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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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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이야기.

친구와 심령 스폿을 갔다온 후부터, 괴현상 같은 것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밤 중,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노라면 방 안에서 누군가 스윽... 스윽... 하면서 엎드려 기어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그게 너무나도 기분이 나쁜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적어도 공포감이라도 좀 지우고 싶었다.

그래서 디즈니 랜드에 갔을 때 스마트폰으로 찍어온 퍼레이드 영상을 틀어놓고 자기로 했다.

몇시간쯤 지났을까, 평소처럼 누군가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와서 잠이 깼다.



반복재생 설정을 해놓았기에 영상은 아직 틀어져 있었다.

이걸 보고 있으면 공포감도 조금은 잦아들겠다 싶을 무렵.

방안을 기어다니던 소리가 갑자기 딱 멈춰섰다.



소리가 나던 곳으로 미루어보아, 아무래도 침대 근처, 베개 근처에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인기척이 내 얼굴 가까이까지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이럴수가... 너무나도 겁에 질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인기척은 가까이까지 다가와서는, 다시 딱 움직임을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몇분 가량 그대로 지나가지 않았을까.

인기척은 계속 근처에서 느껴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섭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호기심과 잠을 설친 짜증 탓이었을까, 용기가 솟아난 나는 인기척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마음 먹었다.

슬쩍 한눈만 떠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베개 근처를 바라보았다.

사람 모양의 시커먼 안개 같은 게 있었다.



사람 옆 얼굴 같이 보였다.

큰일이야! 라고 생각했지만, 뭔가 이상하다.

그러고보니 옆 얼굴이었다.



아마 나한테 위해를 가할 생각이었다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검은 안개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내 스마트폰이 있었다.

스마트폰에서 재생되고 있는 디즈니 랜드 동영상을,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



동영상 속에서는 사람들의 환호성, 즐거운 음악이 울려퍼진다.

검은 안개는 그 소리가 신경 쓰이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디즈니 랜드를 좋아하는 걸까.

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동영상만 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한동안 디즈니 랜드 퍼레이드 동영상을 틀어놓고 자는게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방을 기어다니는 소리는 딱 사라지고 말았다.

실화기 때문에 여기서 뭐 딱히 이어지는 이야기도 없고 이게 전부.



다만 이 사건 이후, 디즈니 랜드에 가서 퍼레이드를 보노라면, 그 녀석한테도 보여주고 싶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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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를 한지도 몇년이 지났다.

요새 들어 한밤 중, 자고 있던 여자친구가 말을 걸어오곤 한다.

[깨어있지?], [다 알고 있다고.], [이봐, 대답해. 대답만 해도 된다고.] 



이런 느낌으로.

목소리는 틀림없이 여자친구 목소리다.

하지만 말하는 방식이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다.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놀라 말도 안 나올 정도로.

요새는 그냥 기분 나쁜 잠꼬대구나, 하면서 매일 무시하고 있었다.

어느날, 평소와는 다르게 늦게까지 깨어있는 여자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해봤다.



여자친구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날 밤도 한밤 중이 되자, 여자친구는 잠꼬대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에 빠지기 직전, 지금까지 들었던 것 중 가장 기분 나쁜 한마디를 듣고 말았다.



[너, 뭘 얘한테 말한거야.] 라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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