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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이상한 옴니버스 창작단편 2017. 11. 2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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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이야기는 창작이므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본 이야기는 출처 미 언급 및 상업적 용도 사용을 제외하곤 자유로운 사용과 재생산을 장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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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지난밤이었다. 잠옷 바람을 한 우리 막내 딸아이가 서재(나 홀로 그렇게 부르는 골방)로 종종 달려와 그림책 한 권을 쑥 내밀곤 물었다. 그 그림책은 '헨젤과 그레텔'이었는데 아마 제 엄마가 월마트에서 사줬나 보다.



"아빠, 마녀가 진짜 있는 거야?"


"..뭐라고 했니?"


"마녀. 이렇게 코가 기-다랗고 손톱이 뾰족해."



딸아이가 펼친 페이지에는 흉측한 형상의 마녀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너 그것도 몰랐냐? 우리 앞집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마녀야. 그 할멈, 지난번 니 뒷다리 보면서 군침 좀 흘리더라. 넌 이제 다 살았다!"



어느새 따라왔는지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놈이 딸아이에게 이죽거렸다.



"저리 가!"



딸아이가 아들놈 쪽을 향해 팔을 허공으로 휘두르며 외쳤다.



"자, 그만. 너희 둘 그렇게 자꾸 싸우고 그러면.. 진짜 마녀가 나타나서 잡아간다!"



내가 딸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사방으로 흔들어대자 딸아이는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를 연신 내뱉었다. 한편, 아들놈은 그저 멀뚱히 서서 입꼬리만 씰룩이고 있었다. 고개도 같이 삐딱하게 돌려 젖히고는 말이다. 도대체 저런 표정과 제스쳐를 아이들은 어디서 배우는 걸까?



"아빠, 세상에 마녀가 어딨어요."



아들놈이 내게 점잖이 핀잔을 주었다. 맙소사, 마치 세상 다 살아본 사내의 눈빛이로군.



"얘야, 마녀는 진짜 있을지도 모른단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말이지. 그러니까 어서 양치하고 엄마한테 굿나잇 인사하렴. 마녀는 잠들어있는 아이에겐 관심이 없거든."


"하지만 아빠, 정말 마녀가 있다면 이미 유튜브에 올라왔을걸요?"



도대체가, 인터넷이 애들한테 도움되는 꼴을 못 봤다니까.



"그래? 덕분에 새로운 걸 알게 됐구나. 마녀는 카메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가 보다. 자, 어서 양치하러 가렴."



나는 두 아이를 돌려보내곤 다시금 모니터 속 문서창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중얼거렸다.



"얘들아, 마녀는 존재한단다. 적어도 샌프란시스코에는 말이지."



 



그렇다. 마녀는 존재한다. 어딘가에그래, 마녀는 존재한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그리고 생각보다 젊고 평범한 모습으로. 어쩌면 당신도 살면서 한 번쯤 마주쳤을지 모른다.


이건 오래된 이야기이다. 1991년 당시의 이야기이니까. 만약 딸아이가 마녀 이야기를 꺼내지만 않았다면 더 오래오래 잊고 지냈을 거다. 그러고 싶었고 말이다.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모든 사람과의 관계 중에서 형제자매의 전 애인 만큼 잊고 사는 관계가 또 있을까? 이건 오래된 이야기인 동시에 내 누이의 전 남친이었던 새미토퍼 체이스의 이야기이다.


먼저 새미에 대해 좀 말해보겠다. 엄밀히 말해 새미는 썩 어울리고 싶은 부류의 남자는 아니었다. 술, 담배, 메리앤제인이나 약어로 된 알약은 물론이고 심지어 농지거리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남자였으니까. 그는 살면서 군것질 서리 한 번 안 해봤을 텐데, 이 모든 건 아마 그의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일 거다. '새미, 아가. 도둑질은 나쁜 거란다. 술, 담배도 하지 마렴. 쟤들이랑 놀지 말고. 엄마 말 듣지 않으면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없단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새미는 그런 남자였다. 너무도 착실해서 감히 놀릴 마음조차 들지 않는. 그런데도 여자들은 그를 썩 좋아하곤 했다. '그는 샌님이라서가 아니라 삶에 진지한 거야.'라나? 세상에 마상에, 가끔 보면 정말 여자들은 이해하기가 힘들다니까.


