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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귀

[리뷰]잔예 - 살아서는 안되는 방

호러 영화 짧평 2016. 7. 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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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일본 괴담을 번역하다보니 운좋게도 공포 영화를 공짜로 볼 일이 종종 생깁니다. 

7월 7일 국내 개봉한 잔예 역시 좋은 분이 전해주신 덕에 날로 보고 왔네요. 



잔예는 국내에는 십이국기, 시귀 등으로 알려져 있는 여류 공포 소설가 오노 후유미가 쓴 동명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진 공포 영화입니다.  

2003년 이후 한동안 괴담 단편들로만 창작을 이어오던 오노 후유미가, 9년여만에 출간한 장편 소설로 많은 관심을 받았죠. 

1999년 시귀로 못 받았던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이 작품으로 2013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작품이 대중에게 어필하기 힘든 작품이었다는 점이죠. 

잔예는 현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어넣은 모큐멘터리 형식의 르포르타주 소설입니다.  

작가의 전작인 고스트 헌터 시리즈나 시귀 등,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호러 소설을 기대했을 팬들에게는 당연히 불만족스러운 작품일 수 밖에요. 

그 뿐 아니라 자극적인 묘사는 나오지도 않고, 어디까지나 공포의 근원과 주변을 탐구하는 내용이다보니 화끈한 호러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불평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책이었습니다. 

특히 땅과 집에 얽힌 액운이라는 소재는 매일 같이 개발이 이어지고 오래된 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국내에서 공감하기 더욱 어려운 내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영화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궁금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거의 없다시피한 소설을, 어떤 식으로 영화화했을지 알고 싶었거든요. 



영화는 말 그대로 책을 완벽하게 영상화했습니다. 

도입부, 작가가 쿠보에게 제보를 받아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를 파헤치는 부분부터, 책의 마지막 마무리까지 온전하게 영화 안에 모두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영화 전체의 서사가 무척 단절적으로 나타나게 되어버렸네요.



 

집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현상을 시작으로, 그 원인을 추론하고, 과거 그 집과 땅에 있었던 일들을 역으로 추적해나가는 스토리 자체는 흥미로울 여지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단서를 찾고 이야기 사이의 연관성을 엮어 나가는 이야기가 책과 똑같은 순서대로 나타나다보니, 정작 한 이야기와 다음 이야기의 연결이 느슨하고 애매해져버렸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한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이 모두 얽히고 섥히는데 정작 이야기가 하나씩 뚝뚝 끊어지다보니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를 한데 엮어내는 게 어려울 수 밖에요. 

더불어 자극적이고 인위적인 공포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보니, 단순한 호러를 원한 사람이라면 금새 질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책이 가지고 있던 단점을 영화가 그대로 물려받은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전적으로 책을 이미 읽은 독자를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괴담이라는 소재는 기본적으로 글로 적히고,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 구현됩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죠.



 

영화화된 잔예는 그런 부분들을 아주 만족스럽게 채워줍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들려오는 바닥이 쓸리는 소리, 마루 밑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신음소리, 내 귓가에만 울려퍼지는 아기 울음소리...  

이런 소리들이 대단히 사실적으로 구현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켜주고, 책에서 상상만 하던 부분을 아주 만족스럽게 메워줍니다.  

책을 그대로 영상화한 덕에, 책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나오는지, 그리고 어떤 이미지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원작을 읽은 관객에게는 플러스가 될 수 있겠고요. 



일본 괴담은 대개 음습하고 끝맺음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어떤 의미에서 잔예는 그런 스테레오 타입에 정확히 일치하는 작품입니다.  

공포의 근원을 찾아나가며 마주치게 되는 사건들은 대개 음산하고 고독하며, 알 수 없는 광기가 서려 있습니다. 

근원에 가까워지면서 재앙이 점차 퍼져나가고, 그걸 두려워한 나머지 끝을 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마저 전형적인 일본 괴담과 닮아있네요. 

그나마 엔딩 직전, 공포 영화를 기대하고 들어왔다 머리 끝까지 화만 났을 관객들을 위해 억지로 집어넣은 호러 씬이 몇 있기는 하지만요. 

여러번 언급했듯, 맺고 끊음이 확실하고 무서운 장면이 딱딱 나오는 영화를 원하신다면 이 영화는 꼭 피하셔야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다들 훌륭했습니다. 

한때 일드의 여왕이었던 다케우치 유코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떠오르는 신예 하시모토 아이와 사카구치 켄타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신 스틸러 역할을 맡은 사사키 쿠라노스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기본적인 영화 평점은 10점 만점에 3점입니다. 

만약 단절된 서사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르포르타주 형식을 좋아한다면 +2점. 

일본 괴담을 정말 좋아한다면 +2점. 

원작 잔예를 읽어봤다면 +3점.



 

정작 예고편은 평범한 하우스 호러처럼 뽑아놨습니다. 

저도 예고편만 보고 원작을 완전히 무시한 망작일거라 예상했는데, 왠걸. 

오히려 지독하리만치 원작에 집착한 작품이었습니다. 

원작자 오노 후유미가 직접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를 찾아가 제작을 의뢰했다던데, 영화를 보고 나니 납득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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