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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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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에게 들은, 할머니가 어릴 적 겪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다.


외할머니는 삼형제 중 막내로, 오빠와 언니가 있었다고 한다.


오빠와 할머니는 건강하기 그지 없었지만, 언니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매일 병상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쇠약한 탓에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아, 용무가 있으면 방울을 울려 가족들을 부르곤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기에 낮 동안에는 집을 비웠고, 결국 언니 병구완은 죄다 동생인 외할머니가 도맡아 했다.


간병이라고는 해도 어린 나이에 뭐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이나 식사를 가져다 주는 정도의 일이었다고 한다.




허나 언니의 병세는 회복할 조짐이 보이지 않았고, 점점 야위어 눈은 움푹 들어가 마치 죽음의 신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언니가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로 병상에서 오빠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물... 좀... 줘...]




하지만 오빠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싫~어. 나는 지금 놀러나갈 거지롱.]


그리고는 집에서 쌩하니 뛰쳐나갔다.




언니에게는 그 말이 쇼크였던 듯 했다.


얼굴을 찌푸리고, 밉살스러운 시선으로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물...좀... 가져다...줄래...]


하지만 할머니는 언니의 찌푸린 얼굴에 갑자기 공포심이 치밀어 올라왔다고 한다.


[나, 나도 놀러 갈래...] 라고 말하고 도망가려던 그 순간, 언니는 무서운 힘으로 팔을 붙잡았다.




[죽으면... 원망할 거야.]


할머니는 울면서 [싫어!] 라고 팔을 뿌리치고,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고 한다.


그 후 할머니는 언니에게 가까이 가길 꺼렸고, 몇 주 뒤 언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 뒤, 할머니가 방에 혼자 있을 무렵이었다고 한다.


딸랑, 딸랑하고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는 겁에 질리면서도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원한 서린 눈을 하고 할머니를 째려보는 언니가 있었다.


그 이후로부터, 할머니가 혼자 있을 때면 언니는 모습을 드러내 계속 원한 서린 시선을 보내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한동안 그걸 혼자 참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이 물을 가져다 주지 않았기에 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라고, 스스로도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공포에 질린 할머니는, 결국 부모님에게 매달려 울며 물을 주지 않았던 것과 언니에 대한 미안함, 후회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외증조할머니는 할머니를 꼭 안아 주셨다고 한다.




[네가 한 건 분명 잘못된 일이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언니가 죽은 건 아니란다. 엄마가 언니에게 잘 이야기 해 줄게.]


그날 밤, 증조외할머니는 할머니 방 옆에서 가만히 언니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 때, 증조외할머니에게도 방울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할머니의 비명 소리를 듣고 방에 들어가, 증조외할머니는 외쳤다.


[얘야, 이제 동생을 용서해주렴. 결코 네가 싫어서 물을 주지 않은 게 아니야. 좋아하지만 순간 무서웠던 것 뿐이야. 전부 너희를 그냥 내버려둔 엄마가 잘못한 거야. 그러니까 이제 나오려면 엄마한테 오렴.]


그 후로 언니의 귀신은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할머니도 언니가 용서해 준 것이라 믿고, 내게 이야기를 해주셨던 거겠지.


할머니는 작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심으로 명복을 기원한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나만 눈치챈, 가족들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건 할머니의 언니가 죽은 날과 같은 날이었다.


그리고 죽은 할머니 팔에는, 손자국 같은 멍이 남아 있었다.




왜 이제 와서...


할머니가 죽은 지금, 내게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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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대학생일 무렵 인바운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콜센터에 앉아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그거.


뭐, 클레임도 종종 걸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오는 전화를 받아 다른 쪽으로 넘겨주는 작업이었다.




통신교육 회사였기에, 가장 많은 요청은 해약에 관한 것이었다.


그 외에는 교재 발송이나 여타 문의라던가...


그리고 아르바이트생들이 받는 전화는 회사 사람들이 모니터링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전화가 길어지면 체크해서 도움을 주거나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도움을 주려고 말이지.


나는 거기서 오래 일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괜찮게 실적을 올렸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3년째가 되자, 정직원 바로 아랫단계 같은 위치가 되어, 아르바이트생들 중에서는 리더 같은 입장이었다.




그랬기에 내게도 모니터링 권한이 주어졌고.


그날 역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중, 한 여자 아르바이트생의 전화가 20분을 넘기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여자아이가 앉은 쪽으로 목을 쭉 내밀어 살펴보니, 헤드셋에 귀를 기울인채, 무척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무슨 귀찮은 클레임이라도 들어온 건가 싶어 그 전화를 모니터링 해보기로 했다.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흐느끼고 있다.




[...그렇게 괴롭힘당하고 있어요. 진짜에요. 담뱃불을 몸에 대기도 하고, 뜨거운 물을 막 끼얹어서 너무 아파요.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더 혼나서 말도 못해요. 선생님한테도 못 말하겠어요. 지금은 자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었다.


