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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갈공명을 찾아서 - 용산구 보광사

잡동사니 2017. 1. 1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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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용산구로 이사를 왔습니다.


살다보니 느끼게 되는게, 이상하게 이 동네에는 점집이 많더라고요.


집 근방 5km 안에 정말 점집만 30개는 넘게 있는 거 같습니다.


가끔 한강에 나가서 걷다보면, 한남동 쪽에 있는 신목 앞에서 굿판이 벌어지고 있을 때도 있고요.




알아보니 한강 근처기 때문에 예로부터 교역이 많아서 온갖 신을 모시는 믿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용산구청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문화재로 등록된 무속 관련 시설과 거기서 모시는 신만 해도 한가득이더라고요.


조선 태조 이성계, 임경업, 김유신, 남이, 단군왕검, 그리고 수많은 동네 부군님들...


지금은 동작구로 옮겼지만, 관우를 모시던 남관왕묘도 원래 용산에 있었고요.





그 많고 많은 신당 중, 집 근처 보광동에 흥미로운 곳이 있더라고요.


바로 촉의 승상이었던 제갈공명을 모시는 보광사였습니다.


사실 관우 신앙이야 워낙에 유명할 뿐 아니라, 당장 동관왕묘가 떡하니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니 누구나 알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제갈량을 신으로 모시는 곳은 그리 많이 보질 못했습니다.


저도 여기말고는 남산 자락에 있는 목멱산 와룡묘 밖에 못 본 거 같아요.


사당이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늘에야 발걸음을 옮겨봤습니다.





전화로 먼저 연락을 드리고 찾아갔는데, 흔쾌히 와도 된다고 말씀해주시고 반갑게 맞아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주한 브루나이 대사관저 맞은편으로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니 금세 나오더라고요.


큰 규모는 아니고, 한칸짜리 사당이 있는 게 전부입니다.


무후묘라는 간판이 있어 바로 알아볼 수 있더라고요.




중앙에는 제갈공명 존영이 모셔져 있고, 양옆에도 둘씩 다른 신들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좌측 신들은 동네 부군인 거 같은데, 우측 신은 장수 생김새에 무기를 들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삼국지에 관련된 이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뒤에서 빛이 비쳐서 제대로 된 제갈공명 사진을 찍지 못한게 못내 아쉽습니다.


향 한개피 피워 올리고, 올 한해 건강하고 무탈하게 보낼 수 있기를, 그리고 지력 100 중 얼마만이라도 좀 나누어주십사 간절히 빌고 왔습니다 ㅠ.ㅠ





개인적으로 삼국지도 좋아하고, 무속 신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보니 찾아가보게 됐는데, 상당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역시 보광동에 있는 김유신 사당이나 이성계를 모신다는 서빙고 부군당에 한번 찾아볼까 싶네요.


혹시나 제갈공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존경하시는 분이라면 남산 와룡묘와 더불어 한번쯤은 찾아가 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승상님의 기운을 받았으니 이제 저도 조금은 똑똑해졌으면 좋겠네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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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밖에 사는 심씨 성을 가진 양반이 있었다.

집이 무척 가난하여 외출을 할 때면 남편과 아내가 한 벌의 옷을 서로 바꿔 입고 번갈아 나갈 정도였다.

그나마 병마절도사 이석구와 친척이어서, 간혹 이석구가 도움을 주어 죽이나 겨우 먹고 다녔다.



작년 겨울 한낮에 심씨가 한가롭게 쉬고 있는데 갑자기 사랑방 지붕에서 쥐가 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심씨는 쥐를 내쫓으려고 담뱃대로 천장을 쳤다.

그런데 갑자기 천장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당신을 보려고 산 넘고 물 건너 여기에 왔으니 나를 박대하지 마십시오.]

심씨가 놀라서 분명 도깨비인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대낮에 어떻게 도깨비가 나오겠는가!

어떻게 된 일인지 혼란스러워 하는데 다시 천장에서 소리가 났다.



