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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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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선생의 외할아버지는 경상도 상주에 살았다.


집이 부유하고 그의 사람됨이 후덕하여 조화를 이루었으니, 고을에서는 그를 영남의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몹시 불고 눈이 많이 내린 엄동설한이었다.




퇴계 선생의 외할아버지 댁 문 밖에서 한 아병을 앓는 여자가 남루한 옷을 입고 하룻밤 재워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녀의 모습과 행동거지가 어찌나 흉악하고 추하던지, 사람들은 모두 코를 막고 얼굴을 돌렸다.


온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내저어 그녀를 몰아 쫓아내고, 문 밖에서 한 발자국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퇴계 선생의 외할아버지가 말하였다.


[그 여자를 쫓아내지 말거라. 저 여자가 비록 안 좋은 병을 앓고 있다지만, 날이 저문데다 이런 엄동설한에 어찌 사람을 내쫓는단말이냐? 만약 우리 집에서 이 사람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느 집에서 받아주겠느냐.]


밤이 깊어지자 그 여자는 추워 죽겠다고 울부짖었다.




노인은 차마 그 모습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그녀를 자신의 방 안으로 들여 윗목에서 자게 하였다.


그 여자는 노인이 잠든 틈을 타 조금씩 아랫목으로 내려오더니, 발을 노인의 이불 속에 넣기도 하였다.


그 때마다 노인은 잠에서 깨어나 양손으로 조심스레 그 여자의 발을 들어 이불 밖으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서너차례 이어졌다.




날이 밝자 그 여자는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대로 가버렸다 며칠 뒤 다시 왔다.


하지만 노인은 조금도 안 좋은 기색은 내비치지 않고 여전히 여자를 자신의 방에서 재웠으니, 온 집안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 몹시 걱정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자가 다시 찾아왔는데, 갑자기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전에 문둥병 걸리고 남루한 차름새는 온데간데 없었다.




노인 역시 놀라서 물었더니 여자가 대답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천상의 선녀입니다. 잠시 선생님 댁에 들러 선생님의 마음가짐을 시험해 보았을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노인이 놀라서 선녀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니 여자가 말했다.




[저번에 며칠 밤을 이불 속에서 손과 발이 마주쳤는데 어찌하여 제 얼굴도 제대로 못 보십니까? 저는 이미 선생님과 전생에 인연이 있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노인과 선녀는 함께 동침하였다.


이렇게 열흘 정도를 지내자 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고, 혹자는 여자가 도깨비가 아니냐는 말을 했으나 노인은 동요되지 않고 한결 같이 성심껏 대하였다.




그러다 하루는 여자가 말했다.


[오늘 나는 선생님과 헤어져야만 합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인간 세계에 귀양 온 기한이 다 차기라도 했소? 아니면 나의 정성과 예의가 처음만 못해서요?]


여자가 말했다.


[모두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사정을 말씀 드릴 수는 없으니 한 가지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반드시 이를 지켜주셔야만 합니다.]




다짐을 받은 뒤 여자가 말했다.


[안뜰에 산을 등지고 집을 한 칸 지어 정결하게 도배한 뒤, 굳게 자물쇠를 채워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선생님과 같은 성씨의 임산부가 아이를 낳으려 할 때 그 자물쇠를 열고 산실로 사용하게 하십시오.]


여자는 말을 마치고 문을 나섰는데,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노인은 이 일을 기묘하게 여기고 그녀의 말을 따라 안뜰에 산을 등지고 집을 한 칸 지었다.


비록 급하거나 절박한 일이 있어도 그 곳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자손 중 임신하여 해산에 임박한 사람이 있으면 그 안에 들어가 있게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어김없이 몹시 고통스러워 하며 아이를 낳지 못했고, 다른 방으로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를 낳았다.




노인은 여자의 말이 맞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겼으나, 그럼에도 그 집을 마음대로 이용하지는 않았다.


노인의 사위는 경상도 안동 사람이었다.


노인의 딸이 처음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을 때쯤, 사위는 아내를 데리고 처가로 왔다.




노인은 그들을 맞아 집 안에서 거처하게 하였는데, 아이를 낳을 때가 되자 갑자기 딸의 몸에 병이 생겨 앓아 누웠다.


온갖 약을 써서 치료하려 하였으나 효과가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온 집안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런데 하루는 딸이 아버지에게 청하였다.




[제가 어릴 때 들었는데, 선녀가 우리 집에 내려왔을 때 산실을 하나 지어 놓으라고 했다면서요? 지금 제가 아이를 낳을 때가 됐지만 병에 걸려 살 도리가 안 보입니다. 하지만 혹시 그 방에 들어가면 살아날 길이 있는 건 아닐까요? 저를 그 방으로 옮겨주세요, 아버지.]


노인이 곰곰히 생각해보니 선녀가 옛날에 말했던 [선생님과 같은 성씨의 임산부]란 바로 자기 딸이었다.


