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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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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료에게 들은 이야기다.


지인의 오두막에서 묵을 겸, 술자리 벌이던 어느 밤이었다.


현관 쪽에서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확인하러 가보니, 숲속으로 허연 것이 빨려들어가더란다.


더러운 붕대 다발이었다.


마치 투명한 통에 감겨있는 것처럼, 천이 빙빙 감겨 하늘에서 흔들흔들 떠돌고 있었다.




허나 오두막에서 새어나온 빛 사이로 잠시 보이던 그것은, 곧 나무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무슨 일이야?]


뒤를 보니 오두막 주인이 안주를 손에 들고 창고에서 나오고 있었다.




괴상한 걸 봤다고, 지금 본 걸 이야기했다고 한다.


오두막 주인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꽤 옛날 일이지만 말야, 이 오두막 옆에 웬 원숭이가 쓰러져있더라고. 나이도 먹을대로 먹었는데 상처가 엄청 심했어. 무리에서도 포기하고 내쫓았겠지, 아마.]




회한에 젖은 듯, 그는 말을 이어갔다.


[무심코 동정심이 일어서 치료를 해주고 붕대도 감아줬어. 한동안은 오두막 근처에서 머물다가, 상처가 나으니까 쓱 사라져버렸어.]


[뭐, 야생동물이라는 건 대개 그런 법이지.]




[그런데말이야, 그놈은 다 나았는데도 붕대를 벗으려 하질 않더라고. 그리고 매년 치료를 받았을 때 즈음에 꼭 답례를 하러 찾아와.]


그리고는 현관을 열어젖혔다.


문 바로 앞에 그리 많지는 않지만 과일과 버섯이 얌전히 놓여있었다.




원숭이가 은혜를 갚는건가.


신기하면서도 훈훈한 기분에 잠겼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단다.


붕대는 분명히 보였는데 왜 원숭이는 안 보인거지?




[말했잖아, 한참 전 일이라고. 애시당초 늙은 원숭이였으니 죽은지도 꽤 됐어. 네가 본 건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오두막 주인은 한참동안 숲속을 바라봤다고 한다.


[솔직히 이제 은혜갚기는 충분하니 성불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말이야.]




외로운 듯, 그렇게 말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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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15th]수풀 속의 여자

괴담 번역 2016. 6. 2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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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인 T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다.


T 할아버지는 젊을 적, 동료와 함께 산에서 노가다를 뛰었단다.


신입일 무렵, 산에서 하룻밤 꼬박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웬 아름다운 여자가 수풀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 민가는 없었기에 이상하다 싶었지만, 영 손에 익지 않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이 여자는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저녁밥을 먹으러 오두막에 돌아와 이야기를 꺼내니, 작업반장이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외팔 외다리 여자말이지? 절대 상대해주면 안 된다!]


수풀에서 들여다보는 얼굴만 봤을 뿐이었지만, T 할아버지는 작업반장의 기세에 눌러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다음날도 여자는 수풀 속에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상대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에 가끔 시선을 주고 있자니 마침내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는 정말 외팔에 외다리였다.


그런 몸으로 깡충깡충 뛰어와 곁에 오더니, 고간을 만져대기 시작하더란다.




아직 젊은데다 동정이었던 T 할아버지는 기겁하며 냅다 밀쳤지만, 여자는 솜씨좋게 몸을 바로잡더니 능글능글 웃었다.


그리고는 수풀 속으로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여자가 눈에 띌 때마다 아름다운 것만큼 기분 나빴다고 한다.




그날 밤, A라는 남자가 오두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들 걱정했지만 다행히 밤늦게 길을 잃었었다며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왔다.


사람들은 멍청한 놈이라며 웃으며 안도했지만, 작업반장만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날 작업반장과 A가 이야기를 나누는 걸 T 할아버지는 봤다고 한다.


능글능글 웃고있는 A의 얼굴은 그 여자를 떠올리게 했다.


[서로 좋은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그 한마디로, A가 그 여자와 잤다는 걸 T 할아버지도 알아차렸다고 한다.


이후 A는 물론이고, A와 친하던 B 역시 늦게 돌아오게 되었다.


[너는 가지마라. 손발을 잃게 될거야.]




작업반장의 엄포는 믿기 힘든 소리였지만, 뭐가 어찌 되었든 그런 여자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일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가는 날, A는 산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작업반장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등을 돌려 산으로 돌아가는 A를 막지는 않았다.




그 후 A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다음 일터에는 A도, B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해들은 말에 따르면 A는 행방불명되었고, B는 큰 사고가 나 손발을 잃었다고 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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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14th]바늘남자

괴담 번역 2016. 6. 2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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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들은 이야기다.


그는 미국 원주민 혈통이라, 자기 부족이 사는 지역에서 자연 보호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옛날 산속 호수와 늪에서 기묘한 가죽을 찾아낸 적이 있더란다.