고객의 번호는 저장하지 않는데다, 이쪽은 아무런 정보가 없다.




여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이름과 주소를 물었다.


하지만 사내아이는 거의 패닉 상태라, 작은 소리로 울부짖어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질 않는 듯 했다.


이야기가 진짜 심각한 것 같아, 나는 상사에게 상담하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으아아아악!] 하고 날카롭게 소리치는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황급히 헤드셋을 다시 썼다.


비명 소리와 무언가를 마구 부수는 것 같은 소리가 몇번 들린 후, 콧김을 씩씩 내쉬는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던 내 맘이야! 이건 내 물건이니까! 알았어? 전화는 못 들은 걸로 해둬! 후... 이 아이는 내가 죽여놓을테니까요.]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다음날, 그 전화를 받았던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일을 그만뒀다.


이거보다 무서운 일은 없었지만, 그 후에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전화를 받는 일은 잦았다.


인바운드 아르바이트도 정말 할 짓이 못된다고 해야 하나...



 

 

Illust by 느림보(http://blog.naver.com/loss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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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26th]유언 비디오

괴담 번역 2015. 11. 26.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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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동료가 죽었다.


맨손 암벽 등반이 취미인 K였다.


나와는 무척 사이가 좋아, 가족들과도 익히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K의 암벽 등반 취미는 본격적이라, 휴일이면 이런저런 산이니 벼랑이니 항상 찾아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K가 죽기 반년 정도 전이었나.


갑자기 K가 내게 부탁이 있다며 말을 걸어왔다.




[야, 내가 만약 죽을 때를 대비해서 말인데, 비디오 하나 찍어주라.]


취미가 취미이니만큼 언제 사고가 나 세상을 떠날지 모르니, 미리 영상 메세지를 찍어두겠다는 것이었다.


만약의 때에는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담아, 가족들에게 보여주려.




나는 [그렇게 위험한 취미인 걸 알면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그만 둬라, 좀.]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K는 단호했다.


[암벽 등반만큼은 절대로 그만둘 수 없어.]




그것도 K답다 싶어, 나는 촬영을 도와주게 되었다.


K네 집에서 찍었다간 들킬게 뻔하니, 내 집에서 찍기로 했다.


흰 벽을 배경으로 하고, 소파에 앉은 K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 K입니다. 이 비디오를 보고 있다는 건, 내가 죽었다는 뜻이겠죠. 여보, S야. 지금까지 정말 고마웠어.]


K는 우선 아내와 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내 제멋대로인 취미 때문에 가족들한테 폐만 끼치고, 정말 미안합니다. 저를 키워주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다른 모든 친구들도. 내가 죽어서 슬퍼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부디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천국에서 즐겁게 지낼테니까요.]




K는 한숨을 몰아쉬고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건 안타깝지만, 천국에서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S야. 아버지는 언제나 천국에서 널 지켜보고 있을게. 그러니까 울지 말렴. 웃으면서 배웅해 줘. 그럼, 안녕.]


그리고 촬영이 끝나고 반년 후, 정말로 K는 세상을 떠났다.




암벽 등반 도중 실족으로 인한 사고사였다.


같이 산을 오르던 동료에 의하면, 보통 떨어져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도록 아래에 안전 매트를 깔고 등반하지만, 그 때는 하필 낙하 예상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떨어지는 바람에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장례식은 무척 비장했다.




울부짖는 K의 부인과 딸.


나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그 K가 이렇게 세상을 떠나다니.




장례를 치루고 일주일 가량 지난 후, 나는 전에 찍었던 그 비디오를 K네 가족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가족들도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았는지, 내가 K의 영상 메세지 이야기를 하니 부디 보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하여 7일째 법요를 할 때, 그 자리에서 영상을 틀기로 했다.




내가 DVD를 꺼내자, 가족들은 벌써부터 울기 시작했다.


[이것도 공양이 될테니 부디 봐 주세요.]


나는 DVD를 넣고 재생했다.




브... 하는 소리와 함께, 깜깜한 화면이 10초 가량 이어진다.


어? 녹화가 제대로 안됐나?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갑자기 K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분명 내 방에서 찍은 건데...


이렇게 어두웠던가?


[어... K입니다. 이 비디오를 ..고 있다는 건, 내가 ..었다는 ..이겠죠. 여보, S야. 지금까지 정.. 고마....]




K의 목소리에는 아까부터 계속 들려오던 브... 하는 잡음이 심하게 섞여, 목소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저를 키워주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다른 모든 친구들도. 내가 죽어서 슬퍼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부디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즈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S, 아버지 죽어버려어어어어어어어어 죽고 싶지 않아! 죽고즈봐아아아아아아싶지않아요오오오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마지막 부분은 잡음으로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K의 말은 분명히 촬영할 때와 다른, 단말마의 절규 같이 변해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K가 말을 마칠 무렵.


