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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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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선생의 외할아버지는 경상도 상주에 살았다.


집이 부유하고 그의 사람됨이 후덕하여 조화를 이루었으니, 고을에서는 그를 영남의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몹시 불고 눈이 많이 내린 엄동설한이었다.




퇴계 선생의 외할아버지 댁 문 밖에서 한 아병을 앓는 여자가 남루한 옷을 입고 하룻밤 재워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녀의 모습과 행동거지가 어찌나 흉악하고 추하던지, 사람들은 모두 코를 막고 얼굴을 돌렸다.


온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내저어 그녀를 몰아 쫓아내고, 문 밖에서 한 발자국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퇴계 선생의 외할아버지가 말하였다.


[그 여자를 쫓아내지 말거라. 저 여자가 비록 안 좋은 병을 앓고 있다지만, 날이 저문데다 이런 엄동설한에 어찌 사람을 내쫓는단말이냐? 만약 우리 집에서 이 사람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느 집에서 받아주겠느냐.]


밤이 깊어지자 그 여자는 추워 죽겠다고 울부짖었다.




노인은 차마 그 모습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그녀를 자신의 방 안으로 들여 윗목에서 자게 하였다.


그 여자는 노인이 잠든 틈을 타 조금씩 아랫목으로 내려오더니, 발을 노인의 이불 속에 넣기도 하였다.


그 때마다 노인은 잠에서 깨어나 양손으로 조심스레 그 여자의 발을 들어 이불 밖으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서너차례 이어졌다.




날이 밝자 그 여자는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대로 가버렸다 며칠 뒤 다시 왔다.


하지만 노인은 조금도 안 좋은 기색은 내비치지 않고 여전히 여자를 자신의 방에서 재웠으니, 온 집안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 몹시 걱정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자가 다시 찾아왔는데, 갑자기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전에 문둥병 걸리고 남루한 차름새는 온데간데 없었다.




노인 역시 놀라서 물었더니 여자가 대답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천상의 선녀입니다. 잠시 선생님 댁에 들러 선생님의 마음가짐을 시험해 보았을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노인이 놀라서 선녀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니 여자가 말했다.




[저번에 며칠 밤을 이불 속에서 손과 발이 마주쳤는데 어찌하여 제 얼굴도 제대로 못 보십니까? 저는 이미 선생님과 전생에 인연이 있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노인과 선녀는 함께 동침하였다.


이렇게 열흘 정도를 지내자 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고, 혹자는 여자가 도깨비가 아니냐는 말을 했으나 노인은 동요되지 않고 한결 같이 성심껏 대하였다.




그러다 하루는 여자가 말했다.


[오늘 나는 선생님과 헤어져야만 합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인간 세계에 귀양 온 기한이 다 차기라도 했소? 아니면 나의 정성과 예의가 처음만 못해서요?]


여자가 말했다.


[모두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사정을 말씀 드릴 수는 없으니 한 가지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반드시 이를 지켜주셔야만 합니다.]




다짐을 받은 뒤 여자가 말했다.


[안뜰에 산을 등지고 집을 한 칸 지어 정결하게 도배한 뒤, 굳게 자물쇠를 채워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선생님과 같은 성씨의 임산부가 아이를 낳으려 할 때 그 자물쇠를 열고 산실로 사용하게 하십시오.]


여자는 말을 마치고 문을 나섰는데,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노인은 이 일을 기묘하게 여기고 그녀의 말을 따라 안뜰에 산을 등지고 집을 한 칸 지었다.


비록 급하거나 절박한 일이 있어도 그 곳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자손 중 임신하여 해산에 임박한 사람이 있으면 그 안에 들어가 있게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어김없이 몹시 고통스러워 하며 아이를 낳지 못했고, 다른 방으로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를 낳았다.




노인은 여자의 말이 맞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겼으나, 그럼에도 그 집을 마음대로 이용하지는 않았다.


노인의 사위는 경상도 안동 사람이었다.


노인의 딸이 처음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을 때쯤, 사위는 아내를 데리고 처가로 왔다.




노인은 그들을 맞아 집 안에서 거처하게 하였는데, 아이를 낳을 때가 되자 갑자기 딸의 몸에 병이 생겨 앓아 누웠다.


온갖 약을 써서 치료하려 하였으나 효과가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온 집안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런데 하루는 딸이 아버지에게 청하였다.




[제가 어릴 때 들었는데, 선녀가 우리 집에 내려왔을 때 산실을 하나 지어 놓으라고 했다면서요? 지금 제가 아이를 낳을 때가 됐지만 병에 걸려 살 도리가 안 보입니다. 하지만 혹시 그 방에 들어가면 살아날 길이 있는 건 아닐까요? 저를 그 방으로 옮겨주세요, 아버지.]