그 가죽은 앞에 빽빽하게 길고 검은 털이 덮여있었다.


털은 매우 딱딱해서 바늘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기분 나쁘게도 사람처럼 팔다리가 붙어 있더란다.




꼬리는 없이.


그가 말하기를, 털이 숭숭 난 사람이 그대로 가죽을 벗어던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다른 짐승의 가죽에 누가 손을 댄건가 싶기도 했지만, 어디에도 가공한 흔적은 없었다.




가죽은 바람에 펄럭일 정도로 얇아, 마치 뱀이 허물을 벗은 것 같았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동물의 가죽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부족 장로에게 묻자, 그것은 "바늘남자"가 벗은 가죽일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바늘남자란, 사람 형태를 한 털이 많은 괴물로 얼굴은 주름투성이고 귀가 길고 뾰족하다고 한다.


머리가 무척 좋아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이용한다.


하지만 다른 생물에게 강한 악의를 지녀, 항상 주변을 저주하는 존재다.




산에서 다른 동물을 만나면 물어 죽여버린다.


하지만 사람과 만날 경우에는 달라서, 그대로 달라붙어 온몸의 바늘로 찔러댄다는 것이다.


거기 찔리면 대부분은 그대로 기절하고 만다.




그 후, 기절에서 깨어난 인간은 바늘남자와 같은 정신을 가지게 된다.


모든 생물을 증오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눈에 띈 동물은 닥치는 대로 물어죽이게 된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서서히 몸은 바늘남자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끝내는 늪에 숨어살게 된다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바늘남자가 하도 많아서 산에 짐승이 없을 지경이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바늘남자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탈피를 하고, 빛의 정령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생물에 흥미를 잃고, 무해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탈피를 하고 남은 가죽을 찾은 건 잘된 일이라고 장로는 말했다.


다만 남은 가죽이나 바늘이 혹시 해를 끼칠지 모르니 태워버리라는 당부와 함께.




자연 보호관인 그는 고등교육도 받았을 뿐더러, 이성적으로 사리를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과거의 지혜도 존중하는 사람이었고.


그리하여 장로의 말을 따라 그 가죽을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아깝네. 혹시 미확인 생명체를 찾아낼 기회였을지도 모르잖아.] 라고 말을 건네곤 한다.


하지만 그는 [옛날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는 법이야.] 라며 냉정히 대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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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13rd]코로

괴담 번역 2016. 6. 24.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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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댁에는 개가 있었다.


아마 시바견 잡종이겠지만, 새하얗고 깨끗한 털을 지닌 개였다.


이름은 코로.




코로는 동네 들개들의 큰형님 같은 존재라, 코로가 돌아다닐 때면 뒤에 다섯에서 아홉마리, 많으면 열다섯마리씩 개들이 따라다니곤 했다.


그 정도로 대단한 개였다.


그런 큰형님 개가 왜 할아버지댁에 있었냐, 그것은 또 괴상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 할아버지는 선생님으로 일하셨었다.


어느날, 평소처럼 출근하러 역에 갔는데, 코로가 있더란다.


부하들 없이, 딱 코로 혼자서만.




할아버지는 별 생각 없이 코로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무슨 일이냐, 코로? 이 주변은 네 영역이잖아. 부하들은 어디 갔어?]


코로는 할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낑낑대며 아양을 부리더라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전철이 도착했기에 할아버지는 그대로 출근했다.


일을 마치고 다시 그 역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코로가 거기 있었다.


할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다시 코로에게 말을 걸었다.




[코로 너, 우리 딸이 만나고 싶은게냐?]


왠지 모르게 우리 엄마랑 코로를 만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란다.


그래서 코로를 집에 데려가, 당시 고등학생이던 엄마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코로는 엄마를 만나자, 달려들어 어리광부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우리 집으로 올래?] 라고 물었고, 코로는 [멍!] 하고 짖고는 그대로 집까지 따라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역 보스격인 개가 할아버지댁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집에 온 다음날, 어디서 소집이라도 한건지 들개들이 한가득 할아버지댁 정원에 모여있었더라나.


가족들이 다들 놀란 건 그 개들이 기강이 잡혀있었다는 점 때문에서였다.


코로는 집안을 드나들며 밥도 먹고 하는데, 부하 개들은 결코 집에 발 한번 들여놓질 않았다.




정원에는 드나들지만, 결코 집안으로는 들어올 생각을 않았다고 한다.


아침에는 코로가 선두에 서서 수많은 개들과 함께 밖으로 나서, 거리를 돌다가 밤에 돌아왔다.


그런 생활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반년 가량 들개들이 정원에 드나드는 일이 이어졌지만, 어느밤 개들이 낑낑 울더란다.


한밤 중 내내 개들이 낑낑대며 울어, 시끄러워 잠을 못 잤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코로 곁에 붙어다니던 부하들이 모두 사라졌다.




