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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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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산마루에 온갖 잡신들을 모신 사당이 있었는데, 그 효험이 꽤 영험했다.

산 주변 마을을 다스리는 이들이 이 곳을 지날 때면 반드시 가마에서 내려 절을 한 뒤, 돈을 모아 신들에게 굿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나중에 이상한 재앙을 맞곤 했다.



그러던 와중 한 관찰사가 새재 너머의 마을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는 성품이 강하고 과단성이 있어서, 무슨 화를 입을까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그가 새재를 넘다 사당 앞에 도착하니, 아전들이 몰려들어 예전 사또들의 일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관찰사는 그런 요사스러운 짓은 말도 안 된다고 물리친 뒤 말을 타고 한달음에 그 곳을 지나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갑자기 바람이 세게 휘몰아치더니, 난데없이 비가 관찰사가 탄 가마에만 집중적으로 내렸다.

그 모습을 보자 주변 사람들은 귀신의 소행이라며 몹시 두려워했다.



관찰사는 마부에게 명령해 사당에 불을 지르라고 시키고, 명령을 거르스는 자들을 죽였다.

아랫 사람들이 마지못해 그 명령을 따라 사당을 태우니, 곧 사당은 싸늘한 재가 되었다.

관찰사는 그대로 새재를 내려와 문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관찰사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새재의 신이오. 새재 사당에서 제삿밥을 먹은지 100년이 넘었소. 그런데 당신은 예도 올리지 않은데다 내 집까지 태워버렸으니, 나는 당신의 맏아들을 죽여버릴 것이오.]

관찰사가 노인을 꾸짖으며 말했다.



[요망한 귀신이 사당에 눌러 앉아 사람을 괴롭히니, 내가 왕명을 받들어 요사한 것을 제거했다. 이것은 내 직분인데 네가 감히 나를 협박해서 두려워하게 하려 하느냐!]

귀신은 화를 내며 가 버렸다.

그러자 주변에서 관찰사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큰 아드님께서 여행의 피곤함 때문에 병이 드셨는데, 갑자기 위독한 지경에 이르셨습니다!]

관찰사가 가서 아들을 보니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관찰사는 곡을 하고 아들의 염을 한 뒤, 곧 관청에 들어섰다.



그 날 밤 귀신이 또 관찰사의 꿈에 나타나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내 사당을 불태운 것을 회개하고 새로 사당을 지어주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당신의 둘째 아들이 죽을 것이오.]

관찰사는 여전히 의연한 모습을 지키며 지난 번처럼 귀신을 꾸짖어 물리쳤다.



아침이 되자 관찰사가 눈을 뜨기도 전에 집안 사람이 와서 둘째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고 고했다.

관찰사는 매우 슬퍼하며 아들의 장례를 치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찰사의 꿈에 귀신이 또 나타나 말했다.



[첫째를 죽이고 또 둘째를 죽였으니 당신의 자식은 점점 줄어갈 것이오. 이번에는 셋째 아들이 죽을 것이오. 하지만 당신이 불쌍해서 내가 기회를 주려하니, 빨리 내 사당을 지어주면 셋째 아들의 목숨은 살려주겠소.]

하지만 관찰사는 이 말을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귀신은 점점 화를 내며 온갖 협박을 하고, 끝내 좋은 말로 달래기까지 했다.



관찰사는 화가 나서 칼을 빼어들고 귀신을 베려고 했다.

그러자 귀신은 뒤로 물러나더니 뜰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말했다.

[저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저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오직 미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어르신의 두 아드님은 수명이 다하여 돌아가실 예정이었기에 제가 그것을 알고 어르신을 협박한 것입니다. 하지만 셋째 아드님은 그 지위가 높이 오르고 오랫동안 건강하실테니 제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어르신께 온갖 공갈 협박을 한 것이었지만, 어르신께서는 끝내 올바름을 지키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르신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관찰사가 딱히 여기며 말했다.

[네가 오랫동안 황폐한 사당에 살면서 지냈는데, 내가 어찌 네 집을 마음대로 부수고 싶었겠느냐? 네가 너에게 화가 났던 것은 요망한 술수로 사람들을 희롱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네가 그것을 자백하니 불쌍히 여길 수 밖에 없구나. 내가 새로 너의 집을 지어주마. 하지만 만약 네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다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괴롭힌다면 당장 부숴버릴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귀신은 감동하여 흐느끼며 절하고 돌아갔다.



관찰사는 다시 사당을 세우고 그가 꿈에서 본 귀신의 모습을 흙으로 빚어 세워 두었다.

그 이후에 문경새재를 넘어 다니는 사람들은 귀신에 대한 근심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관찰사의 셋째 아들은 오랫동안 살면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 갔으니, 귀신의 말이 과연 맞았다.