[내가 먼 길을 와서 몹시 배가 고프니 밥 한 그릇만 주시오.]

심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가족에게 그 상황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심씨가 말을 마치자마자 공중에서 소리가 났다.

[당신들끼리 모여서 나 몰래 내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과 부인들이 놀라 달아나니까 귀신도 부인을 따라가면 계속 외쳤다.



[놀라서 도망칠 필요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 이 집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것입니다. 곧 한 집안 식구가 될텐데 나를 섭섭하게 하지 마십시오.]

부인들이 여기저기 가서 숨었지만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머리 위에서 밥을 달라고 계속 소리를 쳤다.

결국 밥과 반찬을 한 상 차려서 대청마루에 놓아 두었더니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귀신이 밥을 잠깐 사이에 다 먹어 치웠으니, 다른 귀신들이 제사를 지내면 음식의 향만 맡고 가는 것과 달랐다.

심씨가 놀라서 물었다.

[너는 어떤 귀신이고, 무슨 이유로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냐?]



귀신이 말했다.

[나는 문경관이라 합니다.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다 우연히 이 집에 들어온 것이오. 배부르게 밥을 먹었으니 이제 가겠소.]

곧 작별을 하고 귀신이 떠났다.



그런데 다음날 귀신이 또 찾아와서는 어제처럼 먹을 것을 요구하고 다 먹은 다음 가 버렸다.

이후 귀신을 매일 찾아왔고, 어느 날은 하룻 밤을 자고 가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결국 온 집안 식구들이 익숙해져서 귀신이 와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하루는 심씨가 귀신을 쫓아내려고 벽에 부적을 붙이고 온갖 잡귀를 쫓아내는 물건들을 구해 집 앞에 내어 놓았다.

그랬더니 귀신이 또 와서 말했다.

[나는 요귀가 아닙니다. 그런 수작이 무서울리가 있겠습니까? 빨리 그것들을 치워서 나같은 손님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뜻을 보여주시오.]



심씨가 어쩔 수 없이 물건들을 치우고 물었다.

[너는 미래의 운명에 관해 알고 있느냐?]

귀신이 말했다.



[아주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심씨가 말했다.

[우리 집은 미래에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귀신이 말했다.

[당신은 충분히 69살까지 살겠지만, 평생 불우할 것입니다. 당신 아들은 몇 살까지 살 것이고, 손자에 가서야 겨우 과거에 급제할 것이오. 하지만 그나마도 쉽게는 못할 것 같습니다.]

심씨가 그 말을 듣고 놀랄 뿐이었다.



집안 식구 중 어떤 부인은 몇 살까지 살고, 아들은 몇 명이나 낳을지 물어보니 귀신은 일일히 다 대답해주고 덧붙여 말했다.

[내가 쓸 곳이 좀 있으니 엽전 200냥만 좀 베풀어 주십시오.]

심씨가 말했다.



[네 눈엔 우리 집이 가난해 보이냐, 부자로 보이냐?]

[가난이 뼛 속까지 사무치지요.]

[네가 봐도 그런데 내가 어떻게 200냥을 마련해 주겠냐?]



[당신 집안에 숨겨둔 상자 속에 조금 전 빌려온 200냥이 있는 걸 내가 아는데 왜 그 돈을 나한테 주지 않습니까?]

[내가 쓸 돈도 없어서 겨우 빌어서 꿔 온 돈인데, 이 돈을 지금 너한테 주면 나는 저녁 먹을 거리도 없을 것이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당신 집에 아직 쌀이 어느 정도 남아 있으니 저녁밥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이오. 어째서 거짓말로 때우려 하는 것이오? 내가 이 돈을 가져갈테니 화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치고 귀신은 훌쩍 가버렸다.

심씨가 상자를 열어보니 자물쇠는 제대로 채워져 있었으나 돈은 사라지고 없었다.

