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2014/11

[번역괴담][2ch괴담][521st]역의 화장실

괴담 번역 2014. 11. 21. 21:10
320x100




나는 꽤 자주 가위에 눌리는 편이다.


그리고 이상한 것이나 귀신도 종종 보곤 한다.


그러다보니 웬지 모르게 [아, 느낌이 안 좋은데.] 하고 감이 팍 올 때가 있다.




어느날 아침, 나는 평소처럼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 날은 조금 늦잠을 자 버렸기에, 당황해서 역까지 달려갔다.


그랬더니 웬걸, 오히려 평소보다 빨리 역에 도착해 버렸다.




전철이 올 때까지는 아직 10분 정도 여유가 있다.


그러고보니 어째 아랫배가 슬슬 아프다.


아침은 대충 집어먹었지만 화장실에 들를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10분 정도면 빠르게 처리하고 나올 수 있겠다 싶어, 나는 역 화장실로 향했다.


2칸 중 한 곳에는 사람이 있었지만, 한 곳은 비어 있었다.


재빨리 용변을 보고, 손을 씻었다.




그러는 사이, 옆칸에 있던 사람도 문을 열고 나왔다.


샐러리맨인 듯한 아저씨가, 가방을 들고 세면대 쪽으로 걸어온다.


아, 이 아저씨도 손을 씻으려 하는구나.




별 생각 없이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아저씨를 보자 어째서인지 가위에 눌릴 때 느끼는 그런 감각이 느껴졌다.


뭐랄까, 오한이 나고 등골이 소름이 쫙 끼치는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니 아까 화장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런 느낌이 났던 것 같다.


용변이 급해 무시하고 있었지만...


하지만 나는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설령 뭐가 나온다 하더라도, 옆에 아저씨도 있겠다 별 일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아저씨는 다리가 좀 불편한지, 엉기적엉기적 걸어 내 곁에 온 후, 손을 씻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닫고 말았다.




아저씨의 모습이 세면대 거울이 비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조심스레 아저씨 쪽으로 눈을 돌리자, 아저씨도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저씨의 표정에선 내게 위해를 가하려는 듯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 같은 것이 전해져왔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게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그저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손을 다 씻고, 아저씨는 가방을 든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화장실을 나섰다.


나는 뒤로 돌아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저씨의 등은 양복이 길게 찢어져, 피투성이였다.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데도, 오른발은 거꾸로 돌아가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화장실을 나감과 동시에, 몸에 가득했던 한기가 사라졌다.




그 후 나는 그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520th]오래된 SF 소설

괴담 번역 2014. 11. 20. 22:00
320x100




작년 이맘 때 얘기다.


그 무렵 나는, 오래된 SF 소설에 푹 빠져 있었다.


권선징악이나 당시 사람들이 상상하던 공상과학 자체가 무척 재미있어서, 복각판 문고본을 사서 잔뜩 읽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책을 읽다 문득 잠에 들었는데, 웬 낌새가 느껴져 눈을 떴다.


방 한 구석에 사람이 있었다.


서른을 좀 넘은 듯한 여자였다.




여름인데도 스웨터와 길고 두터운 스커트를 입고, 벽에 기대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대단히 놀랐지만, 잠에 취한 탓인지 묘하게 두렵지는 않았다.


아줌마지만 자세히 보니 전에 봤던 "아멜리에" 라는 영화의 여주인공을 닮았기에,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멍하니 계속 보고 있자니, 여자는 나를 의식한 것인지 내 쪽을 보며 씩 웃었다.


[이런 책 좋아하면, J한테 물어보렴. 아직 남아 있을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책을 들어 표지를 내게 보인다.




자기 전에 읽고 있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이상한 꿈을 꿨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방 한 구석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샀던 SF 소설이 여러권 쌓여 있던 것이다.


그리고 맨 위에는 자기 전에 읽었던 책이 놓여 있었다.




설마 진짜인가 싶어 소름이 끼쳤지만, 문득 신경이 쓰였다.


그 여자가 말한 J란 건 누구지?


내 주변에서 J라는 이름을 가진 건 우리 아버지 뿐이다.




그 밖에 딱히 짚이는 데도 없었기에, 아버지가 일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려 물어봤다.


일단 어제 읽었던 책과 "아멜리에"의 DVD를 구해 놓고서.


내가 말을 꺼내자, 아버지는 이게 제정신인가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내가 책과 DVD를 보여주자, 아버지의 표정이 달라졌다.


[설마 누님인가... 그러고보니 곧 추석이구만. 좋아, 이번 주말엔 성묘를 가야겠다. 너도 따라와라.]


그 누님이라는 분은, 아버지의 사촌누나였다.




아버지보다 10살 가량 나이가 많아, 아버지를 곧잘 챙겨주셨다고 한다.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 책이랑 향수, 향수병 모으는 걸 무척 좋아했었다고 한다.


35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계속 독신으로 살았었지만, 무척 상냥한 사람이라 아버지 뿐 아니라 주변 사람은 다들 그녀를 좋아했었던 듯 하다.




어머니와도 사이가 좋았기에, 나중에 어머니한테도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어머니가 보물로 가지고 있는 향수병 콜렉션이, 그 분에게서 선물로 받은 거였다나.


절판된 귀한 물건이라, 어릴 적에 누나가 함부로 손을 댔다 엄청 혼난 적이 있었다.




[왜 그 분이 절 찾아오셨을까요?] 라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기분 좋았던 거겠지. 누님은 이런 이야기를 엄청 좋아하셨으니까. 분명 조카뻘 되는 네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기쁘셨던게야.]