비록 며느리와 손자 며느리일지라도 그들은 모두 자신과는 성이 달랐기 때문에 그 산실에 들어가서도 아이를 낳지 못하고 고통에만 시달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은 비록 다른 집에 시집을 갔더라도 본래 성이 자신과 같으니, 분명 효험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제야 노인은 선녀의 말이 바로 딸을 가리켰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딸을 마당의 산실로 옮기니, 들어간지 며칠 만에 몸의 병이 나았다.




또 순산하여 아들을 얻었으니 그가 바로 퇴계 이황 선생인 것이다.


퇴계 선생은 동양의 위대한 유학자가 되어 문묘에 배향되었으니, 위대한 현인이 태어날 때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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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 밖에 사는 권진사는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공부에는 뜻이 없고 오로지 놀러다니기만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사마천처럼 세상을 유람하는 풍취가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는 전국을 두루 돌아다녀 안 가본 곳이 없었으며, 명산대천과 경치 좋고 조용한 곳은 모조리 찾아갔고 어떤 곳은 두세번 가기도 하였다.




그가 어느날 춘천 기린창에 갔는데, 그 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권진사가 주막에 앉아 있는데 약립을 쓰고 소를 탄 어떤 사람이 주막에 오더니 그 곳의 주모에게 물었다.


[저 방 손님은 어떤 양반이오?]




주모가 말하였다.


[저 분은 서울에 사시는 권진사님입지요. 전국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유람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저희 집에도 3번이나 오셨기에 편히 지내고 계십니다.]


[저 양반이 잘 아는 게 있소?]




[풍수지리학에 꽤 통달하셨지요.]


[그럼 내가 혹시 저 분을 좀 모셔갈 수는 없겠소?]


[아마 괜찮을 겁니다.]




잠시 뒤 주모가 방에 들어가 권진사에게 고했다.


[어느 마을에 사는 첨지가 진사님의 재주를 듣고 지금 진사님을 모셔가겠다고 청하고 있습니다. 진사님께서는 의심하지 마시고 잠시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권진사는 주막에만 며칠을 있어 심심했기에 바로 대답했다.




[이 곳에서 멀지만 않으면 한 번 놀고 오는 것을 내 어찌 마다하겠소?]


이에 첨지라는 자가 와서 권진사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진사님의 명성을 들은지 오래입니다. 제가 지금 소를 타고 왔으니 잠시 누추한 제 집으로 가시는 게 어떠실지요?]




권진사가 물었다.


[첨지의 집이 이 곳에서 몇 리나 되오?]


[이 곳에서 30리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같이 소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첨지는 고삐를 잡고 뒤에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정오 무렵이었다.


타고 있던 소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었다.




대략 3, 40리쯤 갔을 때 권진사는 첨지에게 물었다.


[영감께서 사시는 마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려.]


[제가 사는 곳은 아직 멀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몇 리쯤 온 것이오?]


[80리 정도 왔습니다.]


권진사는 몹시 이상히 여기며 말했다.




[지금 이곳까지 거의 100리를 왔는데도 마을이 아직도 멀리 있다니요? 그럼 어째서 처음에 30리라고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영감은 나를 속여 데려가서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막 주인은 내가 30리쯤 되는 마을에 산다고만 알지, 내가 진짜 사는 곳은 알지 못합니다.]


권진사는 마음 속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와버린터라 그냥 가기로 했다.




마을로부터 30리 정도 나오자 그 후에는 계속 깊은 산과 골짜기였다.


낙엽은 사람 정강이까지 차올라 있는데, 그 사이에 단지 작은 길 하나만 나 있었다.


오후 세네시쯤 되자 첨지가 소를 멈추며 말했다.




[잠시 내려서 요기나 하고 가시지요.]


권진사는 소에서 내려 물가에 가서 앉았다.


미리 가져온 도시락을 먹고 물을 떠서 마신 뒤 다시 소를 타고 갔다.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시간은 황혼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뒤 멀고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이 부르는 소리가 나자 첨지가 [왔네!] 라고 크게 소리쳐 대답했다.


권진사가 소의 등 위에서 보니 수십명이 횃불을 들고 고개를 넘어오는데, 모두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이 횃불을 가지고 권진사와 첨지 가는 길을 인도했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자 어렴풋한 가운데 한 큰 마을이 있고, 닭과 개 짖는 소리, 다듬이 방망이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곧 어떤 집에 도착해 소에서 내려 문 안으로 들어가니, 방과 창이 정교하고 깨끗하였으며 용마루와 처마가 앞이 탁 트여 널찍하였으므로 산골 촌사람들이 사는 곳 같지 않았다.




그 다음날 마을을 두루 살펴보니, 인가는 200여호 되는 것 같았고 앞에 펼쳐진 평야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모두가 기름진 땅이었다.


그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자 20여리라고 하였으니, 이 곳은 사람들이 모르는 세상 밖 무릉도원이었다.


또 벽을 사이에 둔 대여섯간의 방에서는 밤마다 책 읽는 소리가 들려 물어보니, 마을의 젊은이들이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며 놀지 않고 주경야독하며 모여서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권진사가 팔도를 두루 유람하면서 소원이 무릉도원을 한 번 보는 것이었기에 너무 기쁜 나머지 첨지에게 무릎을 꿇고 물었다.


