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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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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이 겪은 이야기다.

나는 이렇다 할 체험은 한 적이 없어서, 아마 영감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 영감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지금도 친척들만 모이면 이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내가 2살 무렵, 내륙의 현에 살던 우리 가족은 바다가 있는 근처 현으로 여행을 갔다고 한다.

넓은 부지의 어느 신사가 관광명소인 지역이었는데, 인파가 가득한 곳에서 어린 나를 데리고 다니자니, 점심 즈음에 이미 녹초가 되었단다.

어느 가게고 사람이 붐빈 탓에, 번잡한 관광지를 벗어나 걸어갈만한 거리에 있는 작은 어촌에 들리게 되었다.



거기서 카이센동 같은 걸 점심으로 먹었다.

시골 해안 관광지에는 대개 비슷한 종류의 낡은 해물 요리집이 늘어서 있기 마련인데, 그 마을은 개중에서도 규모가 작아 관광객보다 늘상 다니는 지역주민 같아 보이는 노인들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 작은 식당가는 바다와 접해있었는데, 부두에서 50m 가량 떨어진 바다 위에는 이쓰쿠시마 신사를 방불케 하는 토리이 같은 게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물이 차 있지만, 오늘 저녁에는 썰물이라 저리로 내려가 걸어갈 수 있다오.]

가게 주인장이 토리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단골손님 왈, 근처 유명 관광지에 묻힌 이 마을의 자랑이란다.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점원이나 손님이 말 걸어오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 부모님이지만, 붙임성만큼은 좋아서 이야기를 적당히 들어주다 가게를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모처럼 왔으니 보고 가야겠다 싶어,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가 지난 신사로 돌아가 몇시간 산책을 하다, 저녁 무렵 다시 그 어촌으로 돌아왔다.

낮에 들렀던 작은 식당가는, 라디오에서 울려퍼지는 음악과 아저씨들의 사투리 섞인 말소리가 들려와 낮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를 알아차린 아저씨가 손을 흔들었다.

추천을 받았던 바다의 토리이는, 날씨와 타이밍이 좋았던 덕에 수평선에 잠기는 저녁놀에 비쳐 마치 잘 찍힌 사진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리고 물이 빠지자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갯벌이 드러나, 여기저기 웅덩이처럼 고인 바닷물이 저녁놀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길을 벗어나지 않으면 평범한 신발을 신은 채로도 토리이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 광경에 크게 감동한 아버지는 부두에 딸린 돌계단을 내려가 토리이까지 가보기로 했다.

어머니는 품에 안고 있던 나를 내려놓고 가방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꺼낼 참이었다.



그 순간, 어머니는 나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내가 어머니의 소매를 꽉 쥔 채 내려가려 하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원래 잘 우는 편이었고, 근처에도 들릴만큼 소리를 내서 울곤 했다지만, 그 때만큼은 뭔가 낌새가 이상했단다.

영화 같은 데서 무언가에게 습격당한 여자가 비명을 지르듯, 순간적으로 엄청난 소리를 숨조차 쉬지 않고 10초 가까이 비명처럼 질렀다는 것이다.

[끼야아아아악!]



다만 그때 얼굴에서 보이는 필사적인 표정과 눈물 때문에, "울고 있구나" 라고 어머니는 판단했다고 한다.

그 지경이 되니 아버지도 이상한 비명에 놀라 어머니 쪽을 돌아보고, 내 상태를 확인하러 부두로 돌아왔다.

​​당황한 어머니가 나를 다시 안아올려 달래기 시작하자, 곧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찾았다.



[아니, 왜 그런담, 이 녀석.] 하고 안심하며 웃은 순간, 이번에는 아버지가 발등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내려다보니 발목부터 그 아래, 신발과 양말까지 흠뻑 젖어있었다.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썰물은 커녕 부두 바로 아래까지 시커먼 바닷물이 가득 차 있었다.



돌계단은 방금 전까지 아버지가 서 있던 위치까지 물에 잠겨, 파도 소리도 똑똑히 들려왔다.

석양에 물든 붉은 하늘과 저녁놀에 빛나던 토리이는 변함 없는데, 오직 바다만이 이상하게 거무칙칙했다.

저녁놀 하늘색이 전혀 비치치 않는 새까만 수면에 군데군데 하얀 파도거품이 인다.



물이 발 아래 부두에 철벅철벅 부딪히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붉은 하늘과 검은 바다로 양분된 광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어? 썰물... 이었지?]



[썰물이었지... 물이 빠졌으니까 들어갔던거고...]

아버지는 자신이 착각해서 바다로 들어간 게 아닌가 혼란스러웠지만, 어머니도 분명히 물이 빠진 것을 보았기 때문에 둘 다 영문을 모르고 당황할 뿐이었다.

