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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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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겪은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집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옆집에 사는 A씨가 말을 걸어왔다.


[K씨, 부탁할 일이 좀 있는데... 우리 미사키 좀 봐주지 않을래?]




미사키는 A씨의 딸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별로 상관 없습니다만... 무슨 일 있으세요?]


[어머니가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가셨대... 별 일 아니라는 거 같지만 미사키가 알면 큰일날테니까...]




[아... 미사키는 할머니를 정말 좋아하니까요.]


그 정도 대화를 나눈 뒤, A씨는 병원으로 향했다.


4시쯤 돌아온다고 했으니, 그동안 A씨네 집으로 가서 미사키랑 놀아주기로 했다.




미사키는 책을 한손에 들고, 기쁜 듯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있잖아, 이게 미사키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무서운 책이야!]


아이가 볼만한 책은 아니었기에, 내심 A씨한테 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미사키와 어울려줬다.




점심을 먹고, 미사키가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어느덧 3시.


[아, 3시네... 슬슬 엄마 올 시간이 되어가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미사키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돌아오지 않을텐데?]


[...그게 무슨 소리니?]


[그치만 엄마, 할머니한테 간 거잖아?]




어째서 아는 것인지, 순간 당황했지만, 아침에 집밖에서 나눈 대화를 주워들은 것이라 여겼다.


[뭐야, 알고 있었니? 그래도 괜찮아. 4시쯤에는 돌아올거라고 엄마가 그랬으니까.]


[그치만 할머니 죽어버렸는걸. 돌아오지 않을거야? 언니도 엄마가 올 때까지는 못 돌아가.]




그렇게 말하고, 미사키는 즐거운 듯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큰맘먹고 물어봤다.




[어째서 할머니가 죽었다는 걸 안거야?]


미사키는 내 뒤를 들여다보듯 고개를 움직이더니, 내게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할머니, 낮부터 계속 창문 밖에 있었으니까. 나, TV에 봤어.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이 창문에서 들여다보면, 그 사람은 벌써 죽은거래.]




나는 차마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등뒤의 창문에서 느껴지는 바깥 추위는, 이상하게 강한 것 같았다.


결국 A씨가 돌아온 건 7시가 다 되어서였다.




A씨의 어머니... 미사키의 할머니는 병원에서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 점심 무렵 급사하셨다고 한다.


A씨의 감사인사를 뒤로 하고, 문을 열어 집을 나오는데, 미사키가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언니 따라가지마. 미사키랑 놀자!]




미사키의 시선은 내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나를 보는 게 아니었다.


미사키는 곧바로 무언가를 뒤쫓듯, 시선을 옮기며 부엌으로 웃으며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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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829th]스구루!

괴담 번역 2017. 2. 2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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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터로 생활하던 무렵 이야기다.


당시 살던 싸구려 고물 아파트 옆집에, 20대 초반 정도 되어보이는 여자와 3살짜리 남자아이가 이사를 왔다.


이사를 왔다고 따로 인사하러 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마침 외출하는 타이밍이 겹칠 때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옆집에 이사온 A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스구루고요. 조금 소란스럽거나 폐를 끼칠지도 모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조금 오동통하고 대단히 짧은 미니스커트에 힐.


딱 봐도 접객업에 종사한다는 느낌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성실한 사람인 거 같아 안심했다.




나도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스구루군, 잘 부탁해.] 라고 대답했다.


스구루군은 무척 사람을 잘 따르는 아이였다.


내가 밖에 나오면 다리에 매달려 꼭 끌어안고 달라붙기도 하고, 우리 집에 놀러오는 친구나 여자친구에게도 곧잘 애교를 부렸다.




스구루군의 어머니가 말하기로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나갈 때면 집앞에서 [형 언제 올까?] 라면서 안절부절 못한다고 했다.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고민이 하나 있었다.


스구루군의 어머니는 일주일에 몇번씩 일하러 나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스구루군의 할머니인 듯한 사람이 집으로 찾아왔다.


몇번인가 만난 적 있지만, 딱 봐도 역시 접객업에 종사하는 듯한 기 센 50대 아줌마였다.


