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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년은 더 된 이야기입니다.

당시 우리 할아버지는 뛰어난 창호 직공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작업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직장에 놀러가곤 했습니다.



그 날 역시 나는 평소처럼 할아버지 댁을 방문해 떨어져 있는 나무토막들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눈 앞에서는 할아버지가 작업대 앞에 앉아 묵묵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완고한 손이 재주 좋게 움직이며, 나무를 깎거나 부품을 조립하고 있었습니다.



그 화려한 기술에 푹 빠져, 나는 놀던 것도 멈추고 정신 없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나는 이상한 것을 눈치챘습니다.

할아버지 뒤 쪽의 벽에, 오래 되어 검게 윤이 나는 나무판이 몇 장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판자의 틈 사이로, 단발 머리의 소녀의 얼굴이 보였던 것입니다.

판자와 벽의 틈새에서 오른쪽 얼굴 반쪽만 내밀고 있어서, 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광경은 흰 얼굴 반쪽만 어두운 방구석에 둥실 떠올라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묵묵히 손을 움직이고 있는 할아버지 곁을 지나 벽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내가 가까워져도 소녀의 얼굴은 미동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의 등을 계속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역시 몸과 얼굴의 왼쪽 반은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벽과 나무 판자 사이에는 사람이 들어갈만한 공간이 없었습니다.

나는 소녀에게 말을 걸려고 했습니다.

[...말을 걸면 아니된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낮은 목소리였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할아버지는 변함 없이 작업을 하며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이 여자아이는 누구야?]

[그 녀석은 내가 거기 있는 나무로 만든 상자 속의 여자아이란다. 그냥 내버려둬라.]

무슨 소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벽에서 물러났습니다.



그 후에도 할아버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나무 토막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여 할아버지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느새 얼굴은 자취를 감추고, 거기에는 윤기나는 검은 나무 판자만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작업장에는 그 이후에도 자주 놀러갔지만, 다시 그 소녀를 볼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10년 정도 지난 재작년 초봄, 할아버지는 병으로 쓰러져 입원하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 당일, 가족들은 관 안에 넣기 위해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작은 나무로 만들어진 상자가 있었습니다.

10cm 정도의 네모나고 검게 윤이 나는 상자.

그것을 본 순간, 나는 그 날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던 나무 판자가 떠올랐습니다.



그 판자로 만들어진 상자가 아닐까?

들어보니 의외로 상자는 무거웠습니다.

뚜껑이 없이 밀봉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자를 흔들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임종 직전까지 간호를 했던 숙모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 상자를 매우 소중히 여겨서 병원에서도 머리맡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상자는 할아버지 관 속에 함께 넣기로 했습니다.

이윽고 장례식이 시작되었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스님이 계속 관을 들여다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아버지가 왜 그러냐고 묻자, [이 분, 분명히 돌아가신 거지요?] 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당황한 나머지 표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경을 읽는 도중에도 스님은 끊임없이 관에 시선을 돌려, 몇 번이나 경을 읽는 것이 멈추곤 했습니다.

이윽고 장례식이 끝나, 할아버지의 사체는 화장터로 보내졌습니다.

재에서 남은 뼈를 걸러내기 위해 친족들이 모이고, 소각로에서 큰 받침에 할아버지의 뼈가 실려 나왔습니다.



가까이 가자 마치 스토브처럼 뜨거운 받침대 위에, 흰 뼈가 재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그것을 젓가락으로 집으면 화장터 관계자가 어느 부위인지 가르쳐 줍니다.

[...두개골은 나중에 맨 위에 올려 놓을테니 놔두세요.]



[울대뼈는 어느 것입니까?]

[이것입니다.]

주운 뼈는 차례로 항아리에 넣었습니다.



그렇지만 항아리는 가득 차지 않았습니다.

[더 주워 주세요.]

[그렇지만 더 이상은 남아 있지가 않습니다. 여기 소각로는 새 것이어서 뼈가 거의 남지 않습니다. 게다가 노인 분들은 뼈가 적은 편입니다. 이 분은 오히려 평균보다 많이 남은 편입니다.]



[워낙 건강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골반뼈네요. 그 옆은 넓적다리 뼈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울대뼈네요.]

방 안에 있던 모든 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분명 울대뼈는 조금 전에 항아리에 넣었을텐데...?

관계자는 따로 모아놓은 두개골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뼈가 너무 많네요...]



그 후 경찰이 오고, 우리 가족은 돌아가지 못하고 화장터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화장터 직원과 경찰의 조사 결과, 뼈는 대부분 재가 되어 있었지만 확실히 두 사람의 두개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뼈인지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몇 번이나 조사를 받았지만, 그 누구도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관의 뚜껑은 화장터로 보내기 직전에 가족들 앞에서 못을 박았지만, 그 때는 분명 관 속에 사람의 머리 같은 것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들어 있던 것은 할아버지의 사체와 유품들, 그리고 그 검은 상자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크기를 생각하면 상자 속에 사람의 머리가 들어 있을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그럼 안에는 뼈만 들어 있던 것일까요?

하지만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살이 없는 그냥 뼈는 빨리 불에 타 재만 남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경찰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결론도 나오지 않은채, 우리는 새벽에야 경찰서에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유골은 경찰이 가지고 갔지만, 49일재 전에 돌려 받아 지금은 무덤 아래에 있습니다.

신원 불명의 뼈는 나중에 경찰에게 울대뼈만 돌려받았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작은 상자에 넣어, 할아버지의 무덤 근처에 묻고 비석 대신 큰 돌을 올려두었습니다.

지금 우리 가족에게 별다른 이상 현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소녀의 정체와, 할아버지와 함께 화장된 또다른 뼈의 진상은 지금도 알지 못합니다.




Illust by Mamesiba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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