젖은 양말과 신발부터 갈아신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낮에 갔던 카이센동 집에서 잠시 쉴 요량으로 바다에 접한 그 가게로 향했다.



그러나 몇발짝 다가가자마자 깨달았다.

사람이 없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가게의 단골 같아 보이던 노인들도, 점원 아저씨도.



아까까지는 있었을 터인데,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싶어 돌아보면 라디오 소리였다.

문득 아버지의 시야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움직여서 돌아보니, 1층에는 가게고 2층은 민가인 듯한 집의 커텐이 막 닫힌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깨닫고 다른 가게 2층을 자세히 보니, 창문 너머 안쪽에 사람이 있었다.

다들 노인으로, 낮에 본 얼굴도 있었다.

그 몇개의 시선은 모두 무표정하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도 똑같은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 토리이로 가보라고 부모님을 권했던 이들이, 감정 없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어머니가 아버지 등을 밀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울어제낀 이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차 있었다는 것보다도, 그 토리이에 가보라고 추천했던 마을 사람들이 다들 아버지가 바다에 들어가는 걸 보고만 있던 게 무서웠어. 사실 처음부터 사람이 아예 없었던 게 더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는 웃으며 이 이야기를 해줬다.

[네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그대로 물에 빠졌을지도 몰라.]

나중에 찾아봤지만, 그런 토리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냥 토리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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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근무하던 회사 거래처에, 영업부 Y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는 40대 정도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일도 실수 없이 잘하는 분이었다.

다만 특이한 것이, 언제나 손목시계 아래 아대를 차고 다녔다.



그리고 왼팔이 오른팔보다 조금 길었다.

첫 대면 때부터 신경이 쓰였지만, 신체적인 특징이니만큼 굳이 물어보지는 않고 지냈다.

그 이유를 듣게된 것은 함께 일하고 몇년이 지난 후에야였다.



한 프로젝트를 마치고, 우리 회사와 Y씨네 회사가 합동으로 회식을 가지게 되었다.

마침 내 자리는 Y씨 옆이었는데, 일 이야기나 잡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Y씨는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분이었지만, 소탈하고 좋은 분인데다 영업할 때만이 아니라 사석에서도 무척 말을 잘하셨다.



약 한시간 가량 주거니받거니 술잔이 오가는데, 우연하게도 Y씨의 아대가 좀 늘어져서 그 아래가 슬쩍 보였다.

내 문장력이 서투른 탓에 잘 표현은 못하겠지만, 뭐라 말하기 어려운 흉터가 있었다.

켈로이드처럼 조금 부풀어 올라있었지만, 화상하고는 또 달랐다.



[Y씨, 그 흉터는 괜찮으신가요?]

술이 들어간 탓에, 나는 무심코 무신경한 화제를 입에 올리고 말았다.

[이거? 딱히 대단한 건 아니야.]



Y씨는 아대를 고쳐매더니, 모호하게 말을 흐린 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니, 내가 실언을 했다는 게 느껴져서 순식간에 취기가 달아났다.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



마음 깊이 사과했다.

그 사이 아대 너머로 손목을 쓰다듬고 있던 Y씨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너, 귀신 이야기 같은 거 믿는 타입이냐?]



뜻밖의 질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 오히려 좋아하는 편입니다. 옛날 이나가와 준지 공연도 가고 그랬으니까요.]



그러자 Y씨는 [그런가. 좋아, 그럼 말해주지.] 라며 천천히 상처의 유래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Y씨는 고등학교 시절, 여자친구와 함께 담력시험을 하러 간 적이 있다고 한다.

담력시험이라고는 해도 본격적인 심령 스폿 같은 게 아니라, 변두리 작은 잡목림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던 정도의 곳이었단다.



Y씨는 방과 후 여자친구와 함께 잡목림에 가 봤지만, 그럴듯한 건 전혀 없었다.

속은 듯한 기분이었지만, 후미진 곳에 작은 토리이와 사당을 발견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인지, 사당은 여기저기 나무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담력시험이고 뭐고 싫증이 난 Y씨는 여자친구에게 [이제 그만 돌아가자.] 하고 말을 걸었다.

그러나 여자친구는 어째서인지 사당 앞으로 가더니, 당연하다는 듯 문을 열었다.



[뭐야, 이게? 이거 봐, 이거.]

안에는 부적과 촛대, 그리고 어째서인지 제단 위에 돌이 올려져 있었다.

크기는 주먹만하고, 딱히 별다를 것 없이 어디에나 굴러다닐 법한 돌이었다.



여자친구는 사당에 손을 넣더니 아무렇게나 돌을 쥐더니 Y씨에게 내밀었다.

[저기, 기왕 온 거 기념품으로 이거 가져갈까?]

