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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

[번역괴담][2ch괴담][558th]영업사원

괴담 번역 2015. 4. 2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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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재직했던 방문판매영업 회사에서 떠돌던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 그 회사는 5명이 하나의 그룹을 이뤄, 조장이 차를 몰고 해당 지역에 사원들을 데려가는 구조입니다.


일반 영업사원들은 그 지역에서 계약을 권하고, 실제 성사가 되면 조장이 차에서 계약서를 가져가 계약을 체결하는 시스템입니다.




과거 이 회사에, 무척 실적이 좋은 A라는 젊은 사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B그룹 조장 G씨는 입사할 무렵부터 A를 잘 챙겨줬기에, A는 G씨 그룹에서 일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어느날, 그날 역시 G씨 그룹에 배정된 A는, 계약을 따내기 쉬운 편인 신축 아파트에 우선적으로 배정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아파트는 집을 비우거나 입주를 안 한 가정이 많은지,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영업을 뛰다 보면 그런 일은 종종 있기 마련이기에, A는 신경쓰지 않고 마지막 집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네.]




젊은 여자의 목소리입니다.


미인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입에 익은 인사치레를 술술 뱉어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연 여자는 무척 좋은 느낌이 왔다고 합니다.




게다가 꽤 미인입니다.


A는 갑자기 의욕이 솟아났습니다.


'이거 해볼만 하겠는데.'




지금까지의 영업경험으로 보아 감이 잡힌 A는, 보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도 순조롭게 잘 이어집니다.


A의 예상은 맞아 떨어져, 여자는 곧 집 안으로 들어와 자세한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가 있는 부엌으로 안내된 A는,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얼굴이 시퍼래졌습니다.


천장에 빽빽하게, 아기 사진이 잔뜩 붙어있었던 것입니다.


사진은 사이즈도, 피사체도 모두 달랐지만, 빈틈 하나 없이 천장 가득 붙어 있었습니다.




기묘한 광경이었습니다.


A는 그 모습에 조금 공포를 느꼈지만, 금방 전까지 이야기하던 여자에게는 결코 나쁜 느낌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싱글벙글 웃는 얼굴과 상냥한 태도 때문에 호감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고작 이 정도 가지고 계약을 체결할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가장 강했겠지요.




'천장에 있는 사진은 신경 쓰지 말자.'


A는 자신을 타이르며, 상품 설명과 기기 실연 등을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했습니다.


대개 새댁들은 남편 탓을 대며 계약을 피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일도 없이 아주 무난히, 얼마 지나지도 않아 여자는 계약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A는 승낙 의사를 확인한 후, 계약을 위해 G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방에 들어온 G 역시 천장의 사진을 보고 당황한 듯, 계약을 최종 확인하는 와중에도 어딘가 어색한 모습이었습니다.


A 역시 이 집이 기분 나빴기에, 가능한 한 빨리 계약을 끝내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계약이 끝날 무렵,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여기하고 여기에...]


G가 도장 찍을 곳을 체크하고 있는 와중, 옆방으로 이어지는 맹장지 너머에서, 남자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우... 우... 하고.


그 목소리는 낮은 남자 목소리로, 무심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몹시 괴로워하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아무리 계약이 중요하다지만, A도 G도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본 후 여자의 얼굴로 시선을 향했습니다.




금방 전까지 사람 좋은 미소를 띄우고 있던 여자는, 소름 끼칠만큼 무표정하게 A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A는 공포를 삭이기 위해 뭐라도 말하려다, 여자의 이상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말을 삼켰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눈 앞의 여자가 기분 나쁘다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분명 본능적인 이유에서겠지요.


그리고 그건 G 역시 마찬가지라, 두 사람은 마치 가위에라도 눌린 것처럼 여자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도 우우... 우... 하는 신음소리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점점 소리가 커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여자가 끼긱이라고 할지, 그극이라 할지 애매한 소리를 흘렸습니다.


아마 웃음소리였을 거라 생각하지만,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여자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였으니까요.




[도장을...]


나직이 여자가 중얼거렸습니다.


네, 하고 겨우 대답한 A를 보며, 여자는 입가만 움직여 히죽 웃었습니다.




[이이이이이응]


여자가 마치 잡아 늘인 테이프 같은 소리를 뱉어냄과 동시에, 맹장지 너머에서 들려오던 신음 소리가 [아! 아아!] 하고 큰 외침으로 변했습니다.


'뭐지, 이 자식들? 역시 제정신이 아닌 놈들인가?'




A가 패닉에 빠질 무렵, 더욱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자의 머리가 눈으로는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좌우로 마구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너무 속도가 빨라 머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케켁...]


여자는 날카로운 소리로 웃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의 얼굴은 변함없이 A를 곧바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A는 공포 때문에 울 것만 같았습니다.


방 안 저편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외침과 여자의 날카로운 웃음소리.


[야, 야... 돌아가자!]




G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A는 짐을 긁어모아 필사적으로 현관까지 내달렸습니다.


여자가 쫓아오는 기척은 없었습니다.


현관을 나오는 순간, 무심코 뒤를 돌아보고 A는 후회하고 말았습니다.




열려 있는 문 너머, 거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정좌하고 있는 여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고, 맹장지가 조금씩 열리고 있었으니까요.


흐릿하게 보이는 어두운 저 너머의 광경을 상상하자 소름이 끼쳤습니다.




A와 G는 필사적으로 도망쳐 차로 돌아온 후, 서둘러 그 곳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A는 그 집에 계약도 안 맺고 상품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시 그 집을 찾아가는 건 무서웠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버려놓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결국 A는 G에게 부탁해 다시 그 아파트로 향했습니다.