Illust by 엥비(http://blog.naver.com/junknb)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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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밖에 사는 심씨 성을 가진 양반이 있었다.

집이 무척 가난하여 외출을 할 때면 남편과 아내가 한 벌의 옷을 서로 바꿔 입고 번갈아 나갈 정도였다.

그나마 병마절도사 이석구와 친척이어서, 간혹 이석구가 도움을 주어 죽이나 겨우 먹고 다녔다.



작년 겨울 한낮에 심씨가 한가롭게 쉬고 있는데 갑자기 사랑방 지붕에서 쥐가 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심씨는 쥐를 내쫓으려고 담뱃대로 천장을 쳤다.

그런데 갑자기 천장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당신을 보려고 산 넘고 물 건너 여기에 왔으니 나를 박대하지 마십시오.]

심씨가 놀라서 분명 도깨비인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대낮에 어떻게 도깨비가 나오겠는가!

어떻게 된 일인지 혼란스러워 하는데 다시 천장에서 소리가 났다.



[내가 먼 길을 와서 몹시 배가 고프니 밥 한 그릇만 주시오.]

심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가족에게 그 상황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심씨가 말을 마치자마자 공중에서 소리가 났다.

[당신들끼리 모여서 나 몰래 내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과 부인들이 놀라 달아나니까 귀신도 부인을 따라가면 계속 외쳤다.



[놀라서 도망칠 필요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 이 집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것입니다. 곧 한 집안 식구가 될텐데 나를 섭섭하게 하지 마십시오.]

부인들이 여기저기 가서 숨었지만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머리 위에서 밥을 달라고 계속 소리를 쳤다.

결국 밥과 반찬을 한 상 차려서 대청마루에 놓아 두었더니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귀신이 밥을 잠깐 사이에 다 먹어 치웠으니, 다른 귀신들이 제사를 지내면 음식의 향만 맡고 가는 것과 달랐다.

심씨가 놀라서 물었다.

[너는 어떤 귀신이고, 무슨 이유로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냐?]



귀신이 말했다.

[나는 문경관이라 합니다.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다 우연히 이 집에 들어온 것이오. 배부르게 밥을 먹었으니 이제 가겠소.]

곧 작별을 하고 귀신이 떠났다.



그런데 다음날 귀신이 또 찾아와서는 어제처럼 먹을 것을 요구하고 다 먹은 다음 가 버렸다.

이후 귀신을 매일 찾아왔고, 어느 날은 하룻 밤을 자고 가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결국 온 집안 식구들이 익숙해져서 귀신이 와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하루는 심씨가 귀신을 쫓아내려고 벽에 부적을 붙이고 온갖 잡귀를 쫓아내는 물건들을 구해 집 앞에 내어 놓았다.

그랬더니 귀신이 또 와서 말했다.

[나는 요귀가 아닙니다. 그런 수작이 무서울리가 있겠습니까? 빨리 그것들을 치워서 나같은 손님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뜻을 보여주시오.]



심씨가 어쩔 수 없이 물건들을 치우고 물었다.

[너는 미래의 운명에 관해 알고 있느냐?]

귀신이 말했다.



[아주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심씨가 말했다.

[우리 집은 미래에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귀신이 말했다.

[당신은 충분히 69살까지 살겠지만, 평생 불우할 것입니다. 당신 아들은 몇 살까지 살 것이고, 손자에 가서야 겨우 과거에 급제할 것이오. 하지만 그나마도 쉽게는 못할 것 같습니다.]

심씨가 그 말을 듣고 놀랄 뿐이었다.



집안 식구 중 어떤 부인은 몇 살까지 살고, 아들은 몇 명이나 낳을지 물어보니 귀신은 일일히 다 대답해주고 덧붙여 말했다.

[내가 쓸 곳이 좀 있으니 엽전 200냥만 좀 베풀어 주십시오.]

심씨가 말했다.



[네 눈엔 우리 집이 가난해 보이냐, 부자로 보이냐?]

[가난이 뼛 속까지 사무치지요.]

[네가 봐도 그런데 내가 어떻게 200냥을 마련해 주겠냐?]



[당신 집안에 숨겨둔 상자 속에 조금 전 빌려온 200냥이 있는 걸 내가 아는데 왜 그 돈을 나한테 주지 않습니까?]

[내가 쓸 돈도 없어서 겨우 빌어서 꿔 온 돈인데, 이 돈을 지금 너한테 주면 나는 저녁 먹을 거리도 없을 것이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당신 집에 아직 쌀이 어느 정도 남아 있으니 저녁밥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이오. 어째서 거짓말로 때우려 하는 것이오? 내가 이 돈을 가져갈테니 화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치고 귀신은 훌쩍 가버렸다.

심씨가 상자를 열어보니 자물쇠는 제대로 채워져 있었으나 돈은 사라지고 없었다.

