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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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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모임이 있어서 가족 다같이 이바라키의 할머니댁에 갔을 때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정도 전이네요.


우리 친가는 매년 여름, 2박 3일간 모든 친척이 모입니다.




조상님 성묘도 한번에 몰아서 해버리고, 그 다음에는 다같이 가족끼리 축제를 벌이는거죠.


어른들한테는 재밌겠지만, 아이들한테는 그저 그런 모임입니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다른 친척 동생들보다는 나이가 있는 편이라, 비슷한 또래의 사촌 형, 사촌 누나와 함께 셋이서 어른들 틈에 껴 탄산음료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게 있어, 옆에 있던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6살 무렵 있었던 일을 꺼내놓았습니다.


[그러고보니 6살 때 새해 첫 참배를 하러 카시마 신궁에 갔었는데, 돌아갈 때 뒤에서 누가 머리를 딱 때렸었어. 아버지한테 혼난 줄 알고 쭈뼛쭈뼛 뒤를 돌아봤는데, 아버지는 저만치 뒤에 있더라고. 다른 가족들은 다들 앞서가고 있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 생각하니 엄청 무서웠어!]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혹시 말하면 안되는 이야기였나...?


초조해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때린 거 손가락 3개였지?]


이번에는 내가 놀랄 차례였습니다.


확실히 그때 나는 세번째 손가락에 맞았다는 감각이 있었거든요.




놀라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버지는 웃기 시작했습니다.


[뭐야, 그랬구나. 이제 내 뒤에는 안 계시는구만.]


의아해하고 있자, 할머니가 설명해주셨습니다.




실은 머리를 손가락 3개로 얻어맞은 건 내가 네번째라는 것입니다.


내 전에는 아버지가, 아버지 전에는 할아버지의 남동생이, 그 전에는 증조할아버지의 어머니가 다들 6살 무렵에 얻어맞았다고 하네요.


아버지가 머리를 얻어맞았을 때, 할머니는 잘 알고 지내던 "보이는" 분한테 [왜 얻어맞는건가요?] 라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분 말하길, 우리 집안 선조님 중 한분이 수호령이 되었는데, 다음 대의 후손에게 넘어갈 때 그렇게 머리를 때려서 넘어간다고 했다네요.


즉, 머리를 때리는 건 "이제부터 네 뒤에 있다" 라는 신호라는 거죠.


손가락 3개인건, 수호해주는 선조님이 선천적으로 오른손 손가락이 3개뿐인 분이라 그렇답니다.




실은 얼마 전, 또 손가락 3개로 머리를 얻어맞았습니다.


한 사람이 2번이나 맞는 일은 전례가 없었다기에, 무서운 일이 있는 건 아닌가 걱정했죠.


그런데 할머니가 알고 지내는 분이 이렇게 말하셨답니다.




[당신 손자, 요새 안 좋은 걸 모으고 있지? 그 수집품 때문에 나쁜 게 잔뜩 들러붙었어. 하지만 손자는 그걸 모르고 있고. 수호령이 쫓아내는 것도 지쳐서 화가 난게야. 손자한테 말해주라고.]


좋지 않은 수집품이라고 해봐야 요새 괴담 사이트를 잔뜩 돌아다니고, 심령사진이랑 공포 영화 본 것 정도 밖에 없는데...


좀 삼가긴 해야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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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괴담][84th]가로등 밑 바이크

실화 괴담 2017. 1. 1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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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shy님이 방명록에 적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올해로 대학교 2학년이 된 사람입니다.


이 글을 쓰는게 9월 27일이니까...


거의 3주 정도 되었군요.




저는 학교를 애매하게 멀리 있는 곳에 가게 되어, 전철로 통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사람 많은 전철을 매일 타야하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통학용으로 125cc의 그럭저럭 쓸만한 중고 바이크를 좀 싼 가격에 구매했죠.




전 주인은 점화계통에 문제가 있다며 바로 그 자리에서 돈을 깎아 주셨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지출이 좀 있던 저로써는 고마운 상황이었죠.


바이크를 구매하고, 저는 바이크를 몰고 수리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손을 좀 봤죠.


평소 바이크나 자동차가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고 있던 저에겐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게 5달 전쯤 일입니다.




그 후로 저에겐 일종의 습관 같은게 생겼습니다.