어두운 구석에서 무언가가 K의 팔을 잡아 끌고 가는게 확실히 보였다.




가족들은 울부짖고 있었다.


K의 부인은 [도대체 뭘 보여주시는 거에요!] 라며 내게 매달리고, K의 아버지는 나를 후려갈겼다.


부인의 남동생이 [K형이 이런 걸 장난으로 찍었을 리 없어요.] 라며 달래준 덕에 그 자리는 어떻게 무마가 됐다.




하지만 나는 무릎 꿇고 빌며, [이 DVD는 곧바로 처분하겠습니다.] 라고 가족 모두에게 사과했다.


다음날, DVD를 가지고 근처 절에 갔더니,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문전박대 당했다.


주지스님이 DVD를 넣은 봉투를 보자마자 [아, 그건 저희가 맡기에는 무리입니다.] 라고 말하며.




그 대신 받아줄 수 있을만한 곳을 알려주겠다기에 거기로 갔다.


거기서도 [말도 안되는 물건을 가지고 오셨군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 영매사 말에 따르면, K는 비디오를 찍은 시점에서 이미 완전히 지옥에 떨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어떻게 반년이나 더 살아있었던 건지 모르겠네요. 원래대로라면 그걸 찍은 직후에 사고를 당해 죽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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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은 훨씬 더 된 일인데, 신켄제미의 독자 투고란에 이런 꼭지가 있었다.


"무서운 꿈을 마음대로 꾸는 법".


제목에 눈길이 가 나는 그 꼭지를 읽어내렸다.




[그 방법은, 무서운 꿈을 꾸고 싶다고 빌면서 베개를 밟고 자는 것입니다. 밟는 횟수에 따라 무서운 이야기의 레벨이 정해집니다. 1, 2번 정도면 놀이공원 귀신의 집 정도지만, 7번을 넘어가면 정말 무서워집니다. 최고 레벨은 10번입니다.]


그런 내용이었다.


마침 막 자기 전에 읽었던데다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베개를 밟기 시작했다.




곧바로 최고 레벨로 가면 좀 시시할 거 같아, 9번에서 멈추고 잠을 청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한참 옛날에 돌아가신 친척 할아버지를 간병하는 꿈이었다.




할아버지는 어째서인지 내 방 침대에서 와병 중이었고, 코와 팔에 이런저런 관이 잔뜩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둘만 있는 게 싫었다.


가족들과 다같이 있을때는 싱글벙글 웃고 있다가도, 나랑 단둘이 되면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나를 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계속 신음했다.




그게 무섭고 무서워서, 나는 어느날 간병하는 척 하며 관을 하나 빼냈다.


그것만으로 금새 상태가 급변해, 가족들은 당황해 방으로 몰려왔다.


할아버지는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목을 마구 긁어대며 낮은 소리로 신음한다.




큰일을 저질렀다.


할아버지가 죽어버린다.


게다가, 내가 했다는 게 들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전혀 모르는 척 하며, 나는 할아버지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 때, 할아버지가 뭐라고 신음하고 있던 것인지가 내 귀에 들려왔다.


[네가 죽어... 네가 죽어...]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게 레벨 9짜리 꿈인가.


이게 무슨 꿈이람.




원래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직전에 돌아가셨던 데다, 내 방에서 간병한다는 상황 자체도 이상하다.


할아버지는 분명 저런 말도 하지 않았겠지.


꿈에서 느낀 두려움을 잊기 위해, 나는 내용을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생각해 나갔다.




하지만 그래도 그 얼굴은...


이제 잊자.


그건 꿈이지 현실이 아니니까.




하지만 무언가 기분 나쁜 느낌이 든다.


아직 꿈에서 깨지 못한 것만 같은 느낌이...


문득 고개를 들자, 천장에 꽉 찰 정도 크기의 새파란 얼굴이 있었다.




[네가 죽어어어어! 네가 죽어어어어어!]


이번에는 신음소리가 아니었다.


절규다!




그 얼굴이 꿈속에서부터 뒤쫓아 온 것이다!


너무나도 큰 공포에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얼굴이 없었다.




일단 무서운 꿈을 꾸고, 아, 꿈이었구나 싶을 때 진짜가 나온다...


그런 놈이었던 거 같다.


그 후 며칠간은 베개에 발 가까이 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레벨 9 가지고 그 정도로 무서우면 10은 얼마나 무서운 걸까.


그 때 이후로 더 이상 이 방법은 쓰지 않고 있다.


더 이상 그런 꿈은 꾸고 싶지 않으니까.




다만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다.


그 다음달 신켄제미 독자 투고란을 봤더니, 그 무서운 꿈 꾸는 방법을 시험해 본 녀석이 있었다.