이 아줌마는 스구루군을 엄청 호되게 혼냈다.




그게 매번 너무 신경쓰였다.


마치 고함이라도 지르듯, 히스테릭한 느낌으로 화를 낸다.


게다가 아줌마 목소리가 째지는 듯한 금속음이었기에, 더 시끄럽고 초조했다.




벽이 얇아 바로 들리는 것이다.


[스구루! 뭐하는거야!] 하는 소리가.


그렇게 혼이 나면 스구루군도 엉엉 울어대니, 영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이따금씩 쾅쾅 소리도 나서, 나도 모르게 움찔할 때도 있었다.


그게 하도 잦았던 탓인지, 그 당시 기르던 앵무새가 [스구루!] 라고 외쳐댈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르바이트를 하던 서점에 스구루군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저기, 혹시 댁에 앵무새가 있지 않나요?]


[아, 네. 키우고 있는데요.]


[전에 스구루가 새 소리가 들린다고 말해서요.]




[아, 혹시 폐가 됐나요?]


[아뇨, 새가 스구루라고 말했다길래 신경 쓰여서...]


[아...]




[소리, 그렇게 잘 들리나보네요.]


[네?]


[분명히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스구루! 어쩌고저쩌고! 라고 말한다면서 아이가 꽤 신경쓰고 있는 것 같아서요.]




[아, 죄송합니다! 벽 옆에 새장이 놓여있어서 그만 새가 멋대로 기억해버렸나 봐요.]


[그런가요...]


그리고 며칠 후.




낮에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나가보니 스구루군 모자였다.


[실은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스구루가 마지막으로 형을 만나고 싶다고 하길래... 그간 여러모로 신세 많이 졌습니다.]




[어, 갑작스럽게 이사라니... 아쉽네요.]


[실은... 스구루를 봐주던 어머니가 현금이랑 통장을 훔치고 스구루한테도... 그래서 말인데, 혹시 어머니가 찾아오더라도 모른 척 해주지 않으실래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인가 지난 어느 저녁.


집에서 친구랑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쾅쾅쾅쾅쾅쾅!] 하고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누구 없어! 나와봐!]




아무래도 스구루군의 할머니가 옆집 문을 두드리며 고함치는 듯 했다.


나는 친구와 [목소리 엄청 무섭다...] 라며 벌벌 떨고 있었다.


한동안 소란이 이어지다,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계단을 내려 돌아갔다.




친구랑 [경찰 부를걸 그랬나?] 라던가, [아니, 이제 더는 안 오겠지.] 라며 이야기하던 도중.


갑자기 앵무새가 입을 열었다.


[스구루! 죽일거야! 스구루! 죽일거야! 스구루! 죽일거야!]




여태껏 들어본 적 없던 그 말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 없는 사이, 그 여자는 스구루군한테 매일 같이 저런 말을 퍼부어대고 있었던 것인가.


벌써 몇년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뉴스에서 아이가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보면 이 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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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조금 늦어, 주변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뭐, 일이 늦어지면 초과 수당이 나오니 상관은 없지만, 그렇다해도 어두워지기 전에 일을 마치고 싶었다.


그 기분 나쁜 집에 가야하니까.




그 집은 문 옆에 작은 창이 붙어있어, 거기로 우편물을 넣는다.


큰 우편물은 들어가지 않는데다, 집에서 개를 키우는지 우편물을 넣으려하면 개가 다가온다.


작은 창은 아랫쪽이 불투명한 유리라, 개가 문을 향해 열심히 달려오는게 보인다.




뒤편으로 돌아가면 부엌문이 판자로 봉해져 있고, 모든 창에는 덧문이 쳐져있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빠, 언제나 우편물을 반 정도만 찔러넣고 서둘러 돌아오곤 했다.


날씨도 이상하기에, 조금 코스를 바꿔 그 집에 먼저 찾아가기로 했다.




평소처럼 우편물을 창에 찔러넣으려는데, [쾅!] 하고 문에 커다란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개가 뛰어와 부딪혔다고 생각하기에는 소리가 너무 컸다.


개 짖는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고...