밤 9시가 되면 어김없이 바이크를 타고,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동네에서 바이크를 실컷 타다 들어오는 거였죠.


그 동네는 오래 전에 문을 닫은 철물점이나 공업사 같은게 늘어서있는 매우 긴 직선도로가 있었거든요.




그 건너편에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철도가 있었습니다.


오가는 차는 적었고, 당연히 저는 그 길 전체를 제것인냥 마음대로 누볐죠.


그리고 시간은 흘러, 아까 말했던 3주 전이 되었습니다.




중고 바이크의 특성이랄까 여기저기 잔고장이 많았습니다.


고장날 때마다 고치는것도 지쳐버려서 저는 그냥 포기한 상태였죠.


연료 게이지가 맛이 간 상태였는데, 저는 어느정도 연료가 남아있는지 대충 계산을 하고 다녔기에 별 신경을 안썼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바이크를 끌고 30분 거리의 동네로 나갔습니다.


한시간쯤 탔을까요.


그날따라 유난히 피곤했던 저는, 잠시 바이크에서 내려 가져온 음료를 조금 마신 후 한시간 정도만 더 타다가 집으로 가기로 했죠.




길가에 정차하고 바이크에서 내려서 가방을 뒤적거리는데, 좀 멀리 떨어진 곳의 가로등이 깜빡거렸습니다.


원래 좀 오래된 동네라 수명이 다 했나보다 하고, 저는 음료를 꺼내어 들었습니다.


가로등은 계속 깜빡거렸고 저는 거기에 눈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게 보였습니다.


불이 꺼질때 이상한 흰 덩어리랄까, 헐겊이랄까.


오래된 흰 옷감 느낌의 무언가가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습니다.




차를 잘못 본건가 싶어 계속 지켜봤습니다.


자세히 보니 머리칼 같은게 붙어 있더군요.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마치 괴담 속에 제가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그렇게 느낀 순간 가로등이 또다시 깜빡였는데, 그 흰것이 안보이더군요.


순간 "도망치자" 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저는 가방도 제대로 안 닫고, 무작정 가장 가까운 대로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가방에서 필통이 떨어지고, 아까 마시던 음료수가 떨어지고, 담배도 떨어졌습니다.


주울 생각도 못하고, 신발이 벗겨져도 그대로 대로로 달려 편의점에 들어갔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말던, 저는 일단 살았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쫙 풀렸습니다.


그대로 편의점 안 의자에 주저앉았죠.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고, 가방 안에 뭐가 없어졌는지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가방 천이 뭔가 손 같은것에 강하게 당겨진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애써 무시하고 뭐가 없어졌는지 확인한 후, 새벽이 되어 하늘이 약간 밝아질 때까지 계속 편의점에 있었습니다.


해가 뜨자, 이제는 가도 될거란 생각에 왔던 길을 거슬러갔습니다.




담배, 음료수, 필통 등이 줄줄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주섬주섬 떨어진 물건들을 챙겨 가방에 넣고는, 바이크로 걸어갔습니다.


세워둔 자세는 제가 세워둔 그대로였지만, 연료통 쪽 도색이 길게 벗겨져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손톱을 세운 채, 바이크를 마구 긁은 것처럼.


그 이후로는 밤에 바이크 타러 나가는것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통학은 계속 이 바이크로 하고 있지만요.




제가 그때 본것은 도대체 뭐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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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가보로 불리는 보물이 세개 있다.


하나는 가계도.


약 4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계도는, 두루마리 수십권에 이른다.




그게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 모셔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칼이다.


옛날, 선조가 무훈을 세워 그 공을 기려 영주가 하사한 물건이라던가.




마지막 가보는 거울이다.


거울이라고는 해도 옛 물건이라, 청동을 반짝반짝하게 닦아 거기 얼굴을 비추는 물건이다.


역사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손바닥만한 크기의 거울.




이것도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 고이 모셔두고 있다.


이 세 보물은 취급법이 정해져 있다.


가계도는 본가의 가장말고는 상자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며, 칼은 아무리 비싼 값이라고 팔아서는 안되고, 가장이 한달에 한번 손질을 해야한다.




그리고 거울은 불단에 안치하고, 매일 무사한지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거울을 본가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는 안 되고, 설령 가장이라도 상자 밖으로 꺼내면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거울에 관한 이야기다.