[지난달 무서운 꿈 꾸는 방법이 써 있어서 시험해봤습니다. 나는 무서운 걸 싫어해서 8번 베개를 밟고 잤습니다. 꿈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눈을 떴더니 방에 새파랗고 큰 얼굴이 나왔습니다.]




등골이 오싹했다.


다른 사람인데도 똑같은 꿈을 꾸다니...


"베개", '밟기", "무서운 꿈", "레벨" 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해봤지만, 이 무서운 꿈 꾸는 법에 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레벨 10에서는 도대체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누군가 시험해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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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일 무렵, 우리 집 근처에는 백년 가까이 이어져 온 작은 목욕탕이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가게라고는 해도 시대의 흐름 때문인지, 손님들이 그리 많이 찾아오는 곳은 아니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그 목욕탕을 무척 좋아해서, 매일 같이 그 목욕탕에 다니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셨던 것 같다.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지만,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목욕탕에 갔었으니.


어느 주말 밤, 나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옷을 벗고 힘차게 욕실 문을 열었는데, 깜짝 놀랐다.




언제나 파리나 날리고 있던 목욕탕이, 어찌 된 일인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욕탕 안에도 사람투성이고, 씻는 곳에도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내 뒤를 따라 온 아버지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래서는 못 들어가겠네. 좀 기다릴까?]


아버지는 맥주를,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고 탈의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목욕 전에 아이스크림을 먹다니, 평소와는 완전 차례가 반대라 나는 어쩐지 즐거웠다.




한동안 기다렸지만 나오는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가 가서 지금은 어떤지 좀 보라고 해, 나는 다시 가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또 놀랐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혼잡하던 목욕탕이었는데, 지금 보니 손님은 2, 3명 뿐이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던데다 나온 사람도 없었는데...


아버지도 깜짝 놀란 듯 했지만, 원래 사람이 사소한 건 신경쓰지 않는 분이라 아무 일 없었던 듯 평소처럼 목욕이나 했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카운터 옆에 붙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럴수가,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가게를 닫는다는 것이었다.


고작 1주일 가량 남았는데.




문득 깨달았다.


아직 어린 나이였는데도, 왠지 아까 그렇게 손님이 많았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게가 문 닫는 게 아쉬워서, 먼 옛날부터 이 목욕탕을 찾았던 단골 손님들이 마지막으로 죄다 놀러왔던 거겠지.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지, [할아버지도 분명 계셨을텐데 말이야. 기껏 아들이랑 손자가 같이 왔는데 인사라도 해주지 참.] 이라며 중얼거리셨다.


나와 아버지는 그대로 아무 말 않고 손잡고 집에 돌아왔다.


목욕탕이 문 닫는 날, 다시 한 번 아버지와 목욕을 하러 갔지만, 그날은 평소처럼 한산할 뿐이었다.




목욕탕이 가득 찬 걸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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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백화점에 갔었다.


쇼핑을 마치고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 별 생각 없이 옆에 있던 쓰레기통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안은 거의 비어 깨끗했지만, 휴대폰이 하나 버려져 있었다.




내버려뒀으면 좋았을텐데, 멍청하게 그걸 주워들었다.


폴더폰인데 힌지가 뒤틀려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쓰레기통에 다시 내버리려다, 문득 메모리카드를 확인해 보니 1GB짜리 미니 SD가 들어있었다.




운이 좋다 싶어 신이 난 나는, 메모리카드만 챙겼다.


이게 잘못이었다.


집에 돌아와, PC를 켜고 카드를 꽂아보았다.




뭐가 들어있나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야한 사진이라도 있지 않을까 두근대며 열어보니, 사진이 100장 정도 있었다.


첫번째 파일을 열고 순서대로 사진을 봤지만, 재밌는 건 전혀 없었다.




중년의 여자와 그 딸인 듯한 젊은 여자의 사진이 주로, 그거 말고는 도쿄나 후쿠오카의 랜드마크 사진이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가 가족이랑 출장 나가서 찍은 사진들 같았다.


시시하다는 생각에 두근거림은 잦아들었지만, 별 생각 없이 계속 사진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게 나왔다.




어두운 방 안, 긴 머리카락의 여자 뒷모습이 보인다.


조금 기대했다.


왜냐하면 여자가 알몸이었거든.




두근거리면서 다음 사진을 보자, 여자가 이쪽으로 목만 돌려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어라? 싶었다.


몸은 그대로인데, 목만 완전히 돌아와 얼굴은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마치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 같았지만, 더욱 기분 나빴던 건 따로 있었다.


여자의 눈이 없었던 것이다.


머리에 가려있다던가 하는게 아니라, 눈 부분이 피부처럼 되어 있었다.




마치 뺨처럼 자연스럽게.


이게 뭔가 싶어 나는 다음 사진을 열었다.


그랬더니 새까만 화면이 펼쳐졌다.




