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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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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에게 들은, 할머니가 어릴 적 겪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다.


외할머니는 삼형제 중 막내로, 오빠와 언니가 있었다고 한다.


오빠와 할머니는 건강하기 그지 없었지만, 언니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매일 병상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쇠약한 탓에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아, 용무가 있으면 방울을 울려 가족들을 부르곤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기에 낮 동안에는 집을 비웠고, 결국 언니 병구완은 죄다 동생인 외할머니가 도맡아 했다.


간병이라고는 해도 어린 나이에 뭐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이나 식사를 가져다 주는 정도의 일이었다고 한다.




허나 언니의 병세는 회복할 조짐이 보이지 않았고, 점점 야위어 눈은 움푹 들어가 마치 죽음의 신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언니가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로 병상에서 오빠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물... 좀... 줘...]




하지만 오빠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싫~어. 나는 지금 놀러나갈 거지롱.]


그리고는 집에서 쌩하니 뛰쳐나갔다.




언니에게는 그 말이 쇼크였던 듯 했다.


얼굴을 찌푸리고, 밉살스러운 시선으로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물...좀... 가져다...줄래...]


하지만 할머니는 언니의 찌푸린 얼굴에 갑자기 공포심이 치밀어 올라왔다고 한다.


[나, 나도 놀러 갈래...] 라고 말하고 도망가려던 그 순간, 언니는 무서운 힘으로 팔을 붙잡았다.




[죽으면... 원망할 거야.]


할머니는 울면서 [싫어!] 라고 팔을 뿌리치고,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고 한다.


그 후 할머니는 언니에게 가까이 가길 꺼렸고, 몇 주 뒤 언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 뒤, 할머니가 방에 혼자 있을 무렵이었다고 한다.


딸랑, 딸랑하고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는 겁에 질리면서도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원한 서린 눈을 하고 할머니를 째려보는 언니가 있었다.


그 이후로부터, 할머니가 혼자 있을 때면 언니는 모습을 드러내 계속 원한 서린 시선을 보내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한동안 그걸 혼자 참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이 물을 가져다 주지 않았기에 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라고, 스스로도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공포에 질린 할머니는, 결국 부모님에게 매달려 울며 물을 주지 않았던 것과 언니에 대한 미안함, 후회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외증조할머니는 할머니를 꼭 안아 주셨다고 한다.




[네가 한 건 분명 잘못된 일이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언니가 죽은 건 아니란다. 엄마가 언니에게 잘 이야기 해 줄게.]


그날 밤, 증조외할머니는 할머니 방 옆에서 가만히 언니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 때, 증조외할머니에게도 방울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할머니의 비명 소리를 듣고 방에 들어가, 증조외할머니는 외쳤다.


[얘야, 이제 동생을 용서해주렴. 결코 네가 싫어서 물을 주지 않은 게 아니야. 좋아하지만 순간 무서웠던 것 뿐이야. 전부 너희를 그냥 내버려둔 엄마가 잘못한 거야. 그러니까 이제 나오려면 엄마한테 오렴.]


그 후로 언니의 귀신은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할머니도 언니가 용서해 준 것이라 믿고, 내게 이야기를 해주셨던 거겠지.


할머니는 작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심으로 명복을 기원한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나만 눈치챈, 가족들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건 할머니의 언니가 죽은 날과 같은 날이었다.


그리고 죽은 할머니 팔에는, 손자국 같은 멍이 남아 있었다.




왜 이제 와서...


할머니가 죽은 지금, 내게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어 남아 있을 뿐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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