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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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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병자년때 초봄에 초시를 치루고, 복시는 나라에 일이 있어서 다음해 봄으로 미뤄졌다.

이 때 초시에 합격한 유생 네 명이 북한산에 모여 같이 공부 모임을 만들고 공부했다.

그런데 하루는 웬 스님이 와서 선비들에게 말했다.



[이 곳에 신통하신 큰스님이 계시니 선비님들은 과거 문제와 향후 운세에 관해 여쭤보시지요.]

네 선비가 같이 모여 큰스님에게 물었더니 큰스님이 말했다.

[소승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관상에 관해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조용한 방에서 한 분씩 천천히 살펴보고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네 선비가 그 말에 따라서 한 명씩 큰스님의 방에 들어가서 관상을 보고 나왔다.

서로 모여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물어보자 한 선비가 말했다.

[나는 자손이 천명이 넘을거래!]



다른 선비가 말했다.

[나는 도적들의 장수가 될거래!]

또 다른 한 선비가 말했다.



[나는 신선이 될거래!]

마지막 선비가 말했다.

[나는 과거에 합격해서 반드시 너희 셋을 만날거래!]



네 선비는 각자의 점괘에 한바탕 웃고 떠들며 정신 나간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데 없이 그 해 말에 청나라 오랑캐들이 우리나라에 쳐들어 와서 강화도를 함몰시키고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네 선비는 각자 달아나서 목숨만 겨우 건졌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만나지 못하고 소식마저 끊겼다.



그 중 한 선비는 정말로 과거에 급제해서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봄에 경상도를 순찰하면서 안동에 도착했는데, 안동에서 떠나려는 와중에 문 밖에 한 손님이 소를 타고 와서 명함을 내밀고 만나기를 청했다.

그렇지만 관찰사는 명함을 받아봐도 그가 누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들어오게 해서 만나보았더니, 평소 알지 못하던 사람인데 다 떨어진 도포에 망가진 삿갓을 쓴 가난한 선비였다.

인사를 나눈 뒤 천천히 이야기를 해보았더니, 그는 바로 지난날 북한산에서 함께 공부했던 선비 중 한 명이었다.

큰 전쟁이 있은 후 각자 생사도 알지 못하고 살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관찰사가 사는 곳을 물었더니 순찰 경로 근처였다.

선비가 말했다.

[영감의 행차가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깝습니다. 옛 정을 생각하여 부디 와 주셔서 가난한 집이나마 빛내주시지 않겠습니까?]



관찰사는 관복을 벗고 평범한 옷을 입은 다음 혼자 말을 타고 선비를 따라갔다.

한 골짜기에 도착하자 높고 큰 누각이 온 계곡에 가득했는데, 마치 궁궐 같았다.

자리에 앉고 보니 소를 타고 왔던 선비는 장군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관찰사가 놀라서 물었다.

[자네의 모습을 보니 자네는 도적 수령이 아닌가?]

[그렇소.]



[어쩌다 이렇게 된거요?]

[북한산에서 관상을 봐 주었던 스님의 말을 기억하시지요? 당시에는 비웃었는데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더군요. 전쟁통에 가족들은 모두 죽고 나만 혼자 살아남아 도망치다 이 산에 도착했습니다. 나말고도 피난하여 온 사람들이 산 속에 모여 살다가, 내가 공부를 좀 했다고 나를 두목으로 뽑았습니다. 나는 약탈해 온 물건들을 모두 공평하게 나누어 인심을 얻었지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여기 남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님이 말했던 우리 관상은 역시 정해져 있던 운명이었나 봅니다. 나는 이 곳에서 부귀를 누리고 있으니 당신이 조금도 부럽지 않소. 마침 그대가 이 곳 근처를 지나간다기에 내가 일부러 불러서 이 곳을 보게 한 것이오. 당신이 비록 관찰사라도 병사는 아마 나보다 적을 것입니다. 돌아가서 나를 잡으려는 생각은 하지 말고, 나를 보았다는 이야기도 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닥 좋은 일은 없을게요.]