주저하면서도 인터폰을 누르려던 A였지만, 이상한 걸 깨닫고 말았습니다.


[G씨, 이건...]




A가 가리킨 것은 현관 옆에 설치된 가스 미터기에 달린 꼬리표였습니다.


그건 원래 그 집에 입주자가 없는 경우에만 붙어있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은 전기계량기를 확인했습니다.




전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이거 거짓말이지...]


G가 중얼거렸습니다.




몇번이고 인터폰을 눌러봐도 반응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관리회사에 연락을 해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몇십분 후 도착한 관리회사 사람은 G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기세에 밀린 것인지 [확인만 해드리는 거에요.] 라며 문을 열었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 방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제 봤던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거실에 조용히 놓여져 있는 상품만이, 어제의 사건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영업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 A는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고 방에 갇혀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이스였던 A가 빠지고 나니 매출에도 타격이 커서, 결국 회사 상사들까지 동원되어 그를 설득했습니다.


결국 A는 '그 아파트 근처로는 영업 나가지 않는다' 는 조건을 걸고 한 달만에 복직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는 거기서 만난 무언가에게 이미 홀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A가 돌아오고 1주일 정도 지난 어느날, G는 A를 어느 아파트에 데려다줬습니다.


아무런 특색도 없는 보통 아파트였습니다.




이전에 다른 사람들도 몇 번 영업을 한 적이 있는 곳이고, A 자신도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십분이 지난 후, G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A의 전화입니다.




[벌써 계약을 따낸건가? 역시 대단하네, A 녀석.]


G는 일부러 차에 타고 있는 다른 사원들에게 들리도록 이야기한 후,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여보세요? A?]


수십초 후, A의 비명과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상한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A?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보통 일이 아니라고 느낀 G는, A가 있는 곳으로 차를 돌리며 물었습니다.




[...G씨, 저, 이제 그만 둬야겠어요...]


울면서 A가 말했습니다.


[A? 무슨 일이야, 왜 그래?]




G는 가능한 한 냉정하게 물었습니다.


[그 녀석이 또 나왔어요...]


A의 말은 이랬습니다.




이번에는 포스터고 뭐고 하나도 없는 보통 방에서, 보통 여자와 만났다는 겁니다.


하지만 계약 건이 척척 진행되어 G에게 전화를 건 순간.


여자의 얼굴이 기묘하게 비뚤어지더니 그 때 만난 그 여자 얼굴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또 만났네요.] 라고 말하고는, 그 때 그 기묘한 웃음소리로 웃었다는 것입니다.


A는 다음날부터 회사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실종되어, 영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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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57th]한밤 중의 연회

괴담 번역 2015. 4. 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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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조촐하고 아담한 여관에서 묵었다.


꽤 벽지에 있는 곳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적고, 조용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스탭들도 배려와 준비성이 좋고, 뜰도 아름다울 뿐더러 방도 깨끗했다.




나무랄 것 하나 없는 훌륭한 여관이다.


산 속에 있기 때문에 밤 늦게까지 놀 수 있는 곳도 없어, 날이 바뀔 무렵이 되자 여관 안은 무척 적막했다.


일찍 잠자리에 든 나는, 새벽 2시 넘어 웬지 모르게 눈을 떴다.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 문득 적막한 여관 안을 탐험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방 문을 열자 복도는 불이 꺼져 어두웠다.


비상구를 가리키는 초록색 등만이 한적한 복도를 비출 뿐이다.




여관치고는 부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에너지 절약 때문인가? 여관도 큰일이네...] 하고 시덥지 않은 생각을 하며 나는 담력시험 하듯 탐험에 나서고 있었다.


갑자기 눈 앞에서 사람이 움직인 것 같아, 나는 그 곳을 바라봤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아래, 다른 방 문 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여관 직원 아저씨가 보였다.




철컥철컥하고, 작게 금속음이 들려온다.


설마 도둑질을 하러 방에 들어가려는 것인가 싶은 생각에, 나는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문을 열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문에 작은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있었다.


웬지 보면 안 되는 것을 봐 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서 있었다.


열쇠를 다 잠근 것인지, 아저씨가 내 쪽으로 걸어온다.




이 앞에 있는 건 내 방이다.


저 사람은 나를 방 안에 가둘 작정인게야.


그렇게 생각하니 온몸이 굳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것 같으니 절대 발견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하지만 내 옆을 지나가는 순간, 아저씨는 너무나도 쉽게 나를 알아채고 말았다.


아저씨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손목시계를 보더니 [어쩔 수 없네... 같이 좀 와주세요!] 라며 나를 억지로 끌고 어딘가에 데려가려 했다.




놀라 도망치려했지만, 곧 다른 직원 몇 사람이 다가와 나를 둘러쌌다.


개중 한 사람이 토치를 손에 든 채 [무사히 돌아가고 싶으면 절대 소리를 지르지 마셔야 합니다!] 라고 말했기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잠잠히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도착한 곳은 연회장이었다.




불이 모두 꺼진 어두운 여관임에도, 그곳만은 모든 불이 전부 켜져 있었다.


여관 직원들과 현지 주민 같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고, 그 뿐 아니라 테이블 위에는 지역 특산 요리 같은 게 잔뜩 놓여 있어 언제라도 연회가 시작될 수 있게 준비가 끝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대충 빈 자리에 내가 앉게되자, 40대쯤 된 아줌마가 내게 다가왔다.




[운이 나빴네요. 진정하고 있으면 괜찮을테니, 조금만 힘내요.]


곧이어 무서운 표정을 한 아저씨가 내 옆에 앉더니, 강한 어조로 말했다.


