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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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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나는 친구 둘과 함께 술 한잔 하러 가자는 약속을 했다.


그날은 예약을 잡아놨었기에, 약속 시간 얼마 전에 가게에 도착했다.


준비된 독실로 안내된 뒤, 나는 자리를 잡았다.




방에는 아직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다다미 방에는 방석이 깔려 있고, 작은 탁자 밑은 바닥이 한층 낮게 파여 있어 다리를 내려놓고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어찌되었건 앉은 뒤, 나는 웃옷을 벗어 옆에 두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메뉴를 보며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발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들여다 봤지만 아무 것도 없다.


순간 탁자 다리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탁자의 짧은 다리는 다다미 바닥에 닿아 있었다.




즉, 내가 발을 내려두고 있는 빈 공간에는 아무 것도 없을 터였다.


나는 발을 좀 움직여서 다시 한번 아까 그 감촉을 찾았다.


있었다.




정확히 내 정면 근처에, 조금 동그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평평한 물체가 있었다.


다리를 조금 더 움직여보니, 이번에는 발끝이 아니라 정강이 바깥쪽에서 무언가 세로로 길쭉한 게 닿았다.




바닥에서 수직으로 솟아 있는게 아니라, 조금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다.


그 끝에는 또 둥글고 평평한 것.


나는 그게 무언지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또는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리다.


지금 내가 발로 더듬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사람의 다리였다.




다시 한번 내가 놓인 상황을 떠올려본다.


독실에 나 혼자.


고개를 들어봐도 확실히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다리가 있다.


몸은 가위라도 눌린 듯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다리와 다리가 맞닿은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자, 어느샌가 문득 그 다리의 감촉이 사라졌다.


아마 그 다리가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탁자 밑에서 다리와 다리가 맞닿을 때 다들 그러는 것처럼, 그냥 다리를 움직인 거지.




알 수 없는 존재가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행동을 한 덕에, 나는 조금이나마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아까 그건 뭐였지?




유령?


요괴?


볼일을 보면서, 나는 혼자 생각했다.




아니, 그것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뭐랄까, 의지 같은 것이.


마치 거기에 있는 것이 당연한 듯, 거기에 그저 있는 것이다.




생각이 채 정리되지 않은 채, 다시 독실로 돌아왔다.


익숙한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여어.]




어색한 목소리로 말을 걸며 그 앞에 앉았다.


한참 술을 마시며 별 거 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친구가 갑자기 [아, 미안하다.] 라고 말했다.


내게는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었기에, 오히려 알아차리고 말았다.


아마 친구 녀석 다리가 닿고 만 거겠지.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다리에.




[괜찮아, 신경 쓰지마.] 라고, 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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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까지 살던 아파트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공동 쓰레기장에 파란 리본을 맨 테디베어가 버려져 있었다.


조금 더럽기는 했지만 상태는 괜찮아서, 세탁만 하면 들고다녀도 문제 없을 정도였다.




꽤 귀여운데 아깝네 싶으면서도, 그대로 지나쳐 출근했다.


그리고 1주일 후, 더러운 상태까지 비슷한 테디비어가 버려져 있었다.


위화감을 느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다.




그 이후 며칠 간격으로 아파트 곳곳, 계단과 층계참, 난간과 현관 앞, 높고 낮은 집 베란다까지, 바로 그 테디베어가 난데없이 나타나게 되었다.


가장 기분 나빴던 건 현관문 안에 그 테디베어가 들어와 있었을 떄였다.


투입구는 10cm 크기도 안됐던데다, 그 집 사람들은 문을 잠궈뒀던 터라 경찰까지 출동할 정도로 문제가 되었다.




관리인이 수상하다고 주민들이 따졌지만, 방 여벌 열쇠는 주민들이 임의로 만드는 것 뿐, 관리인에게는 전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외에도 먹다 남은 쿠키가 같이 놓여 있었다던가, 현관문 옆 화단에 놓여 있을 때는 거기 심어져 있는 꽃을 끌어안고 있었다던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마치 테디베어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인가 싶다.




주민들은 계속 테디베어를 내다버리려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테디베어는 랜덤한 곳으로 돌아온다.


어느날을 경계로, 누구도 테디베어에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표면이 축축한데다 시체 썩는 냄새 같은 악취가 나고 묘하게 부드러워 기분 나쁜 탓이었겠지.




경찰에도 신고를 했지만, 실질적인 피해가 없다며 딱히 아무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거주자들 회의 끝에, 발견하면 각자 알아서 내다버리기로 했다.


나에게도 당연히 찾아왔었다.




다음날이 타는 쓰레기 버리는 날이라 쓰레기 봉투에 넣어뒀었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집 현관 앞에 떡하니 앉아있었다.


사람이 한 짓이라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고, 기분 나쁨이 극에 달할 정도였다.