[주인께서는 신선이십니까, 귀신이십니까? 이 마을은 무슨 마을입니까?]


첨지가 놀라서 말했다.




[진사님! 어째서 갑자기 존댓말을 하십니까! 나는 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대에는 경기도 고양에 살았는데, 우리 증조부께서 마침 이 곳을 찾아서 이사를 왔습니다. 그 때 친가 외가 친척을 통틀어 따라오고 싶어했던 30여호가 따라왔지요. 일단 이 곳에 온 후에는 세상과 연을 끊기로 하고 경서 몇 권과 소금, 양념만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땅을 개간하고 논을 만들어 먹을 것을 해결하였고, 결혼은 이 안에서 해결해서 우리끼리 살고 있습니다. 자손이 번성하여 이제 마을에 집만 200채 가까이 됩니다.]


[먹고 입는 것이여 이 안에서 농사 짓고 베 짜는 것으로 한다고 하여도, 소금 같은 것은 어찌 하십니까?]


[진사님께서 어제 타셨던 소는 하루에 200여 리를 갑니다. 저희 증조부께서 이 곳에 오실 때 데려온 소가 새끼를 낳은 것인데, 이처럼 잘 걷는 소가 매년 한 마리씩 태어납니다. 이웃 마을에 다닐 때는 이 소를 타고가서 소금을 사옵니다. 산에 노루, 사슴, 멧돼지, 산양이 있으니 그 고기를 먹고, 산 주변에 벌꿀통 300여개를 치고 있는데 주인이 없이 서로 양보하며 쓰고 있습니다.]




하루는 첨지가 소년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권진사님을 모시고 물고기나 좀 잡아오거라.]


그 소년들 중 어떤 소년은 겨와 쭉정이를, 어떤 소년은 뾰족하게 깎은 막대기를 가지고 일제히 한 연못에 모였다.




물 속에 겨를 풀어 넣고 그것이 아래로 가라앉자, 소년들은 일시에 몽둥이를 가지고 수영하며 내리쳤다.


조금 지나니 한 자나 되는 물고기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무슨 고기냐고 묻자 [목멱어] 라고 하였는데, 붕어와 비슷하였으나 흰 비늘이 있었다.




권진사는 한 달 가량 그 마을에 머물며 모든 것을 구경하였다.


그 마을을 떠날 때 첨지는 거듭 부탁했다.


[이 마을은 춘천도, 또 낭천도 아닙니다. 이 너른 들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몇 리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데다 사람들이 이곳에 온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진사님이 이 곳에 오셨던 것도 다 인연이니, 이 산을 나가신 후에도 다른 사람에게 이를 알리지 마십시오.]




권진사가 말했다.


[나도 집에 돌아가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첨지가 말했다.




[쉽지 않을 것이오. 쉽지 않을 것이오.]


권진사는 산을 나온 이후 늙도록 집에서 머물며 매일 탄식하였다.


[내 평생에 한 번 진짜 무릉도원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만 속세일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까닭에 집안 사람들을 데리고 그 곳에 가지 못하였구나!]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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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호남에 한 선비가 있었다.


그 선비의 누이동생이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한 지 사흘만에 남편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선비 집에서는 장례를 치르고 과부 누이동생과 함께 시댁으로 보냈다.




그 선비도 누이동생의 뒤를 따라 강을 건넜는데, 슬프고 참담한 심정을 참을 수 없어 시를 지었다.


[강 위의 배에게 묻노라. 옛부터 지금까지 장가를 든 자는 몇 명이고, 시집은 간 이는 또 몇 명인가? 그럼에도 이런 행차는 없었을 것이다! 붉은 깃발이 앞서고 흰 가마가 뒤따르니, 청상과부에 백골신랑이로구나. 강 위의 배야, 천천히 가거라. 신랑의 혼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 강 위의 배야, 어서 가거라. 신랑 집에는 10년간 외아들만 기르신 어머님이 계신다더라. 아침 저녁으로 기다리던 아들은 오지 않고 백골만 오니, 이 원통함을 누구에게 다시 물을꼬! 창창하고 어린 계집종들은 배에 기대 울며 말하고, 저 원앙은 여전히 쌍쌍으로 날아 북산의 남쪽으로 날아가는구나!]


선비가 이렇게 시를 써서 관 앞에 놓았다.




그리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길게 부르짖었더니, 잠시 뒤 홀연히 긴 무지개가 강 가운데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관 위까지 뻗치더니, 이윽고 관이 스스로 쪼개졌다.


관 안에서는 죽었던 신랑이 다시 일어나서 살아났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도다.


이 이야기는 괴담에 가깝지만 워낙 신묘한 일이라 특별히 잠시 기록해 둔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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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조하 최규서가 젊을 적에 용인에 살았는데, 한 민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과거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친구들이 모두 놀러가고 최규서만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거동과 모습이 뛰어나게 훌륭한 한 관인이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들어오더니 상석에 가서 앉았다.




최규서가 그의 옷을 보니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옷이었다.


