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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194th]기면증

괴담 번역 2011. 5. 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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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증이라는 병이 있다.

나는 아마 이 병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에도 의식이 사라지고 잠에 빠지는 묘한 병이다.



하루 중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괜찮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갑작스레 잠에 빠져 내릴 곳을 지나치는 경우가 잦아졌다.

누구나 그런 일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평범하지 않다.

초등학교 때 어스름한 초저녁에 잠에 들었다가 일어나 시계를 보고 [지각이다!] 라고 생각했던 적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사실은 아직 밤 9시인데도.

그런 것과 비슷했다.

갑작스레 끌려가듯 잠에 빠져들고, 일어났을 때에는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잠에 들었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에만 몇십초가 걸렸다.

게다가 서 있을 때조차 잠에 빠져버린다.

손잡이를 잡은 채 잠이 들어, 무릎이 풀리고 나서야 잠에서 깨는 것이다.



심할 때는 뒷사람에게 넘어져 주변이 아수라장이 된 적도 있었다.

물론 꿈 같은 건 전혀 꾸지 않는다.

...다행히도.



그렇지만 원인이 대충 짐작은 간다.

단순하게 잠이 부족한 것도 영향을 끼치겠지만, 식생활을 바꾼 탓인 것 같다.

반년 정도 전부터 요가를 시작하면서 고기를 끊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지만, 일어서면 눈 앞이 캄캄해지는 등 빈혈과 나른함도 동시에 찾아왔다.

철분 부족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영양 보조 식품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그 직후부터 기면증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찾아봤지만, 철분과 수면 장애의 관련성에 관한 글은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찾아 낸 것은 병명 뿐.

[우선 많이 자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서 나는 밤에는 컴퓨터에 손도 대지 않고, 주말에는 일부러 잠을 잤다.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이전처럼 정신 없이 잠에 빠져드는 일은 사라졌다.

하지만 목요일이나 금요일쯤 가면 피로가 쌓인 탓인지 가끔 잠에 들기도 했지만, 그 때는 철분의 섭취를 중단해서 조절했다.



어느 날,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침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전철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던 와중 눈은 감겨 있는 채로 의식이 되돌아왔다.



내가 전철 안에 있다는 것은 알아차리고 있었다.

손목과 발목이 무겁지만, 기분은 좋다.

철컹철컹거리는 규칙적인 소리와 차 내 방송이 들려온다.



내릴 역은 아직 꽤 멀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이대로 또 자버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산 속에 있었다.



달리고 있다.

살아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무서운 것으로부터 어쩔 수 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가끔씩 목 뒤에 싸늘한 기운이 스친다.



저 놈에게 잡히면 죽는다.

따라잡히면 죽는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잠시 후, 길이 두 갈래로 나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나는 그대로 오른쪽 길로 내달렸다.

잠시 달리자 흔들 다리가 보인다.

이런, 위험하다.



다리는 분명 흔들릴 것이고 그에 맞추다 보면 필연적으로 속도는 떨어진다.

거기다 나무가 썩어 있어 밟았다간 구멍이 뚫려 떨어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걱정을 해도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에잇, 될대로 되라!] 라고 생각하며 뛰어 올랐다.

다리는 확실히 흔들렸지만, 생각한 것보다는 쉽게 달릴 수 있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놈은 다리에서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것인지 등골에서 느껴지는 냉기가 조금 멀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달아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다리를 건너자 난데없이 레버가 있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뒤를 돌아보면 검은 안개 같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그 안에서 피어나는 무수한 손.



생각한 것처럼 거리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런 괴상한 모습이었던 탓에 다리를 건너오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약간 여유가 있을 정도였다.



나는 레버에 손을 대고, 힘껏 아래로 당겼다.

[푸쉭] 하는 소리와 함께 전철의 문이 열렸다.

[이번 역은 이나게, 이나게 역입니다.]



다행히 마음대로 눈을 뜰 수 있었다.

이전처럼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자느라 두 정거장을 더 와 버렸지만 두 정거장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별 생각 없이 반대편 전철을 타고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 번의 꿈도 거의 잊어버릴 무렵...

나는 다시 전철에 앉아 그 꿈을 꾸게 되었다.



나는 달리고 있다.

여전히 산 속이다.

길이 두 갈래로 갈린다.



뒷목에서는 가끔씩 냉기가 느껴진다.

이 길은 오른쪽이었지.

이 흔들다리는 달려서 건너면 됐었어.



그리고 레버를 당기면... 레버?

없다!

레버가 없어!



이 때부터 온 몸에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면 지난 번처럼 다리에서 곤란해하고 있는 검은 안개와 무수한 손이 보인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여유는 없다.



또 온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쪽으로 얼마나 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본 적이 있는 갈림길에 다다랐다.

오른쪽은 안 돼.



이번에는 왼쪽으로 간다.

검은 안개는 어느새 바로 뒤까지 쫓아온 듯 때때로 목 뒤에 냉기가 느껴졌다.

또 흔들 다리다.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야.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만큼 거세게 뛰고 있었지만, 나는 최후의 힘을 쥐어짜 미친 듯 달렸다.

레버가 있다.



됐다!

이제 살았어...

뒤를 돌아보면 다리를 건너는 것에 익숙해진 듯 이전보다 더 가까운 곳에 다가온 안개가 있었다.



[오~ 꽤 늘었는데?]

약간 여유를 부리며 나는 레버를 아래로 당겼다.

[이번 역은 치바, 치바 역입니다.]



후우, 위험했다...

처음 레버가 없었을 때는 정말 크게 당황했었다.

차 내 방송에서는 이 곳 치바 역이 종점이고 도쿄 역으로 왕복하는 열차가 아니라 차고로 들어가니 갈아타달라고 말하고 있다.



차장이 재촉을 받으며 나는 저린 발을 부여잡고 홈에 내려 섰다.

어라?

그 순간 의문 하나가 머릿 속에 떠올랐다.



지난 번에 일어났을 때는 이나게, 즉 종점에서 한 정거장 앞에서 레버를 당겼다.

이것은 오른쪽 길의 레버였다.

이번에는 종점에서 레버를 당겼다.



이건 왼쪽 길의 레버.

그리고 열차가 차고로 들어가면 문이 다시 열릴 일은 없다...

망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급행열차 대신 완행열차를 타고 다니고 있다.



물론 결코 자리가 비더라도 앉아서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숭이꿈] 이야기를 본 지금에 와서는 그냥 잠드는 것도 너무나 두렵다.

수면 부족인 탓일까.



요즘에는 일하는 도중에도 드문드문 잠에 빠지곤 한다.

나는 지금 각성제를 구하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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