주말이 되어 아버지와 함께 시골을 찾아 성묘를 한 뒤 시골집에 갔다.




창고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에는 귀한 SF 문고본 초판들도 가득하고, 내가 찾던 책들도 잔뜩 있었다.


지금도 가끔 책을 꺼내볼때면, 그 분이 살아계셨다면 지금은 어떤 책을 읽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같은 장소를 계속 꿈에서 마주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한 번 꾼 꿈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악몽이건 평범한 꿈이건, 별 상관 없는 꿈이라도 언제나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대개 옛날에 살던 집이나 친구, 혹은 친척의 집 같은 곳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혀 기억에 없는 곳임에도, 자주 꿈 속에 나타나는 곳도 있다.


학교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친구 S가 나에게 해 준 이야기다.




그는 어릴적부터 꿈만 꾸면 늘 같은 곳에 있었다고 한다.


약간 서양 같은 느낌의 평범한 단독주택으로, 2층짜리 집이었다.


언제부터 그 집이 나오는 꿈을 꿨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그 집 꿈을 꾸면 [아, 또 여기인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S에게는 무척 사이가 좋은 K라는 친구가 있었다.


집도 근처고, 부모님끼리도 사이가 좋았기에 서로 집을 왔다갔다 하며 매일 붙어다녔다.


좋아하는 만화도, 게임에서 사용하는 캐릭터도 같았다.




성적도 비슷했고, 키나 몸무게도 고만고만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평소처럼 둘이 놀고 있는데 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 꿈을 꾸면 언제나 똑같은 집이 꿈에 나와.]




그런데 그 말을 들은 K가, 자신 역시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이었다.


종이를 꺼내 꿈에 나온 집의 배치도를 그려서 보여줬더니, K는 자신도 그 집이 꿈에 나온다도 대답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무래도 둘은 꿈에서도 같은 집을 보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둘은 기묘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서로 꾼 꿈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이 잦아졌다.


집은 생각보다 꽤 넓어서, 4, 5인 가족이 살 법한 크기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1층 귀퉁이 방만큼은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어린 치기에서였는지, 둘 중 누가 먼저 그 방에 들어가는지를 경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무렵부터 악몽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집 안에서 식칼을 들고 쫓아오는 살인마를 피해 도망다니거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귀신에게 쫓긴다거나 하는 꿈 뿐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1층 귀퉁이방까지 다가갈 여력이 없다.


거기에 S와 K의 사이도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 완전히 똑같은 꿈을 꾼다는 것에 신나, [우리 전생에는 형제였던 거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점차 꿈에 관해서는 서로 말을 피하게 되었다.




S의 말로는, [서로 너무 닮았다보니 솔직히 나도 좀 기분이 나쁘더라.] 는 것이었다.


[얼굴이 닮은 건 아니지만, 나랑 K만 느낄 수 있는 공감대 같은 게 있었어.]


그건 K도 마찬가지였는지, 둘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서로 다른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친구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전화로는 자주 통화도 하고, 오다가다 마주칠 일도 많았다.


그렇지만 동아리나 진로에 있어서는, 서로가 다른 선택을 하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대학에 진학할 무렵에는 서로 다른 생활 환경 때문에 둘 사이는 꽤 소원해졌다고 한다.


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왔는데, K에게서 오랜만에 연하장이 와 있었다.


연하장에는 K가 키우던 개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아, 쵸코 아직 살아 있구나.]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그리워졌다.


연하장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글이 한 줄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K의 필적으로 작게 글씨가 써져있었다.


[그 방이 나를 불렀어. 내가 먼저 갈게.]


그 말을 보자 머리가 새하얘졌다.




S 역시, 며칠 전 그 방이 자신을 부르는 꿈을 꿨던 것이었다.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일정주기로 그 집에 관한 꿈은 꾸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 날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집 안을 걷고 있는데, 웬지 모르게 [아, 지금이라면 그 방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S는 결국 그 방에 가지 못했다.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전화가 와서 잠에서 깼던 것이다.


겨울방학이 지나 학교가 개학하고, 다시 S가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K가 행방불명되었다는 것이었다.


자취하던 아파트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었다.




혹시 K의 행방에 관해 아는 게 있냐는 질문에, S는 모른다고 밖에는 답할 수 없었다.


꿈 속의 이야기를 해 봐야 누구 하나 믿어주지 않을테니까.


그로부터 반 년 가량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K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이가 조금 멀어졌다고는 해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 해 온 친구의 실종에, S는 외로워서 도저히 기운을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추월당했다는 것에 대한 분한 마음 역시 있었다.


[다시 그 방이 나를 부르는 때가 온다면, 이번에는 꼭 나도 거기로 가 볼거야. 거기엔 K 녀석이 날 기다리고 있겠지...]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518th]할머니의 목적

괴담 번역 2014. 11. 18. 20:45
320x100




내가 직접 겪은 실화다.


어릴 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른 채 넘어갔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노라면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무서운 일이었던 것 같다.


그 사건은 내가 무척 어릴 때 일어났다.




기억이 애매하지만, 여동생이 아직 갓난아이였을 무렵이니 아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당시 여동생은 천식이 심해, 진찰과 약 처방을 겸해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먼 곳에 있는 병원에 통원하고 있었다.


나는 딱히 병은 없었지만 매번 동생과 어머니를 따라갔다.




어렸을 때는 설령 병원에 가는 것이라도 멀리 나가는 건 다 즐거운 법이다.


