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선조

320x100


이경류가 병조좌랑이던 때 임진왜란이 터졌다.

당시 이경류의 둘째 형은 나라를 위해 붓을 내던지고 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조방장 변기가 전쟁에 나서면서 이경류의 둘째형을 종사관으로 삼기 위해 임금님에게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하필 이름을 잘못 써서 이경류의 이름이 올라가고 말았다.

둘째 형이 이경류에게 말했다.

[내가 전쟁에 나서야 하는데, 이름이 네 이름으로 잘못 올라갔구나. 하지만 당연히 내가 전쟁에 나가야 옳을 것이다.]



그러자 이경류가 말했다.

[이미 제 이름을 보고 임금님이 허가를 하셨으니 제가 가야합니다.]

이경류는 무구를 챙겨 어머님께 인사를 올리고 전장으로 나섰다.



하지만 변기가 영남에서 크게 패하고 죽어버려서, 장군을 잃은 진중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이경류는 순변사 이일이 상주에 있다는 말을 듣고 혼자 말을 타고 그 곳으로 가서 윤섬, 박호와 함께 이일의 밑에서 머물렀다.

이일의 군대가 전투를 치렀으나 형세가 불리하여 진이 함락되고 윤섬과 박호도 크게 다쳤다.



이경류가 진 밖으로 나가니 시종이 말을 끌고 이경류를 기다리고 있다 흐느끼며 아뢰었다.

[주인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서둘러서 이 말을 타고 서울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경류가 웃으며 말했다.



[나라가 이렇게 위기에 처했는데 어찌 내가 죽지 않고 욕되게 살라고 하느냐?]

그리고 지필묵을 꺼내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써서 도포자락 속에 감춘 뒤, 시종에게 그것을 전하라고 시켰다.

이경류가 말을 타고 적진 가운데로 향하려고 하자, 시종은 그를 껴안고 울면서 놓아주지를 않았다.



이경류가 말했다.

[너의 정성이 갸륵하구나. 내가 네 말을 따라 서울로 돌아가겠다. 그런데 내가 지금 몹시 배가 고프니 밥을 좀 구해왔으면 좋겠구나.]

시종이 그 말을 믿고 주변 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차려 돌아와보니 이경류는 이미 적진으로 향한 뒤였다.



시종은 적진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이경류의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돌아갔다.

이경류는 적진에서 맨손으로 왜구를 쳐 죽이다 결국 상주 북문 밖 평야에서 죽었으니, 그 때 24살이었다.

시종이 말을 끌고 서울로 돌아가니, 집안 사람들이 그제야 이경류의 죽음을 알았다.



편지를 쓴 날을 기일로 삼고 장례를 치뤘다.

시종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고, 말 또한 먹이를 먹지 않더니 굶어 죽었다.

가족들은 이경류가 남긴 물건들을 거두어 관에 넣어 경기도 광주에 장사 지내고, 그 옆에 시종과 말의 무덤도 만들어주었다.



상주의 선비들은 제단을 지어서 이경류의 제사를 지내 주었고, 조정에서는 도승지를 추서했다.

을묘년에는 정조 임금께서 친히 충신의사단이라는 글을 써서 북평에 사당을 세우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경류는 죽은 후 매일 밤 집에 왔는데, 그 목소리와 웃는 모습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았다.



부인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언제나 음식을 마련하여 올리면 먹고 마시는 것이 살아 있을 때와 같았는데, 나중에 보면 음식은 그대로 있었다.

이경류는 매일 날이 저물면 왔다가 닭이 울면 문을 나섰다.



부인이 이경류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의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만약 알 수 있다면 고향으로 모셔와 제대로 장례를 치루겠습니다.]

이경류가 슬피 울며 말했다.



[그 수많은 백골이 쌓여 있는 곳에서 어떻게 내 몸만 찾을 수 있겠소? 그냥 두는 게 더 좋을 것이오. 게다가 내 몸이 묻힌 곳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곳이오.]

죽은지 1년이 지나자 이경류는 이틀에 한 번씩 오기 시작했다.

죽은지 2년이 지나자 이경류는 말했다.



[나는 이제 오지 않을 것이오.]

그 때 이경류의 아들 제는 나이가 겨우 4살이었다.