아마 보스 자리를 물려줬던가 빼앗겼던가 했던 모양이다.


그 다음날부터 넘버 투가 부하들을 이끌고 돌아다녔거든.


그리하여 코로는 할아버지댁에 완전히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코로에게 주려고 개목걸이를 샀다고 한다.


그리고 싫어하는 코로에게 억지로 채워줬다.


하지만 분명 낮에는 목걸이를 차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밤만 되면 목걸이가 벗겨져 있었다.




처음에는 우연히 벗겨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리 목걸이를 채워줘도 밤만 되면 벗겨지더라는 것이다.


결국 할아버지도 고집을 꺾을 수 밖에 없었다.


[뭐, 지금까지는 이런 거 없이 지내왔을테니... 미안하다, 미안해.]




코로는 [멍! 멍!] 하고 두번 짖더란다.


그 다음날, 코로는 어디선가 목걸이를 가져와 엄마 앞에 내려놓았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코로가 채워줬으면 하는 것 같아 엄마가 목걸이를 채워주자, 그건 계속 쓰고 다녔다고 한다.




계속, 그 목걸이는 차고 다녔다.


엄마가 나를 낳고 나서, 코로는 내 좋은 놀이상대가 되어주었다.


귀를 잡아당기고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그렇게 내가 난폭하게 굴어도 코로는 결코 화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걸이만은 달랐다.


내가 목걸이에 손을 대려하자, [크르르...] 하면서 화를 내곤 했다.




다른 곳은 아무리 만져도 가만히 있는데, 목걸이에는 손도 못 대게 하는 것이었다.


이상한 개였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코로도 너무 늙어 움직이질 못하게 되었다.




그 무렵 이미 20년은 넘었을 거라고, 할아버지는 말하셨다.


코로가 위독해질 무렵,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작별인사를 하게 되었다.


모두 울면서 코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작별인사를 전했다.




한사람씩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마다, 움직이기도 힘든 코로가 머리를 들어 쓰다듬어 주는 사람을 바라보더라.


아직 어려서 죽음이라는 게 뭔지 명확히 알지 못하던 나였지만, 그때 처음으로 죽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코로와 눈을 마주치며, 울면서.




그날 밤, 어째서인지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현관문 열어도 괜찮을까? 코로가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 같아.]


나도 그런 기분이었다.




다섯살 난 여동생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그날은 현관문을 열어놓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자, 코로는 없었다.




움직일 수 없었을텐데, 없었다.


코로가 언제나 사용하던 밥그릇 위에는 코로가 목에 찼던 목걸이가 놓여있었다.


코로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던걸까.




이틀이 지나, 내 꿈에 코로가 나왔다.


말을 하거나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 얼굴을 할짝할짝 핥고는 저벅저벅 걸어갔을 뿐.




나는 꿈속에서도 안녕, 하고 손을 흔들어줬다.


다른 가족들도 모두 같은 꿈을 꿨던 것 같다.


코로가 인사하러 왔었다고, 엄마도 여동생도 말했었으니.




할아버지는 원래 꿈을 안 꾼다며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지만, 아마 만나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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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무렵, 여름방학 때 내가 살던 도쿄를 떠나 홋카이도 외갓집에 혼자 놀러갔던 적이 있다.


외갓집은 멜론으로 유명한 마을 근처에 있었다.


국도 하나를 빼면 길도 다 비포장인 완전 시골이었다.




하지만 그 시골이야말로,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게는 신선한 매력이었다.


어머니는 대학을 다니러 홋카이도를 떠난 후, 그대로 시집을 가버렸다.


외갓집에는 외할머니말고도 어머니 대신 집과 밭을 물려받은 삼촌과 더불어, 아흔 넘은 숙모할머니까지 모두 세분이 살고 계셨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전해들었었다.


술버릇과 여자버릇이 나빴던 외할아버지는, 가족은 물론이고 친척들 사이에서도 소외당한 분이었다고 한다.


생전 워낙에 망나니였던지, 불간에는 외할아버지 영정조차 없었기에 나는 외할아버지 얼굴도 몰랐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외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반쯤 금기시 되고 있었다.


잔치에서 다들 거나하게 술에 취해 잔뜩 화를 내며 외할아버지 욕을 해댄 탓에, 대략 어떤 짓을 했는지는 주워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굴도 모르는데다 이미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내가 그리워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영정도 안 모실 정도로 싫어하는데, 어째서 숙모할머니는 외갓집에 머물고 계신건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뭐, 어찌되었든 외할머니도 삼촌도 내가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반겨주셨다.


야산이나 논밭에 데리고 가, 시골에서만 할 수 있는 놀이도 잔뜩 알려주셨고.




하지만 그런 두 분과는 대조적으로, 숙모할머니는 화장실로 이어지는 긴 복도 오른쪽 서향 방에서 두문불출이셨다.