심씨는 손해가 점점 커지는 것에 고민하다 부인들을 친정으로 보내고 자신도 친한 친구의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그랬더니 귀신은 친구 집까지 쫓아와서 화를 내며 말했다.

[어째서 나를 피해 이런 곳까지 와서 빌어 살고 앉았소? 당신이 만약 천 리를 달아난다 해도 내가 못 찾을 것 같소?]

귀신은 이번에는 그 집 주인에게 밥을 달라고 했다.



주인이 밥을 안 주자 귀신은 온갖 욕을 해대며 그릇들을 깨부쉈다.

이토록 밤새도록 소란을 피우니까 주인은 심씨에게 원망을 하며 깨진 그릇 값까지 물게 했다.

심씨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날이 새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다.



귀신은 부인들의 친정까지 찾아가 똑같이 소란을 피워서 부인들도 돌아와야만 했다.

이후 귀신은 평소처럼 심씨 집을 드나들었다.

그러다 하루는 귀신이 말했다.



[이제 오랫동안 헤어지고 만나지 못할테니 부디 몸을 잘 관리하시구려.]

심씨가 말했다.

[네가 어디로 가던 좋으니 부디 빨리 여기서 떠나라. 우리 집안 사람들도 편하게 좀 살아보자!]



귀신이 말했다.

[우리 집은 경상도 문경에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지만 노잣돈이 없구려. 그러니 유엽전 천냥만 내게 주시오.]

심씨가 말했다.



[내가 가난해서 밥도 잘 못 챙겨 먹는건 너도 알 거 아니냐? 그렇게 많은 돈을 내가 어디서 구하냐?]

귀신이 말했다.

[당신 친척인 절도사 이석구 집에 가서 내 이야기를 하면 쉽게 빌려줄 겁니다. 어째서 돈을 안 구해 와서 내가 집에 못 가게 합니까?]



심씨가 말했다.

[우리 집안의 모든 것은 절도사께서 주신 것이다. 입은 은혜가 너무 큰데 하나도 보답을 못해서 항상 부끄러워 하고 있는데 또 천냥을 빌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

귀신이 말했다.



[내가 당신 집에서 소란을 피운 걸 이미 절도사도 알고 있을 것이오. 당신이 이것만 해주면 요괴를 쫓아낼 수 있다고 말하면 어찌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심씨가 기가 막혀서 말도 못 했다.

그래서 즉시 이석구의 집으로 달려가 사정을 모두 말했다.



이석구는 화를 냈지만 결국 돈을 주었다.

심씨가 돈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상자 깊숙이 감춰 두고 앉아 있으니 곧 귀신이 와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잣돈을 넉넉히 가져도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덕분에 노잣돈을 얻었으니 이제 집에 돌아갈테요.]



심씨가 귀신을 속이려고 말했다.

[내가 누구에게서 돈을 얻어와서 너한테 노잣돈을 주겠냐?]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지난 번에 선생이 봐서 알텐데 왜 쓸데 없는 소리를 하십니까?]

잠시 뒤 귀신은 또 말했다.

[내가 이미 상자 속의 당신 돈을 가져 갔습니다. 그렇지만 250냥은 남겨 두었으니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십시오.]



귀신이 인사를 하고 사라지니 심씨 집안의 모든 이들이 좋아서 기뻐 날뛰며 서로 축하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자 또 공중에서 귀신이 인사를 했다.

심씨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소리 쳤다.



[내가 다른 사람에서 구걸까지 해서 천냥을 마련해서 고향에 가게 해 줬으면 너는 감사한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약속을 깨고 다시 와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니 너는 은혜도 모르는구나! 내가 관우 사당에 가서 너에게 벌을 주라고 빌어야겠다.]

귀신이 말했다.

[저는 문경관이 아닙니다. 제가 무슨 은혜를 저버렸습니까?]



심씨가 말했다.

[문경관이 아니라고? 그럼 너는 누구냐?]

귀신이 말했다.