이경류는 제를 어루만지며 탄식했다.



[이 아이는 과거에 급제하겠으나, 그 후 불행해질 것이오. 그 때가 오면 내가 다시 오겠소.]

그 말을 남긴 뒤 이경류는 사라졌는데, 그 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윽고 20여년이 흘러 광해군 때에 제가 과거에 급제하여 사당에 알현할 때, 공중에서 신참의 신고식을 하라고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이경류의 늙은 어머니가 병에 걸렸는데, 그 때가 5월 즈음이었다.

노모가 목이 말라 시종에게 말했다.



[어떻게 귤 하나만 구할 수 없을꼬? 그걸 먹으면 갈증이 싹 가실 것 같은데...]

며칠 뒤 하늘에게 이경류가 형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이 뜰에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구름 속에서 이경류가 귤 3개를 던지며 말했다.



[어머님께서 귤 생각을 하시기에 제가 동정호에서 귤을 얻어왔습니다. 이것을 드리면 어머님의 병이 곧 나을 것입니다.]

도암 이재가 신도비에 [공중에서 귤을 던지니 정신이 황홀하구나.] 라고 쓴 것이 바로 이 광경을 뜻하는 것이다.

이경류의 제삿날이 되면 언제나 병풍 뒤에서 밥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종가에서 제사를 지낼 때 계집종이 실수를 해서 머리카락이 들어간 적이 있었다.

제사가 끝난 뒤 바깥채에서 시종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자세히 들었더니 그 소리는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시종이 사랑방에 들어가자 이경류의 목소리가 떡을 만든 계집종을 잡아오게 하고 분부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머리카락을 꺼린다. 너희는 어째서 머리카락이 있는지 잘 살피지 않았느냐? 그 죄는 매를 맞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계집종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릴 것을 명했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는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감히 후손들이 이경류의 제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첨지 김윤신은 점술사 남사고와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남사고의 집에 가면 언제나 베옷 입은 노인이 남사고와 점괘를 논하고 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파란 옷과 나막신으로 나라 일을 알 수 있을 것 같소.]

남사고가 한참 생각하고 말했다.

[그렇군요.]



노인이 또 말했다.

[머지않아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이고, 임금이 궁궐을 떠나는 재앙이 이를 것이며, 서쪽 변방까지 가서야 겨우 도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오.]

남사고가 또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노인이 또 말했다.

[두번째 들어올 때는 한강까지 오지 못할 것이오.]



남사고는 이번에도 한참을 생각하고 말했다.

[과연 그 말이 맞습니다.]

김윤신이 옆에서 그 말을 주워 들었지만, 도저히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 옷과 나막신이 세상에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옛날 우리나라에는 나막신이 없었는데, 임진왜란 직전에 나막신이 들어와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두루 신게 되었다.

또한 기자가 흰 옷을 입고 이 땅에 온 이래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흰색 옷을 입었는데, 임진왜란 전에 흰 옷을 입지 못하게 금지하여 모두 파란 옷을 입었던 것이다.



임진년 여름이 되자 왜구가 우리나라 깊숙이 들어와서, 마침내 선조 대왕이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임금님의 가마가 의주에서 머무르다가 왜구가 평정된 후에야 서울로 돌아왔으니 과연 베옷 입은 노인의 말이 모두 들어 맞은 것이었다.

정유년이 되어 왜구가 다시 쳐들어와 서울이 혼란에 빠졌다.



그 당시 명나라 장군 양호가 우리나라에 와 있었다.

선조 대왕과 양호가 남대문에 나가서 조정의 여러 신하들과 적을 막아낼 방법을 논의하고 있었다.

김윤신도 그 때 음사 미관으로 임금님을 따라 맨 끝에 서 있다가, 피곤한 나머지 잠이 들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두번째는 한강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 소리에 모든 조정의 신하들이 놀라고, 임금님마저 놀라서 물으셨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

그래서 김윤신을 임금님 앞에 데려와서 물었다.

[방금 전 두번째는 한강을 건너지 못한다고 한 것은 무슨 소리냐?]



김윤신은 이전에 베옷 입은 노인에게 들었던 것을 상세하게 진술하고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보면 그 노인의 예언이 모두 들어맞았나이다. 그러니 이번 두번째에 한강을 건너지 못한다는 것 역시 반드시 맞을 것입니다.]