[연회가 시작되면 그저 즐겁게 먹고 마시기만 하게. 뭐, 이미 즐거울 터이지만. 도중에 새로 손님이 오더라도, 그 사람을 신경쓰면 안 되네. 신경이 쓰이면 차라리 보지 마. 다만 만약 보게 된다면, 눈을 돌릴 때 부자연스럽게 행동해서는 안 되네. 결코 즐거운 분위기를 깨서는 안 돼. 한 해에 단 한 번, 반드시 맞아야 하는 상대이니 절대로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되는거야.]




이윽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아줌마들은 나를 배려하려는 듯 요리도 권하고, 맥주도 따라주었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젓가락으로 깨작대는 게 고작이었다.




다들 표면적으로는 즐거워하고 있는 듯 했지만,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괜히 잠에서 깨서 이게 뭔 일인가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와중, 갑자기 방 안 온도가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함께 어두운 복도 저 편에서, 저벅, 저벅하고 발소리가 천천히 가까워온다.




다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 척 하는 것인지, 지금까지 이상으로 즐거운 듯 떠들고 요리를 먹고 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맛있는 요리를 열심히 먹는 척을 했다.


곧 발소리가 바뀌었다.




나무로 된 복도에서, 다다미가 깔린 연회장으로 올라온 것이다.


요리만 바라보고 있는 내 시야 한구석에, 2개의 다리가 지나가는 게 언뜻 보였다.


검다... 아니, 그보다는 '어둡다'는 표현이 어울릴 이상한 존재감의 다리였다.




아이나 여자 다리처럼 가늘지만, 굉장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가로로 길게 놓은 테이블을 빙 둘러 걸어, 내 대각선 정면 쪽에 가서 방석 위에 앉았다.


나는 접시 위의 요리를 어떻게든 먹으며, 비명을 지를 것 같은 걸 어떻게든 참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답답하고 차가운 공기가 사라졌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주변에는 방금 전까지 어색하게 지어낸 웃음을 짓고 있던 사람들이, 안도의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이제 끝났어.] 라고 옆에 있던 아줌마가 말을 건네자, 그제야 내 몸에서 힘이 풀렸다.


그 후, 무서운 체험을 공유한 사람끼리의 진정한 연회가 시작되었다.


방금 전까지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던 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서로 술을 나눴다.




이상한 체험을 공유했기 때문인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이상한 연대감이 들었다.


방에 걸려 있던 자물쇠는 날이 밝기 전에 모두 회수한 듯 했고, 아마 숙박객 중에도 자신들이 밤 동안 갇혀 있던 걸 알아차린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아침이 밝았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 못다 잔 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방 밖으로 나와보니 아무 일 없는 평범한 보통 여관으로 돌아와 있었다.


규정 시간보다 조금 늦게 체크아웃했지만, 여관 사람들은 [너는 이제 우리 동료야. 언제라도 좋으니 다시 찾아와.] 라며 다들 나와 배웅해 줬다.




다들 내가 떠나는 것이 아쉬운 듯 진심으로 배웅해 줬고, 나 역시 그들과 헤어지는 게 안타까웠다.


이미 그들은 내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 사건 탓에, 강한 정이 생겨났던 것이다.




다만 그렇더라도, 내가 그 여관에 갈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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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의 기억입니다.


당시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고 계셔서, 나는 학교가 끝나면 학교 안에 있는 보육원 같은 곳에서 머무르곤 했습니다.


방과후학교라는 것이지요.




평소에는 거기 모여서 간식을 먹거나, 숙제를 하고 놀곤 했습니다.


그리고 5시가 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하지만 그 날은 평소 하던 놀이가 질렸을 뿐더러, 우연히 모인 아이들도 드문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친구 A, B와 함께 셋이서 학교를 빠져나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이른바 '큐피 하우스' 라고 불리던 심령 스폿이었습니다.


그 곳은 인근 석공 작업실 옆에 있는 집으로, 오랫동안 주인이 돌아오지 않아 폐가가 되어버린 집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차고 같은 곳이 있는데, 셔터 틈 사이로 보이는 집안은 망가진 의자나 인형 같은 게 마구 널려져 있어 무척 무서운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시간은 3시 반.


우리는 옆에 있는 석공 할아버지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집 부지로 숨어 들었습니다.




화단을 타고 담을 넘어, 베란다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다행히도 창문은 열려 있어, 순조롭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집 안은 황무지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A는 겁에 질려, [돌아가자. 선생님한테 혼날거야.] 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나와 B는 모험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취해, 점점 안 쪽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우리는 2층을 전체적으로 한 바퀴 돌았습니다.




방은 모두 3개 있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들어간 방은 아무래도 여자 방인 듯 했습니다.


웬지 모르게 깨끗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 장식품 같은 게 놓여 있었습니다.




그 다음 방은 아기 침대가 놓여있고, 아기들이 좋아할법한 장난감이 엄청나게 흩어져있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큐피 인형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장난감은 다들 허름하고, 무언지 알 수 없는 거무스름한 액체가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방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방이었습니다.


곧이어 우리는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거실은 분위기 있는 서양식으로, 멋진 소파가 놓여있었습니다.




아마 이 집에는 아기가 있었던 거겠죠.


아기용 책상이나 의자, 식기 같은 게 바닥에 마구 널려있었습니다.


나와 B는 신나서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고 있었지만, A는 B의 뒤에 달라붙어 떨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서재, 화장실, 부엌...


여기저기를 둘러봤지만, 딱히 이상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럼 슬슬 학교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니까, 마지막으로 목욕탕을 보고 현관으로 나가자. 다음에 또 놀러오면 되지.]




그리하여 우리는 목욕탕을 보러 갔습니다.