식사도 혼자 방에서 드셨기에, 얼굴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함께 놀아주는 외할머니와 삼촌은 무척 좋아했지만, 숙모할머니는 어쩐지 대하기 어려웠다.




숙모할머니는 회색 머리카락을 빗지도 않은채 까치집을 지은데다, 언제나 큰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숨기고 계셨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한 광경인데, 숙모할머니는 자주 노래하듯 일본어가 아닌 수수께끼의 말을 중얼거리곤 하셨다.


그냥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데, 화장실에 가려다 그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정말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뭐가 나오려다가도 안 나오는 기분이었으니, 내가 얼마나 숙모할머니를 꺼려했는지 익히 알만할 것이다.


하지만 숙모할머니와 평상시 만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해 열흘로 예정된 시골 생활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내 피부가 다른 시골 아이들처럼 검게 타기 시작한 이레째 밤.




나는 2층에 있는 삼촌 방에서 삼촌과 함께 자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매일 놀다지쳐 아침까지 누가 업어가도 모를만큼 깊은 잠을 잤었는데, 그날따라 한밤 중 귀에 익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들려온 것은 현관 미닫이가 힘껏 닫히고, 누군가가 밖으로 달려가는 분주한 발소리였다.




곧이어 들려온 것은 멀리서부터 짧은 간격으로 들려오는 종소리.


그 종소리가 들리면 마을에 불이 난 것이라던 삼촌이 말이 떠올랐다.


종소리는 좀체 그치질 않고, 나는 불안해져 옆에서 자고 있을 삼촌을 깨우려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불 위에 이미 삼촌의 모습은 없었다.


나는 그제야 아까 전 현관문을 열고 달려나간게 삼촌이라는 걸 알아챘다.


소방서라고는 옆마을에나 있는데다, 그나마도 소방차도 아니고 소형 방수차만 두어대 있는 시골이다.




불이 나면 마을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구성한 소방단이 나서서 불을 꺼야만 하는 것이다.


당연히 삼촌도 소방단 소속이었고.


문득 돌아보니 서랍이 열려 있고, 삼촌이 멋있지 않냐고 자랑했던 은빛 방화복과 붉은 헬멧이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방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는 의식하지 않았던 낡은 집 특유의 기분 나쁜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얼룩이 가득한 나무판자 천장, 흐릿한 유리창...


눈에 띄는 낯선 것 모두가 방의 어둠을 강조하는 것 같아, 나는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외할머니랑 같이 잘 생각에, 삼촌방의 문을 열었다.


홋카이도는 여름이라도 밤에는 선선하다.


차가운 공기가 복도에서 확 밀려와, 나는 무심코 몸을 떨었다.




삼촌방은 계단 바로 옆에 있었다.


문득 아래를 보니 마치 검은 물에 잠겨있는 것처럼 어두웠다.


그런데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나는 곧바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래된 집이라 계단 경사도 가파르고 난간도 없어, 나는 손으로 층계를 잡고 조심스레 한칸한칸 내려가야만 했다.


한걸음 내려갈 때마다 어둠으로 가라앉는 가파르고 캄캄한 계단은, 나를 겁에 질리게 하기 충분했다.


나는 무심코 외할머니를 불렀다.




[그으래.]


그렇게 대답하며, 그것은 복도에 나왔다.


공중에 떠올라 있는 그것은, 외할머니가 아니라 전통극에서 사용하는 새하얀 가면이었다.




가면 여기저기에는 작은 금이 가서 마치 주름처럼 보였다.


미소를 본떴을 터인 그 표정에서는 오히려 악의가 또렷이 전해졌다.


나는 공포로 몸이 굳어 위를 바라보려다, 몸이 젖혀져 그대로 뒤로 넘어가 아래층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지는 사이 코와 팔꿈치를 계단에 부딪히고, 멈추면서 머리가 강하게 마루에 부딪혔다.


아픔과 충격에 새하얘졌던 시선이 겨우 돌아오자, 그 가면이 2층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게 보였다.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혀 나는 기어가듯 거기서 도망쳤다.




도망치며 외할머니를 소리쳐 불렀지만, 돌아온 것은 [그으래.] 하는 가면의 대답 뿐이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사이, 나는 복도 막다른 곳에 다다르고 말았다.


뒤를 돌아보자 복도 끝에 그 가면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가면은 어느새인가 검은 안개 같은 몸으로 마루에 서 있었다.


그리고 떨고있는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진흙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머릿속이 공포로 새하얘질 무렵, [이텟케!] 하고 큰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복도 옆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숙모할머니가 뛰쳐나와 나와 가면 사이에 무릎을 세우고 들어앉았다.


[쿠엣, 이완케. 이요맛메노코.]




내게 상냥하게 말하고, 숙모할머니는 다시 가면을 마주봤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따뜻한 숙모할머니의 눈빛은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침착하게 만들어주었다.


