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2019/11

320x100

 

부동산 회사에 다니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자취하는 자식과 연락이 안 된다며, 아파트 열쇠를 좀 빌려달라는 사람이 왔다고 한다.

신분 증명서도 확인했고, 서류상 신원 보증인이 맞았다.



열쇠를 직접 건네줄 수는 없었기에, 담당 직원이 같이 가서 집에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확인 여부에 따라 보증인 책임을 지고,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집에 가보니, 신문꽂이에 수북하게 신문이 꽂혀 있는 게 보였다.



위험 신호였다.

빽빽하게 우편물이 꽂혀 있어, 명백하게 수일은 지난 모습이었다.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은 없고, 집 안에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직원은 혹시나 싶어 집 뒤편으로 돌아가 창문에서 안 쪽을 살펴보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금세 돌아와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동행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바로 경찰을 부를테니, 경찰 입회 하에서 들어가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창가를 바라보니, 닫힌 커튼 틈새가 새까맸다고 한다.

파리가 우글우글 들끓는 채였다.

 

 

320x100
320x100

 

역 앞을 걷다가, 너무나도 이상한 헌팅을 당하고, 끝내는 인생이 완성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아내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인데, 아마 여기 쓰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어렸을 때, 일년에 한번씩 늘 같은 꿈을 꾸곤 했다.



중학교 무렵까지 매년마다 그 꿈을 꾸었던 기억이 난다.

클로버가 곳곳에 피어있는 들판에서,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어린 여자아이가 뛰어다니는 꿈.

이 꿈을 꿀 때면 왜 그런지는 몰라도, 이제껏 느낀 적 없던 종류의 행복감을 느끼며,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꾸지 않다보니, 어른이 되고서는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다.

어느 휴일, 서점에 들렀다 돌아오는데, [죄송합니다.] 하고 웬 여자가 어깨를 두드렸다.

"어? 나 말인가?" 싶어서 헤드폰에서 귀만 내밀고, [네?] 하고 되물었다.



오묘한 얼굴로 [저와 어디선가 만나지 않으셨나요?] 라고 질문해왔다.

"어라,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뇨, 아마 잘못 보신 거 같은데요...]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여자는 찜찜하다는 듯, [그래,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갑작스레 얼굴을 훅 들더니, [저, 첫눈에 반했어요! 사귀어 주지 않으실래요?] 라고 고백을 해왔다.

그제야 나는 겨우, 이게 헌팅인가 싶었다.



전혀 인기가 없던 나는, 여자한테 고백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었다.

[앗, 잘 부탁합니다...] 하며 조금 폼도 잡아보고.

여자도 웃으며, [그럼 연락처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휴대폰을 건네와, 그날부터 연락을 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왠지 헌팅 같은 걸 당해서 말이야~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면서 자랑을 해댔다.

하지만 여자친구 쪽은, 어쩐지 데이트를 할 때도 연락을 할 때도 무리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긴장이라도 한 걸까 싶었지만, 점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3달 정도가 지난 어느날, 같이 드라이브를 가게 되었다.

차를 타고 가자는 이야기를 꺼낸 순간 여자친구의 얼굴이 가면처럼 굳어서 당황했지만, 곧 웃으며 [드라이브 좋겠어! 가고 싶어.] 라고 대답했다.

당일, 여자친구를 만나자 엄청 큰 배낭 같은 걸 메고 왔었다.



[소풍도 아닌데 뭘 이렇게 많이 싸왔어.] 하고 웃고는, 꽤 시골인 동네를 떠나 평소와는 다른 도시 쪽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날 여자친구는 너무 반짝반짝 빛나보였다.

역시 수수한 시골보다는 도시 쪽이 즐겁겠지.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멀리 차를 타고 나오다 보니, 여자친구가 만들어 준 주먹밥이나 샌드위치를 먹기도 하고, 차 안에서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나도 너무 좋아서 즐거웠다.



이후에도 가끔 드라이브 데이트를 하게 되었고, 여자친구는 매번 이것저것 만들어 와서, 마음의 거리가 줄어든 느낌이었다.

어느날, 언제나 그렇듯 여자친구 집 앞에서 여자친구를 태우고 운전을 하는데, 여자친구가 조수석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오늘인가 보네, 아마.]



[어? 뭐가?] 하고 묻자, [응? 나 뭐라고 말했어?] 라고 웃으며 대답해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오늘 어딜 갈 거라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평소와 똑같았기에, 평범하게 데이트를 마치고 저녁을 먹은 뒤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계절은 겨울, 주변은 산길이라 벌써 어두웠다.