몹시 괴이하게 여긴 최규서가 물으니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고려 때의 선비라오. 실은 내 집이 이 민가의 서쪽 방 밑에 있는데, 이 집 주인이 아침저녁으로 내 집 위에서 불을 때서 견딜 수가 없구려. 손자 한 놈은 그만 한 쪽 허벅다리가 다 타 버렸을 정도라오. 그대가 나를 위해 이 집을 옮겨서 우리 집안을 도와주지 않겠소?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 비록 죽은 넋이나 반드시 결초보은 하리다.]




최규서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친구들과 내가 함께 있을 때 말하지 않고 하필 나 혼자 있을 때 찾아온 것이오?]


[다른 사람들은 정신력이 약하여 말하기가 어려웠소. 그대는 다른 이들보다 재주가 훨씬 뛰어난 까닭에 그대가 혼자 있는 틈에 이렇게 찾아온 것이오.]




최규서가 흡족해하며 말했다.


[내 한 번 해보리다.]


이 말을 들은 관인은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다음날 최규서는 주인을 불러 물었다.


[혹시 네가 이 집을 지을 때 무언가 이상한 것을 보지 않았느냐?]


주인이 대답했다.




[서쪽 방 아래가 무덤이 아닌가 의심이 갔습니다만,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옛 무덤 위에 방을 만들면 심신이 안정된다길래 그대로 방을 만들었습니다.]


최규서가 말했다.


[내가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만약 자네가 서둘러 이사가지 않는다면 반드시 큰 화를 입을 것이네.]




주인이 이사갈 돈이 없다고 하자, 최규서는 곧 엽전 15 꿰미를 빌려와서 그 날로 이사를 가게 했다.


그 후 관인이 밤을 틈타 최규서의 집으로 찾아와 감사하는데, 몹시 기뻐하며 감격하였다.


관인이 말했다.




[그대는 반드시 큰 귀인이 되어 오복을 두루 얻을 것이오. 다만 지위가 판서에 이르렀을 때는 반드시 사퇴해야만 제대로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에게 닥칠 화 또한 어마어마할 것이외다.]


최규서는 이 말을 항상 마음 속에 담아두다가, 관인의 말에 따라 판서가 되자 곧 사퇴하였다.


그리고 은퇴하여 용인에서 즐거이 살았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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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송의 동생이자 명나라의 제독이었던 이여매의 후손 아무개는 힘이 장사였고 검술이 뛰어났다.


일찍이 전라도 완산 진영에 부임되어 가게 되었는데, 금강에서 한 부인과 같은 배를 타고 건너가게 되었다.


강 중류에 이를 무렵 어떤 중이 강둑에 도착하여 뱃사공을 부르며 말했다.




[어서 이리와 배를 대시오.]


뱃사공이 중을 태우기 위해 배를 돌리려고 하자, 아무개는 화를 내며 뱃사공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중이 하늘로 뛰어 오르더니 공중을 날아 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부인의 가마가 있는 것을 보고는 안을 들여다보며 말하였다.


[제법 예쁜데?]


중이라는 사람이 부인을 희롱하며 온갖 방자한 말을 늘어놓는 꼴을 보자 아무개는 한 주먹에 중을 때려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금방 중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본 터라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어 내심 참고 있었다.


이윽고 배에서 내려 육지에 도착하자, 아무개는 중을 꾸짖으며 말했다.


[네가 비록 하찮은 중이지만, 엄연히 중과 속인이 다르고 남녀가 유별하다. 그런데 어찌 감히 부인을 희롱하느냐!]




그리고 아무개가 가지고 있던 철편으로 온 힘을 다해 때리자 중이 그 자리에서 죽어 나자빠졌다.


아무개는 중의 시체를 강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개는 전주에 도착해 감사를 알현하고, 금강에서 있었던 일을 말한 뒤 영내에 머물렀다.




몇개월이 지나자 성문 밖이 떠들썩하는데 그 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다.


감사가 의아해하며 그 까닭을 묻자, 문지기가 들어와 아뢰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떤 중이 들어와 사또를 뵙자고 합니다. 저는 말리려고 했지만 제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드옵니다.]




이윽고 중이 들어오더니 마루 위로 올라와 감사에게 인사했다.


감사가 말했다.


[너는 어디 사는 중이며,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왔느냐?]




중이 말했다.


[소승은 강진 사람인데, 비장 이아무개가 지금 이 곳에 있습니까?]


감사가 말했다.




[어찌하여 그것을 묻느냐?]


[이비장이 때려 죽인 스님은 바로 소승의 스승님입니다. 그렇기에 소승은 원수를 갚으러 왔습니다.]


[이비장은 지금 서울에 갔다네.]




[언제 돌아옵니까?]


[한 달을 기간으로 잡고 갔으니, 다음달 10일쯤에는 돌아오겠지.]


[소승은 그 때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그가 재주를 부려 도망칠지라도 제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테니,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러더니 중은 즉시 작별 인사를 하고 갔다.


감사는 이비장을 불러 중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대는 그 중과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이비장이 말했다.


[소인은 집안이 가난하여 고기를 먹는 일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 탓에 기력이 허합니다. 만약 하루에 큰 소 한 마리씩 한 달간 30마리만 먹을 수 있다면 저 중 따위가 어찌 두렵겠습니까?]