관찰사는 무서워서 [알았네, 알았네.] 라고 말하고 안동으로 돌아왔다.



그 후 관찰사는 경상북도를 순찰하다 어느 군에 도착하였다.

일을 마치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어느 선비가 만나기를 청해왔다.

그를 만나보니 역시 옛날 북한산에서 같이 공부하던 선비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선비가 말했다.

[영감께서 이 곳까지 오셨는데, 제가 사는 곳이 이 근처입니다. 부탁컨대 잠시 들렀다 가시지요.]

관찰사는 지난 번에 당한 것을 생각하고 이번에는 관찰사답게 큰 행렬을 거느리고 갔다.



그 집에 도착하니 집이 매우 컸고, 주변에 집이 거의 수백개가 넘게 있어서 마을 하나 정도 크기였다.

그 선비는 많은 하인을 데리고 나와서 관찰사를 맞이했다.

그 예의와 대접이 왠만한 도시에서 받는 것보다 더 대단할 정도였다.



관찰사가 놀라서 물었다.

[시골에서 살면서 어떻게 이 많은 식구들을 데리고 있으며, 이렇게나 부유하게 살고 있단 말이오?]

선비가 말했다.



[당신도 옛날 북한산에서 스님이 우리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겠지요? 병자년 전쟁 이후 집을 버리고 도망쳤다가 이 곳 영남에 흘러 들어왔소. 마친 한 산골에 들어갔더니 피난 온 여자들이 모여 살고 있더군요. 남자인 내가 그 곳에 도착하니 여자들이 크게 기뻐하며 다들 나와 함께 살자고 하더군요. 여자들은 밭을 갈고 베를 짜서 지극한 정성으로 나를 떠받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같이 여기서 살아서 이미 여러해가 지났습니다. 내가 낳은 남자아이가 거의 백 명 가까이 되는데, 그 아이들이 각각 결혼해서 또 아이들을 낳았으니 늘그막에 자식들, 손자들 재롱에 편히 살고 있소. 이렇게 행복하니 나는 관찰사 영감이 그닥 부럽지도 않구려.]

이야기를 다 들은 관찰사는 망연자실했다.

그 후 또 순찰을 하다가 하동 경계에 도착해서 지리산 자락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관찰사의 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관찰사가 의아해하면서 가마에서 머리를 내밀었더니, 그 소리는 산 위에서 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세히 살펴보니 어떤 사람이 절벽 위에 앉아 관찰사를 부르고 있었다.

관찰사가 행렬을 멈추고 누구냐고 물으니 산 위에 있는 사람이 대답했다.



[당신은 아직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소? 나는 아무개요.]

관찰사가 생각해보니 그 역시 옛날 북한산에서 같이 공부했던 선비였다.

관찰사가 손을 들어 그를 부르며 말했다.



[이리로 내려 오시오.]

[그대가 올라오시지요.]

잠시 후 푸른 옷을 입은 동자 두 명이 내려와서 관찰사의 겨드랑이를 부축해서 산을 올라갔다.



이상하게도 매우 험한 산길인데다 마치 맨땅을 걷는 듯 편안했다.

옛 친구와 만난 관찰사는 악수를 나눴다.

친구가 말했다.



[당신은 북한산 스님이 우리들의 관상을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까? 그 때 나에게 신선이 될 것이라 말해서 나는 비웃고 넘어갔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분이 정말 신통하신 분입니다. 지난번 전쟁 때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나는 산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굶주리고 피곤해도 먹을 것이 없었지요. 그런데 물가를 따라 올라가다보니 풀이 통통하고 색깔이 먹음직스럽더군요. 먹어보니 달고 씁쓸해서 맛있는지라 모두 캐 먹었다오. 그 이후로 나는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입지 않아도 따뜻하며, 산길을 가다 거기서 그냥 자도 아프지 않고 한 번 걸어서 천리를 갈 수 있더이다. 내 몸이 한가롭게 유유자적하며 걱정이 없고, 이익을 따지지 않으니 관찰사가 사는 것보다 내가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소? 내가 먹은 것은 장생초였으니 관찰사의 식사보다 결코 꿀리지 않을 것이오.]