숙모할머니는 연기가 나는 도자기 접시 같은 걸 꺼내, 가면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작은 칼을 품에서 꺼내더니 가슴 앞에 대고, 노래하듯 또다시 수수께끼 같은 말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숙모할머니도 가면도 가만히 있었지만, 이윽고 가면이 한걸음 앞으로 나아왔다.


순간 숙모할머니의 목덜미에 땀이 흐르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뒤에 있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숙모할머니의 얼굴은 고통과 초조로 일그러져 있었으리라.


나는 나도 모르게 숙모할머니 등에 붙어, 숙모할머니의 등을 필사적으로 쓰다듬었다.


문지른다고 사태가 호전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 뿐이었다.


[이야이라이케레. 람피리카폰헤카치.]


숙모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미소짓고, 다시 가면을 마주보았다.




[호시키에카시카무이, 에라에라이, 에르사! 웬카무이, 웬키쿠키쿠!]


숙모할머니는 노성을 지르며, 칼을 칼집에서 뽑아 마루에 찔렀다.


그러자 도자기 접시 같은 것에서 솟아나던 연기가 서서히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연기는 어렴풋하게 커다란 남자의 형상을 빚어낸다.


숙모할머니는 그 연기에 인사를 하더니 가면을 가리켰다.


연기는 마치 의지가 있는 것처럼 서서히 가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가면 뒤, 검은 안개 같은 것과 얽히더니 서서히 현관 미닫이문 틈새로 사라져갔다.


남은 것은 진흙 같은 덩어리와 둘로 쪼개진 가면 뿐.


[온카무이, 온카무이. 아훈체로, 카리, 카무이모시리, 파예, 얀.]




그렇게 말하고, 숙모할머니는 고개를 숙여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크게 숨을 내쉰 후 등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숙모할머니의 등을 계속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숙모할머니는 소리 없이 울고 계신 듯 했다.




[어휴, 작은 불이어서 다행이었어, 정말.]


그렇게 말하며 삼촌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나는 긴장감이 풀리며 울음이 터져나왔다.


숙모할머니의 등을 계속 쓰다듬으며,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 후 불끄는 걸 도우러 갔던 외할머니도 조금 늦게 돌아오셔서, 한동안 이것저것 정리에 나를 달래는 것까지 집안은 소란스러웠다.


정리가 다 끝날 무렵 간신히 내가 울음을 그치자, 외할머니는 숙모할머니의 말을 통역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원인은 마을에 난 불 때문이란다. 방화인지 뭔지, 누가 나쁜 마음을 먹고 불을 낸거야. 그 나쁜 마음에 이끌려 나쁜 신이 이 마을에 나타났다가 우연히 우리 집에 온거란다.]




외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잘못했어. 불이 났다길래 당황해서 자다 말고 뛰쳐나가 우리 손주를 놓고 왔으니... 불안해서 부른 소리에 나쁜 신이 대답해서 힘이 점점 강해졌다는 것 같구나. 미안해. 무서운 일을 겪게 해서.]


외할머니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정말로 미안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숙모할머니는 진작에 요사스런 기운을 느끼셨다지만, 나이 때문에 바로 나오질 못하셨대. 그래도 어떻게 늦지 않게 나오기는 하셨는데, 너무 완고한 신이라 아무리 돌아가달라고 부탁해도 듣질 않더란다.]


숙모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을 무렵, 네가 등을 쓰다듬어주니까 따뜻한 힘이 들어오더래. 그래서 그 힘으로 선조님들한테 호소했단다. 그랬더니 선조님들이 그 나쁜 신을 신들의 나라로 데려가주셨대. 어머, 할머니는 몰랐는데 우리 아기도 고생이 많았구나.]


[토아안, 헤카치, 아나쿠네, 람피리카, 헤카치.]


[어머나, 숙모할머니가 너를 보고 아주 솔직하고 올바른 아이래.]




나는 칭찬을 받아 수줍어하면서도, 왜 숙모할머니가 일본어로 말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다.


외할머니는 조금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숙모할머니에게 무언가 말하고는 옷매무새를 바로 잡고 크게 헛기침을 하셨다.


[너한테는 조금 말하기 이를지도 모르지만, 좋은 기회니까 다 알려주도록 하마.]




외할머니의 대답에, 나도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숙모할머니의 조카, 그러니까 너희 외할아버지는 아이누족이라는 부족 출신이었단다. 물론 숙모할머니도 아이누족이고. 아이누라는 건 먼 옛날부터 이 홋카이도에 살던 사람들이야. 하지만 여러 일이 있던 끝에 땅을 빼앗기고 일본인으로 살아가게 된거란다. 외할아버지는 아이누였지만 학교도 다녔고 일도 했어. 그리고 할머니와 결혼했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젊을 때 너무 노력했던 탓에, 지쳐버린 나머지 나쁜 신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단다. 그래서 나쁜 짓을 일삼다 일찍 세상을 떠난거야. 하지만 나쁜 짓을 저지른 영혼은 선조님들이 계신 곳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 계속 외할아버지 대신 선조들에게 용서를 빌어야만 하는거야. 그래서 아이누의 무녀였던 숙모할머니가 스스로 지원해서 선조들과 맹세했어. 샤모들 사이에서 지내면서 아이누답게 산다는 맹세를. 아이누 말만 말하고, 하루 대부분을 용서를 빌며 지내는 맹세였단다. 샤모라는 건 우리 같이 평범한 일본인을 말하는거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는 말도 많았지만, 숙모할머니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위해 여러모로 중요한 맹세를 지켜왔다는 건 어린 나에게도 충분히 전해졌다.


