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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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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현 북부, 어느 온천 마을 여관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벌써 20년은 더 됐다고 하네요.

관광지에 안 좋은 사건이 있었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매출에 지장이 오는만큼, 아직도 그 지역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쉬쉬하는 사건이랍니다.



그곳은 마을 전체가 높은 산간에 있어, 겨울이 오면 눈 속에 파묻힐 지경입니다.

그 마을에서 2km 가량을 더 들어간 곳에, 개나 고양이를 데리고도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이 있는데, 그 호텔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호텔에서 일하게 된지 몇년 된 프런트맨이 있었다고 합니다.



온천 주변이니만큼, 겨울은 성수기입니다.

호텔에도 손님이 잔뜩 찾아왔기에, 그날도 신발함에는 손님들이 신고 온 다양한 신발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신발들을 현관에 죽 늘어놓는 것이, 그가 맡은 일 중 하나였습니다.



평소처럼 일을 하다, 어느 펌프스 구두를 손에 든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고 합니다.

옅은 베이지색 구두인데, 안에 검붉은 피 같은 게 묻어 있다는 것을요.

구두 바닥 전체가 들쑥날쑥하게 얼룩진 채, 차갑게 젖어 있었습니다.



체크아웃 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하나둘 호텔을 나섭니다.

현관에 놓인 신발도 하나둘 줄어들더니, 마침내 마지막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아까 그 더러운 펌프스 구두였습니다.



11시가 넘어갈 즈음에야, 마침내 펌프스 구두의 주인이 프론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 인상에 남지 않는, 굳이 말하자면 어딘가 음침한 인상의 여자였습니다.

싸구려인 듯한 수수한 옷을 입고, 한손에는 애완동물을 넣는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구가 담요로 막혀 있어, 안에 들어있는 개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에 상처라도 입으셨나요?]

프론트맨은 일단 물어봤습니다.



[주제 넘은 말이지만, 손님 신발에 그런 것 같은 흔적이 있어서요.]

여자는 [신발은 애완동물이 더럽힌 거에요.] 라고 대답한 뒤, 곧 돌아가 버렸습니다.

1시간 정도 지나, 방을 청소하러 간 여성 종업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까 그 손님이 묵었던 방이, 이상하다고 소란이었습니다.

그 방으로 가보니, 다다미 위에 발자국이 어지러히 찍혀 있었습니다.

피에 젖은 발자국이.



방 한켠에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마치 귀신이 춤을 추기라도 한 듯한 참상이었다고 합니다.

욕조 배수구에는 작은 동물의 사체조각 같은 게 잔뜩 막혀 있었습니다.

데리고 온 애완동물이 쥐 같은 걸 잡아, 방을 더럽힌 듯 했습니다.



호텔 입장에서는 큰 피해였습니다.

다음날, 마을 주민이 수상한 검은 비닐봉지를 발견했습니다.

국도에서 100m 가량 떨어진, 눈으로 덮인 숲 속에서.



온천 마을의 보일러 관리인이, 숲길을 지나가다 발견했다고 합니다.

비닐봉지 안에서는 아기의 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땅에 아기를 내려두고 몇번이고 밟은 것인지, 두개골이 산산조각난 채였다고 합니다.



아마 깊은 원한이라도 있었던 것이겠죠.

그 소식은 금세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여자가 가지고 있던 애완동물 가방은 비어 있었을 것이라고, 프론트맨은 곧 깨달았습니다.



경찰에게 신고한 결과, 다다미에 묻어 있던 피는 역시 사람의 것이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여자는 곧 전국에 수배되었지만, 호텔 기록에 남긴 이름과 주소는 가짜였습니다.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프론트맨 뿐이었습니다.



프론트맨은 여자의 몽타주를 만드는 데 협력했습니다.

온천 마을은 소문이 나서 매출에 지장이 올까 두려워,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걸 한사코 막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년 정도 지나, 계절은 여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여자의 행방은 찾을 수 없어, 수사는 진전 없는 미궁 속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을은 어느덧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과거의 평온함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프론트맨 역시, 평소처럼 호텔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습니다.



[내일 예약을 좀 하고 싶은데요, 지난번에 전화했을 때는 A씨라는 분이 담당하셨던 거 같은데...]

[제가 A입니다.]

[A씨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한동안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내 몽타주를 그린 게, 너구나?]