게다가 가는 도중에 음식점에 들러 외식을 할 때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픈 동생 챙기기도 힘든데, 나까지 따라오니 무척 힘드셨을 것이다.




[너는 집에 있으렴.] 이라는 소리를 매번 들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고집을 피워 같이 병원에 따라다녔다.


병원에 가면 여동생이 진찰을 받을 동안, 나는 병원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곤 했다.


그 날 역시 평소처럼 넓은 병원 안을 탐험하는 기분으로 돌아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환자복을 입은 처음 보는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얘야, 사탕 먹을래?]


새하얀 백발인 와중에 듬성듬성 보이는 검은 머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 할머니는 몹시 몸집이 작은데다, 심하게 야위에 있었다.




안색도 영 좋지 않아 건강이 안 좋은 것처럼 보였다.


무슨 생각이라도 골똘히 하는 듯 어두운 표정에, 몹시 지친 것 같은 얼굴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보는 눈이 몹시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나는 여기 입원해 있단다.] 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혼자 병원 안을 돌아다니는 나를 보았기에, 말을 걸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외로워서 그런데, 친구가 되어줬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무서웠기에, 고개를 젓고 어머니 곁으로 도망쳤다.


할머니가 어슬렁어슬렁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여동생을 안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하고, 울며 달려갔다.




그리고 뒤에 따라오는 할머니를 가리키며, [이상한 할머니가 따라와!] 라고 소리쳤다.


할머니는 어느새인가 내 손수건을 손에 들고, [이걸 떨어트렸네요.] 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죄송합니다.] 라며 사과하고 손수건을 받았다.




그리고 나한테 [실례잖니! 그런 말 하면 못써!] 라고 혼을 냈다.


할머니는 [괜찮아요.] 라고 말하고 어머니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깜짝 놀란 듯 입을 떡 벌리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보고 말했다.


[우리 딸하고 똑같아.]


할머니는 10년은 더 된 옛날에, 어머니랑 똑 닮은 딸이 있었던 듯 했다.




그리고 그 딸은 그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할머니를 안타깝다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 후로 병원을 찾을 때마다 우리를 병원 입구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여동생과 나에게 과자나 장난감을 안겨주었다.


[죽은 딸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아.] 라며 기뻐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차마 어머니도 거절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할머니가 무서웠던 나는, 언제 가도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기분 나빴다.




결국 나는 언제부턴가 병원에 따라가는 걸 포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나에게 [동생 병원 가는데, 같이 안 갈래?] 라고 권해오셨다.




나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혹시 진찰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거라도 사주시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 도착해, 여동생의 진찰이 끝나고 어머니와 수납을 기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 때까지 할머니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오늘은 없나보다. 혹시 퇴원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소리가 났다.


[찾았다.]


뒤를 돌아보니 할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할머니는 늘상 입던 환자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있었다.


[A씨, 요새 월요일마다 기다렸는데 못 봐서 서운했어. 통원하는 요일이 바뀌었으면 알려줘야지.]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질책하듯 말한 후, 나를 보며 웃었다.


[오래간만이네, K군. 오늘은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 줄게.]


거절하는 어머니를 억지로 밀어붙여, 할머니는 우리를 가까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식사하는 동안 할머니는 계속 웃고 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이상한 대화를 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두 개 있으니까 괜찮잖아.]




[그런 소리 그만 좀 하세요.]


[괜찮잖아.]


[경찰을 부를 거에요.]




[그럼 이걸 읽어봐.]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 날 집에 돌아올 때는, 평소와는 다른 도로로 돌아왔다.




그리고 차 안에서, 어머니는 이상한 질문을 했다.


[K야, 너, Y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니?]


[...응.]




[너는 오빠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Y를 꼭 지켜줘야 해.]


[응.]


[다음주부터는 너도 Y랑 같이 병원에 와서, 옆에 꼭 붙어서 지켜주는거다?]




[응.]


그 당시에는 왜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만나던 할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가량 지난 어느날, 나는 어머니에게 [그 때 그 할머니, 그러고보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고 물었다.


돌아온 어머니에 대답에, 나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아마 이미 죽었을거야. 그리고 그 사람, 할머니가 아니라 나랑 동갑이었어.]




나는 깜짝 놀랐다.


당시 어머니는 30대였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어떻게 봐도 60은 훌쩍 넘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진실은 이랬다.


퇴원하고 나서도 계속 병원을 찾는 할머니의 모습에, 어머니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할머니가 무슨 병을 앓기에 아직도 통원 치료를 받는 것인지를 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할머니는 병 때문에 입원한 것이 아니라, 정서불안으로 인해 자살을 지속적으로 시도한 탓에 입원했었던 것이다.


딸이 죽은 충격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고, 그 와중에 심신이 쇠약해져 외모마저 급속도로 노화되었던 것이다.




죽은 딸은 갓난아기였다.


즉, 어머니와 닮았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할머니가 어머니를 향해 [우리 딸하고 똑같아.] 라고 말했던 순간, 어머니는 팔에 여동생을 안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여동생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상냥했던 할머니였지만, 점차 어머니에게 여동생을 자신에게 넘기라며 집요하게 요구해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연히 어머니는 거절했다.




그리고 혹시나 여동생을 할머니가 유괴라도 할까봐, 나를 보디가드 삼아 병원에 같이 데리고 왔던 것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후, 어머니는 그 때까지도 가지고 있던, 할머니가 줬던 봉투를 내게 보여줬다.


안에 들어있던 편지에는 짧은 문장 몇 줄만 있을 뿐이었다.