Y씨는 여자친구에게서 돌을 받았다.



[그만두자, 바보 같잖아.]

그리고나서 원래 자리에 돌려놨으면 좋았을텐데, Y씨는 돌을 숲 안으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담력시험은 그것으로 끝이 났지만, 큰일이 일어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전철을 타고 통학하던 Y씨는, 그날도 평소처럼 역에서 여자친구를 만나 둘이서 전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랫폼에 들어서자 여자친구의 상태가 어쩐지 이상해 보였다.

술취한 것마냥 비틀비틀거리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야, 위험하잖아. 컨디션이 안 좋기라도 한거야?]

걱정하는 Y씨의 물음에도 여자친구는 [괜찮아, 괜찮아.]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걸음걸이는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었다.



비틀비틀대던 여자친구는, 그만 몸의 균형을 잃더니 선로로 떨어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위험해!]

Y씨는 왼손으로 여자친구의 팔을 잡고, 떨어지려는 것을 겨우 막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왼손은 Y씨의 의사와는 반대로, 한번 잡은 여자친구의 팔을 다시 놓아버렸다.

여자친구는 그대로 선로에 떨어져, 역에 진입하고 있던 전철에 치이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Y씨는 주저앉아 울며 여자친구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주변 사람들이 Y씨가 여자친구를 도우려 했다고 증언한 덕분에 사건은 불행한 사고로 처리되었다.

하지만 Y씨는 강한 자책감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여자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이레째 되는 밤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Y씨는, 심한 숨막힘에 눈을 떴다.

[헉, 헉, 헉...]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상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시 옆으로 누워 자려했지만, 또 숨이 막혀 깨고 말았다.

마치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참을 수 없게 된 Y씨는 밤을 새야겠다 싶어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거울을 보고 소름이 끼쳐 그 자리에 멈춰섰다.

목에는 손으로 조른 듯한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뭐야, 이게...]



그제야 처음으로 심령현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Y씨는, 방으로 돌아가 불을 켜 놓은 채 이불을 뒤집어 쓰고 벌벌 떨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마는 덮쳐왔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Y씨에게, 다시금 심한 숨막힘이 찾아왔다.



이불을 걷어찬 Y씨는, 그제야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왼손이었다.

잠에 들면 왼손이 자아를 가진 것처럼 멋대로, Y씨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고민 끝에 Y씨는 침대 옆에 있는 책장에 끈을 걸어, 왼손을 묶은 채로 잠에 들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말이지, 잘때는 계속 왼손을 묶어 두는거야. 벌써 30년이 다 됐군.]

Y씨는 힘없이 웃으며 아대를 벗어 왼손목을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손목이 계속 쓸리다보면 이렇게 되는거라고.]

같은 곳에 계속 쓸린 상처가 거듭되다 보면, 이렇게 뭐라 설명도 못할 흉터가 남는 것인가.

[왼팔이 조금 더 긴 것도 그거 때문인가요?]



기왕 이리된 거, 궁금했던 걸 다 물어보자 싶어 나는 질문을 던졌다.

[아마 그렇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오른손이랑 양 발목도 묶어두고 잘 걸 그랬다 싶어.]

그렇게 말하며 Y씨는 평소처럼 껄껄 웃었다.



[씻김굿 같은 건 받아보셨나요?]

[가봤지, 가봤어. 몇번이고 씻김을 받았어. 그 사당에도 다시 가서 몇번이고 사죄했지만 안되더라. 용서해 주질 않아.]

[그때 던졌던 돌은 어떻게 됐어요?]



[찾아봤지만 결국 못 찾았어. 뭐, 특이한 거 없는 그냥 돌이었으니까. 그날 던져버리지 않았으면 어땠을지, 지금도 후회하고 있어.]

내가 생각할 수 있을만한 대책은 이미 다 해본 듯 했다.

나는 얕은 질문으로 안 좋은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이 죄송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뭐랄까, 죄송합니다. 아무 도움도 못 되어드리면서 이야기만 듣고...]

[됐어, 됐어. 딱히 숨기는 이야기도 아니고, 내가 정신만 차리면 왼손도 나쁜 짓은 못하니까.]

처음 들은 내게는 소름 끼치는 이야기지만, Y씨는 이미 이 괴기현상과 타협이 끝난 거겠지.



[뭐, 그렇지만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아마 왼손한테 살해당하는 게 아닐까 싶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Y씨는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이직을 하게 되었고, Y씨와도 연락이 끊겼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Y씨가 살아계시다면 지금은 환갑을 바라볼 나이겠지.

분명 지금도 잘 때는 왼손을 묶어두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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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5ch괴담][1011th]밤의 건널목

괴담 번역 2022. 8. 2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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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 겪었다는 신기하고 조금 오싹한 이야기.

