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2017/07

320x100



3년여 전, 분수 광장 근처에서 이상한 여자가 서성이곤 했다.


출근길에 자주 봤었다.


서른 남짓 되어 보이는데, 오래 된 것 같은 빨간 드레스 같은 걸 입고 있었다.




몸은 바싹 말랐고, 안색은 어두운데다 눈도 공허했다.


머리는 등 가운데까지 내려와, 기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옷 색깔이 워낙 튀는데다, 독특한 분위기가 감돌아서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하지만 뭔가 무서운, 정신 나간 것 같은 느낌이라 무심코 바라보기는 해도 눈이 마주치지는 않도록 조심했다.


여자는 늘 광장 안을 맴돌았다.


지하출구를 나오면 거기 몇 군데 술집이 있기에, 거기서 일하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광장 안 드러그스토어 앞에서 화장품 세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쇼핑할 때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라, 그 때도 아마 한시간 정도는 거기 머물렀던 것 같다.


그날 밤도 여자는 광장을 떠돌고 있었지만, 맨날 보던 모습이라 딱히 신경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게에서 나온 순간,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광장 한가운데 있는 분수를 사이에 두고, 여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고 있음에도,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은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여자는 확실히 보였다.


눈이 마주친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뭔가 본능적으로 두려워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와, 위험해.


하지만 뭐가 위험하다는 것인가?




스스로도 사고회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가게 안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가위에 걸린 것 마냥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도움을 구하려 해도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고.




항상 비틀거리며 걷던 여자가 곧바로 빠르게 다가온다.


분명히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머리는 산발에, 드레스 자락을 잡은 채 다가오는데,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너무나 무서워서 나는 압도되고 말았다.


눈 전체가 검은자위였거든.


무서워서 더는 안되겠다 싶은 순간,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내 팔을 꽉 잡았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그제야 몸이 움직였다.


웬 남자였다.


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 남자는 [조용히 해.]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남자는 점점 손아귀 힘을 더하며 무서운 얼굴로 앞을 노려봤다.


시선을 돌리자, 여자가 바로 앞에 서서 남자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나 끔찍한 그 얼굴에, 나는 벌벌 떨었다.




갑자기 여자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죽인다...] 라고 중얼거리며 남자 옆을 부딪히듯 지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그 후 나를 붙잡고 역 구내까지 간 뒤, 그제야 손을 놓았다.


역 안은 사람들이 가득해, 방금 있었던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멍하니 있자, 남자는 [괜찮아?] 라고 말을 걸었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나는 패닉에 빠져있었다.


상대의 이름을 묻거나, 감사를 전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남자는 나를 개찰구까지 바래주었다.


헤어지면서 [이제 거기로는 다니지 마.] 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 때문에라도 다녀야 하는데요.]




[목숨이 아까우면 그만둬.]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자,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았어. 네 수호령이 나를 불러서 너를 지켜준거야.]




나는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우연이라고. 알았어? 네가 살아남은 건, 수호령의 부름을 알아차릴 사람이 마침 근처에 있었던 덕분이라고. 저놈에게 죽고 싶지 않으면 다시 거기로 다니지 마.]


영혼 따위 본 적도 없기에,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 눈에 여자는 사람으로만 보였고.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남자는 몇번이고 [혼자 다니지 마라.] 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하지만 다음날 낮, 나는 또 그 광장을 지나갔다.




낮이다보니 공포감이 희미해지기도 했고, 실제로 지나가는 사이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귀가길, 날이 어두워지자 남자가 말했던 것들이 떠올라 무서워졌다.


그래도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는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 여자가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하지만 어리석은 짓이었다.


광장으로 이어진 계단을 반쯤 내려가자,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나에게 등을 보이고 계단에 앉아있었다.




그제껏 여자가 계단에 앉아있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달아나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여자는 슥 일어섰다.


마치 마리오네트의 줄이 끊긴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그 순간, 나를 바라볼 것 같다는 예감에, 황급히 계단을 뛰어올라 뒤도 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 후 나는 분수 광장은 무조건 피해다녔고, 두달 뒤 일도 그만뒀다.


아직도 그 여자는 거기에 있을까?



320x100

[실화괴담][99th]왜관터널의 원혼

실화 괴담 2017. 7. 23. 23:41
320x100



*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Jiwoojeon님이 방명록에 투고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칠곡군 왜관읍이라는 곳에 가면 폐터널이 있다. 


일제시대에 기차가 지나다니다 새로운 철도가 건설되면서 자연스럽게 버려진 곳인데, 중학교 2학년 시절 이맘때쯤 그 곳에서 겪은 일이다.


