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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괴담][96th]악의가 담긴 한마디

실화 괴담 2017. 4. 2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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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나 vkrko91@gmail.com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이야기를 투고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익명님이 방명록에 투고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가끔 아이들은 어른들이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괴담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동생을 가리키며 "엄마, 저 악마는 태워 죽여야해." 라고 말했다는 어린 여자아이 이야기 같은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내뱉는 말의 특징은, 그 말이 오직 발화 시점에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존재하지 않는 말인거죠. 


짐작컨대 말하고 있는 아이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나중에는 그런 이야기를 한 걸 기억조차 못합니다. 


오직 "그 순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 만이 기억하고, 그 사람만이 영향을 받는 그런 현재성만이 존재하는 이야기. 




그 듣는 사람이 되었을 때,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되는지를 떠올려보면 가끔 소름이 끼치곤 합니다. 


오늘은 그와 관련된, 제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한번 풀어볼까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군 제대후 한의대 진학을 위해 7년 동안 수능 시험에 응시했죠. 


하지만 노력에 비해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현실에, 시간이 갈수록 부모님도 지치시고, 저도 스스로 부담스러워 주변 사람들과 거의 연락을 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집안의 권유로 꿈을 접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접고 나니, 빛나는 20대를 좁은 재수학원 교실에서 몽땅 보내버린 것과, 그럼에도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집안의 돈만 쓰고 친구도 잃은 비참한 모습에 스스로 무척 힘들어하던 나날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떨치려해도, 모의고사 때마다 오르지 않던 성적에 좌절하며 학원 화장실에서 입을 막고 혼자 울던 그 모습들과, 수능을 친 뒤 저녁시간에 차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굶은채로 이리저리 길거리를 쏘다니던 저의 모습이 스스로를 억눌러 헤어나올 수가 없더군요.


그 자괴감들과 실망감.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절망.


그 당시 제 가방에는 긴 빨랫줄이 하나 있었습니다. 


새벽 2시가 되고, 골목에 인적이 한산해지면 집앞 전봇대에 목을 매려고 마련해둔 것이었습니다. 




한두번 목 매달기 직전까지 갔지만, 죽는게 겁이 나 마지막 순간을 넘지 못했었죠.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누나 내외가 맞벌이를 하는 탓에 저희 집에서 돌봐주던 4살짜리 조카녀석과 단둘이 집에 있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낙서를 하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낙서를 멈추길래, 왜 그러나 싶어 고개를 들어 쳐다봤죠.




그런데 조카가 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삼촌... 할머니는 삼촌이 필요없대.]


그리고는 다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낙서를 하더군요. 




그때의 충격이란. 


새벽마다 빨래줄을 잡고, 나가야되나 말아야되나 망설이던 순간, 저의 발목을 잡던 것 중 하나가 부모님이었는데...


뭐, 지금은 결국 그때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저는 하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다른 것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악.


오로지 인간에 대한 미움과, 인간을 공격하여 좌절시키는 것으로만 머릿속이 가득한 순수한 악한 존재 말입니다. 




이 악한 존재가 여러 사람의 마음 속을 떠돌아 다니면서,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그 순간에 [그만둬, 어서.]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저는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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