어쨌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야기 자체는 제법 짧다.


그, 그러니까 새미가 내 누이와 진지한 만남을(오, 아무렴. 새미인데) 이어가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새미는 한 음악 회사의 아티스트 매니저 겸 일종의 음악 프로듀서였다. 그즈음 새미는 평소 동경하던 음악 장르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완전히. 새미가 빠져있던 건 바로 '고대 이집트 음악'이었다. 아마 고대 이집트 음악이 상업적으로도 충분히 유용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보다 정확히는 그저 그 장르에 꽂혀버린 것일 테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도 이 고대 이집트 음악은 철저하게 비주류였다. 하여, 새미는 해당 분야에 조예가 있는 사람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백방으로.


그 과정에서 새미는 한 여인과 접촉하게 된다. 여인 쪽에서 먼저 어떻게 알고서 연락을 취해왔는데 분명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보고 연락해온 건 아닐 거다. 그녀는 자신을 고대 이집트 음악 전문가로 소개했다. 곧 저녁 식사 약속을 잡은 새미는 그녀가 거주하는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그녀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티셔츠와 재킷, 진 차림에다 아무리 봐도 대학생 정도로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곳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는 동안 둘은 고대 이집트 음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여기서 그녀는 시종 심도 있는 고견을 내놓았다. 그녀의 고대 이집트 음악에 대한 조예는 새미 이상이었고 이에 새미는 그녀와 진부한 표현 따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서 새미는 그녀에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는데(아주 조심스럽게), 시종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녀는 그 질문에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선언하듯 대답했다.



"제 직업은 마녀랍니다, 체이스 씨."



직업이 마녀라.. 정말이지, 세무서 직원이 좋아할 만한 대답 아닌가? 허나 새미는 새미인지라 그러한 대답에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조소를 보내지 않았다. '마녀'를 단어 그대로의 마녀가 아닌 일종의 삶의 방식으로 해석한 것 반, 그리고 상대의 말에 섣불리 비아냥으로 화답하는 건 그의 인생 철학에 위배된다는 게 반이라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새미는 그녀에게 조소를 보냈어야 했다. 그건, 일종의 테스트였으니까.


패밀리 레스토랑을 나선 직후 그녀는 대놓고 새미에게 끈적한 시선을 보내왔다. 문지방에서 몇 발자국이나 떨어졌을까. 그녀가 새미의 팔짱을 부드럽게 끼고선 말했다.



"체이스 씨, 저희 집에서 한잔하면서 더 이야기해요."



이럴 경우 새미는 상당히 단호한 편이다. 새미는 즉시 팔짱을 푸르곤 여자친구가 있어서 그럴 수 없겠노라고 대응했다. 그때였다. 시종 어른스럽고 고고한 태도로 일관했던 그녀가 갑자기 인도 한복판에서 새미를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렇게 핏대 서린 얼굴로 새미를 힐난했다. 자신의 정체를 밝혔음에도 계속해서 호의를 보내와 놓곤 갑자기 자기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새미는 어떻게든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인생에서 대부분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가곤 하는 법이다. 그녀는 끝내 화를 풀지 않고서 뒤돌아 가버렸다. 마지막으로 새미에게 거칠게 한 마디 쏘아붙이고는.



"새미토퍼 체이스, 넌 나를 모욕했어. 망신을 주었다고. 두고 봐. 네게 저주를 내릴 테다!"