그 사람은 밤 시간에 운동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달리는 루트는 언제나 똑같은데, 도중에 어느 철도 건널목을 지나가야만 한다.



그 건널목은 사람이 죽었다느니, 심령현상이 일어난다느니 하는 소리는 전혀 없는 보통 건널목이다.

낮에는 지나다니는 차도 꽤 많다.

어느밤, 평소처럼 지인은 달리던 도중 그 건널목 앞에 도착했다.



마침 경보기가 울리며, 차단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지인은 [운이 나쁘네... 이 건널목, 역이랑 가까워서 꽤 오래 기다려야 한단 말이지.] 라고 혼잣말을 하며,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잠시 동영상이라도 보며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니야?] 

지인은 짜증 반, 의아함 반으로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귓가에서 땡땡 울리고 있던 경보기 소리가 뚝 멈춘 것을 깨달았다.

차단기도 올라간 채였다.

전철이 그 사이 지나간 건가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눈앞에서 전철이 지나가면 덜컹거리는 진동 때문에라도 알아차렸을 터다.



경보기 알림음은 환청을 들었을지 모르지만, 붉게 깜빡이며 눈 앞으로 내려오던 차단기를 눈으로 확실히 본 건 어떻게 변명할 도리도 없다.

지인은 공포보다도, "어째서?" 라는 난감한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득,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시커먼 건널목을 바라보자, 묘하게 무서워진 나머지 온힘 다해 달려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고 한다.



그 후로도 그 건널목은 몇번이고 지나다녔지만, 그런 현상은 그날 하루 뿐이었다고 한다.

딱히 마무리라고 할만한 건 없는 이야기지만, 어쩐지 그 광경을 상상해보면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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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5ch괴담][1010th]산 속 탐험

괴담 번역 2022. 3. 1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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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일 때 겪은 일이다.

여름방학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지만, 부모님이 어디도 데려가 주지 않아 엄청 심심했었다.

그래서 사이가 좋던 친구를 전화로 불러내, 적당히 뭐라도 하면서 놀 생각이었다.



하지만 친구들도 방학이라고 여행을 가고, 시골에 놀러가는 등 다들 바빠서 결과적으로는 2명만 모이게 되었다.

고작 세명 뿐이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에 모여 뭘하고 놀지 상의를 하기로 했다.

[뭐하고 놀까?]



[게임 할래?]

[기껏 모였는데 게임은 좀 그렇지. 밖에 나가서 놀자.]

[그치만 세명 가지고서는 술래잡기나 숨바꼭질도 별로 재미없는걸.]



[그럼 저쪽 산에 탐험하러 갈래?]

저쪽 산이라는 건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산이었다.

지역에서 가장 큰 산이었는데, 드물게 등산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하지만 그곳에 아이들끼리 가는 건 위험하다고 어른들에게 신신당부를 들었기에, 나는 일단 반대했다.

그러나 친구 두 명이 [그 산에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안 들킬거야.] 라며 억지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호기심 반 불안 반의 심정으로 그 산에 탐험을 나서게 되었다.

일단 각자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도록 주스랑 과자, 목장갑 같은 걸 배낭에 챙기고, 그 산 기슭에서 다시 모이기로 했다.



기슭에 도착하니 하늘은 미묘하게 흐려서 어두웠기에, 탐험은 그만둘까 싶었다.

하지만 친구 두 명은 [정상에서 야호 외치자고.] 라며 들떠있었는데다, 내가 같이 놀자고 전화까지 해서 불러낸 탓에 그만두자는 소리는 꺼내기도 어려웠다.

결국 우리는 그대로 정상을 목표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막상 산에 오르기 시작하니 산길이 험하고 뾰족한 바위와 나뭇가지가 반팔 반바지 차림의 살갗에 긁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친구 두 명도 처음에는 즐겁다는 듯 [대단해!] 라던가 [쩔어!] 하고 조잘댔지만, 어느새인가 [지쳤어.] 라던가 [정상은 아직 멀었나?] 하고 피로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니, 꽤 넓게 펼쳐진 공간이 나왔다.



우리는 거기서 과자를 먹으며 좀 쉬기로 했다.

친구 A는 [좋았어, 저기 제일 먼저 가는 사람이 가장 과자 많이 먹는 걸로 하자.] 라고 말하고는, 아까 전까지는 그렇게나 힘들다고 칭얼댄 주제에 엄청 빠르게 달려가 버렸다.

나와 친구 B는 [뭐야, 저 바보 녀석.] 하고 웃으며 뒤를 따랐다.



그러자 친구 A가 [대단하다!] 하고 소리를 치는 게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친구 A를 향해 다가갔다.

넓게 펼쳐진 공간에 다다르자, 친구 A가 소리를 지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신사였다.