그 후, 프론트맨은 곧바로 호텔에서 사직하고, 도쿄로 향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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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괴담은 온천 마을 호텔에서 일어난 소름 끼치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
    갓난아기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머리를 짓밟아 죽이는 끔찍한 짓을 했을까요.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지 않고, 오히려 신고한 프론트맨에게 보복을 하려 하다니...
    사람이 새삼 참 무섭다고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2. 도미너스 2020.10.28 14:23
    너무나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네요.
    A씨는 무사할지 궁금한 결말입니다.
    이번 이야기도 잘 보고 갑니다.
  3. 입문자 2020.10.28 21:39
    허미.............
    잘 보고 갑니다 ㅜㅜ
  4. 밀랍술사 2020.10.29 04:12
    으으... 간만에 섬뜩했네요.
  5. 검정이어폰 2020.10.31 13:12
    댓글 두번째 남겨보네요 ㅎㅎ
    지금은 기후현에 살고있는 터라;; 이 글도 재밌게 봤습니다.
  6.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오히려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아이까지 죽인 인간이 뭐가 잘났다고 저런 협박질을 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이 글을 읽으면서 방 한켠에서 마구잡이로 갓난아이를 짓밟아 죽이려는 귀기어린 여성에 대해서 공포가 느껴지는 한편 분노도 치미네요.
  7. 역시 귀신보단 사람이 더 무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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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를 동경하던 나는, 앞뒤 생각 않고 오키나와행 여객선에 올라탔다.

베트남 전쟁 말기, 오키나와에는 미군 불하품이 대량으로 나돌고 있었다.

나는 군복 바지와 전투화를 싼값에 손에 넣었다.



짐짓 미군 기분을 내며 걷고 있는데, 초면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헤이, 브라더! 이리 보러 오라고!]

가게 없이 땅에 돗자리를 깔고 장사를 하는, 흑인 같은 일본인 남자였다.



간단한 영어를 섞어, 잔뜩 수상한 토크를 이어갔다.

그래도 어쩐지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라,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그의 이름은 톰.



미군 기지에서 일하던 여자를 현지처로 삼는 건 흔한 이야기다.

톰도 그런 성장과정을 거친 듯 했다.

내가 히피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톰은 더플백과 침낭을 건네줬다.



나는 오키나와 본도를 거쳐 이시가키 섬, 이리오모테 섬으로 향했다.

이리오모테 마을 반대편에는 히피들이 모이는 해변이 있었다.

그곳을 목표로, 이리오모테 종단 여행이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이리오모테에는 섬을 일주하는 도로가 없었기에, 그 해변까지 가려면 정글을 헤치고 가야만 했다.

정글에서의 첫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엄청 무서운 일을 겪었다는 느낌만은 남아 있었다.



침낭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깨어났다.

다음날 역시 악몽을 꾸었다.

역시 강한 공포감을 느낀데다, 그날은 엄청난 고통까지 함께 찾아와 눈을 떴다.



해변까지는 사흘에서 닷새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매일밤 꾸는 악몽 때문에 좀체 발걸음이 나아가질 않아 일정은 지연되고 있었다.

정글에서 일정이 지연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다.

나는 죽음의 공포마저 느끼고 있었다.



사흘째 밤, 역시 악몽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고통부터 찾아왔다.

배가 타는 듯, 뜨겁고 날카로운 게 박힌 것 같은 아픔이다.



오른손은 뜨거웠다 차가웠다, 쿵쾅쿵쾅 통증이 멈췄다 나타나길 반복한다.

주위는 무언가 외치고 있어 시끄럽다.

내 몸이 둥실 공중에 떴다.



아니, 몇명이 나를 옮기고 있는건가?

그리고는 귓가에서 큰소리로 말한다.

영어 같았다.



내가 끄덕이자, 거짓말처럼 통증이 잦아들고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후, 다시 귓가에서 큰소리로 말한다.

내가 끄덕이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걸 몇번이고 반복했다.

눈을 뜨자, 처음으로 꿈 속의 광경이 생생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좁은 시야 가운데, 주변은 흑인 병사들 투성이.



그 중 한 사람이 키스라도 할 것 마냥 가까이 얼굴을 가져오고, 다음은 귓구멍을 보인다.

그 남자가 고개를 가로젓고, 나는 강제로 눈이 감겨진다.

무언가에 갇히고, 지퍼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 후로부터는 더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완전한 무를 느꼈다.

완전한 무? 아니, 다르다.



이건 죽음, 죽음이야!

그렇게 이해한 순간, 눈을 떴다.

그리고 해변까지 며칠 더 걸려 가는 동안, 나는 몇번이고 더 죽음을 체험했다.



해변에 도착하자, 수많은 히피들이 모여 있었다.

남자고 여자고 다들 맨몸이다.

나도 발가벗고 모두와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해변에 오고서도 악몽과 죽음의 체험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날, 나는 친구들에게 나의 체험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중 하나가 말했다.