아무리 매사에 진지한 새미일지라도 그녀의 '저주'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그저 그녀가 그 순간 민망함에 화가 났던 것이라고만 여겼다. 처음 며칠간은 말이다. 며칠 후, 새미의 꿈에 나타난 탁한 쇳소리가 말했다.



"사악한 눈의 딸이 너를 찾아갈 거야. 어린 그녀, 지금의 그녀, 그리고 미래의 그녀가."



그 주부터였다. 체이스의 꿈에 웬 흐릿하고 검은 형체가 나타난 게. 꿈임에도 그 형체로부터 설명 못 할 두려움을 느낀 새미는 매번 집을 뛰쳐나오곤 했다. 허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코너를 도는 순간 어째서인지 다시 집 안으로 돌아와 있었고 몇 번이나 도망치다가 절규하며 꿈에서 깨어나기 일쑤였다.


그리고 마침내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형체가 드러낸 모습은 소녀였다. 소녀는 손에 쥔 칼을 앙칼지게도 흔들어대며 새미를 노려봤다. 소녀는 단지 멀찍이서 칼을 흔들어댈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새미에겐 충분한 고통이었다. 며칠간 새미를 괴롭히던 형체는 이번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바로, 그녀 자신의 모습으로.


또 며칠간 시달리는 날이 이어지고 이번엔 중년의 여인으로 나타난 형체가 새미의 손톱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꼼꼼하게 빼먹지 않고서. 물론, 잠에서 깬 새미의 손톱들은 모두 멀쩡했다. 다만 환장하겠는 건 꿈속에서 하나하나 뜯어먹힐 때마다 절로 비명을 자아냈던 그 아픔들이 꿈을 깬 후에도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온전히 붙어있는 손톱들, 그 자리로 계속해서 욱신거리는 고통들. 더 무서운 거? 매번 꿈에서 손톱들을 모두 뜯어먹은 여인이 눈을 까뒤집은 채 새미의 가슴팍을 더듬으며 말한다는 거다.





"심장이 어느 쪽이지? 이쪽이지? 아닌가? 괜찮아, 두 군데 다 파보면 되니까."



여기까지가, 나와 누이가 새미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어찌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지 새미는 눈에 띄게 빠진 머리와 깊은 골짜기로 박힌 눈, 내 누이만큼 가늘어진 손목을 한 채 하소연했다. 이따금 입술 가장자리로 끈적한 침을 새어가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딱히 도울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는 대학에서도 배운 적이 없으니까.


며칠 후, 누이는 새미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지역 경찰에 신고했다. 왜냐하면 그가 누이의 전화에다 평소 같지 않은 음성을 남긴 이래 연락이 되지 않았거든.



"이제 나는 이대로 죽을지도 몰라. 너무나 두려워. 그래도! 그래도! 절대로 그 개년이 날 이기게 두지는 않을 거야!"



꽤나 오래전 일인지라 새미가 정확히 개년이라고 했는지는(맞는다면 아마 태어나서 처음 한 욕일 거다) 모르겠다만 어쨌든 충분히 흥분하고 있던 건 확실했다. 한편 새미네 집을 찾아간 경관은 소득 없이 돌아가야만 했다. 아무리 현관문을 두드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다음 날 나와 누이는 직접 새미네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지역 경관 둘과 함께 새미네 집을 찾아갔다. 집은 전날과 달리 현관문이 열려있었다. 경관은 우리에게 문밖에 있을 것을 지시한 뒤 권총을 꺼내 들고선 거실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조바심을 이기지 못한 누이가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새미의 이름을 외쳤다. 나는 그런 누이를 말리려고 뛰어들어갔다가 깨달았다. 현관문에서부터 집 사방으로 소금이 흩뿌려져 있다는 걸. 또, 욕실 문이 잠긴 채로 닫혀있다는 걸.



"경관님! 여기 욕실 문이 잠겨 있어요! 와보세요!"


"새미! 새미, 거기 있어?"


"물러나세요. 체이스 씨, 안에 계십니까? 체이스 씨, 계시면 대답하세요."