임금님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셨다.



즉시 김윤신의 벼슬을 껑충 올려서 첨지로 삼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호가 보낸 부하 마귀가 충청도 직산 소사평에서 왜구를 만나 기병으로 물리치고 경상도까지 밀어냈다.

이로써 베옷 입은 노인의 마지막 예언까지 모두 맞아 떨어진 것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류거사는 안동 사람으로, 서애 류성룡의 숙부였다.

생김새가 보잘 것 없고 행동거지마저 어리석고 실속이 없었으며, 평소에는 말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았다.

류거사는 초가집을 하나 지어서 문을 닫고 혼자 책만 읽어서, 류성룡은 삼촌이 그냥 멍청한 줄 알았다.



그러던 중 하루는 류거사가 류성룡에게 말했다.

[자네, 나와 바둑이나 두면서 놀지 않겠나?]

류성룡은 바둑의 고수였다.



게다가 그 전까지 숙부의 어리석은 모습만 보아 왔지 바둑 두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숙부님도 바둑을 두실 줄 아십니까?]

그리하여 두 사람은 바둑을 두게 되었다.



그런데 당대 조선의 국수였던 류성룡이 내리 3판을 숙부에게 내주고 말았다.

류성룡이 깜짝 놀라 의아해 하는데 류거사가 말했다.

[이제 바둑은 그만 두세. 오늘 저녁 어떤 중이 분명 자네 집을 찾아올걸세. 그 중을 만나면 내 집으로 오라고 말하게나.]



류성룡은 마음 속으로는 숙부의 말을 이상하게 여겼으나, 겉으로는 [예,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날 밤, 과연 어떤 중이 류성룡의 집에 와서 말했다.

[저는 묘향산에서 온 중입니다. 오늘 이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을런지요?]



류성룡은 평소 멍청하던 숙부의 말이 들어맞은 것에 신기해하며 중에게 저녁을 먹이고 숙부의 집으로 보냈다.

류거사가 말했다.

[나는 그대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중의 안색이 변하면서 물었다.

[그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류거사가 말했다.



[조금 전 내 조카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지요. 반드시 이 조용한 곳에 와서 잘 것이라 생각했소.]

말을 마친 뒤 류거사는 다른 말 없이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척을 했다.

그러자 중 역시 잠에 들었다.



중이 잠든 틈을 타서, 잠든 척하던 류거사는 몰래 중의 바리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우리나라 지도 한 장이 있었다.

지도 곳곳에 관문, 성, 관청의 위치, 험한 곳, 우리나라의 주요 인물 등에 관한 것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또 바리 안에는 단검 한 쌍이 있었는데, 그 칼날이 매우 날카로웠다.

류거사는 단검을 쥐고 중의 배 위에 걸터 앉아 가토 기요마사의 이름을 크게 외치고 말했다.

[네가 네 죄를 알렸다!]



중이 놀라서 잠에 깨어 났더니 번쩍번쩍 빛나는 날카로운 검이 머리 위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중이 말했다.

[소승은 죄가 없습니다.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류거사가 말했다.

[주머니 속에 지도를 만든 것은 네놈의 죄가 아니냐? 조선에 몰래 세 번 들어온 것 역시 네 죄가 아니냐? 우리나라에 인물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 것 또한 너의 죄가 아니냐?]

중이 입을 다물고 차마 대답조차 못하다가 애걸복걸하며 말했다.



[제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바다를 건너가서 다시는 조선에 오지 않고, 반드시 은혜를 갚겠나이다.]

류거사가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우리나라에 7년간 전쟁이 일어날 것은 하늘이 정한 운수다. 내가 쥐새끼 같은 네놈들을 죽여봐야 어쩔 수가 없구나. 내가 지금은 네 목숨을 살려주겠지만 나중에 왜놈들이 안동 땅에 한 발자국이라도 들여놓는다면 내가 모두 죽여버리겠다. 너는 당장 네 나라로 돌아가라.]



중은 [예, 예] 하고 정신 없이 대답하고 도망치듯 떠났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전국이 왜구에게 유린당했으나, 안동만은 전쟁의 참화가 미치지 못하였다.