그때 난 왜관에서 친한 형과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시간까지 여유가 좀 생기게 되자, 난 오래 전부터 존재를 알고 있었던 그 터널에 담력시험 삼아 가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몇년간 동자승 생활을 한 적이 있다는 형은 재미있겠다는 듯 좋다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버려진 터널로 들어가게 되었다.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로에서 좀 비껴난 곳에 있는 터널은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음산했다. 




터널 반대편은 아파트 공사를 하다가 붕괴되었던가 하는 이유로 막혀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안으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증기 기관차가 지나다니며 천장에 남기기라도 했는지, 그을음이 여기저기 보였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으며 흙으로 가득 찬 터널의 끝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그 형이 내 팔목을 잡더니 입을 열었다.




[나가자.]


[네?]


[나가서 설명해줄테니까, 일단 나가자.]




나지막한 목소리와 달리, 내 팔목을 잡고 입구로 향하는 형의 발은 점점 빨라졌다. 


귀신은 커녕 아무런 느낌도 느끼지 못했던터라, 나는 어리둥절하면서 그대로 터널 밖까지 끌려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형은 숨을 고르더니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모래가 쌓여있던 부분 윗쪽에 새하얀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었어. 그걸 보니까 머리가 점점 아파와서 계속 있었다간 위험할 것 같아서 나온거야.]


[에이, 거짓말. 전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요?]


[아무나 그런 걸 다 느낄수 있는게 아니야. 믿건 말건 네 자유지만... 이제 돌아가자.]




결국 터널을 다 둘러보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걸어다녀서 몸이 피곤했던건지, 터널 안에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형에게 보내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난 잠이 들었다.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터널을 계속 뛰어다니는 꿈이었다. 


뒤에서 무언가가 쫓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계속 뛰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가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꿈에서 깼을 땐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잠을 다시 청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다음날 아침, 형에게서 답장이 왔다. 


형은 사진을 한장 보내왔다. 


어두운 터널 안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바닥 부분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있었다. 




형이 그린 듯한 동그라미였는데, 이게 뭐냐고 답장을 보내려던 순간, 다음 메시지가 왔다.


"찍은 사진들 다 지워라."


"한놈 기어온다."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886th]원숭이상

괴담 번역 2017. 7. 20. 23:50
320x100



지난번, 일 때문에 거래처를 찾아갔다 응접실로 안내받은 적이 있다.


거기 들어온 건 처음이었는데, 고가로 보이는 그림 옆에 거무칙칙하고 섬뜩한 상이 하나 놓여있었다.


차를 마시며 담당자와 거래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 상이 무엇인지 계속 신경쓰였다.




하지만 일과 관련도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무례하다 싶어 참고 있던 와중, 상대가 [카탈로그를 가지고 올테니 잠시 기다려주세요.] 라며 자리를 비웠다.


나는 상에 가까이 다가갔다.


입을 크게 벌리고 짖는 원숭이 형상이,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나무로 만든 게 아니라 진짜 원숭이처럼 보였다.


다만 박제와는 다르게 털이 없었고, 생선 마른 것 같은 색과 질감이었다.


마치 미라인 것 마냥.




높이는 받침대를 포함해 1m 가 채 되지 않았다.


찬찬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원숭이의 크게 벌어진 입에서 검붉은 애벌레 같은 것들이 기어나왔다.


바싹 마른 원숭이와는 달리, 번들번들 젖은채 꿈틀대고 있었다.




깜짝 놀라 물러서는 순간, 원숭이 입에서 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흔들린다, 흔들린다... 내일 아침, 흔들린다...]


확실히 그렇게 들렸다.




그리고 애벌레 같은 것은 쑥 들어가,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멍하니 있는 사이, 담당자가 돌아왔다.


[아, 그 원숭이상에 흥미가 있으신가요?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뭐, 장소에 맞질 않으니... 우리 회사 선대 사장님이 아끼던 건데, 결정을 내리기 힘든 문제가 있으면 글쎄 예언을 해줬다지 뭡니까.]




[...예언,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나는 겨우 목소리를 내서 물었다.


[설마요. 소리 한번 낸 적이 없습니다. 뭐, 내다버리기도 그렇고, 이렇게 화제가 없을 때는 가끔 도움이 되니까요.]




소파에 앉자 겨우 좀 안정되었다.


지금 본 걸 말할까 싶었지만, 담당자가 말하는 걸 보니 어설픈 농담으로 여길 것만 같아 그만두었다.