[그래서 외할아버지의 영혼이 선조들에게 올바른 아이누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집에도 외할아버지 영정은 두질 않았던거야. 제삿날도 기리질 않고. 그건 일본인의 습관이거든. 외롭고 미안했지만, 외할아버지를 위한거라 어쩔 수 없었어.]


그렇게 말하는 외할머니 눈가에는 작게 이슬이 맺혀있었다.




[토오안, 폰쵸, 아나쿤, 코야이누파.]


외할머니 등 너머, 숙모할머니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외할머니는 놀라며 [정말로?] 라며 몇번이고 숙모할머니에게 물었다.




계속 고개를 끄덕이는 숙모할머니를 보고, 외할머니는 굵은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어안이벙벙한 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삼촌도 마찬가지였다.


삼촌은 외할머니 등을 쓰다듬으며,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려달라고 재촉했다.




[실은 나는 아이누 말을 모르거든. 집에서 아이누 말을 아는 건 원래 아이누이신 숙모할머니랑, 같이 지내며 아이누 말을 배운 외할머니 뿐이시란다.]


곤란한 듯 벅벅 머리를 긁는 삼촌을 밀치고, 외할머니는 내 손을 강하게 잡아끄셨다.


[고맙구나. 네가 상냥한 마음으로 숙모할머니 등을 쓰다듬어준 덕에, 선조님들이 외할아버지를 용서해 주셨대. 올바른 마음을 지닌 후손을 남겼으니,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셨다는거야. 정말로 고맙구나. 너를 도와준 선조님들의 영혼 속에, 외할아버지 영혼도 함께 있던 걸 숙모할머니는 느끼셨대. 정말로... 아니, 드디어 그 사람도 돌아갈 곳이 생겼구나...]




그렇게 말하고, 외할머니는 소리 높여 울기 시작하셨다.


당황하는 나와 삼촌을 보며, 숙모할머니는 말없이 우리에게 방으로 물러날 것을 권하셨다.


나와 삼촌은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와 2층 삼촌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상상도 못할 공포 때문에 느낀 피로 때문에, 삼촌은 불을 끄느라 지친 탓에 둘다 금새 골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외할머니는 조금 목이 쉰 걸 빼면 평소처럼 아침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날은 처음으로 숙모할머니도 상에 같이 앉아계셨다.




[이걸 보면 놀랄까 싶어서 지금까지 안 벗었단다. 미안하구나.]


그렇게 말하며 마스크를 벗은 숙모할머니 입가에는 피에로처럼 입술을 강조한 무늬가 배어있었다.


검푸른 색에, 보기에는 마치 문신 같았다.




그 문신은 구레나룻 아래까지 이어진 무척 큰 것이었다.


[입 찢어진 여자 같지? 이건 챠로누이라고 하는 아이누 여자 화장이란다. 처음보면 겁에 질릴 거 같아서 걱정됐거든.]


숙모할머니는 평범하게 일본어를 말하고 계셨다.




그날부터 나머지 이틀간, 나는 숙모할머니에게 철썩 붙어 아이누에 대해 뭐든지 좋으니 알려달라고 온갖 질문을 퍼부었다.


숙모할머니도 그 많은 질문에 싫은 표정 한번않고, 여러가지를 일본어로 가르쳐주셨다.


[수다 떠는 것도 참 즐겁구나. 그동안은 신들에게 용서만 빌었거든. 우리 꼬마 도령과 이야기하는게 훨씬 재미있어.]




그렇게 말하는 숙모할머니 얼굴은, 입 문신 때문에 얼굴 전체로 웃는 것처럼 보였다.


도쿄에 돌아가는 날,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숙모할머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숙모할머니는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내 머리카락을 계속 상냥하게 어루만져 주셨다.




하지만 몸상태가 좋지 않으신지, 계속 기침을 하고 계셨다.


이대로 돌아가면 숙모할머니와 두번 다시 못 만날지도 몰라.


막연한, 하지만 확신에 가까운 예감 때문에 나는 숙모할머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괜찮단다. 꼬마 도령은 올바른 마음을 지녔으니까. 어디 있던 선조님들께서 지켜봐 주실게야. 이 할미가 이 세상에서 할 역할은 다 끝났단다. 그건 모두 꼬마 도령 덕택이었어. 그러니까 할미는 이제 선조님들에게 돌아가서, 언제나 꼬마 도령을 지켜볼 거란다. 쓸쓸해 하지 마려무나. 그저 오래된 옷을 벗고 가벼운 영혼이 되는 것 뿐이란다.]