[딸 곁으로 갑니다. 당신 탓입니다. 계속 원망하겠습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517th]린폰

괴담 번역 2014. 11. 17. 22:28
320x100




얼마 전, 앤틱한 것들을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드라이브 겸 골동품 가게와 리사이클 숍을 돌아다녔다.


나도 헌 옷 같은 건 꽤 관심이 있어서, 종종 오래된 게임 카트리지나 헌 옷 같은 게 있으면 같이 다녔던 것이다.


관심이 있는 물건의 종류는 서로 달라도, 물건을 파는 곳은 같기에 그 날도 즐겁게 여러 가게를 순회하고 있었다.




꽤 구하기 힘든 것들도 몇 개 손에 넣을 수 있어서, 우리는 둘 다 잔뜩 신이 나서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 길 옆에 낡아빠진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우와, 의외로 이런 오래된 가게에 진귀한 게임 소프트가 숨어 있을지도 몰라!]




잔뜩 들뜬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친구.


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편의점 정도 넓이의, 별 거 없는 가게였다.




주로 헌 책이 대부분이고, 가구나 헌 옷은 그닥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게임이라곤 고작 하나, "궁극 하리키리 스타디움"이 먼지더미에 쌓인 채 놓여 있을 뿐이었다.


여자친구에게 나가자고 말을 걸려던 참이었다.




[앗.] 하고 여자친구가 경탄한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다가가보니, 인형과 장식품 같은 걸로 가득 차 있는 바구니 앞에 여자친구가 서 있었다.


[뭐 좋은 물건이라도 있어?]




[이거, 대단해.]


여자친구는 그렇게 말하며, 바구니 가장 아랫바닥에 떨어져 있던, 야구공만한 정20면체로 된 장식품을 꺼내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바구니 밑바닥에 있어 보이지도 않을 그게 여자친구 눈에 들었는지...




이상한 일은 이미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뭔데, 이게?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거야?]


[아니, 나도 처음 보는건데... 이거 사면 어떨까?]




뭐, 확실히 보기 드물게 착 가라앉은 색깔의 장식품이다.


가지고 놀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는 [싸면 사자.] 라고 대답했다.




카운터에 그 정20면체를 들고 갔다.


초라한 모습의 할아버지가 헌 책을 읽으며 앉아 있다.


[실례합니다. 이거 얼마인가요?]




그 때 나는 놓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책에서 시선을 들어, 정20면체를 보았을 때의 표정을.


경악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표정이 한순간 떠올랐다가, 금새 원래의 평범한 얼굴로 돌아가는 것을.




[앗, 아아... 그거 말인가... 으, 으음, 얼마면 되려나. 자, 잠시 기다려주겠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인 것 같은 할머니와 무언가 말다툼을 하는 게, 단편적으로 들려왔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을 들고 나타났다.


[그건 말이지, 말하자면 장난감 같은 건데, 린폰이라는 이름일세. 이 설명서에 자세한 게 써 있지만 말이야.]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누렇게 바랜 더러운 종이를 펼쳤다.




꽤 낡은 종이 같았다.


종이에는 정20면체의 그림과, "RINFONE"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곰", "매", "물고기" 로 변화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말들도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라틴어와 영어로 적혀 있다는 듯 했다.


[이렇게 이 장난감이 온갖 동물로 변화할 수 있는걸세. 우선 린폰을 양 손으로 잡고, 주먹밥을 만드는 것처럼 어루만져보시게.]




여자친구는 할아버지의 말대로, 린폰을 양 손으로 쥐고 주무르듯 어루만졌다.


그러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정20면체의 면 중 하나가 솟아올랐다.


[우와, 대단해!]




[그 튀어나온 부분을 돌려보거나, 더 위로 올라오게 해보시게나.]


할아버지의 말대로 여자친구가 그것을 만지자, 이번에는 다른 면이 푹 꺼졌다.


[대단해! 퍼즐 같은 거네요! Y군도 해봐!]




그 구조를 말로 설명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혹시 "트랜스포머" 라는 장난감 시리즈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카세트 테이프가 로봇으로 변하기도 하고, 권총이나 트럭이 로봇으로 변하기도 하는, 지금은 유행이 지난 장난감이다.


린폰 역시 정20면체의 어느 부분을 만지거나 누르면, 곰이나 매, 물고기 등의 여러 동물로 변화한다고 보면 된다.




여자친구는 이미 린폰에 푹 빠져든 후였다.


나 역시 대단한 장난감이라고 생각했고.


[저기... 그래서 이거 얼마인가요?]




여자친구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게 말이지, 꽤 오래된 물건이란 말이지... 거기에 우리도 그런 게 있는지도 까먹었었으니... 뭐, 특별히 만엔에 드리면 어떨까? 인터넷 같은 데서 팔면 몇십만엔은 내려는 사람도 있을게야.]


하지만 여자친구는 흥정의 고수였다.




결국 6500엔까지 깎는 데 성공했고, 우리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가게에서 나왔다.


그 다음날은 월요일이었기에, 같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각자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월요일.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Y군, 이거 엄청난 거 같아, 린폰 말이야. 정말 퍼즐 같은 느낌인데, 동물 모양으로 변했다구. 일하는 와중에도 머릿 속이 그걸로 가득 차서, 일도 제대로 못했다니깐. 진짜 왠만한 게임보다도 훨씬 재미있어.]


여자친구는 잔뜩 흥분해 일방적으로 마구 말했다.




전화를 끊은 후, 사진을 첨부한 문자가 왔다.