노인이 곰곰히 생각해보니 선녀가 옛날에 말했던 [선생님과 같은 성씨의 임산부]란 바로 자기 딸이었다.


비록 며느리와 손자 며느리일지라도 그들은 모두 자신과는 성이 달랐기 때문에 그 산실에 들어가서도 아이를 낳지 못하고 고통에만 시달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은 비록 다른 집에 시집을 갔더라도 본래 성이 자신과 같으니, 분명 효험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제야 노인은 선녀의 말이 바로 딸을 가리켰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딸을 마당의 산실로 옮기니, 들어간지 며칠 만에 몸의 병이 나았다.




또 순산하여 아들을 얻었으니 그가 바로 퇴계 이황 선생인 것이다.


퇴계 선생은 동양의 위대한 유학자가 되어 문묘에 배향되었으니, 위대한 현인이 태어날 때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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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거사는 안동 사람으로, 서애 류성룡의 숙부였다.

생김새가 보잘 것 없고 행동거지마저 어리석고 실속이 없었으며, 평소에는 말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았다.

류거사는 초가집을 하나 지어서 문을 닫고 혼자 책만 읽어서, 류성룡은 삼촌이 그냥 멍청한 줄 알았다.



그러던 중 하루는 류거사가 류성룡에게 말했다.

[자네, 나와 바둑이나 두면서 놀지 않겠나?]

류성룡은 바둑의 고수였다.



게다가 그 전까지 숙부의 어리석은 모습만 보아 왔지 바둑 두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숙부님도 바둑을 두실 줄 아십니까?]

그리하여 두 사람은 바둑을 두게 되었다.



그런데 당대 조선의 국수였던 류성룡이 내리 3판을 숙부에게 내주고 말았다.

류성룡이 깜짝 놀라 의아해 하는데 류거사가 말했다.

[이제 바둑은 그만 두세. 오늘 저녁 어떤 중이 분명 자네 집을 찾아올걸세. 그 중을 만나면 내 집으로 오라고 말하게나.]



류성룡은 마음 속으로는 숙부의 말을 이상하게 여겼으나, 겉으로는 [예,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날 밤, 과연 어떤 중이 류성룡의 집에 와서 말했다.

[저는 묘향산에서 온 중입니다. 오늘 이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을런지요?]



류성룡은 평소 멍청하던 숙부의 말이 들어맞은 것에 신기해하며 중에게 저녁을 먹이고 숙부의 집으로 보냈다.

류거사가 말했다.

[나는 그대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중의 안색이 변하면서 물었다.

[그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류거사가 말했다.



[조금 전 내 조카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지요. 반드시 이 조용한 곳에 와서 잘 것이라 생각했소.]

말을 마친 뒤 류거사는 다른 말 없이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척을 했다.

그러자 중 역시 잠에 들었다.



중이 잠든 틈을 타서, 잠든 척하던 류거사는 몰래 중의 바리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우리나라 지도 한 장이 있었다.

지도 곳곳에 관문, 성, 관청의 위치, 험한 곳, 우리나라의 주요 인물 등에 관한 것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또 바리 안에는 단검 한 쌍이 있었는데, 그 칼날이 매우 날카로웠다.

류거사는 단검을 쥐고 중의 배 위에 걸터 앉아 가토 기요마사의 이름을 크게 외치고 말했다.

[네가 네 죄를 알렸다!]



중이 놀라서 잠에 깨어 났더니 번쩍번쩍 빛나는 날카로운 검이 머리 위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중이 말했다.

[소승은 죄가 없습니다.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류거사가 말했다.

[주머니 속에 지도를 만든 것은 네놈의 죄가 아니냐? 조선에 몰래 세 번 들어온 것 역시 네 죄가 아니냐? 우리나라에 인물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 것 또한 너의 죄가 아니냐?]

중이 입을 다물고 차마 대답조차 못하다가 애걸복걸하며 말했다.



[제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바다를 건너가서 다시는 조선에 오지 않고, 반드시 은혜를 갚겠나이다.]

류거사가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우리나라에 7년간 전쟁이 일어날 것은 하늘이 정한 운수다. 내가 쥐새끼 같은 네놈들을 죽여봐야 어쩔 수가 없구나. 내가 지금은 네 목숨을 살려주겠지만 나중에 왜놈들이 안동 땅에 한 발자국이라도 들여놓는다면 내가 모두 죽여버리겠다. 너는 당장 네 나라로 돌아가라.]



중은 [예, 예] 하고 정신 없이 대답하고 도망치듯 떠났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전국이 왜구에게 유린당했으나, 안동만은 전쟁의 참화가 미치지 못하였다.

이것은 곧 류거사의 공덕 덕분인 것이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26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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