숙모할머니는 역시나 웃고 계셨다.


그리고 결국 시간이 오고, 나는 숙모할머니에게 달라붙은 채 삼촌 차를 타고 공항에 왔다.




몇번이고 발을 멈추고 뒤돌아보는 나를 배웅하며, 공항 게이트 너머 숙모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오맛, 산테크. 야에라이케레. 란마노, 라무피리카, 이라무맛카, 에픈키네, 얀.]


손을 흔드는 숙모할머니에게, 나도 배워 알고 있는 아이누 말로 답하며 죽어라 손을 흔들었다.




[오맛, 우타리!]


나는 몇번이고 [오맛!] 이라고 외치며, 탑승시간 직전까지 숙모할머니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숙모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사인은 폐렴이었지만, 외할머니 말로는 마지막에 기침 하나 없이 편안히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뤄졌다.


그것은 외할머니 나름대로, 아이누로 평생을 보낸 숙모할머니에게 바치는 경의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숙모할머니 장례식에서, 나는 외할머니에게 숙모할머니가 그날 이후 아이누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숙모할머니가 아이누로서 보낸 일생은, 그날 후회없이 끝났을거야.]


외할머니는 그렇게 말하셨다.




장례식이 끝난 후, 흰나무 널이 눈부시게 빛나는 숙모할머니 영정은 역시 새로 깎은 액자에 끼워진 외할아버지 영정 옆에 놓여졌다.


외할머니와 나의 강한 의지 때문이었다.


처음 본 외할아버지 얼굴은 숙모할머니와 무척 닮은, 갸름하고 싹싹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 영정 옆에서 웃고 있는 숙모할머니 영정에는, 검디 검은 챠로누이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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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11st]자존심 싸움

괴담 번역 2016. 6. 2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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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자리를 찾느라 오사카랑 효고 사이를 오가고 있다.


어제,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 택시 안에서 함께 다니는 친구놈이 왠지 모르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좀 으스스해질 무렵, 택시기사 아저씨가 해준 이야기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고등학생일 무렵에는 아직 양아치들이 패싸움을 벌이거나 하는게 진짜 있었다고 한다.


아저씨가 다니던 학교에도 3학년 리더 비슷한 사람과 패기 넘치는 신입생이 한판 붙었다고 한다.


양아치들끼리도 어느 정도 선을 넘으면, 굳이 싸움으로 승부를 보질 않는다고 한다.




치킨 레이스나 패거리 크기로 승부하는거지.


그 녀석들은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걸로 승부를 보기로 했단다.


눈을 뜨고 뛰어내리면 다들 평범하게 착지할 수 있으니, 눈을 감고 뛰어내리자는 괴상한 승부였다.




정작 택시기사 아저씨가 3학년 팀에 속해서 직접 뛰어내렸다고 하지만.


실제로 뛰어내리면 공포 때문에 시간감각이 마비가 되는건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바닥에 닿지를 않더란다.


지금 어디쯤일까 확인하려고 눈을 뜨는 그 순간에야 지면에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1초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을테지만, 스스로한테는 몇분은 족히 되게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다들 떨어지다가 눈을 떠 버리는 바람에 승부는 양팀 리더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승부의 결과는 나오질 못했다.




떨어진 건 분명했는데, 아래로 내려오던 도중 두 사람 모두 홀연히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지역 신문에도 실릴 정도의 사건이었지만, 양아치 두 명 사라졌다고 세상이 그리 신경 써줄리가.


결국 두 사람 모두 행방불명 처리 되었다고 한다.




[뭐, 그 무렵에는 온갖 전설이 다 나돌았다니까.]


호텔 앞에 도착할 무렵, 아저씨는 외로운 듯 말했다.


[그 녀석들 담력 하나는 정말 대단했나 봐. 아직까지도 눈을 꽉 감고 이기려고 애를 쓰고 있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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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710th]버스 정류장

괴담 번역 2016. 6. 2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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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밤.


고갯길을 차로 달리고 있는데, 버스 정류장에 누가 서 있었다.


붉은 옷을 입은 여자다.




짐 하나 없이, 혼자 서 있다.


새빨갛고 큰 모자를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늦은 밤에 기묘한 광경이다 싶었지만, 별 생각 없이 그대로 지나쳤다.




커브를 몇번 지나자, 다음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시선을 돌리다 오싹해졌다.


또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혼자 서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아까 전 여자와 다를게 없었다.


기분이 나빠, 가능한 한 시선을 주지 않으려 애쓰며 버스 정류장을 지나쳤다.


고개를 지나오기까지 버스 정류장은 4곳.