욕조 앞 탈의실에 이르자, B가 [혹시 모르니까 현관문은 열어놓고 오자!] 라고 말했습니다.


현관은 바로 근처였기에 우리는 문을 열어놓기로 했습니다.




바깥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시계가 없었기에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욕탕에 들어서자 무언가가 썩은 것 같은 지독한 냄새가 풍겼습니다.




과일이나 야채 같은 게 아니라, 무슨 동물 사체가 썩은 것 같은 냄새였습니다.


토할 것 같이 심한 냄새였습니다만, 무서운 걸 찾아온 터였던 나와 B는 어째서인지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나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영웅대접 받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겁니다.




최악의 경우에, 이 중 누군가 죽어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A는 너무 무섭고 냄새도 난다며, 목욕탕에 들어올 생각을 않았습니다.


기묘하게도 고작 한 걸음 차이인데, 목욕탕 밖에 있는 A는 나오니까 아무 냄새가 안 난다고 말했습니다.




욕조에는 뚜껑이 덮여있었습니다.


원래는 흰색 플라스틱 뚜껑이었을테지만...


이미 검은색으로 변색되었다고 할까, 2층에서 봤던 검은 액체 같은 게 묻어 있었습니다.




나는 B와 힘을 합쳐 열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너무도 무거워 쉬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뚜껑은 2개가 있었지만, 양 쪽 모두 열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손가락을 뚜껑과 욕조 사이에 밀어 넣으려고 하는 순간, 내 손톱 사이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기분 나쁜 나머지 손을 빼보니, 가늘고 짧은 머리카락과 긴 머리카락, 2가닥이 중지 손톱 밑에 꽂혀있었습니다.


그걸 보자 나와 B는 무서워져 도망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이는 건 부끄럽다는 생각에, 우리는 애써 태연한 척 했습니다.




[이제 슬슬 질려가네.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돌아가자!]


하지만 분명 열려 있었던 목욕탕 문이 어느새인가 닫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A의 장난일거라 생각해서 문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야! A! 이런 장난은 그만 둬!]


[너 선생님한테 이른다!]


하지만 A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목욕탕은 흐린 유리로 되어 있어서, 사람이 밖에 있으면 실루엣이 보여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 밖에는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시간이 차차 지나면서, 우리는 점점 진심으로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엉엉 울며 문을 두드리고, A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결국 힘이 빠진 우리는, 여기 있다보면 누가 와서 도와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구조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욕조에 등을 기댄 채, 문을 바라보며 기다렸습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요.


B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린 틀렸다느니, 죽을 거라느니, A도 벌써 죽어버린게 틀림 없다느니 부정적인 말들을 마구 늘어놓았습니다.


그 순간, 등 뒤 욕조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뒤를 돌아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다시 소리가 납니다.


젖은 천을 비비는 것 같은 소리.




쓰윽... 쓰윽...


나는 큰맘 먹고 뒤를 돌아봤습니다.


분명 닫혀 있던 뚜껑 중 한 쪽이 열려있었습니다.




우리는 겁에 질려 다시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소리는 계속 들려옵니다.




뚜껑이 열려 있는 탓에, 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했습니다.


B는 고개를 숙인채, 중얼중얼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B의 목소리는 아니었습니다.




B의 목소리는 여자아이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낮고 흐린 목소리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문에 등을 댄 채, 욕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곳에 온 걸 진심으로 후회했습니다.


집에 돌아가게 된다면 엄마와 선생님한테 사과하자.




머릿 속에는 그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소리는 계속 들려옵니다.


욕조를 바라보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순간 작은 손, 아기 손 같은 게 열린 뚜껑 틈새로 보이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나는 무심코 토해버리고 말았습니다.


B는 아직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야! B! 도망치자! 응? 정신 차려!]


나는 B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지만 B의 눈에는 초점이 없고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나는 게 느껴졌습니다.


욕조에서는 지금까지 들려오던 것과는 달리, 신음 소리 같은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도우러 와 준 것이라 생각한 나는, 기뻐서 문 쪽을 바라봤습니다.




거기에는 흐릿한 유리에 얼굴과 손을 꽉 붙인 여자의 실루엣이 떠올라 있었습니다.


앞머리를 5:5 가르마로 나눈 단발머리의 여자가, 입을 크게 벌리고 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꽉 붙이고 있었기에, 표정까지 확실히 눈에 들어옵니다.




곧이어 여자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를 말하는 듯 했습니다.


말을 하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내용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째서인지 눈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여자는 양손을 천천히, 무겁게 들어올리더니 엄청난 힘으로 문을 쾅하고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눈을 뜨자 우리 집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방에 나 혼자 있었습니다.


갑자기 무서워져서 방에서 나오니, 거실에는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울면서 나를 꼭 껴안고,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주셨습니다.


내 기억에 나는 그 집에 1, 2시간 가량 있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틀 가까이 그 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A는 우리를 두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지만, 다음날 학교에 나랑 B가 나오질 않았다는 겁니다.


그 날은 무서워서 선생님에게 말도 못 꺼냈지만, 집에 돌아간 후 A는 자기 부모님에게 우리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찰이 출동했을 무렵, 나는 목욕탕 안에서 기절한 채였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왼쪽 장딴지에는 무척 작은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울면서 물었습니다.


[B는? B, 이상하게 되서 막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자 어머니는 [B군은 지금 병원에 있어. B군을 만나고 싶니?] 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만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내일 만나러 가자. 하지만 B군을 봐도 울면 안 돼. 큰 소리도 지르면 안 돼. 알았지? 약속하는거다?]