감사가 말했다.




[그거라면 천금 정도의 돈만 쓰면 될텐데 어려운 일도 아니구나!]


감사는 즉시 고기를 관리하는 아전에게 분부하여 날마다 이비장에게 소 한마리어치 고기를 주게 했다.


이비장은 또 황색 비단으로 좁은 소매를 댄 자주색 비단 전투복을 만들어 줄 것을 청하니, 감사가 그렇게 해 주었다.




이비장은 또 대장간에 찾아가 쌍검을 만들게 했는데, 백번이나 단련해서 만든 검이었기에 쇠도 자를 정도로 예리하고 단단했다.


이비장이 10일 동안 열마리 소를 먹자 살이 엄청 찌더니, 20일 동안 20마리의 소를 먹자 몸이 다시 수척해졌다.


그리고 한 달 동안 30마리의 소를 먹자 살이 찌지도, 마르지도 않아 보통 사람과 똑같았다.




이비장이 힘을 기르며 기다리니, 중이 약속한 날짜에 다시 와서 감사를 알현하고 말했다.


[이비장이 왔습니까?]


[이제 막 돌아왔네.]




이비장은 마침 옆에 서 있다가 중을 꾸짖으며 말했다.


[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네놈이 어찌 그리 당돌하냐!]


곧바로 중이 말했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오늘 나와 어디 누가 죽나 겨루어보자!]


중은 뜰로 내려가더니 바랑 속에 말아 넣어 두었던 검을 꺼내 손으로 그것을 폈는데, 그 검이 바로 상장검(霜長劒)인 듯 했다.


이비장 역시 뜰로 내려가 전투복을 입고, 손에는 한 쌍의 백련검(百鍊劒)을 든 채 송곳 신발을 신었다.




서로 상대하여 싸우기를 몸을 뒤척였다가 춤을 추기도 하고, 서로 물러났다 다시 달라 붙었다.


이윽고 검광이 번쩍번쩍 하다가 마침내는 은 항아리 모습을 이루더니, 두 사람이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뜰에 모여 앉았던 구경꾼들은 모두 혀를 차며 승패가 갈리기만을 기다렸다.




날이 저물자 하늘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더니, 곧이어 중의 몸뚱이가 선화당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성문 밖에 중의 머리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모두 이비장이 이겼다는 것을 알았으나, 날이 어두워지도록 이비장은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의심하게 괴이하게 여겼다.


이비장은 저녁 늦게서야 검을 짚고 내려왔다.


감사가 일의 연유를 물으니 이비장이 대답했다.




[다행히 사또 어르신의 은혜를 입어 고기를 먹어 원기를 보충하고, 전투복을 입어 중의 눈을 어지럽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끝장 났을 것입니다.]


감사가 물었다.


[중의 머리가 땅에 떨어진지 오래 되었는데 그대는 왜 이리 늦게 왔는고?]




이비장이 말했다.


[소인이 검을 쓰며 싸우다 보니 기분이 들떴습니다. 문득 조상님들이 계신 고국산천이 그리워져 농서성의 선영에 가서 한바탕 통곡하고 왔습니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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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의 조광일이라는 사람이 옛날 홍주에 잠시 살았었다.


그는 옛부터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부잣집에는 가본 적이 없고, 조광일의 집에도 잘 사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소탈하고 정직해서 이치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직 병을 고치는 것을 취미로 삼았는데, 그의 의술은 옛 방식인 탕약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작은 가죽주머니 하나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 안에는 철침 수십개가 들어 있었다.


긴 것, 짧은 것, 둥근 것, 모난 것 등 모양이 다른 여러 침을 써서 종기를 터트리고, 부스럼과 혹을 치료하고, 피가 막힌 것을 통하게 하고, 중풍을 고치며 늙은 이에게 기력을 되찾게 하는 등 그 효과가 매우 뛰어났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침은" 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침술에 정진하여 답을 얻은 자라는 뜻이었다.


어느날 맑은 새벽, 조광일이 일찍 일어났더니 남루한 옷을 입은 노파가 엉금엉금 기어와서 집의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아무개입니다. 어느 마을에 사는 백성 아무개의 어머니인데, 제 아들놈이 병에 걸려 죽을 지경이니 그 놈 목숨 좀 살려주세요!]




조광일이 바로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서 앞장서세요. 따라가겠습니다.]


즉시 일어나 노파의 뒤를 따라가는데, 조광일이 당황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이렇듯 조광일은 다른 이들의 병을 돌보느라 바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하루는 비가 내려 길이 진흙탕이었는데, 조광일이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고 바삐 길을 가자 어느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 어딜 그리 바삐 가십니까?]




조광일이 말했다.


[어느 마을에 사는 아무개의 아버지가 병이 들어서 내가 지난 번에 침을 한 번 놓아주었소. 그런데 효과가 없기에 오늘 다시 침을 놓기로 했지요. 그래서 지금 가서 침을 놓으려는 것이오.]


그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께 그것이 무슨 이익이 된다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조광일이 웃으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같다.