[내일은 영하래.], [정말? 큰일이다...]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어쩐지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굳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재빨리 얼굴을 바라보자, 왠지 눈이 풀린 것 같았다.



[왜 그래? 괜찮아? 추워?] 하고 묻자, [응, 괜찮아.]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거기서부터 대화가 끊겼다.

나는 여자친구가 화가 날만한 말이라도 했나 싶어 걱정하며, 산길 커브를 돌아갔다.



자동차는 슥 하고 커브 바깥쪽으로 걷돌더니, 원심력에 따라 그 기세 그대로 가드레일 너머로 떨어졌다.

엄청난 폭음 후 의식은 사라졌다.

한참 뒤, 여자친구가 나를 흔들어 눈을 떴다.



자동차는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고, 머리는 아픈데 눈은 보이지 않고, 옷이 축축한 것만 느껴졌다.

망연자실하던 와중, 문득 여자친구가 걱정되서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여자친구는 무사했는지 멀쩡한 모습으로 - 나중에 안 것이지만 실제로는 여자친구도 다친 채였다 - 담담하게 언제나 메고 다니던 큰 배낭에서 거즈와 붕대 같은 걸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이 깔끔한 솜씨로, 내 머리에 대고 지혈하며 두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머리는 충격으로 깨져서, 그 피로 옷이 젖어 있던 모양이었다.

그 후 여자친구는 휴대폰으로 구조를 청했다.



예보대로 영하의 추위였던 탓에, 배낭 속에 들어있던 손난로를 내 몸에 잔뜩 붙이고, 우리는 꼭 껴안고 체온을 지켰다.

나는 피가 빠져나간 탓인지, 굉장한 추위가 들었고, 공포에 질려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는 무척 침착했다.



어째서인지 [내가 꼭 지켜줄게.] 라고 나에게 말하며.

나는 무척 신기한 기분이었다.

잠시 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둘이 같이 구조됐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나는 여자친구에게 그 응급치료 솜씨는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여자친구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나, 알고 있었어.] 라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어릴 때부터 모르는 남자가 밤 중 산길에서 사고를 당해 죽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다고 한다.

너무 자주 꿈을 꾸다보니,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고 여기는 사이, 어쩐지 위에서 내려다보던 꿈이 조수석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차차 꿈을 꿀 때마다, 어떻게 사고가 일어나서 어디를 다치고, 무엇이 원인이 되어 죽는지를 파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가 죽지 않을 수 있도록, 꿈 속에서 필요한 도구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 사고 끝에도 살아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 나를 봤을 때, 여자친구는 너무나 큰 충격에 온몸에서 땀이 나고 토할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다.

정기적으로 꿈에 나오던 남자를 현실에서 마주친다면 누구라도 무섭겠지.

처음 말을 건 그날은, 정말 큰맘 먹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저 우연일 뿐이라면 여기서 끝이지만, 만약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거라면, 이 남자에게 말을 걸지 않은 걸 평생 후회할 거라 느끼면서.

솔직히 나는 외모적으로는 여자친구의 이상형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갑자기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하면 기분 나빠하고 끝날 거 같아, 첫 눈에 반했다고 그럴듯 하게 둘러댔던 것이다.



사귀고 있다보면 언젠가 그 사고를 마주칠테니, 적어도 그 때까지는 사귀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통곡했다.

처음 여자친구가 무리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사고로 머리를 다쳐서 그런걸까, 오히려 그 이야기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목숨을 건진 기쁨보다, 여자친구가 이제 내 곁을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것에 절망했다.

나는 통곡하며 [이제 우리는 헤어지는거야?] 라고 물었다.



여자친구는 반문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나는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아. 이제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으니까.]



나는 어쩐지, 결코 여자친구와 헤어져서는 안된다는 예감이 들었다.

당시에는 나 같은 놈이 이런 여자를 놓치면 다음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랬다고 여겼지만, 아마 헤어지면 안된다는 것을 내 마음 속 어디에선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대답을 들은 여자친구는, [나도 너를 좋아하게 됐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라며 웃었다.



그로부터 반년 정도를 더 사귄 후, 사귄지 1년쯤 될 무렵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하고 2년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어느 화창한 날, 이제는 아내가 된 여자친구가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피크닉을 갔다.



2살 된 딸은 무척 들떠서, 피크닉 시트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뛰어다녔다.