그 청동거울은 이상한 형태를 하고 있다.


육각형 바탕에 둥근 거울 부분이 겹쳐져 있다.


거울이라고는 해도 녹슬고 여기저기 상처가 나, 무언가를 비추는 힘은 거의 잃었다.




하지만 두께가 2cm 정도인 것에 비해 꽤 무거워, 어딘가 영험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물건이다.


초등학생 무렵, 친구들끼리 집에 어떤 귀한 물건이 있는지를 놓고 배틀이 붙었다.


그래서 방과 후 다들 자기네 집 보물을 들고 공원에 모여보기로 했었지.




다른 아이들은 다 장난감 같은 걸 가져왔지만, 나는 바로 그 거울을 들고 갔다.


손대면 안된다고 어른들은 말했었지만, 신경도 안 썼고.


뭐, 결과적으로는 내가 가져온 게 가장 보물 같다면서 내가 승리했다.




의기양양해서 집에 돌아오니, 아니나다를까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고 계셨다.


무슨 이상한 일은 없었냐고 끈질기게 질문을 받고, 엄청나게 혼난 뒤 두번 다시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납득이 안 갔지만, 일단 사과했다.




그 이후에는 딱히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울에 손을 댈 일은 없었다.


그리고 작년, 내가 스무살 생일을 맞이할 무렵,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대학에 들어간 후 집을 떠나 자취하고 있던 나는, 무슨 일일까 의아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불단이 있는 방에 나를 불러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집에 전해지는 가보의 유래와 그 취급법에 관해.


원래 우리 집안은 음양도에 관련된 집이라, 주로 저주 받은 물건을 다뤄왔다고 한다.




이제 와서는 대부분의 물건을 박물관에 기증해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고.


아버지는 한숨 내쉬었다.


나는 고작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불렀나 싶어 투덜거리고 있었다.




마음을 놓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말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중요한 이야기다...]


졸음이 올락말락했지만, 진지하게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불단에 안치되어 있는, 거울이 든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이 거울을 왜 꺼내서는 안되는지 아느냐? 그건 이 거울을 꺼냈던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었기 때문이야. 그것도 3번이나. 이 거울은 사람의 죽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솔직히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진지했다.


[나도 오랫동안 그게 미신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23년 전 그 사건이 있고나서는...]




23년 전.


그건 아버지의 누나이자, 내게는 고모인 사람이 죽은 해다.


사고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거기 얽힌 자세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 거울은 이 땅에서 먼 곳으로 가져가려 하면 꺼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 같다.


과거 이 거울을 꺼내려 했던 세 사람은, 그 해를 받아 죽은 것이다.


처음은 전국시대, 이시다 미츠나리[각주:1]의 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세키가하라 전투 후, 미츠나리와 함께 참수되었고, 거울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두번째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국가 총동원법에 의해 온갖 쇠붙이를 거둬갈 무렵이었다.


헌병이 억지로 청동거울을 가져가려 하던 도중, 할아버지 눈앞에서 미군 전투기의 기관총 사격에 맞아 그대로 절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우리 고모였다.


이 거울은 고모의 유품이기도 한 것이다.


고모가 살아있을 무렵에는 거울의 저주 같은 것도 다들 미신으로 여겼다고 한다.




다들 걱정도 않고, 가끔 손님이 찾아올 때면 부담없이 보여주곤 했다고 하니.


아무 것도 비치지 않는 골동품 거울이라면서 말이지.


하지만 추석 때, 오사카에 시집갔던 고모가 돌아가기 전 3개의 가보에 인사를 하려 돌아봤다고 한다.




그리고 거울을 손에 들었을 때, 자기 얼굴이 거기 비친 것을 본 것이다.


고모는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 화장실 거울과 청동거울을 몇번이고 번갈아 봤다고 한다.


[청동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이 새까매!]




아버지는 겁에 질린 고모를 기분 탓일거라며 달랬다.


하지만 꽤 무서운 것을 봤는지, 고모는 좀체 안정을 찾지 못했다.


교토에 있는 자신이 잘 아는 절에 가져가 불제를 받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단다.




규칙을 깨는 일이지만, 그래서 마음이 풀린다면 원하는대로 하라고, 아버지는 청동거울을 내줬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걸 아직까지도 후회하며 살고 있다.