린폰을 들고 있는 그녀의 두 손에는, 곰의 머리 같은 것과 두 발이 보였다.


나는 잘도 만들었다 싶은 마음에, 대단하다고 문자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일을 마치고 차를 타고 오고 있는데, 여자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이거 진짜 재밌어. 어제 밤 새서 만져댔더니, 드디어 곰이 됐어. 보러 와.]


완전히 제멋대로인 문자였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경로를 바꿔 여자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야, 밤까지 샜다면서? 출근은 제대로 한거야?]


도착하자마자 나는 물었다.




[했어, 했어. 하지만 그 탓에 커피만 잔뜩 마셔서 기분이 영 안 좋았어.]


테이블 위에는 네 발로 서서 살짝 고개를 든, 곰 모양으로 바뀐 린폰이 있었다.


[우와, 진짜 대단하네, 이거. 무슨 구조로 만들어진걸까]




[대단하지? 이거 진짜 중독성 있어. 다음에는 이 곰에서 매로 바뀌는 거겠지? 어서 해보고 싶다.]


[야, 야.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밤 새면 안 돼. 내일 해.]


[그것도 그러네.]




그 후 여자친구가 만든 단순하지만 맛있는 요리를 둘이서 먹고, 그 날은 돌아갔다.


수요일.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번엔 내가 문자를 보냈다.




[어제 제대로 잤어?]


곧 답장이 왔어.


[어제는 제대로 잤다구! 이제 돌아가서 가지고 놀 생각에 엄청 기대돼.]




그리고 밤 11시 정도 됐을까.


내가 게임에 한참 빠져 있는데, 사진을 첨부한 문자가 왔다.


[매도 만들었어! 진짜 실물 같아. 이거 만든 사람 진짜 천재인가봐.]




사진을 보자, 날개를 펼친 매 모양으로 바뀐 린폰이 찍혀 있었다.


예술적 조예가 없는 내가 봐도 정교한 작품이었다.


당장이라도 날갯짓을 할 것 같은 매의 모습이었다.




물론 장난감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굴곡은 있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무척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대단하다. 다음에는 물고기구만. 그럼 너무 빠지지 말고 천천히 만들어 봐.] 라고 답장을 한 뒤,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목요일 밤.




목욕탕에 들어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여자친구다.


[Y군, 아까 전화 했었어?]




[아니? 왜 그런데?]


[5분 정도 전부터, 30초 간격으로 전화가 와. 통화 버튼을 눌러도, 무슨 혼잡한 거리에서 웅성거리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만 들려서 바로 끊었거든. 통화내역을 보면 번호가 뜨거나 사람이름이 떠야하잖아? 근데 그 전화는 "저편" 이라고만 나오는거야. 이런 이름 등록한 적 없는데... 기분이 나빠서...]


[그렇구나... 내가 거기로 갈까?]




[아냐, 오늘은 이만 잘래.]


[그래. 뭐, 아마 혼선이라도 있던 거겠지. 아, 그러고보니 린폰은 어떻게 됐어? 물고기로 됐어?]


[으응, 그것도 금방 될 거 같아. 완성되면 Y군한테도 빌려줄게.]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금요일.


어제 여자친구가 말했던 기묘한 전화가 내심 신경쓰였기에, 나는 여자친구네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린폰은 거의 물고기 모양을 갖춰, 남은 건 등지러미와 꼬리지느러미만 만들면 다 될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낮에 또 이상한 전화가 왔었다고?]


[응. 점심시간에 빵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이번에는 그냥 아무 이름도 안 떠서 받았었어. 그래서 통화 버튼을 눌렀더니, "꺼내줘!" 하고 수많은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오는거야. 깜짝 놀라서 끊었어.]




[역시 혼선이 됐거나 장난전화가 아닐까? 내일 전화회사에 찾아가 보는 건 어때?]


[그러네. 그렇게 해볼까.]


그 후, 린폰은 정말 대단한 장난감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물고기를 완성시키기 위해 이리저리 매만져봤지만, 좀체 지느러미를 꺼낼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역시 맨 마지막 퍼즐이니만큼 어렵구나, 하고 이야기하며 계속 매달렸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잠이 오기 시작해, 다음날은 토요일인데다 갈아입을 옷도 가져왔기에, 나는 그대로 여자친구네 집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기분 나쁜 꿈을 꿨다.




어두운 계곡 밑에서, 벌거벗은 수많은 사람들이 기어오르고 있다.


나는 필사적으로 언덕을 올라 도망친다.


이제 조금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다.




살 수 있다.


정상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어떤 여자에게 발목을 붙잡혔다.


[나 도  데 려 가 ! ! ]




땀범벅이 되어 눈을 떴다.


아직 새벽 5시를 막 지난 즈음이었다.


다시 잠을 청할 생각이 들지 않았던 나는, 멍하니 여자친구가 일어날 때까지 이불 위에 누워있었다.




토요일.


휴대폰 대리점에 찾아갔지만, 괴전화의 원인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던 중 기분 전환 겸 점이나 보러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시내에는 잘 맞는 걸로 유명한 "고양이 아줌마" 라는 점쟁이 아줌마가 있었다.


집에 고양이를 몇 마리씩 기르면서, 점도 자기 집에서 보는 사람이었다.


사전에 예약을 해야한다기에 전화를 해 보니, 운 좋게도 바로 내일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토요일은 그대로 대충 쇼핑을 한 뒤 외박을 했다.


일요일.


정오가 지날 무렵, 고양이 아줌마네 집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른다.


[네.]


[예약을 했던 Y라고 합니다만.]