다음날 B를 만나러 가자, 아니나다를까 B는 그 모습 그대로, 이상한 말을 침대에 앉아 지껄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무서워서 B를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A와는 아직 연락이 닿고 있지만, B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꺼름칙한 탓에 꺼리고 있을 뿐입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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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55th]악마 빙의

괴담 번역 2015. 4. 1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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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 집은 요코하마에 있었다.


아버지는 교회 목사님이셨다.


목사님치고는 상당히 호탕한 성격이라, 신도들에게 인기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닥 믿음이 깊지는 않았기에 기도라고 해봐야 밥 먹기 전에 가족이 다같이 하는 것 외에는 하지도 않을 정도였다.


아무튼 요코하마에서, 우리 집은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누나가 골동품점에서 패션 잡지 정도 크기의 고서를 사왔다.




우리 누나는 오컬트 매니아로, 그런 물건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다.


물론 누나가 이상한 것을 사올 때마다, 아버지는 [성직자의 딸이 이런 걸 사모으는 게 말이나 되냐?] 라면서 핀잔을 주셨다.


개중에는 꽤 위험한 것도 몇 개 있었는지, 아버지가 [이건 당장 돌려주거나 태워버려라.] 라고 화를 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누나가 이번에 사온 건 아마 서양 쪽 오컬트 원서인 듯 했다.


누나는 영어를 무척 잘했기 때문에, 평소에도 영어로 된 원서를 구해다가 읽곤 했었다.


그리고 책을 사온 바로 그날, 나는 누나에게 억지로 끌려와서 같이 책에 적힌 '악마를 부르는 주술' 에 참여했다.




책에 나온대로 의식을 거행하고,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흥미를 잃은 우리는 그냥 TV나 보기로 했다.


그리고 밤이 깊어,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말하시는 것이었다.


[뭐냐, 이 동물 냄새는? 집에 개라도 데리고 들어왔니?]


그리고 냄새를 따라 누나 방에 들어가더니, 그 책을 찾아내셨다.




[얘들아, 이리 와봐라!]


아버지는 매우 화난 목소리로 고함을 치셨고, 나와 누나는 놀라서 황급히 누나 방으로 뛰어갔다.


[첫째 너, 이게 뭔지 알고 가져온거냐?]




[아뇨... 그냥 단순히 귀신이랑 만나는 법이 적인 책이라고 해서...]


[이 바보야! 이 책의 표지는 진짜 사람 피부인데다, 써 있는 건 모두 사악한 흑마술이야! 무슨 소린지 알겠니? 단순한 흑마술이라면 그냥 읽는 정도로는 별다른 피해가 없다. 하지만 이건 적그리스도를 섬기는 이들이 진심으로 저주를 담아 만든 책이야. 사람의 피부를 벗겨서 책을 만들다니... 제정신인 놈들이 만든 게 아니다. 당장 처분해야겠어!]


그리고 아버지는 책을 들고 집 근처에 있는 교회로 가셨다.




1시간 정도 지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직 짐승의 냄새가 남아 있는데... 설마, 너희들 책에 써 있는 흑마술을 따라한 건 아니지?]


누나가 마지못해 모든 것을 털어놓자, 아버지는 온 힘을 다해 누나의 뺨을 때렸다.




언제나 자상하던 아버지가 누군가를 때리는 건 태어나서 그 때 처음 봤다.


[오컬트 같은 걸 취미로 삼는 건 상관 없다. 재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 자신을 희생물로 삼아서 뭘 어쩌겠다는거냐!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해도 될 것과 안 될것 정도는 구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울고 있는 누나에게 [내일 둘이 같이 교회로 오거라.] 라고 말했고, 그 날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날 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난 내가 멍하니 복도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집 안을 걸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나 누나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갑자기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3번.




시간은 이미 새벽 3시를 넘은 한밤 중이었다.


아무리 목사님 댁이라고는 해도, 이런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흔치 않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으로 나가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곧이어 부엌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3번 들려왔다.


점점 겁에 질릴 무렵, 아버지가 2층에서 내려오셨다.


[악마는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지... 걱정 말거라. 아직 진입단계니까. 제압단계로 바뀌기 전까지는...]




[꺄아아아악!]


바로 그 순간, 아버지의 말을 가로막듯 2층 누나 방에서 절규가 울려퍼졌다.


나와 아버지는 서둘러 누나 방으로 뛰어갔다.




문을 열었다.


누나가 있었다.


눈 앞의 광경을 보고, 나는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누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코 누나 같지 않은 것이 침대 위에 있었다.


누나는 침대에 앉아 우리를 보고 있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몇 초 지나 겨우 깨달은 것은, 누나의 눈이 전부 검은자위만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누나는 혀를 쭉 내밀고 있었다.


혀가 너무 길었다.


그런 모습을 한 채 알 수 없는 말을 마구 지껄이고 있었다.




[진입단계를 이렇게 빨리 끝낼 줄이야... 이미 제압단계에 들어가 버렸구나! 막내야! 누나를 어서 교회에 데려가야겠다. 도와다오!]


아버지의 말대로 나는 누나가 다치지 않게 손발을 묶고, 누나를 들쳐업어 차로 옮겼다.


차 안에서도 누나는 미친듯 날뛰어, 그저 몸을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악마가 씌인거야?] 라고 묻자, 아버지는 [그래.]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누나는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거야?]


[정확히 말해줄 수는 없지만 히브리어다.]




교회로 향하는 도중, 우리 차는 검은 고양이를 3번 쳤다.


신호등도 파란불로 바뀐 직후에 갑자기 다시 빨간불로 바뀌곤 했다.


엔진도 3번이나 고장나 다시 시동을 걸어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냉정을 잃지 않고 운전해, 겨우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구 날뛰는 누나를 교회 의자에 묶어두고, 아버지는 안쪽 방에서 다양한 도구를 가져왔다.