그의 사람됨이 이와 같았다.




어느 사람이 조광일에게 물었다.


[의술이라는 것은 천한 기술이고 마을은 비천한 자들이 사는 곳이오. 어찌하여 당신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서도 귀하고 잘 사는 사람들과 지낼 생각은 하지 않고 천한 백성들이나 쫓아 다니는 것이오? 왜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


조광일이 웃으면서 말했다.




[대장부가 벼슬길에 나아가 정승이 되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의사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정승은 정치로서 사람을 구하지만, 의사는 의술로 사람을 살려냅니다. 그 지위는 엄청나게 다르지만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하지만 정승은 때와 운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또, 임금님의 녹을 받으며 책임을 맡기 때문에 하나라도 잘못이 있으면 바로 벌을 받게 되지요.]


조광일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의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술로 자신의 뜻을 행하고, 언제나 뜻을 이루지요. 설령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라면 그냥 두고 가도 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의술을 즐기는 것입니다. 내가 의술을 행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귀천을 가리지 않는 것이지요. 나는 세상의 의사들이 자신의 의술만 믿고 사람들에게 교만하게 굴고, 술과 고기를 대접하고 여러번 청을 해야 겨우 왕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광일이 말했다.


[또 그렇게 가더라도 귀하고 권세 있는 집이나 부잣집일 뿐이지요. 만약 가난하고 권세 없는 자는 병들어도 거절당하고, 백 번을 청해도 일어나지조차 않으니 이것이 어찌 사람이 할 도리입니까? 내가 오로지 마을에서만 있으며 귀한 이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저런 간악한 의사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함입니다. 저 귀하고 잘 사는 사람들이 어찌 우리보다 힘들겠소? 하지만 마을의 백성들은 불쌍하고 가난합니다. 내가 침을 놓으며 사람을 고친 것이 10여년입니다. 어느 날은 대여섯 사람을 치료하기도 하여 한 달이면 열댓명을 살려냈고, 온전히 건강을 되찾게 해 준 사람만 수천명은 될 것이오. 내가 올해 40살이니 앞으로 수십년을 더하면 만명은 살릴 수 있겠지요. 그 정도는 해야 내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 조광일은 뛰어난 의술을 가졌으면서도 부귀공명을 바라지 않았고, 널리 베풀면서도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위급한 자에게는 반드시 달려갔고, 언제나 가난하고 미천한 이들을 먼저 치료했으니 그 어질음이 다른 이보다 훨씬 크도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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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전의 이씨의 선조가 부모의 상을 당해 시체를 안치할 장소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선산 옆에 있는 한 산이 밝고 모습이 수려하였으니 그 곳에 안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풍수가가 말했다.



[이 땅이 매우 좋은 길지이나, 아직까지 무덤이 없는 것은 그 땅을 팔 때마다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는 흉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씨는 그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것이라 생각해 무시하고 시체를 그 곳에 묻기로 했다.

그런데 상여가 그 곳에 도착해 보니 시체를 묻으려고 한 곳에 이미 무덤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것을 본 손님들이 말했다.

[어떤 나쁜 놈이 하룻밤 사이에 장지를 훔쳐 장사를 치뤘나봅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씨는 한참 동안 속으로 깊게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것은 분명 사람의 술수가 아닐 것이오. 한 번 무덤을 파봅시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천륜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이씨를 말렸지만, 이씨는 고집을 피우며 말을 듣지 않았다.

무덤을 헐어보니 관이 하나 있었는데, 옻을 칠한 것이 마치 거울처럼 빛났다.



관 위에 놓인 깃발에는 [학생 고령 신공의 관] 이라고 붉은 글씨로 써 있었다.

이씨가 말했다.

[과연 내가 짐작한 대로구나!]



이씨는 관을 들어 무덤 밖으로 꺼내고 그것을 도끼로 부쉈다.

안에는 사기 그릇 조각만 가득 차 있었는데, 햇빛을 받자마자 가루가 되어 순식간에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이 축하하면서도 이상하게 여겨 질문을 하니, 이씨가 말했다.



[내가 옛날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있소. 산신이 땅을 너무 아끼면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이런 장난을 친다고 하더군요. 내가 어찌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이씨는 아무런 근심 없이 장사를 지냈다.

지금도 전의 이씨 가문은 대대로 벼슬길에 올라 집안이 매우 융성하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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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 이여송은 평양에서 왜구를 정벌했다.

그 때 이여송은 김씨 성을 가진 역관을 총애하였다.

김역관은 나이가 겨우 20세로, 꽃다운 용모에 미색이 흘러 넘쳤다.



이여송은 밤낮으로 그를 가까이 하며 잠시도 놓아주지 않으니, 임금이 왕비를 사랑하는 것도 그것만 못할 정도였다.

김역관이 무슨 말을 하던 반드시 들어주었으니, 그의 소원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여송은 군대를 철수하여 명으로 돌아갈 때도 김역관을 데리고 갔다.



만주 봉황성 책문에 이르렀는데, 군량이 약속된 기일이 되도록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여송은 크게 노하여 요동 통제사를 군법으로 다스리려 했다.