[네, 이야기 들었습니다. 들어오시죠.]


현관을 열자, 복도에 고양이가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경계하는 듯 소리를 치고, 안으로 도망쳐 버렸다.




복도를 지나가자 서양식 방에 고양이 아줌마가 있었다.


말 그대로 주변에 고양이 투성이다.


우리가 방에 들어간 순간, 일제히 고양이들이 캬악하고 적의에 가득찬 목소리로 외치고는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기분이 나쁘다.


여자친구와 곤란하다 싶은 얼굴로 마주 보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돌아가주세요.]




고양이 아줌마는 그렇게 말했다.


조금 짜증이 나서,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고양이들을 키우고 있는건, 이런 경우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에요. 고양이들이 점을 쳐도 괜찮은 사람과 안 될 사람을 구분해주는거죠. 이런 반응을 보인 건 당신들이 처음입니다.]




나는 웬지 마음에 걸려, 여자친구에게 걸려왔던 기묘한 전화와, 내가 꿨던 악몽에 관해 아줌마에게 이야기했다.


[여자분 뒤에... 동물의 오브제 같은 게 보입니다. 지금 당장 버리도록 하세요.]


아줌마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요?]


[부탁이니 돌아가 주세요. 이 이상은 말하고 싶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여자친구는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나는 집요하게 달라붙어 물었다.


[그게 뭔가요? 저주를 받은 물건이라던가, 사연이 있는 앤틱 물건인건가요?]


아줌마가 대답할 때까지, 몇번이고 몇번이고 계속해서 물었다.




그러자 아줌마는 일어서며 말했다.


[그건 응축된 자그마한 지옥입니다! 지옥의 문이라구요! 당장 버리세요! 그리고 여기서 돌아가요!]


[저기, 돈은...]




[필요 없어요!]


그 때 절규하던 아줌마의 얼굴이, 그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그리고 여자친구의 집에 돌아간 우리는, 곧바로 린폰과 누렇게 바랜 설명서를 신문지에 싸서, 청테이프로 감아 내다버렸다.




그리고 몇 주 뒤, 여자친구네 집에 갔는데, 아나그램도 좋아하는 그녀가 펜과 종이를 가져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기, 린폰이라는 건 RINFONE이라고 쓰는 거잖아. 우연이랄까, 이걸 아나그램식으로 늘어놓고 재배열하면 INFERNO가 되는데...]


[...하하하, 설마, 우연이겠지.]




[만약에 우리가 물고기까지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는 거였을까...]


[하하하...]


나는 그저 마른웃음만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게 쓰레기로 처리되었기를, 그리고 두 번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매년 3월이 되면, "반 바꾸기 앙케이트" 라는 게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이야기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꽤 큰 학교라, 매년마다 반 바꾸는 게 하나의 행사 수준이었다.




봄방학 도중 3월 마지막날에 교사 이취임식이 있고, 그 때 체육관에 새로 구성된 반 명단을 게시하는 것이다.


친한 친구나 좋아하는 여자아이랑 같은 반이 되고 싶은 마음에, 그 전날부터 몹시 두근거렸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그 해, 3학기가 지나가고 2월이 될 무렵, 나에게 한 통의 편지가 왔다.




"반 바꾸기 앙케이트" 라는 글자가 봉투 앞에 크게 찍혀있었고, 어느 문제집 회사에서 보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때는 물론이고, 지금 와서 찾아봐도 그런 이름의 회사는 찾을 수가 없다.


안에 무슨 내용이 있었냐면, 우리 학교 4학년 중에 절대로 같은 반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 한 명의 이름을 써 달라는 것이었다.




앙케이트를 보내준 사람 중에서는 추첨을 통해 문구세트를 줄 것이라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당시 나는 잡지에서 경품 이벤트를 하면 무조건 신청하고 있었던데다, 마침 안에 회신용 엽서도 들어있었기에 흔쾌히 응했다.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 하나 없이, 같은 학년에서 가장 싫었던 장난꾸러기의 이름을 적었다.




나와 그 녀석은 집이 근처라, 등하교 때마다 매번 그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 때까지는 매번 다른 반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만약에 같은 반이 되면 하루종일 괴롭힘에 시달릴 것 같았다.


그래서 절대로 그 녀석과는 같은 반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5학년은 총 6반이니까 그리 가능성은 높지 않았을테지만...


그 후 나는 완전히 그 앙케이트에 대해 잊고 있었다.


그런데 3월이 되자마자, 지난번 그 문제집 회사에서 커다란 봉투가 날아왔다.




지난번 앙케이트가 생각나 바로 뜯어보니, 내가 문구세트에 당첨되었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문구세트를 받을려면 조건이 있어서, 한가지 해야 할 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조건대로 하면 내가 지난번에 이름을 썼던 그 녀석과는 절대 같은 반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 반 배정에 대해 선생님들이 회의도 하지 않았을텐데 싶어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 봉투에는 일본종이로 칭칭 감긴 부적 같은 것이 한 장 들어있었다.




겉에는 내가 사는 곳에서 한참 떨어진 지역에 있는, 듣도보도 못한 초등학교 이름이 적혀 있고, 또한 5학년이라는 글자와 역시 듣도보도 못한 남자아이의 이름이 기분 나쁘게 빨간색으로 크게 써 있었다.


그걸 내가 사는 동네의 신사에 있는 소나무에, 3월 8일 오후 9시 이후에 못으로 박아달라는 것이었다.


그 신사는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지만, 유명한 곳이 아니라 평상시에는 참배하는 사람 하나 없는 잊혀진 곳이었다.