이것은 곧 류거사의 공덕 덕분인 것이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26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옛날 선조 임금 때 1584년 1월에 한양 선비 이생이 강릉에 일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걸음이 느린 말을 타고 피곤하게 길을 가다 깊숙한 두메 산골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사람은 사람대로 지치고 말은 말대로 피곤한데, 날은 저무는데 머무를 곳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다행히 숲 속에서 한 목동을 만나게 되어 길을 물었더니, 목동은 언덕 너머를 가르키며 말했다.

[이 언덕을 넘어가면 아무개 양반집이 있습니다. 그 곳을 빼면 주변에 사람 사는 곳은 없습니다.]

선비가 목동의 말을 따라 언덕을 넘어갔더니 세칸짜리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어떤 한 노인이 나왔는데, 나이는 60여세 정도였고 머리에는 다 떨어진 모관을 쓰고 있었고 한 소년이 옆에서 노인을 모시고 있었다.

노인이 선비를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이렇게 깊은 시골에 손님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선비가 산에 왔다 길을 잃어버린 사정을 설명하자 노인은 그 집에서 묵고 가는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노인은 조용히 앉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선비 또한 가볍게 말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여서 그냥 방 한 쪽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시중을 들던 소년이 저녁밥을 차려와서 먹었다.

황혼녘이 되자 노인은 소년에게 말했다.

[날이 벌써 저물었는데도 아직까지 오지 않는다니 몹시 이상하구나. 네가 문을 열고 멀리 내다보거라.]



소년이 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더니 말했다.

[지금 막 앞 시냇가를 건너 오십니다.]

노인은 눈을 크게 뜨고 선비를 보며 말했다.



[부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옆에서 입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잠시 뒤 두 사람이 왔는데, 한 사람은 평범한 선비였고 다른 한 사람은 스님 옷을 입은 늙은 스님이었다.

방에 들어온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입을 다물었다.



노인은 소년에게 정화수 한 그릇을 떠오게 해서 소반 위에 올리고 향로에 향을 살랐다.

그 후 세 사람이 모두 북쪽으로 꿇어 앉아 주문 같은 것을 한참 외웠는데 선비는 아무리 들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기를 몇시간 하다가 노인이 소년을 불러 말했다.



[문 밖에 나가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거라.]

소년이 밖으로 나갔다 곧 들어와서 말했다.

[별 하나가 지금 동쪽에서 떨어져서, 그 빛이 온 땅을 밝히고 있습니다.]



노인과 두 손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참 동안 응시하다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늘이 내린 수명이니 이것을 어찌하겠는가!]

선비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어서 엉겁결에 물었다.



[주인께서는 무슨 일로 한숨을 쉬십니까?]

[숙헌이 곧 죽게 생겼기에 내가 이 두 손님과 함께 하늘에 기도하며 경을 외어서 그 분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했던 것이라오. 운이 좋아야만 했는데, 끝내 아무런 효험이 없겠습니다. 조금 전 별이 떨어졌으니 이미 숙헌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비가 물었다.



[숙헌이 누구입니까?]

[율곡 이이라는 분이오.]

[제가 이번달 초에 서울에서 출발할 때 그 분은 병조판서를 맡고 있었고 몸도 건강하셨는데요?]



[7, 8년 뒤 왜구가 우리나라를 침범할텐데, 숙헌이 살아 계신다면 그 난리를 능히 막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우리백성들은 모두 고깃조각이 될 것입니다. 살아날 방도가 없습니다.]

조금 뒤 두 손님이 집을 나서는데 안색이 정말 처참했다.

선비가 물었다.



[나라가 그렇게 난리를 맞게 된다면 저같은 불쌍한 선비는 어떻게 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만약 충청남도 당진이나 면천으로 간다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겁니다.]



선비가 또 물었다.

[저 두 손님은 누구십니까?]

[선비 분의 이름은 말해 줄 수 없고, 스님은 바로 백제 때 고승인 검단대사님입니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다른 곳에 퍼트리면 안 됩니다.]



선비가 한양에 돌아와 수소문해보니 과연 율곡 이이가 별이 떨어지던 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선비는 곧 충청남도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7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선조 시절 임진왜란 때문에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황제의 명령을 받아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었다.