뭐지?


불투명한 유리를 보았다.


검은 실루엣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개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쾅!]




불투명한 유리에 달라붙은 검은 것은...


사람이었다.


머리카락이 긴 여자 얼굴.




불투명한 유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서둘러 도망쳤다.


동요하면서도 배달을 전부 끝내고 우체국으로 돌아오는 사이,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 모습은 여자가 문에 달라붙은 게 아니라, 누군가가 여자를 문에 집어던지고 있었다는 것을.


범죄가 아닐까 싶어, 나는 우체국으로 돌아와 상사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상사의 대답은 내 예상 밖의 것이었다.




[그 집, 반년 전에 이사했잖아. 몰랐었나?]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배정 받고 배달한 3주치 우편물을 모두 잘못 배달한 셈이 된다.


대개 이사 신고가 접수되면 배달 구획에 카드로 표기가 되지만, 그 집만 빠져있던 것이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징계처분을 받을테니, 잘못 배달된 우편물을 가지러 가야만 했다.


그 집에 다시 갔지만, 문을 두드려도 아무 대답이 없다.


문을 연다.




틈새로 들여보며 말을 걸었지만, 사람은 커녕 개도 대답이 없다.


문 안쪽을 보니, 우편물이 잔뜩 떨어져있다.


그냥 가져가면 혹시 경을 칠까 싶어, 상사에게 전화해봤다.




[구청에 전화해볼테니까 기다려.]


기다리는 사이, 문 틈새로 안을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현관에는 어렴풋이 먼지가 쌓여있고, 사람이 들어간 흔적은 없다.




그제야 등골이 오싹해졌다.


먼지 위에 발자국도, 사람이 끌려간 자취도, 개의 발자국조차 없다.


우편물 위에도.




내 망상이었나 싶어 불투명한 유리로 눈을 돌리자, 거무칙칙한 손자국이 찍혀있었다.


그 손자국에서, 피가 뚝뚝 아래로 흘러내린다.


나는 그대로 우편물을 긁어모아 죽어라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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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827th]할머니와 쿠로

괴담 번역 2017. 2. 19.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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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딱 한번 겪은 심령 관련 사건이다.


내가 사는 곳은 엄청 시골이다.


몇년 전에 편의점은 생겼지만,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인데다 여름에는 머위 따고 가을에는 감을 말리는 그런 옛 동네다.




자동차 한대 지나갈 너비의 길 옆에는 죄다 논이다.


그렇게 논과 밭 한가운데, 우리 집이 있다.


상당히 뜰이 넓어서 툇마루에는 햇빛이 기분 좋게 내려온다.




초봄에는 정말 따뜻하고 기분 좋지.


날이 따뜻해지면 할머니와 거기 앉아 같이 다과를 즐기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뜰에 자주 고양이가 찾아오게 되었다.




한마리가 아니라 여러 종류가.


점박이도 있었고, 세 색깔 털이 섞인 고양이도 있었다.


할머니는 볕을 쬘 때면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던져주곤 하셨다.




그런 풍경을,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가족들도 고양이를 쫓아내거나, 목걸이를 채워 집고양이로 삼으려 들지 않았다.


그저 "호랭이" 라던가, "점박이" 라던가 이름을 붙여, 바라볼 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머리가 좋지 않았던 나는 그대로 지역 식품회사에 취직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인데다, 직장환경도 좋았다.


우리 회사에서는 가다랑어포 가루가 매일 같이 잔뜩 나온다.




어느날 내가 그 가루를 가지고 돌아오니, 할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고양이는 가다랑어포를 정말 좋아하니, 분명 기뻐할게다.]


다음날부터 작은 도자기 그릇에 할머니가 가루를 올려두면 고양이들이 핥아먹게 되었다.




어느덧 할머니는 여든을 넘으셨다.


옛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쇼핑도 가시고, 노인정에서 회의가 열리면 꼭 나가셨는데, 어느새인가 집에만 머무르게 되셨다.