그걸 해내면 문구세트를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받은 편지는 모든 조건을 달성하면, 지난번 것과 함께 근처 강에 흘려보내라고 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나는, 중학교에 다니던 형에게 상담하려 했다.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났음에도 나와 형은 무척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지에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면 안 된다고 써 있었기에, 곧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신사는 집에서 자전거로 5분 정도 거리였기에, 그 부적 같은 걸 나무에 못으로 박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춥긴 하지만 눈이 내릴 계절도 아니고...


9시 이후에 15분 정도 나갔다 오는 건 일도 아니다.


그 편지와 부적은 책상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곧 3월 8일이 되었다.


나는 편지에 나온대로 하기로 하고, 저녁을 먹은 뒤 9시가 지날 무렵, 부적과 못, 망치를 들고 집을 나왔다.


긴 코트를 입고, 자전거를 탄 채 신사로 향한다.




그 신사는 주택가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었다.


나는 언덕 아래에서 내려, 폭이 좁은 돌계단을 올라갔다.


돌계단에도 신사 안에도 가로등이 하나씩 있었기에, 어두워도 발 밑은 보였다.




당연히 주변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다.


기분이 으스스해서, 나는 빨리 끝내고 돌아갈 생각으로, 주머니에서 부적과 못, 망치를 꺼냈다.


그리고 달려가서 신사 기둥문을 지나친 다음, 신사 참배길 옆에 있는 나무 중 제비가 묶인 소나무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내 머리 정도 높이에, 부적 앞면이 보이도록 한가운데에 강하게 못을 두세번 박았다.


그러자 손 안에 든 부적이 미묘하게 움직인 느낌이 들어, 나는 무심코 손을 떼어놓았다.


이미 부적은 나무에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 10m 정도 떨어진, 신사 본당 옆에서 갑자기 웬 사람이 나오더니 나를 향해 [지켜보았다.] 라고 소리쳤다.


그 사람이 있는 곳은 어두워서, 지금 생각해도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전혀 떠오르지가 않는다.


목소리는 남자 목소리였다.




나는 너무나도 무서워서,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망치를 내던진채 돌계단을 뛰어내려 집까지 죽을 힘을 다해 자전거를 타고 도망쳤다.


내가 앙케이트에 이름을 썼던 그 말썽꾸러기 녀석은, 그로부터 1주일 후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트럭에 치여 죽었다.


편지는 써져 있던 대로 집 근처 강에 흘려보냈다.




4월이 되자 유명한 백화점에서 최고급 문구세트가 날아왔지만, 그 때 봤던 문제집 회사 이름으로 보낸 것은 아니었다.


그 후 그 회사에서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신사에는 그 후 한 번도 가지 않았기에, 나무에 박았던 부적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망치를 잃어버렸기에 아버지에게 혼났던 기억은 난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부적에 이름이 써 있던 사람이지만, 어떻게 되었을지는 당연히 모르고,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다.


문구세트는 형이 무척 부러워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무척 기묘한 체험이라, 혹시 내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문구세트는 단순히 잡지 이벤트에 당첨된 것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지금 와서도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로, 어린 시절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음에는 변함이 없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대학에 다닐 무렵 이야기다.


그 무렵 이런저런 일들이 좀 있어서, 기분전환도 할 겸 이사를 할 생각이었다.


학교 옆에 있는 부동상에 찾아가, 대학 주변에 빠삭한 부동산 아줌마에게 조건에 맞는 집이 있는지 물어봤다.




[음... 그 조건이라면 서너곳 정도 있어. 근데 이런 물건도 있어서...]


그러더니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그걸 뜯어서 나에게 건네줬다.


안에는 어느 집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




역에서 걸어서 2분, 대학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집세는 월 3만엔에, 보증금이랑 사례금은 없다.


주차장도 따로 있는 집이지만, 따로 사용료를 낼 필요도 없다.




지은지는 꽤 된 집이지만, 방도 넓고 가구로 서랍장도 딸려있다.


화장실과 욕실도 따로 있고, 부엌도 넓어 냉장고랑 세탁기 놓을 자리가 있을 정도였다.


작지만 정원까지 딸린 건물 2개가 딱 붙어 있는 형태의 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렇게 좋은 조건인데 저렇게 싼 집세로 나올 리가 없다.


뭔가 수상하다 싶어 아줌마에게 묻자, 붙임성 좋은 아줌마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보통 사람한테는 추천하기 힘든 곳이긴 하지.]




의미심장했다.


무언가 안 좋은 사정이 있는 집일 것이라 느껴 자세히 물어보자, 역시 생각대로였다.


지난번 살던 사람은 사흘만에 집을 나왔고, 그 전 사람은 나흘, 그 전 사람도...




다들 입주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어째서인지 집에서 나와 도망쳤다는 것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그냥 놀려두기도 아까우니 싼 집세를 걸어서 내놓았지만, 부동산 입장에서도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니 왠만해서는 추천을 안한다는 것이다.


기분 나쁜 예감은 있었지만 일단 워낙 집세가 싼데다, 아줌마도 집주인 볼 낯이 없다며 간곡히 부탁을 하기에 입주하기로 결정했다.




그 자리에서 서류 작업을 마치고, 다음날 입주하기로 했다.


이미 이사 준비는 대충 끝나 있었기에, 친구의 도움을 받아 반나절만에 이사를 끝내고 저녁에는 집들이를 겸해 술판을 벌였다.


하지만 밤이 깊자 다들 돌아가, 나만 남았다.