왜냐고?




어쩌면 그 일 때문에 역대 가장 큰 저주가 일어났을지도 모르니까.


고모는 1985년 8월 12일 18시 4분, 하네다발 이타미행 비행기를 탔다.


그 거울과 함께.

  1. 石田三成, いしだ みつなり.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으로,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천하를 놓고 겨룬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해 사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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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807th]동반자살

괴담 번역 2017. 1. 1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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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체험담이다.


할아버지는 소방관으로, 그 무렵 시골 소방서에서 하루하루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경찰관이 소방서에 뛰어들어왔다.




[이봐, A씨! 좀 도와주게!]


[무슨 일인데 그렇게 허둥지둥 그래.]


[일가족 동반자살이야! 다같이 목을 맸다고!]




[알았어.]


직업상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담이 큰 것인지.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대답하고 경찰관과 함께 뛰어나섰다고 한다.




달려가면서 듣기로는, 자살한 가족의 친척이 신고를 했다고 한다.


간만에 찾아왔는데 처마 끝에 가족들이 죄다 목을 매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고를 받고 경찰관도 바로 출동했는데, 한두 사람도 아니고 가족 전부가 목을 매고 있으니 조금 겁에 질렸던 것 같다.




친척에게는 사람을 구해오겠다고 말하고 소방서로 달려온 듯 했다.


두 사람이서 집에 도착한 순간.


경찰관이 기겁해 땅에 나자빠졌다.




[이봐, 왜 그래?]


[하, 한명 더 늘어났어!]


처마 끝에, 동반자살을 신고했던 친척이 같이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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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 강의를 하러 온 선배에게 들은 악령 관련 이야기입니다.

츄부지방(中部地方) 어느 대학 민속학 연구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씌인 악령에 관해 조사하던 교수님이 있었는데, 그 연구팀에서 8명의 학생이 현지조사를 나가게 됐습니다.



각각 담당을 결정하게 됐죠.

A는 이번이 첫 현지조사였기에, 악령 중 가장 유명한 견신[각주:1]을 지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그걸 말렸습니다.



[견신은 아직 A 자네가 맡기에는 이르네. 무서운 존재거든. B군과 C군이 맡아주지 않겠나? A 자네는 여우귀신 쪽으로 가게나.]

그리하여 A는 D와 함께 여우귀신[각주:2]이라는 잘 알지 못하는 악령을 조사하게 되었고, 선배인 B와 C가 견신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A는 녹음용 테이프 같은 취재 도구를 가득 준비해, D와 함께 키타칸토(北関東)의 어느 집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그 무렵은 가을이고 태풍 예보가 나온터라, 여기저기 농가에서는 태풍을 대비해 여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찾아가는 바로 그 집, 악령 들린 집만은 아무 것도 하지않고 한가로이 있어 이상했다고 합니다.

여우 들린 집에서는 친절하게 A 일행을 맞이해, 훌륭한 다다미방으로 안내했습니다.



큰주인님으로 불리는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A는 바로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여우귀신이라는 것은 손을 타고 넘을 정도의 작은 여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듣던 와중, 갑자기 할아버지가 말을 멈췄습니다.

[이야기를 하니 저 봐, 여우귀신이 나왔군.]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통풍창을 가리켰습니다.



하지만 A와 D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우 들린 집은 교수님도 신세를 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날도 저녁식사와 방을 그냥 내어주었다고 하네요.



밤이 깊어져 녹음도 끝날 무렵, A는 태풍이 걱정되어 큰주인님에게 괜찮을지 여쭈었다고 합니다.

큰주인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바람도 구름도 집을 피해서 지나갈테니 말이야.]



이튿날 아침, 돌아오는 길에는 태풍 흔적이 엄청나게 남아있었지만, 여우 들린 집에는 나뭇잎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구실로 돌아와, 교수님과 다른 멤버들 앞에서 녹음해 온 테이프를 재생했습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어째서인지 녹음한 큰주인님 목소리는 안 들리고, 기묘한 소리가 잡힐 뿐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해보게.]

교수님의 말에, A는 녹음 테이프를 감았다가 다시 재생했습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때 여자 선배가 [멈춰!] 라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소리! 그건 빙의했을 때 나는 소리야!]