매일 얼굴을 마주보기에 무심코 넘어갔지만, 자세히 보면 뺨은 홀쭉하고 손에는 혈관이 선명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매일같이 고양이 먹이 주는 것만은 잊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지쳐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하시는 날에는, 나나 어머니가 먹이를 주었다.


재작년 여름, 내가 직장에서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왔을 때였다.




할머니가 줄곧 "쿠로" 라 부르던 고양이가 쓰레기 버리는 곳에 있었다.


땅에서 뒹굴거리는 걸 정말 좋아하고, 자주 먹이를 먹으러 오는 칠칠치 못한 인상의 고양이었다.


언제나 귀찮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아, 쓰레기 냄새를 맡고 왔구나." 싶어 조금 웃었다.


언제나 집에서 만나던 쿠로를 직장에서 만나니, 왠지 신선하고 조금 기뻤다.


쿠로는 나를 바라보더니 아장아장 다가왔다.




그리고는 쓰레기 봉투를 손에 든 내 앞에서, 등을 쫙 펴고 앉았다.


평소라면 발밑에 바짝 다가와 먹이를 달라고 조르던 쿠로가, 마치 경례라도 하는 듯 앞발과 귀를 세우고 나를 바라본다.


그런 쿠로의 모습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다.




울지도 않고, 침도 흘리지 않고, 그저 내 눈을 바라보았다.


쿠로가 전하려던 건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찾아오고야 마는 것.




나는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울었다.


고무장갑을 벗고 눈시울을 눌러도, 눈물은 자꾸 흘러나왔다.


오열 같은 소리와 딸꾹질이 멈추질 않았다.




흐릿한 시야에 쿠로가 번져서 보였다.


아직도 내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듯.


[알았어, 알았으니까.]




나는 울먹이며 쿠로에게 말했다.


가슴이 무언가로 꽉 조여진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장식물 같이 움직이지 않는 쿠로의 얼굴은 눈물로 번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왜일까, 몹시 무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것이 견딜 수 없이 슬펐다.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울고 있는 나를 상사가 찾아냈다.




그런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나는 그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상사를 따라 돌아가는 사이, 뒤를 돌아보니 쿠로는 이미 거기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라는 전화가 온 것은, 사무실에 들어온 직후였다.




지금도 우리 집에는 따뜻한 날이면 고양이들이 찾아온다.


햇빛도 쬐고, 먹이를 달라고 어머니를 보채고.


나는 아직 본 적이 없지만, 종종 쿠로가 등을 쫙 펴고 툇마루를 바라본다고 한다.




그런 때면 어머니는 방석과 차, 과자를 툇마루에 올려두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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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826th]3층의 토시코

괴담 번역 2017. 2. 1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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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으로 가득 찬, 새 생명의 숨결을 느끼는 계절이리라.


하지만 나 정도 나이가 되면, 무언가 번거롭고 초조한, 그래서 묘하게 조용한 잠을 원하게 되는 계절이다.




한밤 중, 고양이가 우는 것을 들으며 천장을 올려다 보는 때.


혹은 이렇게 툇마루에 앉아 벚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을 때.


쓸데없이 옛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편의 공기에 맞춰 숨을 쉬고 있다.


위험하다고 느껴 정신을 차리면, 몹시 지쳐있음을 느끼곤 한다.


분명 이름은 토시코였을 것이다.




우리 외갓집은 도쿄 변두리에서 생선가게를 했었다.


타이쇼[각주:1] 무렵에는 황궁에도 생선을 팔았었다니, 그 규모가 보통이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가게 구조는 그리 크지 않았다.




1층에는 가게가 있고, 2층에는 가족들이 사는 집이고, 그 위에 3층이 있었다.


3층이라고는 해도 이불을 넣는 창고와 다다미 4장 반 정도 크기의 작은 방이 하나 있을 뿐이다.


토시코는 전쟁 전부터 그 방에서 먹고자며, 더부살이로 일하던 가정부였다.




외갓집에는 가족도 많아 딱히 일손이 모자랄 일은 없었지만, 지인이 아무쪼록 부탁한다며 말해와 토시코를 떠맡았다고 한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을까.