아무런 대답도 인기척도 없자 경관 둘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바로 그때. 거실에 비치된 싸구려 2단짜리 장식장에서 얼굴만 한 크기의 파라오 석상을 가져온 누이가 그걸로 욕실 문손잡이를 냅다 후려갈기기 시작했고

나와 경관 둘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손잡이가 맥없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욕실에서 나는 평생 못 잊을 장면을 보게 된다. 아마, 나 외에 셋도 마찬가지리라.


욕탕 안에는 새미가 누워있었다. 새미는 잠옷 차림으로 빈 욕탕 안에 누워있었고 머리카락은 두피가 온전히 드러날 정도로 다 빠져 있었다. 새미는 참으로 얌전하게도 가지런히 누워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그 옛날의 파라오상 같았다.


우리 넷은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새미의 몸은 마치 방금 샤워를 끝낸 양 깨끗해 마지않았지만 부릅뜬 두 눈엔 눈물마냥 죽음이 그렁하게 걸려있었다. 허나 우리는 놀랄 정신도 슬퍼할 정신도 없었다. 파라오상과 같은 모습으로 욕탕에 안장된 새미, 집 안과 마찬가지로 온 사방에 흩뿌려져 있는 소금, 욕탕 주변으로 마치 바리케이드마냥 펼쳐진 양초떼, 그 안으로 조심스레 정렬된 가지각색의 십자가상들, 그리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오컬트 관련 서적(펼쳐진 페이지는 모두 '저주'에 관한 것들이었다)들. 이와 같은 기괴한 하모니가 전달하는 이질적 공포감에 꼼짝없이 전염되어버린 것이다. 궁극적인 공포 앞에선 그 무엇도 자유로울 수가 없는 법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마치 묵시록적인 예술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 앞에서 잠시간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 묵시록적 예술작품. 한낮의 인간세계로 재림한 사탄과 종말, 바로 그걸 캔버스 소재로 한. 한편 사방으로 보이는 소금, 양초떼, 십자가상들, 오컬트 관련 서적들이 인간 새미가 마지막까지 얼마나 처절하게 대항했는가를 짐작게 했다.


그러나.. 새미는 패배했다. 정확히 무엇과 그리 사투를 벌였는지 감히 짐작이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는 그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새미는 떠났다는 걸. 보름 후, 나와 누이는 신문을 통해 새미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지난달, 마녀로부터 표적이 되었다며 두려워하던 남자가 자신의 자택 욕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그의 여자친구에 의하면 남자의 이름은 사무엘 체이스(35)로, 자신을 마녀라고 밝힌 신원 미상의 한 여성으로부터 애정 표시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지난 4월 18일, 체이스 씨의 여자친구로부터 신고를 받은 경찰은 노스 킹 카운티 북부 152번가 1300 블록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했다. 킹 카운티 경찰에 의하면 당시 현장에선 범죄, 폭력, 강도와 관련한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또 조사 결과 현장 주변으로 소금, 양초, 십자가상이 발견되었다.


한편, 킹 카운티 검시관 리치 가너는 체이스 씨의 몸에서 그 어떠한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인에 대해선 급성 심근염이라 결론 내렸다.


- 1991년 5월 4일 자 <시애틀 타임즈>



새미의 사인은 급성 심근염이었다. 하나 말해주자면 말했듯 새미는 생전 술, 담배, 약 따위는 일절 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비타민을 챙겨 먹었고 가족친지 중 심장 병력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본인 역시 생전 심장과 관련한 질환을 앓은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새미는 사방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선 욕탕 안에 들어가 농성을 벌이고 있었고 무언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잠긴 욕실로 침입한 것이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서 말이다. 아마, 흔적이란 게 남을 수 없었던 존재였겠지. 그리고 그 무언가로 인해 새미의 심장이 갑작스레 멈추고 말았다. 그 무언가를 보고 너무도 놀라서인지, 아니면 그 무언가가 직접적으로 심장을 멈추게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자기, 안 잘 거야? 뭐 한다고 그렇게 오래 있어?"