모든 정류장에 그 여자가 서 있었다.


고개를 넘자마자 버스 노선을 벗어나,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 시간을 때웠다.


그대로 집에 들어가면 왠지 그 여자가 씌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새벽녘이 되어, 하늘이 밝아올 무렵에야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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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드게임을 좋아해서, 체스나 장기, 마작 세트 같은 걸 모으고 있습니다.


4년여 전, 야후 옥션에서 우연히 좋은 물건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상아로 만들었다는 체스 세트가 즉시구매 가격 5천엔에 올라와 있던거죠.




기본적으로 말을 상아로 만들면 가격이 수십만엔을 호가하니, 가짜일거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이 이국적이라 설령 플라스틱 재질이더라도 매력적일 것 같아, 즉시구매 버튼을 눌렀죠.


낙찰받은 후 판매자가 절대 환불은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던 게 기억납니다.




택배가 오고 확인해보니, 말은 하나하나가 다 미묘하게 다르고 상아 특유의 나이테 문양이 보였습니다.


설마 진짜 상아인가 싶어 잘 아는 가게에 찾아가 감정을 받았습니다.


진짜 상아였습니다.




무척 좋은 거래를 한 셈이었지만, 이걸 실제로 사용하자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집 장식장에 소중히 보관하며, 종종 꺼내서 어루만지며 감상하는 게 주 용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서부터 나는 기묘한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꺼내서 감상한 후 잘 정리해뒀을 터인데, 책상이나 키보드 위에 말이 덜렁 올려져 있는 겁니다.


처음에는 정리를 깜빡했나 싶어 그냥 다시 정리해서 집어넣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있는 말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책상 위에 검은 말들이 죄다 올려져 있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 뿐 아니라 잠을 자면 꿈에 체스말들이 나와 위에서 지그시 내려다보기까지 했습니다.


이쯤되자 나도 뭔가 사연이 있는 물건이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과생이었던 나는 이성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과, 본능적 위기감 속에서 진퇴양난을 겪을 뿐이었죠.


슬슬 위기감이 고조되어, 신사에라도 갖다 맡겨야 하나 싶을 무렵이었습니다.


체스를 좋아하는 여자 사람 친구가 집에 놀러오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 눈에 상아로 만든 고급진 체스 세트가 안 들어올리가 없죠.


바로 그걸 꺼내더니 이걸로 한판 해보자고 부탁을 해왔습니다.


나는 영 느낌이 안 좋아 내가 겪은 일들을 설명하며 만류했지만, 그녀도 같은 이과생이라 내 말은 들은체만체였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3판 정도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게임 도중에는 딱히 문제도 없었고, 그녀도 별일 없이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또 꿈을 꿨습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꿈이었습니다.


체스 말이 나오는 건 같았지만, 표정이 상당히 부드러운데다 뭔가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죠.


그날 이후, 이상한 현상은 당분간 사라졌습니다.




나는 다시 체스 세트를 전시해뒀지만, 몇달 지나자 다시 또 꿈에 체스 말들이 나타나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과생으로서 뭔가 패배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제야 나는 [이 녀석들, 싸우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체스는 혼자 둘 수 없는 법.




결국 나는 체스 세트를 대학 연구소 휴게실에 가져다 놓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매일 같이 한가한 학생이나 연구원들이 체스를 두며 놀아줬고, 그 덕인지 이상 현상들은 싹 사라졌죠.


체스 세트를 사고 2년 후.




연구원 중 한분이 어머니가 되었는데, 그 아들이 유치원을 졸업해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방과 후에는 우리 연구실에 자주 놀러와 같이 놀곤 했죠.


처음에는 실험 도중 짬이 난 학생들과 젠가나 인생게임 같은 걸 하면서 놀았습니다.




하지만 시끄럽다고 항의가 들어오는 바람에, 내가 그 아이에게 체스를 가르쳐 주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초보라서 영 따라오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두어달 지나자, 당시 대학원에 다니던 내가 좀체 따라잡질 못할 정도로 실력이 급상승해버렸습니다.




이상하리만치 빠른 실력 향상에 놀라, 나는 아이 어머니에게 체스 교본이라도 사줬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해준 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인터넷이나 컴퓨터도 안 쓴다기에 의문은 더욱 깊어질 뿐이었습니다.




혹시 내가 천재를 발견한건가 싶어, 나는 살짝 들떠 아이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종종 꿈에 말이 나와서 가르쳐줘요. 게임 도중에도 왠지 모르게 알려주고요.]


게임 도중 왠지 모르게 가르쳐준다는 말이 잘 이해는 안 갔지만, 과거 내가 겪었던 걸 이 아이도 겪고 있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나와 달리 그 아이는 체스 말들에게 이쁨받고 있는 듯 합니다.


한동안 두고 보다 별 문제가 없으면, 내가 알고 있는 사정을 설명해 주려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중학교 입학할 때쯤, 선물해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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