다들 토시코 내지는 토시짱이라고 낮춰부르곤 했지만, 나이는 이미 그 무렵에 마흔을 넘었던 것 같다.




장애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조금 머리가 안 좋고 말도 부자연스러웠다.


매년 정월, 친척이 모이면 토시코는 뭐가 그리 기쁜지,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요리와 술병을 나르며 바삐 일했다.


다만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어른들에 싫증난 우리 아이들과 놀았던 기억은 없다.




내가 여덟살인가 아홉살이던 때, 그 토시코가 죽었다.


사흘인가 앓아눕더니, 반시간 동안 끙끙대며 괴로워한 끝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장례식에는 어머니만 갔다.




유골은 고향에 가지러 갔는지, 아니면 고향에서 누가 가지러 왔는지.


어찌되었든 외갓집 무덤에는 이름이 없다.


그리고 일년 정도 지났을 무렵, 아마 봄 춘분과 추분 사이가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에게 이끌려 외갓집에 갔으니,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어머니 곁에 앉아, 숙모들에게 떠받들어지며 초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오줌이 마려워져,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복도 끝을 오른쪽으로 돌면 있었다.


메이지[각주:2] 초기에 지어진 꽤 낡은 집이었기에 복도는 가늘고 어두웠다.


마루는 황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볼일을 마치고 또 복도 끄트머리까지 오니, 정면에 좁고 어두운 계단이 있었다.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계단이 갑작스레 튀어나왔을 뿐더러, 전등도 있는지 없는지, 올려다 본 위쪽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 계단 중간보다 조금 위에, 토시코가 서 있었다.


사람들이 몰렸을 때 보여주던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제껏 3층에 발을 디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무언가 올라가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가 예전부터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동했기에, 나는 계단에 한쪽 발을 먼저 올렸다.




[아니된다! 가면 안돼!]


그때, 등뒤에서 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거기에는 증조외할머니가 서 계셨다.




무척 장수하신 분이라, 99살 되시던 해까지 사셨다.


그때는 아마 80살 정도 되셨을 것이다.


남편을 일찍 잃고도 여자 혼자 가게를 크게 키운, 다부지면서도 대하기 어려운 분이셨다.




그 증조모가 나를 향해 [어서 이리로 오련.] 하면서 손짓하고 계셨다.


다시 계단을 올려보자, 과연 증조외할머니는 무서웠는지, 토시코는 등을 돌리고 천천히 계단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 모습은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증조외할머니는 내 옆, 계단 아래까지 오시더니, 잔뜩 찌푸린 얼굴로 위를 바라보셨다.


[그렇게 잘해줬건만... 못된 장난 따위는 하지 말아라.]


나중에 숙모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외갓집에서 살던 이종사촌 셋도 다 같은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토시코는 어른이 있으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 3층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집은 어느새인가 재건축되어, 콘크리트로 된 2세대 주택으로 다시 세워졌다.




지금은 증조외할머니도, 숙모들도 다 저세상으로 건너가셨고.


봄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조금 애매해지곤 한다.


그런 일을 생각하다보면, 또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게되는 요즘 세상이다.



  1. 大正. 타이쇼 덴노가 즉위했던 시기를 일컫는 연호. 1912년부터 1926년 사이를 뜻한다. [본문으로]
  2. 明治. 메이지 덴노가 즉위했던 시기를 일컫는 연호. 1868년부터 1912년 사이를 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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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825th]남편 같은 것

괴담 번역 2017. 2. 14.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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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집에 남편 같은 게 돌아온다.


출장 중이나 시골에 내려가 있어서 돌아올리가 없는데도.


언젠가는 캐나다에서 국제전화로 통화하고 5분 지나서 [다녀왔습니다.] 라며 돌아왔었다.




시간적으로 부자연스럽지 않았다면 의심조차 안했을 정도로 남편 그 자체였다.


이상한 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남편 같은 건 어느새인가 사라져버린다.




식사를 준비하고 있거나, 여하튼 시선을 돌리고 있으면 그 사이 사라지는 것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동거했지만, 당시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니 어쩌면 지금 사는 집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나도 익숙해진 것인지, 진짜 남편이 돌아와도 의심하게 될 정도다.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무섭다.