[설마 영화 같은 데 나오던 엑소시즘을 하려는거야? 아빠 해본 적 있어?]




[딱 한번.]


[성공했어?]


[그 때는 나 혼자 한 게 아니라서 어떻게든 해냈었지...]




[나는 뭘 도와주면 되요?]


[악마가 얽혀있는 일이니 잘 모르는 사람이 나서면 안 된다. 누나 뒤에 서 있거라. 만약 밧줄을 뜯으려하면 말려.]


그리고 아버지는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라며 기도문을 읽고, 누나에게 성수를 뿌렸다.




성수가 얼굴에 맞을 때마다 누나는 끔찍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 여자가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됐어!] 라거나, [그 놈이 십자가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왕이 됐을텐데!] 라고 외쳤던 것 같다.


라틴어였기에 나중에 아버지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였지만, 전자는 예수를 임신한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고, 후자는 예수 본인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누나가 내게 고개를 돌리더니 [아빠, 도와줘!] 라고 외쳤다.


나는 누나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엑소시즘 도중에 악마에게 말을 건네지 말아라! 누나인지 악마인지 알 수 없어. 무시하거라!] 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악마의 이름을 물었다.


아무래도 악마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 힘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 같다.


어느새 아버지도 나도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누나의 입에서는 무엇인가가 썩는 것 같은 냄새가 풍겨온다.


[네놈의 이름을 말해라!]


그 순간 누나의 입에서 도저히 무슨 말인지 발음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네놈의 이름을 말해라!]


[캬아아아악!]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성해포라는 성물을 손에 들고 누나의 이마를 꽉 눌렀다.




아버지조차 진짜 성물인지는 모른다고 말했지만, 효과가 있었으니 아마 진짜였겠지.


누나는 검은자위 눈동자를 치켜뜨고, 의자에 묶인 밧줄을 미친듯 뜯으며 소리쳤다.


[너 희 들 은 8 월 에 죽 는 다!]




그것과 동시에 교회의 모든 창문이 [쾅쾅쾅쾅쾅쾅쾅쾅쾅!] 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창문 하나하나마다 까마귀가 달라붙어 주둥이로 창을 쪼고 있었다.


이 한밤 중에 까마귀들이 한 번에 움직이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공포를 견디지 못한 나는 아마 그대로 기절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 응급실이었다.


누나는 의식이 끝나자 탈진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바로 병원에 데려왔던 것 같았다.




나는 가벼운 빈혈이라는 진단만 받았을 뿐이었다.


[누나에게 씌어 있던 악마는 이제 사라진거야?]


[음, 일단 지금은.]




[그럼 또 찾아오는거야?]


[올지도 모르고 안 올지도 모른단다. 악마에게 시간 따위는 무의미한 것이니까.]


[8월에 죽는다고 했는데 아빠는 안 무서워?]




[생각했던 것보다 금방 끝난 걸 보면 그렇게 강한 악마는 아니었던 것 같아. 시시한 녀석이 도망치면서 억울해서 한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말거라.]


[결국 악마라는 건 도대체 뭐야?]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지만, 저런 게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단다. 하나 너에게 당부해둘 게 있다. 이번에는 아직 빙의 도중이었던데다 누나의 인격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낼 수 있었어. 물론 네가 나중에 성직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완전히 빙의된 사람을 본다면 그 때는...]




[그 때는?]


[도망치거라!]


그 후 누나에게도 나에게도 변한 것은 없었다.




8월에 가족 중 누가 죽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평범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3년 전.


속도위반으로 인해 누나가 결혼을 했다.




그런데 태어난 조카의 몸에 666이라고 적힌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별 의미는 없겠지만, 얼마 전 누나는 3살이 된 조카가 이상한 말을 했다고 전했다.


[엄마, 바다는 가지 말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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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골집에는 어릴 적부터, 절대 들어가면 안된다는 방이 있었다.


하지만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들어가보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지.


그래서 나는 중학교에 다닐 무렵, 몰래 그 방에 들어갔었다.




아무 것도 없는, 평범한 방이었다.


딱히 이상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도 아니고, 창문으로는 햇빛도 들어온다.


무서울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뭐야...


그냥 방을 어지럽힐까봐 걱정해서 엄포를 놓았던건가?


나는 맥이 빠졌다.




귀찮은 나머지 나는 그대로 그 방에서 잠을 청했다.


가위조차 눌리지 않고, 몇 시간 있다 잠에서 깨어났다.


자는 사이에 혹시 뭔 일이 있기라도 했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




무서울 건 전혀 없었다.


들어오면 안 된다고 그리 엄포를 놓던 방이니 뭔가 무서운 게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방을 나오면서, 별 생각 없이 방에 있던 찬장 서랍을 열어봤다.




안에는 일본식 인형이 딱 하나, 들어있었다.


다른 서랍에는 옷 같은 게 들어있었지만, 오직 그 서랍에는 인형이 들어있었다.


뭔가 기묘한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나중에 방에 들어갔던 건 비밀로 하고, 할머니에게 뒷사정을 물어봤다.


아무래도 그 방은 아버지의 여동생, 즉 내게 고모 되는 분이 쓰던 방이었다는 것 같다.


서랍 안에 들어있는 물건도 모두 고모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은 더 된 이야기다.


지금 있는 시골집을 지은 건 부모님이 결혼한 직후로, 나중에 아이가 생길 때를 대비해 2세대가 같이 살 수 있는 구조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뜰을 넓혀 증축해 지은 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증축해서 지은 게 바로 그 '들어가면 안 되는 방'이었다.


그리고 고모가 그 방을 쓰게 되었는데...