그 선배는 민속학과 더불어, 전통극인 노[각주:3]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노에서 노래하는 빙의의 소리와, 테이프에서 나는 소리가 똑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의 역사는 무로마치 시대[각주:4]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옛 사람은 괴이의 소리를 알고 있던 것일까요.



[괜찮아!]

다들 아연실색해 있었지만, 교수님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유감이지만 이건 묻어두도록 하세.]



그 후 A와 D는 적어온 기록을 정리하기만 하고, 발표는 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견신을 조사하러 간 팀도 있었습니다.

B와 C는 견신 들린 집에 찾아갔지만, 가는 도중 신이 나 있던 B가 갑작스레 그만 두자느니, 돌아가자느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답니다.



자신이 죽는 꿈을 꿨다고 하면서요.

C는 B를 열심히 설득해, 견신 들린 집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훌륭한 분위기의 노인이 두 사람을 맞이해 여러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하지만 B는 얼굴을 푹 숙인채 말 한마디 없어서, C는 무척 곤란했습니다.

허나 노인은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윽고 준비된 다다미방에 안내되어, 두 사람을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잠이 오질 않더랍니다.

밤이 꽤 깊어질 무렵, 복도로 난 미닫이문에서 바스락바스락, 무수한 동물이 모여드는 기척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는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신호였던 것처럼, 미닫이문이 잇달아 찢어지더니 쥐같은 것이 끝도 없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C는 정신이 없어 눈을 꽉 감고 있었지만, 문득 B가 신경 쓰여 눈을 떴습니다.

B는 멍하니 텅빈 눈을 한채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이튿날 아침, 미닫이도 이부자리도 다다미도 난장판이 된 방에서, B와 C는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견신 들린 집의 젊은 며느리가 아침 식사가 준비됐다고 부르러왔습니다.

방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C가 횡설수설해서 설명하자, 젊은 부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괜찮습니다. 처음 오신 손님이 계실 때는 자주 그렇거든요.]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리고는 다른 다다미방으로 짐을 옮겨주었습니다.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 인사를 올리자, 노인은 [아무래도 여러분은 환영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라고 마음에 걸리는 소리를 하더랍니다.

두 사람이 도시로 돌아오자 이미 밤이었고, 그대로 B와 C는 역에서 헤어졌습니다.



이튿날 아침, 대학에 나온 C에게 B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눈을 부릅뜬 채, 온몸이 경직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사인은 심장발작.



B의 장례식이 끝난 뒤, C는 연구실에 모인 동료들 앞에서 울며 소리쳤습니다.

[견신 때문이야! 그 녀석, 정말 가기 싫어했는데 내가 억지로 끌고 간 바람에...]

그 후 C는 박사 과정을 밟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학자의 길을 나아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지조사를 나갔다가 행방불명 되어, 벌써 1년이 넘도록 소식이 두절되었다고 합니다.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1. 犬神, いぬがみ. 인간에게 씌이는 개 귀신의 일종으로, 일본 서부에서 매우 유명하다. [본문으로]
  2. オサキギツネ. 인간에게 씌이는 여우귀신의 일종. [본문으로]
  3. 能, のう. 일본의 전통극으로, 가면을 쓴 채 말없이 진행되는 무언극. [본문으로]
  4. 室町時代. 일본 역사 중 무로마치 막부가 통치하던 시기. 1336년부터 1573년을 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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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을 찾아서 - 용산구 보광사

잡동사니 2017. 1. 1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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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용산구로 이사를 왔습니다.


살다보니 느끼게 되는게, 이상하게 이 동네에는 점집이 많더라고요.


집 근방 5km 안에 정말 점집만 30개는 넘게 있는 거 같습니다.


가끔 한강에 나가서 걷다보면, 한남동 쪽에 있는 신목 앞에서 굿판이 벌어지고 있을 때도 있고요.




알아보니 한강 근처기 때문에 예로부터 교역이 많아서 온갖 신을 모시는 믿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용산구청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문화재로 등록된 무속 관련 시설과 거기서 모시는 신만 해도 한가득이더라고요.


조선 태조 이성계, 임경업, 김유신, 남이, 단군왕검, 그리고 수많은 동네 부군님들...


지금은 동작구로 옮겼지만, 관우를 모시던 남관왕묘도 원래 용산에 있었고요.