그 다음도, 그 다음장도 새까매서, 3장 연속 새까만 화면만 뜨고 끝났다.


솔직히 기분이 나빴지만, 휴대폰 주인이던 아저씨가 장난이라도 친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카드를 포맷해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포맷을 클릭한 순간, 방의 불이 나갔다.


나는 아파트에서 자취하고 있는데, 5년 살면서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밤 10시 정도였기에 당연히 어두웠지만, 노트북만은 켜져 있어 깜깜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자 슈퍼 불빛이 보였다.


정전은 아닌가...


두꺼비집이 떨어졌나 싶어, 현관으로 가는데 부엌에서 또각하고 소리가 들려왔다.




움찔했다.


자취니 나말고 다른 사람이 집에 있을리 없다.


기분 탓이리라 심호흡하고, 복도로 나왔다.




어두컴컴해 빛 대신 아까 전까지 쓰던 노트북을 들어 비췄다.


그 순간, 또각또각또각! 하고 부엌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구두를 신고 걸어오는 소리가...




더 이상 기분 탓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준이 아니었다.


확실히 들려오는 걸.


나는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현관으로 뛰쳐나갔지만, 뒤에서 무언가가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반쯤 울먹이며 두꺼비집 전원을 올리자, 두세번 깜빡이다 불이 들어왔다.


평소처럼 흰 복도 그대로다.


물론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조금 전까지 있던 방에서는, TV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켜져 있었다.


조심스레 들어가보니, TV가 켜져있고 소리도 최대로 되어 있었다.


두꺼비집 떨어질 때까지 TV는 켜지도 않았고 소리도 보통 수준이었을텐데.




TV를 끄고, 나는 아직 내 손에 노트북이 들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모니터에는 [포맷이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메세지가 떠 있었다.


그걸 보니 왠지 모르게 끝났다 싶었다.




아까 전 들려왔던 발소리도 기분 탓이리라 싶었다.


잠을 청했지만, 솔직히 무서워서 방에 불을 켜고 누웠다.


어느 정도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 나는 눈을 떴다.




일어나기 직전, 마치 호흡이 멈췄던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헉헉 숨을 내쉬며, 불을 켜려고 했다.


어...? 자기 전에 불을 켜놨었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부엌이 아니라 내가 있는 방안에서.


부스럭부스럭부스럭부스럭...




곤충이 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아마 바퀴벌레겠지.


싫기는 하지만 무섭지는 않아.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려 했지만, 몸은 이미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심장은 터질 듯 빠르게 뛰고, 귀는 막힌 것처럼 멍해졌다.


일어나 불을 켤까 싶었지만, 만약 또 두꺼비집이 내려간 거라면, 이번엔 현관까지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눈을 감고 그대로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얼굴 위를 무언가가 어루만졌다.


감촉으로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다.


그리고 귓가에서 소리가 들렸다.


[누구?]




굉장이 작은 소리였지만 틀림없이 들렸다.


여자였다.


내가 할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입을 꼭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부스럭대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그것은 멀어져갔다.


어느새인가 잠에 빠진 나는, 이튿날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 가득 실같이 가늘게, 새빨갛게 부은 자국 투성이였다.




우선 회사를 쉬고 병원을 가려 했지만, 그 전에 신경이 쓰여 노트북을 켰다.


어제 그 메모리카드를 열었다.


포맷을 했는데도 안에는 파일이 들어있었다.




울고 싶었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어젯밤 일이 신경 쓰여 다시 사진을 열었다.


역시 그 눈이 없는 여자가 찍혀 있었다.




새까만 사진들을 보던 와중, 나는 문득 깨달았다.


어제는 몰랐지만 새까만 와중, 아주 약간 빛이 보였다.


구멍처럼.




다음 사진도 그래서, 가장자리 쪽에는 검은빛이 엷어지고 그 너머에 피부색이 보였다.


신경 쓰여 포토샵을 써서 밝기를 조정하고 확대하던 도중 나는 알아차렸다.


이거 혹시, 렌즈에 머리카락이 감겨 있는 건 아닐까?




저 너머에 있는 건 그 여자의 눈 부분인 건 아닐까?


혹시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메모리카드를 뽑고, 할머니가 준 부적을 꼭 쥔 채 근처 신사로 달려갔다.




그리고 메모리카드를 경내 구석에 묻고, 온힘을 다해 도망쳤다.


그 날은 회사도 쉬고 피부과에 가서 약을 받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올 무렵에는 스스로가 바보 같아 공포감도 옅어졌다.




하지만 방에 들어서자, 어쩐지 심장이 아파왔다.


귀도 이상하다.


왜인가 당황해 노트북을 확인했지만, 당연히 메모리카드는 없었다.




신경과민인가 싶어 모니터를 보니, 내 문서에 본 적 없는 폴더가 있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열어보니, 역시나 그 사진이었다.


전부 들어있었다.