집을 새로 지은 후부터 고모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방에서 자고 싶지 않다고 애원을 했다고 한다.


고모 말에 따르면 그 방에서 자게 된 후,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도 새벽 3시만 되면 눈이 떠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눈을 뜨면 분명 자기 전에 껐던 불이 켜져 있고, 머리맡에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앉아있다는 것이다.




기묘하게도 환하게 불이 들어온 방인데도, 여자아이 얼굴만은 새까매서 보이지가 않더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고모는 알 수 있더란다.


그 여자아이가 웃고 있다는 것을...




그게 1주일 가량 이어졌다고 한다.


고모는 머리도 좋고 마음씀씀이가 깊은 사람이라, 처음에는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주일 동안 이어지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부모님에게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방을 바꿔달라는 고모의 요청을 거절했다.


[결혼도 안 하고 집에 들러붙어 있는 주제에 말이야... 새로 집을 짓고 시작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어딜 장난이고 치고 있어! 나가려면 아예 집을 나가거라!]


그리고 반달 가량 지났을까.




문득 할머니는 고모가 방 때문에 애원했다는 걸 떠올렸다고 한다.


그 즈음에는 고모가 아무런 불만도 없이, 하루 종일 묘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이제 새 집에 적응을 해서 이상한 꿈도 꾸지 않게 된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고...




할머니는 고모에게 이전의 꿈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고모는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응. 아직도 나와. 하지만 이젠 익숙해졌어. 처음에는 한 명이었지만, 점점 늘어가고 있어. 다들 계속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




그렇게 말한 후, [아하하하하!] 하고 고모는 웃어제꼈다고 한다.


평소에 그렇게 조용한 고모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로.


고모의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든 꿈이나 환각이었든, 그 무렵에는 이미 늦은 것이었으리라.




고모 방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는 방 바로 옆이었다.


그 날 할머니는 한밤 중에 옆방에서 [삭, 삭, 삭, 삭...] 하고 구멍 파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고모 방에 들어가보니, 방 다다미가 들춰져 있었다.




그리고 드러난 바닥에 고모가 웅크린 채, 맨손으로 정신 없이 구멍을 파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니!]


할머니는 고모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소리를 쳤다.




하지만 고모는 멈추지 않았다.


입가에는 미소마저 떠올라 있었다고 한다.


잠시 후, [여기 있다...] 라면서, 바닥에서 들어올린 고모의 손에는 인형이 들려있었다.




흙 속에 묻혀 있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깨끗한 인형이었다.


고모는 할머니에게 인형을 건네주고, 웃는 얼굴 그대로 벽 옆까지 걸어갔다.


쾅, 쾅, 쾅.




그리고 몇 번이고 계속 자기 머리를 벽에 들이받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뭐하는거니, 얘!]




할머니는 당황해 고모를 뜯어말리려 했지만, 고모는 엄청난 힘으로 할머니를 밀어버렸다고 한다.


[뭐하는걸까, 정말... 나, 왜 이런 짓을 하는걸까? 모르겠어, 모르겠어, 모르겠어...]


고모의 말은 이윽고 웃음소리가 섞인 의미 없는 괴성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할머니는 들었다고 한다.


고모의 웃음소리에 섞여 있는, 여자아이 여러명의 웃음소리를.


고모는 그대로 10분 넘게 머리를 벽에 들이받다가, 갑자기 우뚝 서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고 한다.




[무슨 장난감이 쓰러지는 걸 보는 것 같았어.] 


할머니는 그렇게 회상했다.


잠에서 깨어난 할아버지가 구급차를 불렀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연수와 뇌의 중추부, 두개골이 모두 박살이 난 후였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도 의사는 믿지 못했다.


[자기 혼자 이 지경이 되도록 머리를 들이 받았다구요? 그건 의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급기야 살인 혐의까지 몰릴 지경이었다나.


이 지경이 되자 할아버지도 그 방에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딸을 죽게 놔둬버린 죄책감 때문인지, 절에서 스님을 모셔왔다고 한다.


그리고 스님은 그 방에 들어서자마자 토해버렸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 방은 옛날 유산된 아이나 역병으로 죽은 아이들의 시체를 모아 묻은 자리 위에 지어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탓에 엄청난 수의 아이 귀신들이 그 터에 모여있다고 했다.


[절대로 이 방을 산 사람이 쓰면 아니되오.] 라고 스님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신신당부를 했다.




할머니는 고모가 파낸 인형을 건네며 공양을 부탁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런 걸 가지고 돌아가고 싶지 않소. 그런 물건에 어중간하게 공양을 올려봐야 역효과만 일어날게요. 어디 내다 버리거나 태우거나 알아서들 하시구려.]


그 후에는 자주 들어봤을 법한 괴담의 정석이다.




분명히 쓰레기장에 내다버렸던 인형이 어느새인가 서랍 안에 들어와 있고, 태워버리려해도 불이 옮겨붙지를 않고 오히려 아버지에게 불똥이 튀어 화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그 서랍에 집어넣어버리고, 방을 통째로 쓰지 못하게 막아버렸다는 것이었다.


고모의 비참한 죽음이 얽혀있기에 내게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원래 있던 곳에 두니 인형은 거기에만 머무르는구나. 다시 밖으로 나오지 않아야할텐데 말이야.]


응...


다시 나와버렸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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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53rd]바다신

괴담 번역 2015. 4. 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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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때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내 고향은 해안가 시골마을로, 바다가 무척 맑고 깨끗한 걸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저런 속사정도 있기 마련이다.

 


  

어릴 적 친구인 K네 집은 지역에서 대대로 위명을 떨쳐온 명문가였다.