심씨는 손해가 점점 커지는 것에 고민하다 부인들을 친정으로 보내고 자신도 친한 친구의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그랬더니 귀신은 친구 집까지 쫓아와서 화를 내며 말했다.

[어째서 나를 피해 이런 곳까지 와서 빌어 살고 앉았소? 당신이 만약 천 리를 달아난다 해도 내가 못 찾을 것 같소?]

귀신은 이번에는 그 집 주인에게 밥을 달라고 했다.



주인이 밥을 안 주자 귀신은 온갖 욕을 해대며 그릇들을 깨부쉈다.

이토록 밤새도록 소란을 피우니까 주인은 심씨에게 원망을 하며 깨진 그릇 값까지 물게 했다.

심씨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날이 새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다.



귀신은 부인들의 친정까지 찾아가 똑같이 소란을 피워서 부인들도 돌아와야만 했다.

이후 귀신은 평소처럼 심씨 집을 드나들었다.

그러다 하루는 귀신이 말했다.



[이제 오랫동안 헤어지고 만나지 못할테니 부디 몸을 잘 관리하시구려.]

심씨가 말했다.

[네가 어디로 가던 좋으니 부디 빨리 여기서 떠나라. 우리 집안 사람들도 편하게 좀 살아보자!]



귀신이 말했다.

[우리 집은 경상도 문경에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지만 노잣돈이 없구려. 그러니 유엽전 천냥만 내게 주시오.]

심씨가 말했다.



[내가 가난해서 밥도 잘 못 챙겨 먹는건 너도 알 거 아니냐? 그렇게 많은 돈을 내가 어디서 구하냐?]

귀신이 말했다.

[당신 친척인 절도사 이석구 집에 가서 내 이야기를 하면 쉽게 빌려줄 겁니다. 어째서 돈을 안 구해 와서 내가 집에 못 가게 합니까?]



심씨가 말했다.

[우리 집안의 모든 것은 절도사께서 주신 것이다. 입은 은혜가 너무 큰데 하나도 보답을 못해서 항상 부끄러워 하고 있는데 또 천냥을 빌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

귀신이 말했다.



[내가 당신 집에서 소란을 피운 걸 이미 절도사도 알고 있을 것이오. 당신이 이것만 해주면 요괴를 쫓아낼 수 있다고 말하면 어찌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심씨가 기가 막혀서 말도 못 했다.

그래서 즉시 이석구의 집으로 달려가 사정을 모두 말했다.



이석구는 화를 냈지만 결국 돈을 주었다.

심씨가 돈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상자 깊숙이 감춰 두고 앉아 있으니 곧 귀신이 와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잣돈을 넉넉히 가져도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덕분에 노잣돈을 얻었으니 이제 집에 돌아갈테요.]



심씨가 귀신을 속이려고 말했다.

[내가 누구에게서 돈을 얻어와서 너한테 노잣돈을 주겠냐?]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지난 번에 선생이 봐서 알텐데 왜 쓸데 없는 소리를 하십니까?]

잠시 뒤 귀신은 또 말했다.

[내가 이미 상자 속의 당신 돈을 가져 갔습니다. 그렇지만 250냥은 남겨 두었으니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십시오.]



귀신이 인사를 하고 사라지니 심씨 집안의 모든 이들이 좋아서 기뻐 날뛰며 서로 축하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자 또 공중에서 귀신이 인사를 했다.

심씨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소리 쳤다.



[내가 다른 사람에서 구걸까지 해서 천냥을 마련해서 고향에 가게 해 줬으면 너는 감사한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약속을 깨고 다시 와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니 너는 은혜도 모르는구나! 내가 관우 사당에 가서 너에게 벌을 주라고 빌어야겠다.]

귀신이 말했다.

[저는 문경관이 아닙니다. 제가 무슨 은혜를 저버렸습니까?]



심씨가 말했다.

[문경관이 아니라고? 그럼 너는 누구냐?]

귀신이 말했다.



[나는 문경관의 아내입니다. 당신 집에서 귀신을 잘 대접한다고 남편이 그러길래 먼 길을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반갑게 맞이해야지 욕이나 하고 있군요. 남녀를 모두 공경하는 게 선비일텐데 당신은 책을 읽으면서 배운 것도 없습니까?]

심씨가 기가 막혀서 헛웃음만 웃었다.

귀신은 또 날마다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는 심씨의 소식이 끊겨 어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시 호사가들은 앞다투어 심씨 집에 가서 귀신과 이야기를 했으니 심씨 집 문 앞이 시장바닥 같았다.

학사 이희조는 심지어 그 집에 하룻밤 묵으면서 귀신과 대화까지 했다고 한다.

아! 이 무슨 괴이한 일인가!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39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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