그 많고 많은 신당 중, 집 근처 보광동에 흥미로운 곳이 있더라고요.


바로 촉의 승상이었던 제갈공명을 모시는 보광사였습니다.


사실 관우 신앙이야 워낙에 유명할 뿐 아니라, 당장 동관왕묘가 떡하니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니 누구나 알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제갈량을 신으로 모시는 곳은 그리 많이 보질 못했습니다.


저도 여기말고는 남산 자락에 있는 목멱산 와룡묘 밖에 못 본 거 같아요.


사당이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늘에야 발걸음을 옮겨봤습니다.





전화로 먼저 연락을 드리고 찾아갔는데, 흔쾌히 와도 된다고 말씀해주시고 반갑게 맞아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주한 브루나이 대사관저 맞은편으로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니 금세 나오더라고요.


큰 규모는 아니고, 한칸짜리 사당이 있는 게 전부입니다.


무후묘라는 간판이 있어 바로 알아볼 수 있더라고요.




중앙에는 제갈공명 존영이 모셔져 있고, 양옆에도 둘씩 다른 신들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좌측 신들은 동네 부군인 거 같은데, 우측 신은 장수 생김새에 무기를 들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삼국지에 관련된 이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뒤에서 빛이 비쳐서 제대로 된 제갈공명 사진을 찍지 못한게 못내 아쉽습니다.


향 한개피 피워 올리고, 올 한해 건강하고 무탈하게 보낼 수 있기를, 그리고 지력 100 중 얼마만이라도 좀 나누어주십사 간절히 빌고 왔습니다 ㅠ.ㅠ





개인적으로 삼국지도 좋아하고, 무속 신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보니 찾아가보게 됐는데, 상당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역시 보광동에 있는 김유신 사당이나 이성계를 모신다는 서빙고 부군당에 한번 찾아볼까 싶네요.


혹시나 제갈공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존경하시는 분이라면 남산 와룡묘와 더불어 한번쯤은 찾아가 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승상님의 기운을 받았으니 이제 저도 조금은 똑똑해졌으면 좋겠네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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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괴담][83rd]아파트의 불빛

실화 괴담 2017. 1. 1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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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느그느그링님이 방명록에 적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작년 초에 있었던 기묘한 일을 하나 제보하고자 합니다.


2016년 2월 13일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당시 고3 수험생이었던 저는, 수능을 망치고 재수학원에 등록할 예정이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학원에 등록하기 전까지 딱히 할 것도 없던 저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한 친구와 새벽 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방문을 닫고 게임을 하다보니 살짝 덥기도 했고, 목도 말라서 새벽 3시쯤 친구에게 같이 시원한 사이다나 사서 밖에서 마시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친구도 마침 시원한게 마시고 싶었는지, 알겠다며 곧 나오기로 했죠.




저희 아파트 단지 상가에는 24시간 영업하는 작은 편의점이 있습니다. 


언제나 단골손님인 저와 제 친구를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아주머니 점장님이 계신 곳이죠. 


친구가 사는 동보다 제가 사는 동이 더 가까워서, 친구가 저희집 앞까지 온 뒤에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대충 옷을 걸쳐입고 밖으로 나온 저는 친구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평소에도 약속시간에 조금씩 늦는 친구라, 이번에도 늦는구나 싶어서 작게 한숨을 내쉬고 앞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대략 60개 정도의 동이 있는 큰 단지입니다. 


덕분에 동 현관 앞에 서 있으면 다른 동을 정면으로 볼 수 있죠.


제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다른 동 비상계단에 나 있는 창문이었습니다. 




대략 30개의 창문이 수직으로 죽 늘어서있는 그런 광경이죠.


제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한 이유는, 약 30개의 창문에 전부 환하게 불이 켜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아파트 단지에 산지도 어느덧 8년째입니다.




하지만 저렇게 모든 비상계단에 불이 환하게 켜진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불이 켜지려면 밑에 사람이 지나가서 센서가 감지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두세층이 동시에 켜지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한번에 모든 층에 불이 켜지는 건 보기 힘든 일입니다.