웃으며 위험하니까 이리 오라고 딸에게 손을 뻗던 순간, 나는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아내가 땋아준 양갈래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딸의 모습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 꾸어오던 꿈 속의 그 장면이었다.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내가 나를 돕는 꿈을 꾼 것도, 내가 아내와 결코 헤어지면 안된다고 느낀 것도, 모두가 딸아이를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그 꿈을 보고 느끼던 말로 표현할 수 없던 행복감은, 고작해야 중학생이던 내가 알 턱도 없는 것이었다.



어린 딸을 보는 아버지의 행복감이니까.

지금 처음 맛보는 부모로서의 행복 속에서, 그리움을 느끼는 모순 속에 나는 서 있었다.

내 인생은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320x100
320x100

 

옛날에는 세이브 데이터를 지우지도 않은 채, 그대로 다시 파는 중고 게임가게가 많았다.

슈퍼패미콤용 RPG 만들기를 샀더니, 전 주인이 만든 게임이 있길래 재미삼아 해봤다가 후회했던 적이 있다.

그 무렵 우리 지역에는 RPG 만들기 유행이 돌고 있었다.



성질 더러운 체육 선생님이 최종보스인 게임이나, 인기 있는 여자아이랑 결혼하는 중2병스러운 내용 같은.

동네에서나 통할법한 소재의 "희귀게임" (당시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만들기가 유행이었다.

다른 학교랑 교환 목적으로 만들어서 중고로 사고팔고 하는게 반복되다보니, 곧 온갖 희귀게임들이 돌아다니게 됐다.



그리고 개중에는, 증오와 원념을 품고 만든 작품도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하필 그 중 하나를 손에 넣은 탓에, 곤혹을 치루고 말았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 손을 거치느라 너덜너덜해진 케이스를 열자, 카트리지 뒤에 직접 만든 스티커 라벨이 붙어있었다.



[약한 꽃·뿌리가 지닌 독] 이라는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

어쩐지 중2병 느낌의 제목에 기대가 더해졌다.

게임 밸런스는 나쁘지 않았고,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며 빠져들었다.



하지만 중반 무렵부터 어느 마을에나 있을 법한 기분 나쁜 할머니나 점원이 중간 보스가 되더니, 인근의 등교거부자나 행방불명 된 양아치를 죽이러 가는 이야기가 되었다.

스토리는 이 동네에 "하얀 그림자" 가 나타나게 되어, 그 그림자가 살해당하는 사람 안으로 파고 든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PRG 만들기" 를 통해 자신이 살해당하는 시나리오를 직접 플레이하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의 혼을 뜯어낸다는 내용이었다.



기분이 나빠져서 게임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만둔 그 날부터 꿈에 흰 연기 같은게 쫓아오게 되었다.

잡히면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걸어온다.

[너는 어떤 방식으로 죽기를 원하는가?]



게임을 몇번이고 다시 중고 게임가게에 내다팔았지만, [이거, 네거지?] 라며 친구를 통해 반드시 내게 돌아왔다.

꿈속의 하얀 그림자에게 습격당해, [XX의 숨통을 끊은 건 네놈이다!] 라던가, 지금까지 쓰러트린 캐릭터(실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랜덤으로 나타나길 어언 20일.

나는 무심코 철도 건널목에 발을 들여놨다가, 내려온 차단기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하얀 그림자가 머릿속에서 크게 소리를 치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무렵에는 아직 살아계시던, 시골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정신을 차린 순간, [빙의체를 두거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방에서 게임 카트리지를 꺼내 선로 위에 두고, 달려 도망쳤다.

수십초 뒤, 열차가 지나가며 카트리지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날 밤, 마지막으로 하얀 그림자가 꿈에 나왔다.



[곧 있으면 다 죽여버릴 수 있었는데!] 라며 적반하장으로 날뛰었지만, 마지막에는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르며 갈가리 찢어지더니, 파란 불꽃 속에 불타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시골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와서 잠에서 깼다.

[이쪽 절에서 씻김을 해준다니 묵으러 오렴.] 하는 할머니의 말에, 나는 다음날 귀성했다.

 

 

320x100

[번역괴담][5ch괴담][941st]지하의 쓰레기장

괴담 번역 2019. 11. 16. 23:42
320x100

 

오피스 빌딩 안에 있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무렵 이야기다.

거기 쓰레기장은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지하 구역에 있었다.