그 신사는 붉은색과 노란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을 띄고 있었다.



게다가 새전함 옆에는 박제된 듯한 사슴 머리가 장식되어 있고, 신사에 자주 있는 커다란 방울에는 수많은 탄자쿠가 걸려 있는 등 평범한 신사로는 도저히 보이질 않았다.

특히 이상한 것은 크기였다.

눈짐작으로는 주변 나무보다 훨씬 커서, 마치 도쿄의 고층 빌딩 같은 높이로 보였다.



보통 그렇게 큰 건물이 있다면 산기슭에서도 눈에 띌텐데, 그런 신사의 존재는 여태껏 한번도 본 적도 없었고 보이지도 않았다.

[엄청 크잖아... 이렇게 큰 건물이 언제부터 있었지?]

[이 산, 우리 집 근처라서 매일 같이 보지만 이렇게 큰 신사는 본 적이 없어.]



[이렇게 크면 당연히 눈에 띌텐데 왜 아무도 모르는거지?]

한동안 신사 주변을 돌며 그 크기에 감탄했지만, 갑자기 친구 A가 [들어가보자.] 하고 말을 꺼냈다.

이렇게 흥미로운 건물이 눈앞에 있는데 들어가보지도 않는 건 말도 안된다며.



나는 흥미롭다기보다는, 이상하고 기분 나쁜 건물이라고 여겼기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친구 B도 나와 같은 의견이었는지, [멋대로 들어가는 건 범죄야. 그만 두는게 좋아. 어쩐지 기분도 나쁘고.] 라고 말하며 A를 말리려 들었다.

하지만 친구 A는 우리를 겁쟁이 취급하며, 말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신사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친구 A는 신사 안에서 [너희도 와봐. 금빛 부처님이 있어. 얼마짜리일까?] 라던가, [멧돼지 박제도 있어!] 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나는 호기심에 들어가보고 싶어졌지만, 친구 B가 말한 어쩐지 기분 나쁘다는 이야기가 묘하게 머릿 속에 남았기에 그저 친구 A의 동태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흐른 뒤, 친구 A는 [계단도 있어! 이거 올라가 봐야지.] 하고 말하더니,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우리는 과자를 까먹으며 친구 A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A가 계단을 내려오는 듯한 낌새가 없었다.

나와 B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지만, 점점 해가 저물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조바심이 난 나와 B는, 어쩔 수 없이 신사 안에 들어가 A를 데리고 나오기로 했다.

안에 들어선 뒤 우리는 깜짝 놀랐다.



바깥의 기묘한 장식들과는 다르게, 안에는 아무 것도 없고 나무바닥과 기둥 뿐이었으니까.

A가 말했던 멧돼지 박제나 금빛 부처님 같은 것도 없었다.

우리는 [뭐야, 그 녀석. 거짓말 한거야? 아무 것도 없잖아.] 하고 화를 냈지만 문득 이상한 걸 깨달았다.



계단이 없었던 것이다.

A가 올라간다고 했던 계단이.

우리는 실내 구석구석을 돌아보았지만 계단 같은 건 아무 곳에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는 방에서 A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던 것일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계단이 없어?]

[그것도 그렇지만, A는 어디로 사라진거야?]



우리는 위를 향해 A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A는 올라간 뒤 계단을 치운 걸지도 모른다.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 억지로 스스로를 납득시켜가며, 우리는 신사 밖에서 다시금 A를 기다리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자 무언가 이상했다.

신사의 모습이 크게 변해있던 것이다.

사슴 머리나 새전함, 탄자쿠가 묶인 방울, 알록달록하던 외관 모두 사라져있었다.



게다가 고층 빌딩 높이만큼 크던 신사가, 주변에 있는 나무 높이 정도로 작아진 상태였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내가 패닉에 빠져 있는 사이, [쿠과과과광!] 하는 땅울림이 들려왔다.

겁에 질린 나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려 했다.



그 순간 친구 B가 외쳤다.

[신사가 가라앉고 있어!]

무슨 소린가 했지만, B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잘 봐! 신사가 땅으로 가라앉고 있어. A가 생매장당한다고!]

B는 계속 A의 이름을 외치며 나오라고 애원했다.

확실히 신사는 조금씩이지만 큰 소리를 내며 땅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나도 B와 함께 A를 애타게 불렀지만, 커다란 땅울림 소리에 묻힐 뿐이었다.

안에 들어가 A를 찾고 싶었지만, 입구마저 점점 땅에 묻히는 것을 보니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친구 A는 신사에서 나오지 못했다.



곧 신사는 완전히 땅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남은 것은 여기저기 갈라지고 내려앉은 지면 뿐.

우리는 부리나케 산을 내려온 뒤 가까운 우리 집에 뛰어들었다.