겨우 미팅을 마친 뒤, 나는 퇴근했다.




집에 돌아온 후, 방재용품도 확인하고 욕조에 물을 받아놨다.


흔들린다는 예언은 아마 지진을 말하는 거겠지.


그렇다고 방송국이나 정부 기관에 보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친 사람 취급이나 받을테니까.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했지만, 회사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다만 고향의 부모님에게 내일 아침 지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화만 했을 뿐.




부모님 역시, 웃어넘기셨다.


다음날, 나는 긴장한 나머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4시에 일어났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게 귀중품을 넣은 가방을 품에 안고 있었지만, 딱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출근시간이 되어, 나는 회사로 향했다.


8시가 넘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항상 아침을 먹는 호텔에 들렀다.




사람이 많아 합석을 하게 되었다.


재빨리 먹어치우는 와중, 탁자 위의 접시와 컵이 덜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 [왔구나!] 하고 외치며 일어섰다.




가게 안의 손님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합석한 대머리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 버릇이에요. 아무 생각 없이 그만...]




그 후, 아무 일 없이 그 날은 평범하게 지나갔다.



320x100

[번역괴담][2ch괴담][885th]강 너머 전우

괴담 번역 2017. 7. 13. 23:58
320x100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전쟁 도중 체험한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남쪽에서 미군과 전투를 했다는데, 운 나쁘게도 열세인 곳에 배치되어 서서히 후퇴하는 나날이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본대 위치가 발각되어 공습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필사적으로 후방을 향해 도망치는 사이, 동료들은 하나 둘 죽어나갔다.


할아버지도 죽음을 각오하고 이동했지만, 하루만 더 가면 안전해질 지점에서 폭탄이 떨어졌단다.


정신을 차리니 아군 진영인지, 병사들이 잔뜩 있었다고 한다.




강에서 가까운 공터 같은 곳이었는데, 많은 병사들이 뒹굴며 놀고 있어 전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할아버지는 근처에 있던 위생병에게 자기네 부대는 괜찮은가 물어봤다.


[강가 근처에 있을걸?]




강가에 가자 대장은 보이지 않았지만, 퇴각 도중 헤어졌던 동료들이 있었다.


제법 친한 녀석들이 보이기에 할아버지는 기뻤지만, 1/3 가량만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슬퍼졌다.


개중 절친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있는데, 강 저편에서 낯익은 동료가 큰소리로 할아버지를 부르더란다.




아무래도 같은 부대의 A인 듯 했다.


할아버지는 A가 강 저편에 있다는 걸 동료들에게 알렸다.


처음에는 다들 멍하니 강 너머만 바라보더란다.




할아버지 눈에는 확실히 A가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보이질 않는 듯 했다.


개중 누군가가 [아, 그런가?] 라고 말하더니, 다들 할아버지를 떠밀어서 [너는 저 녀석한테 헤엄쳐서 가봐!] 라고 말하더란다.


할아버지는 당황하는 사이 동료들은 할아버지를 강에 내던졌다.




할아버지는 부상자한테 무슨 짓을 하는건가 싶으면서도, A도 살아남았구나 싶어 기쁜 마음으로 통증을 참으며 헤엄쳐갔다.


건너편 강가에서 부르는 A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사이, 갑자기 엄청난 통증이 덮쳐왔다.


악어에게 물리기라도 했나 싶은 순간, 할아버지는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까까지 있던 곳과는 다른, 기지 안이었다.


할아버지는 통증을 참으며 위생병에게 어디인지 물었다.


할아버지가 후퇴하려던 곳보다 더 후방의 기지였다.




[고생 엄청 했구만. 업고 와준 동료한테 고마워 하라고.]


할아버지는 더 질문을 하려했지만, 일단 잠이나 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날, 할아버지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데 A가 찾아왔다.




A는 씩 웃으며 [너 어디 숨어서 혼자 뭐 먹기라도 했냐? 무거워 죽는 줄 알았네.] 라고 말을 건넸다.


할아버지는 A가 업어다줬다는 걸 알아차리고, [이것도 마른거야.] 라며 웃어넘겼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음에 걸리는 것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고 있자, A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부대에서는 7명 살았다.]


할아버지는 그 강둑에서 만난 사람들 이름을 말해봤지만, 전부 살아남지 못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늘 말하곤 했다.




[전쟁에 나서면 죽음으로 꽃을 피우라는 소리를 해댔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우끼리는 살아남았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게 다 같은 마음이었지.]


8년 전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강 너머 저편에서 옛 전우들과 잘 지내고 있을까.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