[나는 문경관의 아내입니다. 당신 집에서 귀신을 잘 대접한다고 남편이 그러길래 먼 길을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반갑게 맞이해야지 욕이나 하고 있군요. 남녀를 모두 공경하는 게 선비일텐데 당신은 책을 읽으면서 배운 것도 없습니까?]

심씨가 기가 막혀서 헛웃음만 웃었다.

귀신은 또 날마다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는 심씨의 소식이 끊겨 어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시 호사가들은 앞다투어 심씨 집에 가서 귀신과 이야기를 했으니 심씨 집 문 앞이 시장바닥 같았다.

학사 이희조는 심지어 그 집에 하룻밤 묵으면서 귀신과 대화까지 했다고 한다.

아! 이 무슨 괴이한 일인가!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39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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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밀양 사또가 중년에 아내를 잃었다.

그에게는 단지 첩과 며느리,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딸만 있었다.

딸은 태어난지 몇개월만에 어머니를 잃고 유모 손에서 자라서, 유모를 어머니처럼 대했다.



딸은 유모와 별당에서 살았는데, 밀양 사또는 이 딸을 끔찍하게 아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딸과 유모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읍내 마을들을 두루 뒤졌으나 그들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사또는 놀라서 정신을 잃더니, 미쳐버려서 껄껄 웃기도 하고 마구 떠들어 대다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이에 부득이하게 사또직을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그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 후 밀양 사또가 된 자들은 부임하는 그 날 모두 죽었다.



서너명이 이렇게 급살을 맞으니 사람들은 모두 밀양 관가를 흉가로 생각해서 밀양 사또 되기를 꺼렸다.

아무리 밀양 사또를 임명하려고 해도 그 곳에 가기를 원하는 자가 없자 조정에서는 이 일로 크게 근심하였다.

그래서 어느날 모든 관리와 전직 관리들을 대궐 안에 모두 불러 지원자를 찾기로 했다.



그 때 한 무관이 있었는데, 그는 금군으로 오래 근무하다 무신 겸 선전관을 역임하여 겨우 6품에 올랐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셔 관직을 그만둔 지 20여년이 된 사람이었다.

나이가 60에 가까웠는데 춥고 배고픈 생활을 했고, 옷 한 벌로 10년이 넘도록 살면서 밥도 사나흘에 한 끼를 간신히 먹을 정도였다.

그 탓에 문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명사나 재상들 중 얼굴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그가 밀양 사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기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지원하고 싶은 마음은 절실한데 죽는 것이 무서워서 차마 갈 수가 없구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죽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비록 부임하는 날 죽는다고 해도 사또라는 명예는 얻을 것이고, 만약 죽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주저하지 말고 지원하십시오.]

무관이 생각해보니 아내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대궐에 나아가 임금님께 아뢰었다.



[소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밀양에 가보겠습니다.]

임금님이 가상하게 여겨서 그 날로 바로 밀양 사또에 임명되었다.

무관은 집에 돌아가 탄식했다.



[비록 당신 말을 따라 지원하기는 했지만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오. 나는 그래도 사또 자리라도 올라가니 죽어도 한이 없지만, 집안 식구들은 어떻게 하겠소! 이제 죽으러 가는데 어찌 슬프지 않겠소?]

부인이 말했다.

[이전 사또들이 죽은 것은 모두 그들의 운명일 뿐입니다. 귀신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제가 비록 여자지만 도움이 될테니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내를 데리고 짐을 챙겨 밀양으로 출발하였다.

밀양에 도착하니 부하들이 차례로 인사를 왔다.

하지만 낌새를 보아하니 사또가 곧 죽을 것이라 여기는지 공경하는 모습은 하나도 없고 얼굴을 찡그릴 뿐이었다.



게다가 아내까지 데려온 것을 보고 표정은 더욱 나빠졌다.

관아에 들어가니 관사 꼴이 말이 아니었다.

벽은 허물어져 있고, 구들장은 깨져있어 온통 심란하게 만들 뿐이었다.