요동 통제사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첫째는 시랑 벼슬이고 둘째는 서길사였으며, 막내 아들은 신묘한 승려였다.



황제가 그 셋째 아들을 스승으로 모셔 대궐 안에 별관을 세워 그 곳에서 거하게 했다.

그 융숭함이 마치 당나라 숙종이 이필을 대하는 것 같았다.

요동 통제사가 군법으로 처벌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들은 세 아들들은 모두 요동까지 달려와 아버지를 구할 방법을 의논했다.



그 때 셋째 아들이 말했다.

[형님들, 제가 소문을 들어보니 조선의 김씨 성을 가진 역관이 제독에게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역관이 말하는 것은 무조건 들어준다고 하니 그 역관을 만나 간곡하게 빌어봅시다.]

그리하여 세 아들은 함께 제독의 병영으로 가서 김역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역관은 그 사실을 이여송에게 아뢰었다.

[요동 통제사의 세 아들이 소인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이여송이 말했다.



[분명 자기 아버지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빌려는 것일게다. 하지만 저 셋은 명나라에서 벼슬 자리에 오른 귀한 이들이니, 외국의 하찮은 일개 역관인 네가 안 나갈 수는 없지 않느냐? 어서 나가 보거라.]

김역관이 나가자 세 아들은 한 목소리로 간청했다.

[아버님이 변을 당하셔서 이대로는 살아날 방법이 없습니다. 부디 그대가 우리를 위해 제독에게 잘 아뢰어서 목숨이나마 살려주시면 평생의 은혜로 삼겠습니다.]



김역관이 말했다.

[보잘 것 없는 외국인인 제가 어떻게 군법을 마음대로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세 분의 정성이 이렇게 간곡하니 제가 거절할 방법이 없습니다. 제독께 여쭈어 볼테니 여기서 제독의 결정을 기다리십시오.]

김역관이 바로 막사로 들어가니 제독이 물었다.



[저들이 찾아온 이유가 요동 통제사 때문이더냐?]

[그렇습니다.]

이어서 김역관은 세 아들과 주고 받은 이야기를 상세하게 이야기 했다.



제독은 한참 동안 깊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평생 전쟁터를 돌아다니면서 지금까지 사사로운 정 때문에 공적인 일을 그르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보잘 것 없는 네가 귀인들에게 부탁을 받다니, 네가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겠구나. 내가 너를 이 명나라 땅으로 데리고 온 후 너를 위해 해 준 것이 없으니, 군법이 지엄하다지만 이번 한 번만은 내가 너를 위해 한 번 도와주마.]

김역관이 밖으로 나가 세 아들에게 제독이 한 말을 전하니, 세 사람은 함께 절을 하며 말했다.



[그대의 은혜 덕분에 아버님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소. 은혜가 하늘과 같이 크고 바다와 같이 넓습니다. 어떤 것으로 보답하면 되겠습니까? 깃털, 사아, 가죽, 금, 은, 옥, 비단 등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모두 주리다.]

[저희 집안은 원래 청렴하고 검소합니다. 보배로운 패물이나 진귀한 노리개 같은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세 아들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조선 사람이니, 우리 임금님께 청해 그대를 조선의 재상으로 삼게 하면 어떻겠소?]

[우리나라는 명분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는 중인이니 제가 정승이 되어봐야 사람들은 '중인 정승' 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놀려댈 것입니다. 차라리 정승이 되지 않는 것보다 못할 것입니다.]

세 아들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를 명나라에서 높은 관직에 임명하여, 유명한 가문의 양자로 들이면 어떻겠소?]

[저희 부모님은 아직 모두 살아계십니다. 지금 조선을 떠나 있는 것만으로도 보고 싶어 속히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세 아들이 말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은혜는 꼭 갚아야겠소. 그대는 원하는 바를 말하시오. 만약 지극히 귀한 물건이어서 들어주기 힘든 것이라 해도 반드시 들어주겠소.]

세 아들이 너무나 애걸하니, 김역관이 엉겁결에 경솔히 말하고 말았다.

[제가 딱히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만, 소원이라면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보는 것입니다.]



세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서로 바라보며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셋째 아들인 신승이 입을 열었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 아들은 김역관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김역관은 안으로 들어가 제독을 만났다.

제독이 물었다.



[그 세 사람이 반드시 너에게 은혜를 갚으려 할텐데, 너는 무엇을 달라고 했느냐?]

김역관이 말했다.

[저는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독은 번쩍 일어나 김역관의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가 소국의 사람인데 어찌하여 말하는 것은 그리도 원대하느냐? 그들이 허락했느냐?]

[허락하였습니다.]



제독이 말했다.

[그들이 어디서 그런 여자를 구해올꼬? 황제 폐하라 하더라도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찾기 힘들 것인데!]

김역관이 이여송을 따라 명나라 수도 북경에 들어섰다.



그러자 세 아들이 와서 김역관을 데리고 어느 집으로 들어섰다.

그 곳은 세로 지은 큰 누각이었는데, 크기가 크고 시원했으며, 금색의 벽은 휘황찬란했다.

집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세 아들이 말했다.