[네가 자는 그 침낭, 그거 영현백이야.]

그제서야 나는 겨우 깨달았다.

나는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의 마지막 순간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던 것이다.



왜 빨리 가르쳐주지 않았냐고 묻자, 죽을 때 맞는 대량의 모르핀이 주는 쾌감을 즐기려고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히피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라고 한다.

영현백 드러그라고 부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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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갑자기 괴담이 보고 싶었는데 문득 옛날에 여기 블로그에서 괴담을 즐겨보던게 기억나 오랫만에 들어와보니 아직도 계속 포스팅하고 계시네요!! 뭔가 오래된 친구를 만난 기분이고 재밌게 역주행 중입니다. 오싹오싹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2. 오늘의 괴담은 히피를 동경해 오키나와를 찾은 청년이 겪은 기괴한 의사체험에 관한 이야기.
    전사자를 담은 영현백 속에서 잠을 잔다는 것도 오싹한데, 그걸 쾌감을 위해서 한다니...
    소름 끼치는 이야기네요.
    실제로 저런 일이 유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이 대단합니다.
  3. DayHater 2020.10.27 01:31
    끝까지 읽고 스크롤을 다시 올려서 악몽 내용을 다시 읽어봤네요...
    기분이 좋아진다는게 몰핀 투약이었군요
  4. 밀랍술사 2020.10.27 04:03
    그런 걸 침낭이랍시고 주다니!
  5. 도미너스 2020.10.28 14:25
    저런 걸 즐기는 사람은 히피가 아니라 싸이코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이야기도 섬뜩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6. 입으로는 전쟁 반대를 외쳤던 히피들이 원하지도 않는 전쟁에 강제로 끌려간 젊은이의 원혼을 자신들의 쾌락에 이용하다니 굉장히 섬뜩하고도 화가 나네요... 실화가 아니었기를 빕니다. 아니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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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아직 학생이던 시절, 미야자키에 단체 여행을 갔었다.

파워스폿을 좋아하던 선배가 일정을 짰기에, 타카치호 협곡, 타카치호 신사, 아마노이와토 신사 같은 곳을 둘러보게 되었다.

단풍 구경도 즐길 수 있을 거라기에, 그게 오히려 메인 아닌가 싶긴 했지만.



선배 왈, 가장 추천하는 곳은 아마노야스가와라라는 곳이란다.

파워가 너무 강해서 컨디션 안 좋은 사람에게는 추천할 수 없다던가.

나는 아무 사전지식 없이 찾아간 곳이었는데, 확실히 압권이라고 할만한 풍경이었다.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돌을 쌓으면 좋다고 하는데, 정말 이곳저곳에 무수하게 돌이 쌓여 있었다.

이만저만 시간이 들지 않고서는 이렇게 되기 힘들겠다 싶을 정도였다.

같이 온 녀석들도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느니,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느니 각각 소원을 말하며 돌을 쌓았다.



막다른 곳에 작은 동굴 같은게 있는데, 그게 사당인 듯 했다.

구석에서 아직 유치원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이 돌을 쌓으며 놀고 있었다.

런닝셔츠에 허름한 바지, 게다가 어머니가 직접 잘라줬나 싶은 바가지 머리까지.



완전 80년대 아이들 같은 느낌이었다.

진짜 완전 시골동네구나 싶어, 묘하게 관심이 갔다.

중얼중얼 떠들고 있길래 별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A는 더는 안 되겠구만.]

[오늘 밤으로 끝이야.]

[B한테 원망을 사버렸으니 말이야.]



묘한 대화가 들려왔다.

[자, 밥 먹으러 가자!] 라며 선배가 내 팔을 잡고는 반강제적으로 출구까지 끌고 나왔다.

당황하면서도 끌려 나오자, 선배는 [그렇게 쳐다보지 않는 게 좋아.] 라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뒤를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아까 그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왜요? 괜히 바라보다 변태 취급 당할까봐?] 라고 반문했다.

[이 바보야, 그 아이들 주변 못 봤어?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돌이 가득 쌓여 있었다고. 어디 지나가면서 무너진 흔적 하나 없이. 게다가 지금 11월인데, 그렇게 한여름 차림인 것도 이상해.]



선배의 대답을 듣고 나니, 등골이 오싹했다.