결코 파일을 옮겨놓은 적이 없었는데도.


이제 무리라고 생각한 나는, 그날 중으로 노트북을 중고가게에 넘겼다.


일단 포맷을 하기는 했지만 어떨지는...




그 후로는 무서워서 차마 컴퓨터를 살 생각도 않고 있다.


얼굴에 난 부은 자국도 사라졌고, 이상한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종종 긴 머리카락이 주머니에 들어있곤 하지만 뭐, 기분 탓이겠지.




여러분도 뭘 주울 때는 조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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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22nd]시메트리

괴담 번역 2015. 11. 20.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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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무렵, 해바라기반이라는 장애 아동 특수반이 있었다.


거기에는 땅딸막한, 가벼운 지적장애를 앓는 A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해바라기반은 일반 학급과는 다르게 일과가 진행되었기에, 평상시 해바라기반 아이들을 볼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평범한 학생들은 해바라기반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이 A만은, 학교의 명물이라 불릴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이유는 A의 장애 때문이었다.




A는 눈에 들어오는 게 전부 좌우 대칭이어야만 기분이 풀리는, 중증의 강박장애 환자였다.


그는 비정상적으로 대칭에 집착해, 좌우가 비대칭인 것을 보면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거기 달라붙어 어떻게든 대칭으로 만들어 놓곤 했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한번은 수업 중에 A가 목이 째지도록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나중에 창가에 앉았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A가 안뜰 나무의 가지를 꺾다가 선생님에게 저지당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말리는데도, A는 째지는 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나머지 가지까지 다 꺾어버리려 했다고 한다.


며칠 후, 안뜰 나무는 가지가 다 사라져, 마치 나무막대기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A의 집념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이 정도면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물건에 집착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A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난 비대칭에만 관심을 보였을 뿐.




사실 다른 나무들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고, 인체모형이나 건물 같은 건 비대칭이어도 무시해버리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반의 H라는 여자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불행히도 오른쪽 정강이부터 아랫부분은 절단해야만 했다.




몇개월 지나 학교에는 다시 나오게 되었지만, 재활훈련이나 이런저런 일로 종종 늦게 등교하거나 조퇴하는 일도 잦았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다, 어느날 사건이 터졌다.


H가 재활훈련 떄문에 조퇴를 하게 되어, 다른 여자아이가 부축해 교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갑자기 복도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복도 쪽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무슨 일인지 살짝 복도 밖을 내다보았다.


A가 H를 밀어 넘어트려, 왼발을 잡고 마구 잡아당기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뛰쳐나가, 다른 남자아이들과 함께 A를 억지로 떼어냈다.


선생님도 뛰쳐나와 어떻게든 사태는 수습됐지만, H는 끌려가며 긁혔는지 다리 여기저기에 피가 배어있었다.


옆에서 부축해주던 여자아이도 얼굴을 얻어 맞았는지 울고 있었다.




둘 다 상당히 겁에 질린 듯 했다.


한편 A는, 붙잡힌 와중에도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미친듯 날뛰고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집착하고 있는 A의 모습을 보았다.




눈을 치켜뜨고, 침을 질질 흘리며 신음소리를 내는 그 모습은, 정말로 무서워 뭐라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세 사람 모두 선생님이 데려가, 수업은 중단되었다.


그 후, 돌아온 선생님은 자습하라고 말했고, 그날은 오전 내내 수업이 없었다.




A는 그 후로도 H에게 계속 집착을 보여, 우리 학년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거나 교실 안을 들여다 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때 이미 A는 학교에서 자택 근신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부모 몰래 집을 빠져나와, 학교에 들어와 여기저기를 살피고 다닌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H가 다시 학교에 나오기 시작한 건 A가 전학인지 무슨 다른 일인지로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고나서도 한참 후였다.


그리고 아무 일 없이, H는 졸업하고 다른 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나는 성인이 되었다.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재회를 기뻐할 무렵이었다.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며, 여러 추억과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던 도중, 문득 나는 A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술자리 이야기로도 적절치 못한 이야기다.


하지만 술기운이었는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반가워서였는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A 이야기를 화제로 꺼냈다.


그러자 실실 웃고 있던 친구들 중 몇 놈이 꾹 입을 다물더니 침묵했다.




[너, 못 들었냐?]


이상한 얼굴로 내게 물어온다.


순간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싶었지만, 너무나도 진지한 얼굴에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자세히 물어봤다.




친구가 말하길, H가 중학교 2학년 때 괴한에게 습격당해 죽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현지 신문에도 톱뉴스로 다뤘었다는 것 같다.


H는 왼발이 잘린채,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한다.




왼발은 길가에 버려져있었고, 어째서인지 오른쪽 다리의 의족도 떼내어져 있었다고 한다.


왕래가 적은 길에서 일어난 범행이라 목격 정보는 없었고, 범인도 아직 잡히지 않았다.