오늘 아침, 스쳐 지나갔던 어린아이가 봉제인형 키홀더를 가지고 있길래 문득 떠오른 체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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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는 이른바 치매 환자였다.


남편에게 버림 받고, 양육권도 잃은 뒤, 아버지가 고모를 거둬 돌보아주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던 고모였지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묘하게 귀여워 해주셨다.




아마 고모의 큰아들이 나와 비슷한 나잇대였기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병 때문인지 어딘가 조금 이상해서, 주변 사람과 트러블을 빚기도 하고, 나한테도 노성벽력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엉엉 울기도 하고, 엉망진창이었다.




어느날, 고모는 우리 집에서 비스듬하게 앞쪽 집에 살던 I씨와 작은 트러블을 빚었다.


하지만 고모치고는 드물게도, I씨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고모는, [저놈은 어차피 지붕에서 떨어져 죽을 거니까, 괜찮아.] 라고 말했다.




고모는 그렇듯, 망상과 현실의 구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형한테는 [트럭과 트럭 사이에 끼여 죽을거야.] 라고 말했고, 어머니한테는 [머리에 암이 생겨서 죽어.] 라고 말했다.


아버지에게는 [바다에 빠져서 죽는다.] 라고 말했다.




고모한테 [그러는 고모는 어떻게 죽는데?] 하고 묻자, [나는 목을 매서 죽어.] 라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는 정말로 목을 매서 자살했다.


그 무렵에는 고모는 거의 정신을 놓아, 목욕도 하지 않아 악취가 심했던데다, 가위나 식칼 같은 걸 들고 돌아다니며 주변 사람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멋대로 남의 집 마당에 구멍을 파서 경찰에 신고가 들어갈 정도였으니, 솔직히 말해 고모가 자살했을 때는 다들 한시름 놓았다는 분위기였다.


고모가 죽고 몇개월 지나, 새해가 왔을 무렵,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I씨네 집 앞에 섰다.


황급히 가보니, I씨가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맞은편 집 할머니가 말하기로는, 손자가 놀러와서 같이 하네츠키[각주:1]를 하던 도중, 지붕에 하네츠키가 날아가 버렸단다.


그리고 그걸 주우러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갔다가 그만 발이 미끄러진 것이다.


I씨네 집 벽에는 사다리가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는 피가 고여 있었다.




I씨는 결국, 그 후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그 당시에는 이런 우연도 있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다음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업에 종사하는 외갓집을 찾아갔다가, 친척들이랑 낚싯배를 탔는데, 그만 바다에 떨어져 익사하신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몇년 뒤, 어머니가 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병원을 찾았는데,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했지만, 종양의 위치가 좋지 않은 곳에 있어 완전히 잘라내지는 못했다.


항암제를 복용하며 크기가 작아지나 했지만, 결국 재발했다.




두번째 수술을 받았지만, 다음에 또 재발할 가능성도 높고, 수술을 하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형은 4년여 전, 회사 주차장에서 트럭 청소를 하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다른 트럭과 사이에 끼여 죽었다.


나도 이제는 우연만은 아니라고 느끼고 있다.




고모는 내게, 불에 타 죽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을 무렵에는, 내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완전한 검증을 할 수 없다는 게 아쉽다.




  1. 羽根突き. 깃털 달린 공을 나무판으로 치며 노는 일본의 전통 놀이. 배드민턴처럼 상대하기도 하고, 혼자 튀기며 놀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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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922nd]ALS

괴담 번역 2018. 10. 2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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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에서 야근 할 무렵 있었던 이야기.


ALS[각주:1]라는 병에 걸려서, 근력이 저하된 나머지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게 된 여자 환자가 있었다.


커뮤니케이션은 문자판이라고 부르는, 히라가나가 하나하나 적힌 투명한 판을 사용했다.




환자가 시선을 옮기면 그 시선에 있는 글자를 상대가 읽어가며 이해하는 것이다.


한밤 중, 그 환자가 계속해서 너스 콜을 눌렀다.


환자 개인실에 찾아가 무슨 일인지 묻고, 문자판을 향한 시선을 읽었다.




[방 한 구 석 에]


[검 은 간 호 사 가 있 어]


읽다가 벌써 너무 무서워져서 나는 방에서 뛰쳐나오고 말았다.




복도로 나오자, 환자는 금세 다시 너스 콜을 눌렀다.


움직일 수도 없는 채 거기 남겨진 환자도 겁에 질렸을테지만, 나 역시 무서워서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 있던 선배를 불러, 함께 방에 돌아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검은 간호사 같은 건 사라진 듯 했다.


그 사건 이후, 그 환자는 나를 불신하게 된 듯 했다.


미안하지만, 나도 무서워서 어쩔 도리가 없었던 기억 뿐이다.




  1.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근위축성측색경화증.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어 근력이 점차 떨어지고, 끝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사망하는 불치병. 루게릭병으로도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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