그곳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다시 갔다가는 또 만나게 될까 두려워 차마 다시 가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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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괴담은 미야자키의 파워스폿, 아마노야스가와라에서 겪은 기묘한 체험에 관한 이야기.
    과연 아이들의 정체는 무엇이었을지, 그리고 누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지...
    자신을 위한 소원이 아니라, 남을 해치기 위한 소원을 빈다는 것 자체가 참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2. https://www.ana.co.jp/ko/kr/japan-travel-planner/miyazaki/0000017.html
    아마노야스가와라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위 사이트를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3. 밀랍술사 2020.10.27 03:51
    파워 스폿이 뭔가요? 음기가 모이는 곳?
  4. 신기한 경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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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야마에 있는 쿠라시키라는 동네를 알고 있을까?

오컬트판 보는 놈이라면 "뚜껑" 이야기 하면 아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거기 미관지구라는 관광지가 있다.



나는 일 때문에 그 근처를 종종 거닐곤 한다.

아이비 스퀘어라고, 지역에서는 유명한 호텔 옆을 지나, 수제 전병집이나 외국인 대상으로 기모노나 조리 같은 걸 파는 가게가 널린 대로를 지나 수로로 향하는 게 내가 다니는 루트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무리 평일이라지만 그날따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념품점이나 먹을거리 파는 노점들도 쉬는 날인지 문을 닫은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수로를 운행하는 나룻배에도 관광객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미관지구가 통째로 죽은 거 같구나, 하고 멍하게 있자니, 배가 한 척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손님은 타고 있지 않다.

노 젓는 연습이라도 하는걸까? 싶어, 별 생각 없이 계속 지켜봤다.

움직임으로 보아하니 사공은 꽤 나이 먹은 노인인 듯 했지만, 삿갓을 쓴 탓에 얼굴은 그림자 져서 보이지 않았다.



오하라 미술관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쪽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뒤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사람 하나 없는 관광지도 꽤 희귀한 풍경이다 싶어, 사진이라도 찍을 요량으로 천천히 배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다리도 있고 사진 찍을 구도가 나올테니.



다리 근처와 강과 버드나무를 찍으며, 배에서 눈을 뗐지만 아마 3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배는 사라지고 없었다.

배가 없으니 당연히 사공도 없다.



배가 나아가던 방향은 지나가지 못하게 경계를 세워둔 곳이었다.

그렇다고 뭍에 상륙한 것도 아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배를 끌고 올라왔다면 그야 한눈에 알 수 있을 터였다.



수로에 백조는 떠 있는데, 배는 없다.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나는 그대로 수로변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곧 다리 아래, 물은 지나가도 백조는 지나가지 못하는, 게다가 배라면 더더욱 지나가지 못할 은빛 경계가 보였다.



역시 못 지나가겠지?

개폐식이라도 있던 것도 아닐테고, 하며 보고 있는데, 갑자기 경계 너머에서 사람 얼굴이 쑥 나타났다.

[으엑.]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쳤다.



누가 강 아래 떨어지기라도 한건가 싶어 경계 너머 쪽으로 돌아가 살폈다.

하지만 아무도 없고, 아까와 방향만 달라졌을 뿐.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한순간 보았을 뿐인 그 얼굴은, 내 기억 속에 기분 나쁘게 달라 붙어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잘 알 수 없었고 무표정했지만, 몹시 분노한 것 같은 느낌이 시선에서 전해졌기에.

겁에 질린 것은 아니었지만,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방금 전까지 더웠는데도 양팔에는 소름이 쫙 돋아 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귀에 뚜껑이라도 덮인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뭐라고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철벅, 철벅...] 하고, 물에 젖은 맨발로 걷는 듯한 소리가.

뒤돌아 확인하고 안심하고 싶었지만, 누가 됐건 이런 곳에서 흠뻑 젖어 맨발로 걸어다니는 존재는 멀쩡할 리 없다 싶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아까 그 경계 너머로 보였던 얼굴이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제발 착각이었으면 좋을텐데.

돌아봐야 하나, 고민했다.

기분 탓일거라 생각하며 확인하고 싶은데, 몸이 굳어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뒤에서 조금씩 발소리가 다가온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양팔에는 소름이 돋아있는데도,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더운건지 추운건지, 이제는 분간도 잘 가지 않는다.

그렇게 움직이지도 못한 채, 몇분이나 서 있었을까.



뒤에서 다가오는 것과는 다른, [철썩.] 하고 물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와 반사적으로 그쪽을 보니, 배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아까 사라졌던 그 배인 거 같지만, 어째서 앞쪽에서 다가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배는 내 근처, 아까 그 경계 앞에서 멈췄다.



역시 저기를 넘어갈 수는 없는 거겠지.

[타겠습니까?]

사공이 그렇게 물었다.



의외로 쉬지 않은, 조금 높은 목소리였다.

눈앞에 있는데도, 고개를 수그리고 삿갓을 써서 역시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 나에게 묻는건가?