집에 있던 아버지에게 산에서 있던 일을 말한 뒤 친구 A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냅다 우리 머리를 후려치며 산에 올라간 것을 혼냈다.

[그리고 친구 A라니, 그게 누구야?]



나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A를 모를리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A네 아버지는 오랜 친구였고, A가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온다는 것도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다.



[농담하지 말고 빨리 구해야 해요! A의 목숨이 걸렸다고!]

나는 필사적으로 호소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모른다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친구 B의 반응이었다.



[어? A? 그게 누구야?]

나는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그냥 산에서 탐험하고 있었는데 네가 갑자기 혼자 뛰쳐나갔잖아. 나만 혼자 남아서 정말 놀랐다고. 너 괜찮냐?]



나는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내가 이상해진 걸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해진 걸까.

친구 A의 아버지는 그대로였지만, 어머니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둘 사이의 아이도 A와는 다른 사람으로, 마치 A를 대신하기라도 하듯 우리 집에 드나드는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내가 산에서 본 광경은 모두 무엇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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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 막 자취를 시작했을 무렵의 이야기다.

어느날 밤, 방에서 혼자 게임을 하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래층에 손님이 많이 오기라도 한건가 싶었지만,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니 몇명 수준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훨씬 더 많은 사람 소리 같다고 할까.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마치 혼잡한 지하철 역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때는 그저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시끄럽게 보는 거겠지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잘 무렵이 되서도 그 웅성거리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엄청 큰 소리는 아니지만, 새벽 3시가 되도록 그 소리가 들려온 탓에 결국 너무 신경쓰여서 그날은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했다.

그 후 며칠간, 매일은 아니지만 밤 10시부터 새벽 3시 사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빈번히 들려왔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진 끝에, 결국 나는 한소리 늘어놓으려고 아래층 사람을 찾아가게 되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아래층 사람이 나왔다.

나는 나보다 두세살 위일까, 보기에는 학생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윗집에 산다는 것을 밝히고 층간소음 때문에 힘들다고 말을 꺼내자, 그 사람은 갑자기 기분이 언짢아진 듯 했다.

[당신이야말로 매일 한밤 중에 뭘하는 거야. 시끄러워서 못 견디겠다고.] 하고 역으로 화를 내는 것이었다.

일단 아랫집 사람을 사토씨라고 해두자.



그가 말하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한 나는, 사정을 처음부터 설명했다.

아래층에서부터 거의 매일 같이 수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그러자 사토씨는 웅성거리는 소리는 위에서 들려오는 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 때문에 부동산에 항의를 하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 목소리였다.



몇번이고 들었으니 잘못 들었을리도 없다.

게다가 사토씨도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지 않는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사토씨가 말했다.



[...이 집 천장에 무언가 있는걸까?]

사토씨는 [천장 밑에 가볼까?] 라고 말하더니,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손전등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나는 멋대로 들어갔다가 혹시나 천장이 무너지거나, 어디 파손이라도 생겼다가는 나중에 큰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건물을 관리하는 부동산 쪽에 사정을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냐고, 나는 천장 밑에 들어가 볼 생각에 가득찬 사토씨를 설득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면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마루 밑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부동산 쪽에서는 쥐라도 사는 것이라고 여긴 것인지, 며칠 내로 업체와 함께 방문하겠다고 대답했다.



뭔가 거짓말을 한 것 같은 느낌에 조금 마음이 찔렸지만, 그 일을 사토씨에게 말하자 [뭐,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건 사실이니까. 어쨌든 온다니 다행이네.] 라고 말했다.

딱히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부동산 쪽에서 방문하기로 한 당일, 꽤 일찍 사토씨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부동산과 약속한 시간까지는 아직 꽤 여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사토씨는 급한 볼일이 생겨, 같이 확인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것 같았다.

부동산에서 사람이 오면 괜찮으니까 여벌 열쇠를 사용해 방에 들어가 확인해달라고, 나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런 건 직접 전화로 전하면 될 것을...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부동산에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점심시간 조금 전, 부동산 쪽 사람이 구제업자와 함께 찾아왔다.

부동산 아저씨가 사토씨랑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뭐 들은거 없냐기에 아침에 그가 말한 내용을 전했다.



부동산 아저씨는 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다같이 사토씨의 집에 가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1층과 2층 사이를 조사하려면 사토씨네 집 욕실 천장으로 들어가는 것 밖에는 길이 없는 것 같았다.

사토씨네 집에 가자, 여벌 열쇠를 사용하라던 그의 말과는 달리 문이 열려있었다.



역시 내가 멋대로 들어가는 건 안되겠다 싶어, 부동산 아저씨에게 맡기고 밖에서 기다렸다.

갑자기 집 안에서 [으악! 괜찮아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현관문을 열어보자, 부동산 아저씨랑 구제업자가 새파랗게 질린 채 나왔다.