"아.. 여보. 애들은 다 잠들었어?"


"진즉에."


"마무리하고 금방 갈게."


"그래, 하고 와."



나는, 내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한번 짚고는 뒤돌아 나가는 아내에게 나도 모르게 물었다.



"여보?"


"응?"


"..혹시, 살면서 마녀 본 적 있어?"



아내는 난데없는 질문에도 일말의 당황한 표정 없이 엷은 미소를 머금고는 곧 대답했다.



"자기, 내가 바로 그 마녀야."



오히려 내가 잠시간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아내는 머리를 푸는 동시에 장난스레 엉덩이를 양옆으로 흔들며

한껏 꾸며낸 목소리로 말했다.



"잊었어, 자기? 내가 밤마다 못된 마녀가 된다는 걸?"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그대로 내보이고는 예전 내가 청혼했을 때 지었던 그 미소를 띤 여인네에게 금방 가겠노라고 조아렸다. 그렇게 엉덩이를 과장스레 씰룩대며 돌아나가는 그녀를 끝까지 지켜본 뒤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선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fin-




















후기


해당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 속 <시애틀 타임즈>는 있는 그대로 옮긴 것이라 보면 된다.


실제 모델인 크리스토퍼 케이스는 공포에 잠식된 나날을 보낸 끝에 숨이 멎고야 말았다. 보다 정확히는, 스스로 숨을 멈추고 말았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저마다 품에 안고 사는 것이다. 사실 그 점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일는지 모른다.






http://blog.naver.com/medeiason/22115143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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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utopsy of Jane Doe, 2016

호러 영화 짧평 2017. 5. 17.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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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Doe 라는 것은, 영미권에서 여성 아무개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남자 아무개는 John Doe 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홍길동 정도 되는, 신원미상의 누군가를 지칭하는 단어죠.

이 영화, The Autopsy of Jane Doe 는 제목 그대로 신원 미상의 여성, Jane Doe의 시체를 해부하는 영화입니다.


사실 공포 영화에서 가장 애용되는 소재를 꼽으라면 폐쇄된 공간일 겁니다.

외부로의 지원을 구할 수 없고, 내부의 적과 함께 고립된다는 절망감!

제작비 절감은 따라오는 거고요.

The Autopsy of Jane Doe 역시 폐쇄된 부검실이라는 한정적 공간을 아주 잘 이용해낸 영화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시체를 부검하게 되는데, 계속해서 그 시체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징후들이 발견됩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이 시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 영화가 매력적인 점이라면, 너무나도 이성적인 시작이 끝에 가서는 광기와 공포로 물든다는 점입니다.

현대 과학이 지배하는 부검실 안에서, 그 현대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하나둘 일어나는거죠.


사실 이러한 요소들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고, 어떻게 보면 작위적이겠습니다만, 호러 영화에 있어서는 완벽한 조합입니다.

그런 부분들을 심리적으로 조여가면서, 설령 있을 수 없는 현상이라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뛰어난 매력이기도 하고요.





환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섞어둔 작품인데, 후반부 들어 공포가 이성을 지배하면서 아주 재미있어집니다.

호러 영화에 조예가 깊거나, 오컬트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익히 들어보셨을 사건이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요.

안드레 외브레달 감독의 첫 공포 영화라던데, 생각보다 무척 훌륭한 작품을 뽑아냈습니다.

차기작이 기대되네요.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등장하는 고양이 이름이 스탠리인 것도 유쾌했습니다.

폐쇄 공간을 다룬 호러 걸작 샤이닝의 감독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해보면, 아마 감독의 센스였겠죠.

뻔할 수 있을 법한 부분에서 뻔하지 않게 만들고, 그게 또 먹히게 만드는 것.

만만치 않은 숙제를 잘 풀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점수는 8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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