안 탈거에요, 저는 관광객이 아니니까.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이 말라붙어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사공은 다시 한번, [타겠습니까?] 하고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제 바로 뒤까지 그놈이 와 있는데. 타겠습니까?]

그놈이라니, 누구야, 뭐야!

무서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확실히 발소리는 바로 뒤라고 느껴질만큼 다가온 터였다.

어찌 되었건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는게 안전할까?

뱃삯은 얼마지?



돈 걱정을 하면서도, 나는 [타겠습니...] 까지 입을 움직였다.

바로 뒤에서 철벅거리는 발소리.

사공이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씩 웃는 입가가 보였다.



장사꾼이니까 손님을 받으면 웃는 게 당연하겠지, 하고 나는 최대한 희망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삿갓 그림자 아래 가려져 있던 얼굴이 보인 순간.

더는 못 돋겠다 싶을 정도로 돋은 소름이, 한단계 더 맹렬하게 돋고야 말았다.



[타겠습니다.] 라고 말하려던 걸 이 악물고 [안 타요!] 라고 바꿔 외친 뒤, 나는 미친 듯 달렸다.

전력 질주할 생각이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휘청거렸기에, 아마 누가 봤다면 얼빠진 꼴이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몸이 움직여 준 덕분에, 휘청거리면서도 겨우 넘어지지 않고 원래 있던 길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전병집 할머니가 평소처럼 가게를 지키고 있는 걸 보고서야, 겨우 마음 깊이 안도했다.

주차장에서 정산할 때, 손이 떨려서 동전을 떨어트릴 뻔 했을만큼, 나는 정말 겁에 질려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잠깐 세워뒀을 뿐인데 요금이 천엔이나 나왔던 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설령 5천엔쯤 나오더라도 그대로 던져주고 그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요새는 국내여행도 좀 늘어서 미관지구에도 관광객이 드문드문 보이게 되었다.

그날은 밤에 잠도 못 이루고 벌벌 떨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까 점점 기억이 흐려진 탓인지, 사실 현실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니, 현실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그 배의 사공, 양 눈알이 파인 것마냥 텅빈 구멍만 보여서, 지릴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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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괴담은 코로나 때문에 한산해진 관광지에서 겪은 소름끼치는 체험에 관한 이야기.
    과연 뱃사공과 뒤에서 다가오던 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둘이 한패가 되어, 도움을 주는 척 사람을 배에 태워 저승으로 이끄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떠나면 괴이가 깃드는 것이겠죠.
  2. 기다려주시는 분들에게는 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ㅠㅠ
    이야기에 등장하는 쿠라시키 미관지구는 실제 유명 관광지로, 한국어 안내 페이지도 있습니다.
    https://www.kurashiki-tabi.jp/for/kr/bikan.html
    사이트를 참조하시면 실제 괴담의 무대가 어떤 느낌인지 조금 더 실감나게 느끼실 수 있을 거 같네요.
    초반에 나오는 "뚜껑" 이야기는 오컬트판에서 유명했던 실황 스레드인데, 의문의 뚜껑을 찾아서 거길 탐사하는 내용의 괴담입니다.
  3. 부산호랭이 2020.10.23 19:09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주인장님
    언제 또 새로운 글이 올라오려나하고 자주 들락거렸는데 오오... 좋네요 이런것도
  4. 오컬트 2020.10.23 19:21
    접으신건 아닌가 하고.. 주인장께서도 바쁘셨나 봅니다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5. 재밌게 잘보고있습니다ㅠㅠ 책 더 내주실 생각은 없나요?
  6. 낭만빽곰 2020.10.24 01:10
    언제나 재밌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책이 있는지 처음 알았는데 제목이 어떻게 되나요?

    책을 사고 싶은데 제목을 몰라서요....
  7. 도미너스 2020.10.24 19:41
    바쁜 게 좋은 거죠...
    바쁘게 일하면 돈이라도 많이 벌잖아요.^^
    아파서 업로드가 없었던 게 아니라 다행입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다음 괴담도 기대하겠습니다.
  8. 밀랍술사 2020.10.25 16:31
    왜 귀신들은 다들 눈알이 없는 걸까요?
  9. 검정이어폰 2020.10.31 12:15
    15년 말~ 16년 초 약 5개월정도 유학으로 오카야마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 하루 시간내서 미관지구 가본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 몰입해서 읽었네요 ㅎㅎ
    풍경이 이쁜 곳이었다는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수로와 버드나무가 특히나요. 아마 집 컴퓨터의 어느 폴더 안에 사진이 남아있을텐데 ... 퇴근하면 찾아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