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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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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전국.


아직 천하는 그 끝을 모를 때였다.


카나가와 산중에는 숯구이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평소에는 아무도 없지만, 겨울만 되면 일시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숯을 굽는 것이다.


산기슭 마을에서는 내려오지도 않는, 괴짜들만 모여 사는 곳이었다.


어느날 그 작은 마을에 아가씨 한 명이 도망쳐 왔다.




산 셋 너머 있는 작은 마을에서 왔다며,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혼자 도망쳤다는 것이었다.


새하얀 옷에 맨발, 머리는 산발이라 처음에는 귀신인 줄 알았을 정도의 몰골이었다.


손발이 얼음장 같이 차고 눈이 풀려 있었기에, 숯구이들은 황급히 여자를 오두막 안으로 옮겼다.




[다른 마을사람들은?]


숯구이들은 여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지만, 여자는 벌벌 떨기만 할 뿐 요령부득이었다.


얼마 후 겨우 안정을 찾은 아가씨가 간신히 털어놓은 이야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가씨가 살던 마을에 [영주를 저주하기 위해 산제물을 바치고 있다.] 는 소문이 흘러들어온 건, 이번달 들어서였다.


이미 몇몇 마을은 습격당해 전멸당했다던가.


의심스러운 이야기라 아무도 진지하게 믿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마을에는 불온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닷새 전, 아가씨네 마을에 기묘한 가면을 쓴 일행이 나타났다.


마을 한가운데에서 액막이 의식을 하라는 영주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라 했다.


영주의 편지를 가져온 일행의 대장 같은 사람은, 촌장에게도 경계를 풀기 위해서인지 무언가를 건넸다.




무얼 건네줬는지는 아가씨도 보지 못했지만, 그 때를 기점으로 촌장의 태도가 우호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마을에는 [돈이라도 받았나보지?] 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날 밤, 마을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꿈을 꾸었고 마을 전체가 소란스러웠다.




형용할 수 없는 질척질척한 무언가가 마을을 삼키는 꿈이었다.


그것이 마을사람들까지, 하나도 남김 없이 먹어치우는 꿈.


그런 꿈을 꾼 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마을사람 거의 대부분이 그 꿈을 꾸었던 것이다.


이건 분명 가면을 쓴 사람들이 하고 있는 기묘한 의식과 관련된 것이라 여겨, 촌장은 마을 바깥쪽에 머무르고 있던 가면 쓴 사람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 때 이미 이변은 시작된 것이었다.




앞에서 걸어가던 촌장과 몇몇 젊은이가, 갑자기 마을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다.


새까만 안개 같은 것이, 무언가를 소리내 "먹고 있다".


곧이어 관솔불에 비친 것은, 굴러들어온 촌장의 목이었다.




어안이벙벙하던 마을사람들은 곧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 후의 일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고, 아가씨는 말했다.


산속으로 도망친 아가씨는 등 뒤, 마을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절규에서 귀를 막고, 산 속을 이리저리 헤맸다고 한다.




눈을 먹고 늪의 물을 마시며, 기어이 숯구이 마을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아무리 보아도 아가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산길이 눈에 파묻히기 전에, 산기슭 마을에 전해야만 한다.


숯구이들은 아가씨를 짊어매고 산을 내려왔다.


촌장은 괴짜지만 성실한 숯구이들의 말을 믿어주었다.




[이상한 사람들이 오면 마을에 들여보내서는 안 됩니다. 영주님한테 보고도 하시고요.]


숯구이들은 신신당부한 후, 아가씨를 맡기고 마을로 돌아갔다.


적어도 이상한 의식을 치루지 않는다면 마을은 괜찮을 것이라 믿으며...




다음날, 겨우 자기네 마을로 돌아온 숯구이들은 경악했다.


가면을 쓴 수상한 자들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도망치려 해도 지친 그들에게는 그럴 힘조차 없었다.




그대로 잡혀 바라만 볼 뿐.


[마을은 구했어. 너희들한테 속을까 보냐!]


숯구이 중 가장 나이 많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웃어제꼈다.




그 순간, 이상한 자들의 대장인 듯한 사람의 안색이 바뀌었다.


[네놈들... 누구를 마을에 데려다 준거냐!]


숯구이는 그 박력에 놀랐지만, 허세를 부리며 대답했다.




[네놈들이 덮친 마을에서 도망친 아가씨를 데려다줬다!]


[이 어리석은 놈!]


이상한 자들의 대장은 숯구이의 말을 막고, 노성을 내질렀다.




[네놈들이 "이끌어다 준 것"은 사람의 탈을 쓴 귀신이다!]


숯구이들은 어안이벙벙했다.


그 사랑스런 아가씨가 귀신이라니, 믿을 수가 있겠는가.




[거짓말 마! 네놈들의 말을 믿을까보냐!]


[...네놈들... 이런 겨울산에서 평범한 아가씨가 어찌 혼자 살아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그 말을 듣자 숯구이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아가씨는 당연히 이미 죽은 몸이었다. 눈은 보았느냐? 몸은? 생기가 있더냐?]


숯구이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듣고보니 이상한 점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자들의 대장은 계속 말했다.


[사람들이 몰살당한 마을에서 개중 깨끗한 시체가 있으면, 안에 들어가 몸을 조종해 다음 마을을 덮치는 것이다. 마을 중에는 악령을 막으려 부적을 붙인 곳이 많아, 인간의 모습을 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너희들처럼 마을 안으로 "이끌어 줄" 다른 인간이 필요한게지.]


그 이야기를 듣고, 숯구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그 누구 하나 말이 없다.


황급히 산기슭 마을로 향하려는 숯구이들을, 가면을 쓴 남자가 말린다.


[...이미 늦었을게다. 이틀도 더 지났으니... 이번에도 막지 못했단 말인가...!]




애석하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그는, 숯구이들에게 이 땅을 멀리 하라고 말한 뒤 아무 말 없이 마을로 향했다.


다시 귀신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숯구이들은 단지 멍하니 내내 거기 서 있을 뿐이었다.


이 마을에 관한 기록은 향토자료관 지하서고에 잠들어 있는 "붓코쿠산손기(仏黒山村 記)에 남아있을 뿐이다.


[마을 거주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 하나 남김없이, 홀연히 사라진 후였다. 개도, 고양이도, 소도, 말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여기저기 들러붙은 핏자국만이 여기서 무언가가 일어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싸운 흔적은 없다. 허나 고여서 딱딱히 굳은 피를 보아 알 수 있듯, 분명히 살해당한 흔적은 남아 있었다. 시체도 없이, 단지 모두 사라져 있었다.]




당시 이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에게 전해진 보고에 적힌 것은 이것 뿐이다.


아마 도적에게 살해당해, 살아남은 사람은 끌고가고 시체까지 끌고 간 것이라 여겨진다.


전국시대에 산속 작은 마을이 사라지는 일 자체는 그리 드문 게 아니었다.




허나 제대로 된 진상이 밝혀질 일 또한 없었다.


숯구이들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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