그러나 입주 당일 밤에는 딱히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입주 사흘째 되는 날 밤이었다.


아직 기사가 오지 않아 인터넷 연결도 안된터라,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잠자리에 들어 평소마냥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2시를 지나고 있었던가.


빠드득빠드득하고, 무언가가 벽을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주변에서 뭘 하나 싶었지만, 소리가 나는 건 옆집과 맞닿아 있지 않는 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경으로 반쯤 체념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소리는 계속 이어져, 발밑에서 시작해 점점 올라가 마침내 천장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천장까지 올라간 그것은, 이제 쾅쾅거리며 지붕 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곧이어 커튼이 쳐 있는 창 너머로 무언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소리가 멎었다.


겨우 한숨 돌린 나는 친구에게 연락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또다시 빠드득빠드득 하는 소리가 창 밖에서 들려온다.




보면 안 된다는 생각과,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8:2 정도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여기서 살 거라면, 정체를 확인해둬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그러자 창 밖에는 기묘하게 긴 손을 가진, 긴 머리카락을 한 것이 가만히 손목을 바라보며 벽에 손을 대고 묵묵히 긁어대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커튼을 치고, 부엌에 가서 소금을 가지고 와서 창문 옆에 두고 잤다.


빠드득빠드득 하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나는 다음날 부동산에 찾아가 아줌마에게 [역시 귀신이 나오네요.] 라고 말했다.




[역시 그렇구나...] 라고, 아줌마는 기운 없이 말하더니 다른 집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아줌마는 5만엔을 내게 건네주며, [못 버티겠으면 나와. 바로 다른 집을 소개시켜줄게.] 라고 말했다.




그날 밤 역시 2시가 되자 또 빠드득빠드득 소리가 나고, 천장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린 후, 밤새도록 벽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잠을 잤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그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종종 한밤 중에 자고 있으면, 이상한 시선을 느껴 깨어나곤 한다.


그러면 언제나 방 안에 그 귀신이 쪼그려 앉아 나를 째려보고 있지만, 나는 무시하고 그냥 잔다.


졸업한 후 직장을 근처에 얻었기에, 나는 지금도 이 집에 살고 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무척 만족스러운 집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514th]오리지널

괴담 번역 2014. 11. 12. 19:58
320x100




작곡가 친구가 있었다.


인기로 실력을 매긴다고 하면, 좋게 봐줘도 2류도 못될 정도로 무명에 가까운 녀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곡들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가 곡을 써 발표하던 블로그는, 몇 년 전부터 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발단은 그가 어떤 곡을 써서 발표한 후였다.


그 곡의 몇몇 부분이, 중남미에서 활동하는 밴드의 노래와 무척 비슷했다.




솔직히 아마추어 입장에서는 음악이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 알 수가 없다.


사실 어느 작곡가가 좋다고 생각해 만든 곡을, 다른 작곡가도 비슷하게 생각해내 만들어 내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문화 교류가 적은 나라의 곡을 표절하는 이들도 있기에, 우연의 산물이라도 고의적인 범죄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듣기에는 비슷하게 들리고, 작은 차이나 창작의 독자성은 구분해 낼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의 블로그에 어떤 사람이 음악 전문가를 자칭하며 이런 덧글을 남겼던 것이다.


[음표의 조합은 무한에 가깝다. 이렇게까지 유사한 건 표절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아니, 틀린 말이다.


좋은 멜로디는 유한하고, 게다가 클래식 시대부터 이어져 온 서구 음악의 장구한 역사 탓에, 이제 와서는 완벽한 오리지널 멜로디가 튀어나올 가능성은 없다시피 하다.


비슷한 노래가 온 세상 어디에 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시대인 것이다.




음악을 전공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 하나다.


그만큼 인간이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창조해 온 기간이 긴 것이다.


[증거는 누가 봐도 명백하네. 나가 죽어라.]




때때로, 모르는 것 역시 죄가 된다.


어느날, 그와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머릿속에서 악기 소리를 재현하려고 하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그리고 얼마 뒤 만난 그는, 완전히 쇠약해져 있었다.


[노래를 하나 쓸 때마다, 혹시 비슷한 곡이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워서 발표를 할 수가 없어.]


그 다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자살이었다.


나는 이게 간접적인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관한 보도는, 그나마도 그가 남긴 유서 때문에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부디 험담을 했던 이들을 탓하지 말기를. 그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하고 있다. 


첫사랑을 할 때는 언제나 풋풋하고 미숙하기 마련이다. 


너무나 달콤한 꿈에 젖어, 현실은 전혀 보이질 않는 것이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였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그걸 다시금 떠올렸다. 


완전한 오리지널, 완전한 오리지널, 완전한 오리지널. 


꿈을 추구하고 고민하다 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뿐이다. 


무슨 곡을 써도 다른 누군가의 곡과 닮아있다. 


이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내겐 이 유서가 이렇게 느껴졌다.




오리지널.


마치 바닥이 없는 늪같은 말이다.


인간의 기억은 영원하지 않다.


시간은 유한하다.


전능한 신이 아니고서, 모든 것을 확인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사람의 몸으로 신의 일에 도전해, 무력함을 알게 된다.


신의 창조를 꿈꾼 교만한 인간에게, 돌아오는 것은 절망 뿐.


오리지널.


그야말로 저주의 말이 아닌가.




나같이 변변치 않은 녀석에게는 이해할 수 없기에, 그의 죽음이 그저 애달프다.


가인박명이라는 말은 진짜인걸까.


아무리 재능 있고 좋은 녀석이라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공감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