[돌아가지 말고 오늘 밤은 이 곳에서 자고 가도록 하시오.]

조금 있으니 온 집안에 향 냄새가 가득했다.

안쪽 문이 열리더니 곱고 짙게 화장한 미인 수십 명이 나왔다.



어떤 이는 향로를 들고, 어떤 이는 붉은 보자기로 싼 상자를 들고 줄을 서서 마루 앞에 섰다.

김역관이 그들을 보니 모두 아름답지 않은 여자가 없었다.

미인들을 본 뒤 김역관이 떠나려 하니, 세 아들이 물었다.



[어찌하여 가려는 것이오?]

[제가 이미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들을 보았으니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자 세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이들은 고작 시녀일 뿐이오. 어찌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다 할 수 있겠소?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이제 나올 것이오.]

잠시 뒤 안쪽 문이 활짝 열리며 난초와 사향 향기가 진하게 퍼져 나왔다.

그리고 시녀 십여명이 천하일색의 여인을 데리고 나와 마루 위에 올라 앉으니 마치 의자 위에 곱게 화장한 열 손가락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세 아들과 김역관 역시 차례로 의자 위에 앉았다.

세 아들이 김역관에게 물었다.

[이 여자야말로 진정 김역관이 보기 원했던 천하 제일의 미녀입니다. 어떻습니까?]



김역관이 그 여자를 보니, 온 몸에 장식된 구슬과 보석들에서 비추는 빛 때문에 정작 사람은 보이지가 않았다.

세 아들이 말했다.

[오늘 밤에 그대는 반드시 이 여자와 잠자리를 가져야 합니다.]



김역관이 말했다.

[저는 그저 한 번 보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세 아들이 말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대가 천하일색을 보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발이 닳도록 여자를 찾아 헤멨소. 천하에서 두번째, 세번째 아름다운 여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황제 폐하의 힘을 빌려도 찾기가 너무나 어려웠소. 그런데 예전에 우리가 베트남 왕의 원수를 갚아준 적이 있었소. 베트남 왕이 우리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가 말만 하면 뭐든 들어줄 기세였는데, 마침 그 베트남 왕의 딸이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지 뭐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이 소원을 말한 그 날 바로 베트남 왕에게 사람을 보내 부탁했더니 왕이 흔쾌히 허락했소. 그대가 북경에 들어서는 날에 맞춰 이 여자를 데려오기 위해 천리마 세 필을 썼으니, 그 돈만 수만 은이 넘었소. 베트남과 북경이 삼만리가 넘는 먼 길이었기 때문이오. 오늘 서로 만났는데 그대는 남자가 저 사람은 여자이오. 만약 한 번 보기만 하고 헤어질 것이었다면 어찌 국왕의 딸이 함부로 움직이겠소? 사람은 이치를 따라야 하오. 다시는 사양하지 마시오. 오늘은 길일이니 혼례를 치루기도 딱 좋지 않소?]

김역관은 어쩔 수 없이 그 곳에서 묵기로 하고, 여자와 결혼했다.

마침내 침실에 들었는데, 밀랍으로 만든 촛불이 휘황찬란하고 사향 냄새가 풍겼다.



김역관은 눈빛이 몽롱해지고 심신이 황홀해져 미녀를 바라봐도 놀라고 당황하기만 할 뿐, 남자가 여자를 덮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니 방 안은 고요할 뿐이었다.

세 아들이 문 밖에서 엿보다가 김역관이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을 보고 그를 불러내 말했다.

[남녀가 한 잠자리에 드는데 어찌 이렇게 조용합니까? 아무래도 당신은 제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구려.]



그리고 접시를 김역관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것을 먹어보시오. 이것은 촉땅에서 가져온 홍삼이오.]

김역관이 홍삼을 먹고 방에 들어가니, 눈이 밝아지고 정신이 상쾌해져서 그 미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마치 꽃 같은 얼굴에 달 같은 자태로, 실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잠자리를 같이 했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어나니 세 아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김역관을 보고 물었다.



[저 미인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외국인이 졸지에 엄청난 은혜를 입었지만,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해야할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세 아들이 말했다.



[그대가 우연히 기이한 만남으로 인해 이 천하일색을 얻었는데, 사람이 한 번 만나면 헤어지는 일은 마음대로 해서는 아니됩니다. 그대는 외국인이라 여자를 데리고 가는 것도 어려울 것이고, 가족들을 본국에 두고 이 곳에 사는 것도 힘들 것이오. 하지만 우리 세 사람이 이미 그대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그대의 일을 소홀히 하겠소? 그대가 역관의 임무를 맡았으니, 매년 사신들이 명을 찾을 때마다 반드시 수행 역관으로 따라 오시오. 그렇게 일년에 한 번씩 마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것처럼 하면 좋은 일이 아니겠소? 우리가 이 곳에서 모든 것을 도와주리다.]

김역관은 그 후 평생 역관으로 매년 한 번씩 명나라로 들어가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곤 했다.

마침내 그녀와 김역관 사이에는 몇 명의 아들이 생겼는데, 김역관의 후예들은 중국에서 부귀공명을 누리며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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