다만 사건 발생 몇달 전부터, 현장 부근에서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웬 남자가 배회했다는 소문만 있을 뿐.




A의 행방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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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연말이고, 여행시즌이니, 내가 여행 갔다 겪은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교토에 갔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목욕도 하고, 여관에서 취침시간까지 신나게 놀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오른쪽 옆방에 친한 놈들이 있었기에 그 방으로 놀러갔다.


우리는 트럼프도 치고, 우노도 하면서 놀았지만 슬슬 그것도 질려갔다.


그 때 누군가 [무서운 이야기 하자!] 는 제안을 했다.




방 불을 끄고, 가운데에 10명 가량 모여 이야기를 시작한다.


2명, 3명, 4명...


돌아가며 이야기를 해 나가다, A의 차례가 돌아왔다.




[여기처럼 수학여행 숙소로 쓰이는 싸구려 여관에는 귀신이 나온대! 불제 때 붙여놓은 부적이 그림이나 항아리 뒤, 서랍 안 같은 곳에 붙어있다고. 한 번 같이 찾아보자!]


무서운 이야기를 기대했기에 다들 영 분위기는 좋지 않았지만, 방을 한번 뒤져보기로 했다.


실제로 있으면 있는대로 재미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왠지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었으니.




하지만 그림이나 항아리 뒤, 서랍 안에 TV 아래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뭐 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 중 옆방에서 베게 싸움 하던게 우리 방으로 넘어와, 우리도 신나게 베게 싸움을 시작했다.


다들 점점 신이 나, 이불 깔고 프로레슬링 놀이까지 해대며 수학여행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엥?]


신나게 놀다 조금 지쳐 쉬던 도중, A가 천장에 있는 점검구를 발견했다.


천장과 지붕 사이 공간으로 이어지는, 보통 집이라면 화장실 천장에 있는 바로 그거.




그 여관은 어째서인지 방 가장자리 천장에 그게 있었던 것이다.


A는 나쁜 놈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도를 넘곤 하는 놈이었다.


[야, 저 안에 들어가보자! 옆방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거 아냐?]




어두운 곳을 싫어하고 폐소공포증까지 있는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다른 녀석들도 힘들어 죽겠다던가, 더러워서 싫다는 등 나서는 놈이 없었다.


[뭐야... 그럼 내가 들어가 볼테니까 나 좀 들어올려줘.]




애들 셋이서 받쳐줘, A가 점검구를 연다.


조심스레 열었지만 먼지가 와락 쏟아진다.


아마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거겠지.




열린 점검구 너머에는 어두컴컴한 공간이 보일 뿐이다.


[뭐야, 어둡네.]


A는 안에 머리를 쑥 집어넣고 말한다.




그 안이 밝을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걸까.


[아...]


무언가 찾아낸 것인지, A가 소리를 냈다.




[야, 여기 뭐 있어!]


그렇게 말하며, A는 양손을 구멍 안에 넣고 머리만 뺐다.


구멍이 작아서 머리랑 양손을 같이 넣을 수가 없었던 거겠지.




곧, 손을 천천히 어두운 곳에서 빼내 바깥 세계로 가져나온다.


손에 든 걸 본 순간, 그 방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움찔했다.


[우와아아악! 뭐야, 이거!]




천장과 지붕 사이 공간이 너무 어두워, A에게는 그것이 보이질 않았던 것이리라.


알았더라면 결코 그걸 꺼낼 생각 따윈 하지 않았을텐데.


A가 천장과 지붕 사이에서 찾아낸 건, 붉은 표식이 찍힌 일본 종이로 감싸진 인형이었다.




부적과 작고 붉은 책도 함께 있었다.


긴 세월 놓여있었던 탓인지, 인형 표면은 먼지로 검게 더럽혀져 있었다.


부적도 오래되어 간신히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작고 붉은 책은 포켓용 사전 정도 크기로, 검붉은 표지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글자가 써 있었다.


A는 놀라서 그런건지, 일부러인지, 주변 아이들한테 그것들을 내던졌다.


물론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았고, 책은 다다미 위로 풀썩 떨어졌다.




인형은 종이로 만든 것인지, 팔랑팔랑 춤추듯 떨어져 방 한 구석에.


한 손과 한 다리는 다다미에, 다른 한 손으로는 벽을 떠받쳐 우연히도 삐딱하게 선 자세였다.


부적도 나풀나풀 춤추며 떨어져, 인형의 뒤를 쫓는 것처럼 다다미 위로 내려왔다.




기분 탓인지, 인형은 A를 째려보는 것 같이 보였다.


A는 펄쩍 뛰어내리더니, 다시 인형을 손에 들고 우리에게 던졌다.


아마 스스로도 뭔가 위험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으리라.




그 기분을 속여 넘기려, 조용한 그 방에서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인형과 책을 던져댔던 것이다.