[경찰에 신고를...]

그 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토씨는 욕실에서 죽어있었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와서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도 경찰서에 가서 사정청취에 임해야했다.



아침에 사토씨와 이야기했을 때는 수상한 낌새 같은 건 없었다고 말한 뒤, 일단 웅성거리는 소리에 대해서도 경찰에게 말했다.

경찰도 그 이야기는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지만, 뭔가 알아낸게 있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결국 나에게는 웅성거리는 소리도, 사토씨의 죽음도 모두 알 수 없는 상태로 남고 말았다.



그날 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던 탓에 지친 나는 빨리 잠을 청하려 이불 속에 들어갔다.

그러자 그 웅성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소와는 무언가 달랐다.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위화감이 느껴진다.

잠시 뒤, 나는 그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아래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분명히 옆에서 들린다.

더욱이 지금까지는 바닥 너머로 들려온 탓에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마치 같은 방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선명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눈을 뜨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솔직히 두려웠다.

하지만 소리의 정체를 확인해야만 했다.

나는 각오를 다지고 일어나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터무니 없는 것이 있었다.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서 있던 것이다.

다만 엄밀히 말하자면 "서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수면 위에서 상반신만 내민 것처럼, 바닥에서 남자의 상반신만이 솟아난 상태였다.

그것만으로도 괴기하기 짝이 없는데, 그 정장 차림의 남자는 눈알을 상하좌우로 미친 듯 움직이고 있었다.

입도 마치 빠르게 말을 뱉어내듯 쉴새없이 움직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이는 것 같은 소리는 바로 그 입에서 들리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상식을 벗어난 광경에,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그 정장 차림의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이 익숙해져 갈 무렵, 이상한 게 하나 더 눈에 들어왔다.



사토씨였다.

사토씨가 바닥에서 얼굴만 내민 채, 눈을 잔뜩 뜨고서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어째서인지 본능적으로 엄청나게 위험한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제대로 된 판단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잠옷 차림 그대로 지갑과 휴대폰만 들고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날 밤은 일단 만화방에서 지새우고, 아침이 되자마자 부동산 업체로 향했다.

그런 곳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이사 절차를 밟을 생각이었다.



부동산에 도착하자마자 담당자를 불러내서 이사 이야기를 꺼냈지만, 갑작스럽다고는 해도 어쩐지 담당자의 반응이 이상했다.

아무래도 내가 이사를 가게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 이유를 묻자, 경찰 쪽에서 내가 사토씨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고 의심하는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멋대로 이사를 하면 곤란하다고.

듣고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토씨와 생전 마지막으로 만난 건 나인데다, 무엇보다 층간소음 문제라는 동기도 있고.



아침에 만났다는 것도 내 증언 뿐,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사토씨의 사인 자체도 전혀 알 수가 없고.

내가 죽였다는 의심을 받는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갑자기 이사를 하겠다고 하면 부동산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경찰에서도 마찬가지겠고.

하지만 그 집에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정체모를 섬뜩한 존재가 나타난 장소에서 다시 밤을 보내야한다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정장 차림의 남자가 사토씨의 죽음에 어떤 형태로든 관계되어 있는 것은 명백하다.

어쩌면 다음 차례는 나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믿어주지 않을거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전날 밤의 일을 부동산 담당자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담당자는 내 말을 믿어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재량으로 판단할 수 없으니 경찰에게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전날 경찰에게 받은 명함을 보고 전화를 걸어 경찰서로 찾아가기로 했다.

경찰서에 도착해, 나는 부동산 담당자에게 했던 전날 밤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 자식은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냐는 듯한 태도였다.

연일 이어진 수면 부족 때문에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던 나는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경찰관에게 집 열쇠를 던지고 말았다.

[그럼 네놈이 거기서 하룻밤 묵어보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갑작스런 요구를 한 내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 지경이 되고 나니 경찰관도 일단 나를 진정시켰다.

너무 멀리 이사 가지는 않을 것, 이사 가는 곳의 주소를 보고할 것, 경찰 쪽에서 전화로 확인을 하면 꼭 응답할 것이라는 조건을 달고, 경찰에서는 내 이사를 허가해줬다.



그 후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사건 또한 사토씨의 자살로 처리되며 내가 받던 의심도 사라졌다.

자살이라는 것이 판명되고 얼마 뒤, 나는 또 경찰서에 불려갔다.

사토씨의 컴퓨터에서 일기 같은 것이 발견되었는데, 거기 내가 말했던 정장 차림의 남자에 관한 것이 써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서에서 그날 밤의 이야기를 다시 늘어놓았지만, 정장 차림의 남자가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경찰에게서 듣게 된 것도 몇가지 있었다.