신선은 말을 마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위로 던져 학의 등에 올라 탔다.

시동 두 사람도 좌우에서 함께 서서 공중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관찰사는 망연자실해서 자신이 관찰사라는 것도 잊어 버릴 정도였다.

이렇게 보면 이는 모두 하늘이 정한 것이다.

또한 지나가던 스님의 말이 모두 맞아 떨어졌으니 그 스님 역시 이인이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8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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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선비가 함경북도에 갔다가 산 속의 지름길로 와서 하루만에 강원도 이천 즈음까지 이르렀는데, 날이 이미 저물고 있었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 쌓이고 큰 나무가 높이 솟아 아직 낮인데도 호랑이와 표범이 으르렁대고 이리와 여우가 뛰어다녔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봐도 사방이 고요하고 인적이 없었다.



선비가 사람 사는 집을 찾아 돌아다니다 문득 큰 돌을 보게 되었는데, 돌 가운데가 열려 있어서 마치 돌로 만든 문 같았다.

큰 강이 그 가운데에서 흘러나오며, 때때로 부추 잎이 떠내려 왔다.

선비가 말했다.



[이 안에 반드시 사람이 살 것이다. 아마 무릉도원이나 신선이 사는 곳일게야!]

선비가 시종에게 헤엄쳐 들어가도록 시켰다.

한참 있으니 시종이 작은 배를 타고 왔다.



선비도 그 배에 타서 노를 저어 강을 거슬러 가다 물이 그친 곳에 배를 세우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 어떤 곳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는 민가 수백채가 있었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어 세상 모습과는 전혀 달랐고, 마을이 맑고 깨끗해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왔는데 옷이 옛날 옷이었고 얼굴은 세속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노인이 선비를 맞이하며 말했다.

[이 곳은 깊숙하고 조용한 곳이라 인간 세게와 통하지 않은지 벌써 백년이 넘었소. 세상에서 이 곳을 아는 자가 없을 터인데 그대는 어떻게 이 곳에 오셨소?]



선비가 산길을 걷다 길을 잃었다고 말하자 노인은 그를 맞아들이고 저녁밥을 먹였는데, 산나물과 채소 등은 결코 세간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노인과 선비는 같은 방에 누워 잠을 자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인이 말했다.



[나의 몇대 선조님이 더럽고 시끄러운 세상을 싫어하여 동지 5, 6인을 거느리고 이 곳에 자리 잡은지 거의 백여년이 흘렀소. 한 번도 이 산 밖으로 나가본 적 없이 아들, 딸 낳고 서로 시집, 장가보내서 지금은 수백채의 집이 있는 마을이 되었소. 밭을 갈아서 먹고, 베를 짜서 옷을 입으며, 서로 싸우지도 않고 세금도 없소. 다만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구나 하고, 꽃이 피면 봄이구나 할 뿐이지요.]

밤이 깊자 함께 뜰을 거닐었는데, 갑자기 별 하나가 지는 것을 보고 노인은 놀라며 말했다.

[평구에 사는 박진헌이 죽었구나.]



그리고 노인은 또 탄식했다.

[가까운 시일에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이를 어찌할꼬?]

선비는 이상하게 생각해서 행랑 속에 있던 책에 그 날짜를 적어두고 노인에게 물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화를 피할 수 있습니까? 부디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이 말했다.

[강릉이나 삼척 쪽으로 피난가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오.]



다음 날 선비가 석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다, 평구에 들러 박진헌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자 마을 사람이 말했다.

[이미 죽었습니다.]

죽은 날짜를 물어보니 과연 별이 떨어지던 그 날 밤이었다.



그 후 병자년 겨울에 청나라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선비는 노인의 말을 생각해내서 아내를 데리고 삼척으로 피난을 가서 온 집안이 무사하였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4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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