이여송은 평양에서 승리를 거두고 성 안으로 들어가 쉬었다.

그런데 이여송은 평양의 경관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다른 마음을 품어, 선조를 설득해 그 곳에서 살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어느 날 이여송은 대동강 옆의 연광정에서 수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잔치를 열었다.

그 때 강변의 모래사장을 검은 소에 탄 노인 한 명이 지나갔다.

보초병들이 큰 소리로 노인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섰으나, 노인은 그것을 다 들으면서도 못 들은척 하며 소고삐를 잡고 천천히 지나갔다.



이 모습을 보고 이여송이 몹시 화를 내며 그 노인을 잡아오라 일렀다.

그러나 소가 느릿느릿 걷는데도 도저히 병사들이 따라잡지를 못했다.

이여송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직접 천리마를 타고 칼을 찬 채 노인의 뒤를 쫓았다.



소가 바로 앞에 보이는데다 말이 나는 듯이 달리는데도 노인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노인을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몇 리를 가서 한 산촌으로 들어가자, 노인이 타고 있던 검은 소가 시냇가 버드나무에 매여 있었다.

이여송은 노인이 이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에서 내려 검을 차고 들어갔다.



노인은 마루 위에서 일어나 이여송을 맞이하였다.

이여송이 화가 나서 꾸짖었다.

[너는 어떤 늙은이길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이리 건방지느냐! 나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백만 군대를 거느리고 너희 군대를 구하러 왔다. 네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건방지게 소에 탄 채 우리 군대 앞을 지나가느냐?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비록 산촌의 노인네이나 어찌 장군의 위대함을 모르겠습니까? 오늘 제 행동은 오직 장군을 누추한 이 곳에 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게 간절한 부탁이 있는데 장군께 말씀 드릴 방법이 없어서 이런 계책을 쓴 것입니다.]

이여송이 물었다.



[부탁이 무엇이냐? 말해보거라.]

노인이 말했다.

[저에게 불초자식이 둘이 있는데, 글 읽고 농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강도짓만 하며 부모의 가르침을 듣지 않습니다. 어른에게 대하는 태도도 알지 못하는 한심한 놈들이지만 제 기력이 쇠해서 아들들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장군의 용맹이 세상을 뒤덮으실만 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장군의 위엄을 빌려 이 패륜아들을 없애버리려 합니다.]



이여송이 말했다.

[아들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뒷마당의 대나무 숲에 있습니다.]



이여송이 칼을 차고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두 소년이 함께 책을 읽고 있었다.

이여송이 큰 소리로 질책하였다.

[너희가 이 집의 패륜아들이냐? 너희 아버지가 너희를 없애라하니 이 칼을 받아라!]



말을 마치고 검을 휘둘러 아이들을 내리치는데, 소년들은 목소리 하나,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죽간으로 칼을 막아내서 도저히 소년들을 해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소년이 죽간으로 칼날을 내리치자 칼날이 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동강이 나 버렸다.

이여송은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흘렸다.



조금 있자 노인이 들어와 아이들을 꾸짖었다.

[어린 것들이 어찌 이리 무례하냐!]

노인이 소년들을 물러나게 하자 이여송이 노인에게 말했다.



[저 패륜아들의 힘이 대단해서 당해낼 수가 없소. 그대의 부탁은 들어주기 힘들 것 같구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말은 장난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10명이 와도 저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황제의 뜻을 받들어 우리나라를 구하러 오셨으니, 왜구를 없애서 우리나라를 다시 안정되게 하시고 본국으로 개선하시어 이름을 역사에 남기시면 이것이 곧 영웅이 아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이런 위대한 일은 하지 않으시고 평양에 눌러 앉을 생각이나 하시니, 이것이 어찌 장군님에게 어울리는 일이겠습니까? 오늘 제가 꾸민 일은 장군님께 우리나라에도 인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장군님이 만약 계획을 고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낭비하신다면 늙은 몸이 장군의 목숨을 뺏으러 갈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시길 바랍니다. 산에 묻혀사는 늙은이의 말이 당돌할지 모르나 장군이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이여송은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어트린 채 기운 없이 있다가 이내 [예, 예.] 하고 군중으로 돌아갔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9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