저는 눈을 비비고 다시 비상계단을 전부 확인했지만, 비상계단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언가 움직이는 그림자조차 없이, 텅 빈 비상계단에는 전부 환하게 불이 켜져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나온 터라, 카메라 어플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거의 없던 안개가 그날 새벽따라 자욱해서 그런지, 환하게 켜져있던 불은 제 핸드폰 카메라에는 아주 희미하게 찍히더군요.


저는 기독교인이기도 하고, 딱히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막상 그 기묘한 현상을 봤을때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제 저 불이 꺼질까 하고 계속 쳐다보고 있었죠.




한 3분쯤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저 멀리서 친구가 저를 부르면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친구녀석에게 왜 이렇게 늦었냐고 구박을 하고 친구에게도 그 광경을 보여주었습니다. 




친구도 처음 보는 일이라며 신기해했죠. 


그러자 그 순간 갑자기 비상계단의 모든 불이 꺼졌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와 친구는 순간 말을 잃었습니다. 


저는 애써 편의점으로 가자고 친구의 팔을 잡고 갔지만, 편의점에 도착할 때까지 저희 둘은 정체불명의 두려움에 아무 말도 못했죠.


귀신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참 기묘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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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나온 초등학교에서 떠돌던 이야기란다.


그곳에서는 6학년 때 임간학교라고, 관광지와는 동 떨어진 시골로 가곤 한단다.


그날 일정은 낮에는 등산을 하고, 밤에는 담력시험을 하는 전형적인 것이었다.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는데, 길 옆에 있는 바위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몸은 길 반대편으로 향하고, 얼굴만 돌려 싱글싱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웃는 얼굴은 가면을 닮아, 무척 상냥해 보였다고 한다.




예의 바른 학생 하나가 그 곁을 지날 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지만 노인은 대답 없이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자세히 보니, 노인의 다리가 무릎 아래까지만 보이더란다.


그 아래는 희미해서, 반대편 경치가 비쳐 보였다.




하지만 낮이고 주변에 친구들도 잔뜩 있다.


설령 그걸 깨달았다 하더라도, 다들 그저 기분 탓일거라 넘어가,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밤.




담력시험이라고는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하는 것이니만큼 별다를 건 없다.


선생님과 함께 숙소 주변 어두운 길을 슬렁슬렁 걷는 정도였다.


하지만 도시와는 달리 빛도 없고 어두운 시골길, 학생들은 충분히 겁에 질려 있었다.




대충 한바퀴 돌고, 숙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밭 저너머,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뭐지?]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는데, 그 빛이 천천히 평행이동해,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어느 정도까지 거리가 줄어들 무렵, 누군가가 외쳤다.


[낮에 본 할아버지야!]




낮에 봤던 노인이 희미한 빛을 내며, 보이지 않는 다리를 움직이지도 않은 채, 말 그대로 스르륵 다가오고 있던 것이다.


얼굴에는 변함없이 미소를 띄운채.


어떻게 겨우 모두 무사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학생들의 동요는 멈추질 않았다.




결국 다음날 선생님들은 절에 상담해 다같이 불제를 받았다고 한다.


숙소에서 식사를 만들어 주던 그 동네 아줌마들은, 할아버지의 특징을 듣자마자 입을 모아 말했다.


[그거, 야마다 할아버지잖아!]




야마다씨라는 건 주변에서도 유명한 손자바보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애지중지하던 손자가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정신을 놓아버렸다고 한다.


어린 아이가 보이면 [아이고, 우리 손주. 왜 이런데 있어.] 라고 말하며 마음대로 데리고 돌아오는 일이 몇번이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내내 온후한 성격의 할아버지였기에 다들 불쌍히 여길 뿐, 경찰에 신고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죽고서도 손자 생각을 못 잊나보네...]


아줌마들은 눈물지었다.




그 사건 이후, 임간학교에서는 담력시험이 사라졌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악령도 아닌데, 굳이 담력시험을 없앨 필요가 있나 의아했다.


하지만 아내가 말하기로, 거기에는 뒷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학생들이 모두 숙소에 들어갔는지 확인하려 끝까지 밖에 남았던 선생님은 가까이 다가온 노인을 확실히 보았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단다.


[학생들은 모두 상냥하게 웃는 얼굴이었다고 했지만, 나한테는 완전히 광분해 날뛰는 것처럼 보였다고...]




도대체 어느 쪽이 할아버지의 본심이었을까?


지금도 그 초등학교에서는 유명한 괴담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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