A 이외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긴장한 얼굴로, 인형과 책을 피해 마구 도망칠 뿐.




[그거 위험하니까 원래 있던데 돌려놔!]


마침내 참다 못한 B가 입을 열고, 다른 아이들도 동의했다.


A도 곧바로 원래 자리에 돌려놓겠다고 했고.




A는 인형과 부적, 책을 주워 가볍게 먼지를 털고는, [미안.] 이라 중얼거린 후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놨다.


분위기도 죽었고, 취침시간도 가까워졌기에 다들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옆에 있던 내 방으로 갔고, A는 인형이 나온 그 방에 그대로.




곧 소등시간이 지나고,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며 각 방의 불을 껐다.


방문은 살짝 열려 복도의 빛이 들어온다.


아마 떠드는 학생을 찾아내려 한 방편이겠지.




선생님들이 복도를 왔다갔다 하는 발소리가 들린다.


복도의 빛과 더불어, 선생님들이 지켜주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나는 아까 전 인형 사건을 잊고 금새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발소리를 듣는 사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 곧 나는 깊은 잠에 들었다.




잠에 든 지 얼마나 지나서였을까.


[꽝!] 하고 땅이 울리는 소리에 놀라 나는 깨어났다.


꿈인가 싶어 떨리는 와중에도, 두번째 소리가 들리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아마 나말고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곧바로 [쾅! 쾅!] 하고, 똑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다.


복도에서 S 선생님이 [왜 그러냐!] 라고 외치고, A가 큰소리로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우리는 당황해 방을 나와 옆방으로 뛰어갔다.




방안에는 엄청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A는 눈을 치켜뜨고, 벽을 향해 손발을 휘둘렀다.


마치 벽에서 나오는 무언가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만둬! 오지마! 오지마!]


[야, A! 정신 차려!]


S 선생님이 A를 말리고 있었지만 A는 멈추지 않았다.




[손이! 손이! 손이! 벽에서 손이이이이이!]


곧바로 다른 선생님들까지 달려들어 A를 붙잡았다.


A는 억눌린 와중에도 소리치며 필사적으로 무언가에 저항하고 있었다.




보고있는 우리들마저 겁에 질릴 정도로 날뛰며 소리치고 있었다.


[이봐, 구급차 불러!]


누가 구급차를 불렀는지는 몰라도, 곧바로 구급대원이 들것을 가지고 들어왔다.




들것에 실려 묶인 와중에도, A는 마구 날뛰었고 급기야는 실금까지 했다.


그리고 그대로 구급차에 실려 가버렸다.


S 선생님은 [자, 이제 다들 자라. 저 놈은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걸거야.] 라고 방에서 아이들을 내쫓았다.




물론 그런 걸 본 이상 잠이 올리 없다.


우리는 방에 돌아와 침착을 되찾은 후, S 선생님을 불렀다.


그리고 A가 지붕 밑에서 인형과 책을 찾아냈다는 것, 그걸 가지고 던지며 놀았다는 걸 전했다.




[그런 건 관계 없어. 저 녀석은 몽유병이나 뭐 그런 거일거야. 너희도 신경쓰지 말고 자라. 일단 여관 사람들한테 그 이야기는 해 놓을테니까.]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곧바로 방에서 나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이불 속에 들어갔다.




무서워서 차마 벽이나 천장에는 눈도 못 돌리고, 덜덜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튿날 아침, 역시 A의 모습은 없었다.


아침식사 후, 짐정리를 하는데 우리반 학생들은 모두 모이라는 지시가 왔다.




모이는 곳은 A가 있던 방이었다.


담인 선생님은 이미 와 있었고, 방에 들어가 구석에서부터 차례로 정좌를 하고 앉았다.


어제 일 때문에 혼나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게 아닌 듯 했다.




우리가 모두 방에 들어오자, 우르르 여관 종업원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뒤이어 소복을 입은 신주 같은 사람이 셋 들어왔다.


모두가 손을 잡고, 눈을 감은 후, 경 같은 걸 들었다.




불제 비슷한 의식이 그렇게 2시간 정도 이어졌다.


그 후, 아무 일 없이 수학여행은 끝났지만, A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학교에 돌아온 후에도 A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 말에 따르면 다른 학교에 전학갔다고 한다.


소문에는 정신이상자가 되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던가.


A네 집도 이사를 갔기에, A의 소식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후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 투성이다.


우선 누가 구급차를 불렀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분명 선생님이 구급차를 부르라고 소리는 쳤지만, 실제로 전화를 한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선생님이 말하고 곧바로 구급대원이 들어왔을 정도로, 도착도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구급대원의 얼굴도 왠지 시커멓게 보이지 않았고...


선생님들 중 보호자 자격으로 구급차에 함께 탔던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인형과 부적과 책이 있었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그 구급대원들은 사람이었을까.


벌써 20년 전 일이 되어버린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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