 

하지만 그 명문가에, 이상한 전언이 내려오고 있었다.


[집안의 장손은 15번째 생일날 바다에 가까이 가면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바다신이 죽어버린 자기 아이를 대신해, K네 집안 아이 영혼을 앗아간다는 것이었다.

 

물론 머리가 굵었다고 생각하던 나와 K는 코웃음칠 뿐이었지만.


어쨌거나 K의 15번째 생일날이 찾아왔다.

 

 

 

그 날 K는 학교를 쉬었다.

 

나는 점심시간에 슬쩍 학교를 빠져나와, 상황을 살피러 갔다.


K네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K네 아줌마가 나왔다.

 

 

 

K는 어떠냐고 물으니,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하루 종일 자기 방에 갇혀있는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K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혹시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며, K네 아줌마는 나를 K의 방으로 들여보내주셨다.

 

솔직히 나는 K네 아줌마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 헛소리를 진심으로 믿고 있는거야?

 

 

 

하지만 마을 전체가 그 소문을 익히 알고 있으니 불안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K의 방으로 향했다.


방 앞에 가자 K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엄숙한 표정을 지은 채 앉아 있었다.

 

 

 

나는 두 분께 인사를 건네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 한 손에는 맥주캔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 있는 K가 더비스타를 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저렇게 걱정을 하는데, 정작 본인은 태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나도 마음이 놓였다.

 

 

 

K는 나를 눈치채고 [왔냐?] 하고 평소처럼 인사를 건넸다.

 

한동안 별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K가 물었다.


[야, 진짜 오늘 내가 죽어버리면 어쩌지?]

 

 

 

잠시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곤혹스러웠지만, [내가 상여 들쳐메줄게.] 라고 농담 섞어 대답해줬다.

 

K의 말에 따르면, K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15번째 생일날에는 다들 방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그 날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후 수업을 째고, 하루 종일 K랑 같이 있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간식거리와 담배를 사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갔다오니 어쩐지 K의 방이 소란스러웠다.

 

 

 

꽤 대단해보이는 스님이 와서, 결계 같은 걸 치고 여기저기 부적을 붙이고 있었다.

 

K는 머리부터 술을 뒤집어 쓴 다음, 온 몸에 재가 흩뿌려져 흉한 꼴을 하고 있었다.


잠시 뒤 K가 몸을 씻고 돌아왔고, 나는 K랑 같이 여기저기 부적이 붙어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딱히 할 짓도 없었기에, 우리는 영화나 틀어놓고 멍하니 보고 있었다.

 

방 주변에는 마을 아저씨들이 순서를 정하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딱히 별 일 없이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 11시 무렵이 되었다.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 방을 나갔다 들어오는 터였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방 문은 열려 있고, 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아저씨 두 명이 잠에 빠져 쓰러져 있었다.


혹시나 싶은 생각에 방 안을 들여다보니 K가 없다.

 

 

 

나는 아저씨들을 흔들어 깨우고, 집안 사람들에게 K가 사라졌다고 소리쳤다.

 

그대로 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K를 찾아 수색에 나섰다.


나는 오토바이를 몰고 곧장 바다로 달렸다.

 

 

 

해안선 쪽 국도를 따라 달리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사장에 서 있는 K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K네 집에 연락을 하고, K를 향해 달려갔다.


[야, 너 지금 뭐하는거야!]

 




 

 

K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K는 강한 힘으로 내 손을 뿌리쳤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돌아본 K는, 흰자를 치켜뜬 채 입에 잔뜩 거품을 물고 침을 흘리고 있었다.

 

 

 

큰일이라고 직감한 나는 등 뒤에서 K를 붙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K는 바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앞에서 무언가가 엄청난 힘으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서운 힘을 발휘해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온 힘을 다해 K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하지만 아무리 때려대도 내 주먹이 아플 뿐, K는 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러는 사이 어른들이 주변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른들까지 합세해 10명은 되는 사람들이 K에게 달라붙어 끌어당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럼에도 K는 괴력을 발휘해, 바다로 향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바닷 속으로 걸어들어가 가슴팍이 젖을 정도가 될 무렵, 아까 낮에 봤던 스님이 뛰어오더니 큰 소리로 경을 읊기 시작했다.

 

 

 

그러자 K는 의식을 잃고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그대로 바다 속에 빠져버렸다.

 

다들 당황해서 K를 부축해 바닷가로 끌어올렸다.


스님은 K의 이마에 부적을 붙이고, 경을 읊기 시작했다.

 

 

 

독경은 해가 떠오를 때까지 그대로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해가 뜬 후, 스님이 K의 등을 두드리며 [아이!] 하고 기합을 넣자 K가 눈을 떴다.


K는 눈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전혀 모르는 듯 했다.

 

 

 

[왜 내가 바닷가에 있는거야? 왜 너도 그렇게 흠뻑 젖어있냐?]

 

당황한 나머지 상황을 이해하려고 온갖 질문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나는 K에게 어젯밤 있었던 일을 말해줬지만, [정말?] 이라고 아연실색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정말 아무런 기억이 없는 듯 했다.

 

그 후 마을에서는 한동안 그 이야기가 화제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은 끊어지고 다들 그 일을 입에 담지 않게 되었다.


K는 지금 홋카이도에서 소를 기르며 건강히 잘 살고 있다.

 

 

 

내년에 결혼한다고 한다.

 

이 사건은 지역 신문에까지 나올 정도로 꽤 유명했던 터라, K에게 경을 읊어줬던 스님은 꽤 유명세를 타 돈을 잔뜩 벌었다는 소문을 전해 듣기도 했다.

 

 

 

 

Illust by 느림보(http://blog.naver.com/loss1102)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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