언제나 마감 작업을 할 때면, 쓰레기를 끌차에 싣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서 버리고 오곤 했다.



쓰레기장에 들어가려면 "열림"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나갈 때는 문 앞에 서면 센서가 인식해서 자동으로 문이 열리지만, 거기서 또 "닫힘" 버튼을 눌러줘야만 문이 닫히는 귀찮은 구조였다.

역 같은데 있는 장애인 화장실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아무도 없을 때는 불이 꺼져있다가, 안에 누가 들어가면 불이 켜진다.

어두컴컴한데 들어갈 때면 언제나 조금 기분 나빴었다.

그날도 마무리 작업차 평소처럼 쓰레기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문을 열고 쓰레기장에 들어가, 불이 켜진 직후, 어쩐지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라보니 슥, 하고 그림자 같은 게 선반 뒤로 향하는 게 보였다.

어라, 누구 다른 사람도 쓰레기를 버리러 왔나?



선반 뒤편을 슬쩍 살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뭘 잘못 봤겠거니 하고, 평소처럼 쓰레기를 버린 뒤 쓰레기장을 나가려던 터였다.

그런데 쓰레기장을 나와 "닫힘" 버튼을 눌렀는데도, 문이 닫히질 않았다.



어라? 고장이라도 났나...

계속 버튼을 눌러봤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문을 열어둔 채 가게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버튼을 누르고, 오늘도 지치네, 하고 한숨을 내쉬는데...

이번에는 엘리베이터 문이 좀체 닫히질 않았다.

이것도 고장인가 싶어 짜증을 내며, "닫힘" 버튼을 계속 눌러대자, 이번에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짜증도 나고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화를 내면서도 결국 아무 의문 없이, 엘리베이터를 버리고 계단으로 가게까지 돌아왔다.

계산대에서 마무리를 하고 있던 점장한테 투덜거리며 이야기를 늘어놨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거, 계속 누가 뒤에서 따라와서 그런거 아냐?]



뭔가를 가까이서 본 건 아니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자 소름이 쫙 끼쳤다.

 

 

320x100
320x100

 

8년 전쯤, 요코하마에 살던 무렵 이야기다.

니혼오오도리(日本大通り)에 직장이 있었기에, 오토바이 타고 다닐만한 거리인 반도바시(阪東橋) 근처에 집을 얻었었다.

완전 낡아빠진 아파트였는데, 주변 치안도 심상치가 않았다.



밤길을 걷다보면 동남아시아계의 매춘부나 캬바레 호객꾼에, 딱 봐도 야쿠자 같이 생긴 아저씨들이 잔뜩 돌아다닌다.

낮에는 낮대로, 길가에서 술취한 영감들이 굴러다니고, 슈퍼에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물건을 사는 아줌마도 있는 등, 여러모로 이상한 사람투성이였다.

그런 사람들과 마주칠 때면 동네가 동네니 어쩔 수 없다고 반쯤 체념하면서 재빨리 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그 날 마주친 녀석은, 위험도의 차원이 많이 달랐다.

밤, 회사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토바이를 근처 주차장에 세우고, 아파트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가는 길에 좁은 골목이 있는데, 거기로 지나가면 지름길이었다.

평소에는 곤드레만드레가 된 아저씨들이 드러누워 있곤 해서 잘 다니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그날은 퇴근이 늦어서 회사에서 나올 때 이미 새벽 1시가 넘은 터였다.



고참들은 남아서 서류 정리를 하고, 젊은 사람들 먼저 돌려보내라는 소장의 지시에 따라 먼저 퇴근한 것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오토바이를 서둘러 주차한 뒤 그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중간쯤에 있는 가로등 옆에, 검은 덩어리가 있는 게 보였다.



멀리서 보기에는 커다란 검은 봉투 같은 느낌이었다.

뭘까 싶은 마음에 저벅저벅 다가가자, 봉투 근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랄까, 질퍽거리는 느낌의 비릿한 소리가.



이상하다 싶어 더욱 발걸음을 바삐 하던 와중, 봉투가 미묘하게 움직인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그건 쓰레기 봉투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그것도 둘이나 있었다.

한쪽은 새까만 코트를 입은 남자 같았는데, 다리를 내쪽으로 향한 채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커다란 검은 게, 나에게 등을 보이며 남자 같은 사람 위에 주저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다.



길바닥에서 하고 있는건가 싶었지만, 아래 깔린 사람 발을 보면 엎드린 채였으니 아닐 터였다.