남편에게도 직접 말해봤지만 믿어주질 않는다.


지난번 친구가 묵으러 왔을 때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남편의 생령이라면, 그래도 남편 본인이니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혹시 남편으로 가장한 다른 무언가라면...


오늘은 남편이 계속 집에 있으니 안심하고 있지만, 언젠가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무서워진다.




친구는 비디오나 녹음기로 남편 같은 게 왔을 때 기록을 남기라고 조언했지만, 왠지 모르게 꺼려진다.


단 한번, 남편 같은 게 광고지에 낙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정작 남편에게 보여주니 그냥 내가 장난치는 것이라 여겼는지 웃어넘겼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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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친척이 세상을 떠나 장례식에 갔는데, 아직 젊은 나이였던 고인의 부모가 해준 이야기란다.


죽은 친척은 한밤 중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 사고를 냈다.




콘크리트 벽에 정면 충돌한 사고였다.


차 안에는 친구 둘이 함께 타고 있었다.


친구 두명은 사고 현장에서 즉사했지만, 친척은 의식불명 상태로나마 목숨을 건졌다.




입원한 병원은 개인실로, 가족들은 돌아가며 밤새도록 곁을 지켰다.


그런데 날이 지날수록,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고 한다.


새벽 2시쯤이 되면, 병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더라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다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지만, 모두가 같은 경험을 했다는 걸 알고 깨달았단다.


[죽은 친구들이 부르러 왔구나!]


그날부터 문이 열리면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달라붙어 가지 말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결국 친척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고가 났을 때, 운전을 하고 있던 건 친척이었다고 한다.


아마 친구들은 자신들을 죽음으로 이끌어 놓고, 혼자 숨이 붙어 있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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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823rd]쏟아지는 비

괴담 번역 2017. 2. 10.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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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8시 지날 무렵, 자전거를 타고 아르바이트에 나섰습니다.


집을 나올 때는 맑았는데, 나오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아르바이트 장소까지는 자전거로 10분 거리.




다시 돌아가 우산을 가져오기도 귀찮아, 나는 그대로 빗속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그런데 비 내리는 게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한두방울 뚝뚝 떨어지나 싶었는데, 곧바로 쏴하고 쏟아져내리는 큰 비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도 비가 많이 내려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손은 핸들을 잡고 있어, 얼굴도 훔치지 못했고요.


결국 그대로 반쯤 눈이 감긴 채로 죽어라 달려 아르바이트 장소까지 갔습니다.




도착할 무렵에는 코트까지 흠뻑 젖어있었죠.


뒷문 근처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가게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뒷문 바로 옆에는 스탭 룸이 있고, 탈의실도 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스탭 룸으로 들어갔죠.


안에는 부점장과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는 여자아이 둘이 있었습니다.


스탭 룸에 들어서자마자 [왜 그래, 그거!] 라는 질문이 날아들었습니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갑자기 비가 막 쏟아져서...] 라고 대답하고, 옷을 갈아입으려 탈의실로 향하려던 터였습니다.


춥고 젖어 있었으니 기분도 나빴거든요.


하지만 부점장은 내 팔을 잡았습니다.




[정말로 왜 그런거야, 그거. 무슨 일 있었어?]


진지한 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내렸다니까요...] 라고 말했지만, 손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러는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방에 있던 여자아이가 말했습니다.




[그치만 비는 전혀 오질 않았는걸?]


그리고는 뒷문을 열었습니다.


밖에 비는 한방울도 안 내립니다.




나는 뭐가 뭔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당장 나는 흠뻑 젖어서 가게에 들어섰는데.


비가 내리지 않았다니, 그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땅도 바싹 말라있고, 오직 내 발자국만 남아 있습니다.


가게 사람들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비를 맞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아르바이트 장소까지 오는 내내.


결국 가게 사람들한테는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게 사람들도 모두 이상하다고 말하며 오싹해 했습니다.




집에 돌아올 때는 아무 일 없었습니다.


이것도 심령현상 같은 걸까요?


개인적으로는 전혀 납득도 안 가고,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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