모니터 속의 카메라 폴더에는, 어제 봤던 동영상 파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파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솔직히 그 이후 그 동영상을 다시 보는 것 자체가 두려웠기에, 바로 동영상을 지우고 카메라도 팔아버렸다.

그 날은 도저히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 회사마저 쉴 정도였다.



그 날 내가 봤던 것은 도대체 뭐였을까.

녹화를 중지시킨 것은 분명히 나였지만, 내 기억 속에는 결코 그랬던 적이 없다.

설령 내가 녹화를 멈췄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 침대 위에는 또다른 내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이불 밑에서 나타나던 그 얼굴은...

그 때 이후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가위에 눌린 적이 없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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