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기분도 나빴지만 당시 나는 너무 피곤했다.

그 동네 이사온 뒤로부터 이상한 사람들 보고서도 지나치는 게 일상이 되기도 했었고.



내심 "또냐..." 하고 투덜거리며, 재빨리 지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 그들과 2, 3m 정도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업무용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갑작스러운 전화벨 소리에, 나 또한 깜짝 놀랐다.

평소에 들을 때는 그리 큰 소리가 아니지만, 적막한 골목에 울려퍼지니 벨소리가 꽤 크게 들린 탓이었다.

아마 그 녀석도 놀랐던 모양이다.



온몸을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으니.

아저씨였다.

안경을 쓰고 좀 통통한 체격에, 검은 파카의 후드를 눌러 쓴 채, 손에는 막칼 같은 걸 손에 들고 있었다.



입 주변은 거뭇거뭇하게 더러운데, 개처럼 헉헉대며 뿜어내던 입김이, 가로등 불빛 아래 새하얗게 보이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저씨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린 탓에, 밑에 깔려있던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등 위에 하얀 손이 올려져 있었다.



누르스름한 절단면이 이쪽을 향해 있다.

아까까지 들려오던 소리와, 아저씨 입가의 더러움.

아저씨가 뭘하고 있던 것인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이거 아마, 먹고 있던 거겠지.

밑에 깔고 앉아 있던 덩치 작은 남자 같은 걸.

아마 저거, 자주 있는 만취해서 드러누워 있던 사람이었겠지.



거기서부터는 모든 게 빠르게 지나갔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에 한동안 멈춰서 있었지만, 몇초도 지나지 않아 나는 발길을 돌려 죽어라 도망쳤다.

소리는 지를 수 없었다.



정말 겁에 질리면, 호흡조차 뱉을 수 없게 된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뒤에서는 아마 아저씨가 지르는 것 같은 고함이 들려왔다.

다만 분명히 사람이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위협을 느낀 모스라의 유충이 내는 소리 같은 느낌이랄까.

기샥-! 하고.

겨우 편의점 간판이 보이는 곳까지 도망치고, 뒤를 돌아보고 쫓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자 어쩐지 눈물이 터져나와, 편의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오열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나도 이상한 놈들 중 하나였겠지.

계속 울고 있는데, 업무용 휴대폰 벨소리가 다시 울렸다.



회사 선배였다.

[써야 할 서류가 공유 폴더에 없는데, 어디 저장해 놨는지 모르냐?]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라고 생각하면서도, 울면서 대답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선배는 내가 우는 걸 알아차리고 걱정해줬지만, 나는 머리가 정리되질 않아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저 되풀이 할 뿐이었다.

전화를 끊고나니 조금 정신이 돌아와, 나는 그대로 파출소를 찾아 갔다.

하지만 이럴 수가, 무인 파출소였다.



파출소에 아무도 없을 때는 이 쪽으로 연락해 달라는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아무도 받질 않았다.

결국 그날은 혼자 집에 가기도 무서워서, 택시를 타고 사쿠라기쵸(桜木町)의 만화카페에 가서 아침까지 버티다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몸이 안 좋아 결근해야겠다고 회사에 연락한 뒤, 이사할 곳을 찾아, 다음주 되자마자 히요시(日吉)로 이사했다.



그 일대는 이후 얼씬도 한 적이 없어서, 그 후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식인 살인마가 잡혔다는 이야기도 없었으니, 그 아저씨는 아직도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320x100

[번역괴담][5ch괴담][939th]자판기

괴담 번역 2019. 11. 5. 23:31
320x100

 

올해 오봉 무렵, 주말에 일 마치고 돌아오다 늘 다니는 신사에 참배라도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에서 내리고 나니, 시주하고 던질 동전이 없다는 걸 눈치 챘다.

자판기에서 지폐 넣고 쥬스라도 하나 사먹고 동전을 구하기로 했다.



그 순간, 어쩐지 어린 아이가 [쥬스 주세요.] 라고 말을 걸어, [그래, 줄게. 어차피 동전이 필요해서 사는 거니까.] 라고 대답하는 상상을 해버렸다.

자판기에서 오후의 홍차를 고르고 꺼내려고 손을 집어 넣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

거스름돈은 쥬스 값 빼고 제대로 나왔고, 캔이 퉁, 하고 떨어지는 소리도 났었다.



어디 걸린 건 아닌가 샅샅이 확인한데다, 주변에 사람도 없었기에 누가 들고 도망친 것도 아닐 터였다.