일기의 내용에 따르면, 내가 처음 사토씨에게 항의하러 가기 전부터 그는 정장 차림의 남자를 만났고, 웅성거리는 소리의 정체가 그 남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일기에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명백히 악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몇번이고 반복적으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사토씨는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내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던걸까.



경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 천장 속에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던 것은 아닐까.

사토씨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어떤 이유에서인가 나를 끌어들이려 했던 것은 아닐까.

이제 와서는 그 무엇도 진상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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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 스포츠 소년단 야구부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학년 위 선배인 Y라는 형이 있었다.

주전 1루수였지.



나는 후보 1루수였기 때문에 같이 이야기도 많이 했었다.

Y형은 엄마랑 둘이 살고 있었는데, 일 때문에 바빠서 시합 때 응원을 오는 일은 드물었다.

집에 차도 없어서 등하교 당번에서도 빠져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구화는 졸업한 선배한테 물려받아 낡아빠진 것이었고, 1루 미트는 언제나 야구부 비품을 썼었다.

Y형은 키가 커서 1루 수비를 잘했지만, 미트가 너덜너덜하다보니 언제나 다루기 어려워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공을 떨어트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Y형이 어느날 깨끗한 새 미트를 들고 나타났다.

아마 엄마가 사줬던 거겠지.

연습이나 시합이 끝나면 Y형은 언제나 조심스레 흙을 털어내고 크림을 바르며, 미트를 소중히 대했다.



여름을 앞두고 곧 중요한 대회가 있을 무렵.

연습이 끝난 뒤, 벤치 아래 Y형이 미트를 깜빡하고 놓고 간 걸 발견했다.

Y형이 집으로 돌아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던데다, 나랑은 집 가는 방향도 같았다.



나는 미트를 들고 Y형을 쫓아갔다.

Y형이 스포츠백을 메고 걸아가는 모습이 보이자, 달려가서 [미트 놓고갔어.] 하고 말을 걸었다.

Y형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아, 그런가. 고마워...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쓸 일이 없지 않을까.] 하고 대답했다.



Y형은 미트를 받아 가방에 넣었지만, 그 순간 얼굴이 몹시도 새하얗게 질려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다음날 연습시간, 나는 Y형에게 [어제, 미트를 더 이상 안 쓸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하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엥?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하고 평범한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하지만 Y형은 그날 집에 돌아간 뒤, 식중독에 걸려 입원한지 이틀만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자살일리 없고, 타살이 의심되는 정황도 전혀 없었다.



그 후로도 가끔씩 그때 Y형이 말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제 더 이상 쓸 일이 없지 않을까.]

뭐, 그것 뿐인 이야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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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5ch괴담][1007th]첫 혼자 여행

괴담 번역 2022. 1. 1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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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로망스카[각주:1]를 타고 시골 할머니댁까지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혼자 기차를 타고 있자니, 웬 중년 남녀가 말을 걸어왔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다보니 나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물어보는 것에 대답도 하고, 얼린 귤도 선물로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말 혼자 여행을 온 거니?] 하고, 몇번이고 질문을 받았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목적지에 도착해, 역 플랫폼에 그 중년 남녀와 함께 내렸다.



개찰구 밖에서 할머니와 사촌이 맞이하러 나온 게 보였다.

혼자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할머니를 만난 기쁨에, 나는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머리 위에서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냉랭한 어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혼자 온 게 아니었잖아.]

놀라 올려다 본 두 사람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 ロマンスカー, 오다큐 전철에서 운행하는 특급 열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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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5ch괴담][1006th]치석 제거 시술

괴담 번역 2021. 12. 2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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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치위생사로 일하고 있다.

그날은 환자의 치석을 제거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눈을 감고 중얼중얼 자기 취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시술을 받는 중년 남자 분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계속 눈을 뜬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내 얼굴을 바라본다기보다는, 천장 쪽에서 시선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시술 도중 부탁하는 것들은 문제 없이 따라주셨기에 굳이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우리 의원에서는 치석 제거할 때 꽤 물이 많이 튀는 편이다.

그래서 턱받이를 하고 얼굴 쪽에도 수건을 올려 물 묻는 것을 방지하려 했다.

하지만 얼굴에 수건을 올리려니, 환자 분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어쩔 수 없이 가능한 한 얼굴에는 물이 튀지 않도록 노력하며 그대로 시술을 이어갔다.

시술이 끝난 뒤, 뒷정리를 하며 왜 얼굴에 수건을 얹지 말라고 했는지 여쭤봤다.

[계속 경계하지 않으면 입에 들어와 버린단 말이야.]



정말로 입에 들어오려는 귀신을 본 것인지, 그냥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무언가 보일 때 무시하는 것 말고도, 계속 바라봐야 할 때도 있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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