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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9

[번역괴담][2ch괴담][613rd]오오, Y냐

괴담 번역 2015. 11. 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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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Y에게 들은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Y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Y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가 업어 키우다시피해서, 장례식 때는 나잇값도 못하고 콧물까지 질질 흘리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확히 이레째 되던 날이었다.


그 날은 Y가 사는 지역에 폭풍경보가 내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돈이 다 떨어져서 버스비도 없었던 Y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와야만 했다.




도중 몇번이고 날아갈 뻔 하며 죽을 고비를 넘겨, 겨우 저녁 7시 반이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연다.


그러자 Y의 귀가를 기다려 준 것처럼, 딱 좋은 타이밍에 현관에서 바로 정면에 있는 Y의 방문이 열렸다.




방안에는 불도, TV도 켜져있었다.


게다가 유일한 난방기구 할로겐 히터까지 스위치가 켜져 있었다.


"하하, 이건 엄마가 집에 오면 따뜻하게 있으라고 준비해 주신 거구나."




Y는 기뻐져서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로 [다녀왔습니다!] 라고 인사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평소라면 돌아올 대답이 오늘은 없다.


이상하다 싶어 아까 벗은 신발을 돌아보니, 현관에는 금방 벗은 자기 신발만 나뒹굴고 있고 어머니는 커녕 아버지나 누나 신발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다른 가족들은 모두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집에 늦게까지 안 돌아올 터였다.


순간 Y의 머릿속에 옛날 영화에서 본, 깜깜한 방안에 서 있는 긴 머리 여자 유령이 떠올랐다.


설마하는 생각이었지만, 유령이나 괴물이 아니라 도둑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Y는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주의하며, 방 입구로 다가가 살며시 안을 들여다 보았다.


방안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가, 등을 보이며 앉아 있었다.


그게 할아버지라는 걸 알아차리자 Y의 공포심은 단번에 사그라들었다.




옛날부터 공포영화 하나 혼자서는 못 보는 겁쟁이 Y였지만, 설령 진짜 귀신이더라도 할아버지가 찾아와줬다면 반가울 따름이었다.


Y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을 만나러 일부러 와 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무심코 눈물까지 날 정도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생전 버릇이었던 특징 있는 기침을 2, 3번 하고, 어색한 동작으로 머리 없는 후두부를 긁었다.




[할아버지.]


Y가 부르자, 할아버지는 느릿하게 일어나 뒤돌았다.


기분 탓일까.




뒤돌아 선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윤곽선이 어쩐지 비뚤어진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잉크를 뒤집어 쓴 것처럼 붉었다.


[오... 오오, Y, Y인가.]




할아버지가 Y의 이름을 부른다.


듣고 싶었던 그리운 할아버지 목소리다.


하지만 억양이 이상하다.




너무 평탄하다.


생전 할아버지는 강한 지방 사투리를 썼다.


하지만 지금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마치 PC로 만든 인조음성 같았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이리로 한걸음씩 다가온다.


[할아버지, 왜 그래.]


너무나 모습이 이상한 할아버지에게 묻자, 할아버지는 다시 아까 전처럼 기침을 하고 머리를 긁었다.




[할아버지, 집에 돌아온거야?]


Y가 그렇게 묻자,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는 듯 천장 근처를 보았다.


[오... 오오, Y, Y냐.]




아까와 완전히 같은 말을, 아까와 완전히 같은 발음으로 반복했다.


그걸 보고 Y는 조금 두려워졌다.


이건 할아버지가 아닌 거 같아...




할아버지는 아직 천장을 보고 있다.


손가락 끝에서 방울져 떨어진 빨간 액체가, 방 카페트 위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자세히 보니 팔꿈치 바깥쪽으로 팔이 굽어져 있다.




무엇보다 어깨부터 팔꿈치 사이 거리가 굉장히 길었다.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 모습은 결코 이런 게 아니었다.


이건 혹시 할아버지 흉내를 내고 있는 다른 무언가가 아닐까?




Y는 조금씩 조금씩,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슬슬 뒷걸음질쳤다.


그걸 깨달았는지, 할아버지 행세를 한 그 녀석은 목만 이상하게 길게 늘여 Y를 보았다.


Y는 위험하다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한 다음 순간, 눈 앞에 그 녀석의 얼굴이 있었다.


어깨부터 위쪽 부분만이 부자연스럽게 늘어나 있었다.


쭉 늘어난 목이 마치 고무 같다.




눈앞에서 그 녀석의 입이 열리고 부글부글 빨간 거품이 일었다.


[오... 오오, Y, Y냐.]


Y는 절규했다.




Y는 그대로 정신없이 집을 뛰쳐나가 가까운 서점으로 달려갔다.


집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웠다.


9시를 지나 가족이 돌아올 때까지, 차마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Y는 가족에게 그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다.


결국 Y는 그날 밤, 그 붉은 할아버지가 나왔던 자기 방에서 자게 되었다.


Y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그 붉은 얼굴이 보일 것만 같아 좀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흐르자, 공포와 긴장을 졸음이 억눌러 Y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에 빠졌다고 한다.


새벽녘이 되어 깨어났는데, 어쩐지 얼굴이 간지럽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자, 얼굴이 시뻘건 액체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날부터 Y는 자기 방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한다.


다음번에 또 그 녀석이 나온다면 이젠 도망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면서.




Y는 요새도 말한다.


[그건 절대 할아버지가 아니었어...]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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