설마 정말 캔을 그대로 가져갈 줄이야.

오봉에는 정말로 찾아오는구나, 싶었다.



다만 오후의 홍차를 못 마시는 바람에 목이 말라서, 참배 마치고 늘 가는 라멘집에서 평소보다 물을 엄청 마셔버렸었다.

 

 

320x100
320x100

 

2년 전 겪은 이야기다.

당시 나는 어느 여성 전용 도미토리에서 살고 있었다.

도미토리 1층에는 샤워실이 있었다.



개인 샤워 부스가 있을 뿐 욕조는 없는 그런 느낌.

그런 샤워실이 2개가 있었는데, 개중 더 안쪽에 있는 샤워실을 쓰면, 수많은 방향에서 시선을 느끼곤 했다.

시선과 인기척이라고 해야하나, 어찌 되었건 무척 기분이 나빠서,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며 쓰려 하질 않았었다.



게다가 조금 영능력이 있다는 친한 친구 말로는, 가까이 하면 위험할 거 같은 검은 연기 같은게 보인다고 하고.

그러던 어느날, 한밤 중에 문득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시간이 몇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복도는 불 하나 없이 어둡고 다들 자는지 조용할 뿐이었다.



나도 졸렸기에 어서 다시 잘 생각에, 화장실에서 나와 복도에 선 순간, 바람도 없는데 화장실 문이 힘차게 [쾅!] 하고 닫혔다.

놀라서 돌아봤지만 아무 것도 없다.

어쩐지 위험하다 싶어,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방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뒤를 보지도 않았는데, 무언가가 보이는 느낌.

검은 안개 같은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아, 샤워실에 있던 놈이구나.] 싶었다.

검은 안개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무서워진 나는 온힘을 다해 달려 방으로 뛰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



검은 안개는 방안까지는 들어오지 못하는 듯, 입구 근처에서 어슬렁대는 것 같았다.

곧 인기척이 사라져서 조금 마음을 놓았더니, 이번에는 창문 쪽 커튼 틈 사이로 시선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사이, 아침이 되었다.



아침 식사를 할 때 영능력이 있다는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고보니 오늘 샤워실 앞을 지나갈 때는 기분 나쁜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았어.] 라고 말했다.

아, 역시 어제 그건 샤워실에 있던 녀석이었구나, 싶었다.

그 이후 검은 안개 같은 걸 보는 일은 없었다.



그 녀석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아직도 여성 전용 도미토리 안을 서성이고 있을까.

 

 

320x100
320x100

 

초등학생 시절 이야기다.

매년 여름이 되면, 바다 가까이 사는 사촌네 집에 며칠간 묵으러 가곤 했다.

사촌은 한살 어린 여자아이였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 둘 중 누구랑도 안 닮았다는 생각을, 여름에 마주칠 때마다 했지만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매일 같이 놀았었다.

그날은 파도가 세지 않아 해변에서 모래놀이를 했었다.

곧 해가 질, 하늘에 약간 노란빛이 감돌 무렵.



마주 보고 모래산에 조개껍질을 장식하던 사촌 너머, 밀려오는 얕은 파도 가운데, 언제 왔는지 웬 여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흰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를 입은 채, 엎드려서 파도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뼈 밖에 없는 것 같이 가늘고 새하얀, 주름진 손목으로, 파도의 움직임을 거스르듯 계속 사촌 뒤에서 떠나질 않았다.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움직임을 멈추자, 이상하게 여겼는지 사촌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고는, [아...] 하고 작게 속삭였다.

또인가, 싶은 얼굴을 하고.



아무 말 없이 둘이서 흔들흔들 떠다니는 여자를 보고 있던 와중, 가만히 있던 사촌이 한숨처럼 작게 말했다.

[저 사람, 아마 내 진짜 엄마일거라고 생각해.]

그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하염없이 우는 것 같은 분위기가 펼쳐져, 무겁게 짓눌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기 압도되어, 더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사촌과 그저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에는 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함께 놀았고,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지만, 그 날 일은 서로 다시는 입에 담지 않고 있다.

그 이후 그 여자를 다시 본 적도 없고, 사촌이 자기 진짜 엄마에 대해 무언가 말한 것도 없다.



다만 그 날 있었던 일은, 그 해변, 그 날씨, 그 시간에 사촌과 함께 있었기에, 결코 내가 보면 안되는 세상과 닿았던 것이라 여기고 있다.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