황혼 무렵이 되자 관가의 심부름꾼들이 사또에게 고하지도 않고 돌아갔다.

관아는 마침내 텅 비어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부인이 말했다.



[오늘 밤은 정말 무서울 것입니다. 서방님께서는 안에 들어가 주무십시오. 제가 남자 옷으로 갈아 입고 관사에 앉아 동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또의 아내는 촛불을 켜고 혼자 앉아 있었다.

밤 12시쯤 되자 갑자기 음기 가득한 바람이 어디에선가 불어와 촛불이 꺼지고, 한기가 뼈에 사무쳤다.



조금 뒤 방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한 처녀가 온 몸에 피를 흘리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벌거벗은 몸으로 손에 주기[각주:1]를 들고 섬광 같이 방으로 들어왔다.

부인은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않으며 말했다.

[너는 필시 풀지 못한 원한이 있어 호소하러 온 것이구나. 내가 너를 위해 원수를 갚아줄테니 조용히 기다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거라!]



그러자 처녀가 인사를 하고 나갔다.

부인은 곧바로 안채로 들어가 사또에게 말했다.

[귀신이 조금 전에 왔다갔으니 이제 두려워하실 게 없습니다. 바깥 관사에서 주무시지요.]



사또는 두려웠지만 부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대담히 먹고 밖에 나가 누웠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는데, 어느덧 동이 터오르자 밖에 인적이 많아지고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창 밖을 내다보니 아전, 군교, 관노, 통인배들이 멍석과 빈 가마니를 들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네가 먼저 관사 문을 열어라.] 라며 미루고 있었다.

사또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앉아 창을 열고 말했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시끄러운고? 들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냐?]



아전들이 크게 놀라 신선이 내려오신 것이라 여기고 새나 짐승마냥 놀라 달아났다.

그들은 곧 기러기나 집오리처럼 줄을 지어 서서 공손히 절을 했다.

사또는 그제야 어제 자신을 소홀히 대한 이들의 죄를 다스렸다.



이방들을 호령하고 법에 따라 엄하게 다스리니 이방들은 무서워서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 날 밤 일을 마치고 돌아가 부인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물었더니, 부인이 모두 말했다.

[이것은 분명 어느 사또 딸의 원혼일 것입니다. 분명 흉악한 놈의 손에 억울하게 죽었을텐데,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모르게 염탐해서 이름이 주기인 사람이 있으면 엄한 형벌로 심문해서 증언을 받아내십시오.]



사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아침 이방들의 인사를 받고 우연히 그들의 이름을 살폈는데, 본청 집사 중에 주기라는 자가 있었다.

사또는 그 즉시 관청에 형장을 갖추고 그 위엄을 떨친 후 주기를 잡아들였다.



아무 이유도 없이 주기를 결박하여 큰 칼을 채운 뒤 형틀에 올려놓으니, 온 읍 사람들이 놀랐다.

사또가 주기에게 물었다.

[이전 사또의 딸이 어디에 있는지 너는 반드시 알고 있을터이니 맞기 전에 순순히 불어라!]



사또가 부임한 날 죽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신선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하고 있었으니 감히 속일 수가 있었겠는가?

하물며 이 놈은 자신이 큰 죄를 지었으니 사람들이 몰라도 마음 속으로는 항상 불안해 했었다.

이렇게 잡혀오고 나니 정신이 나가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터였다.



주기는 감히 숨길 생각도 못하도 전후 사정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아뢰었다.

이전 사또가 영남루로 행차를 나갔다 올 때, 이 놈이 행차를 엿보고 정욕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처녀가 어머니처럼 따르던 유모에게 많은 뇌물을 바쳐 내아 후원에 있는 대나무 누각으로 나오게 했다.



대나무 누각은 몹시 구석진 곳에 있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그 곳은 부녀자들이 종종 달을 보러 나가는 곳이었다.

유모가 재물을 탐내 처녀를 데리고 달을 보러 나갔다.



그 놈은 대나무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뛰쳐나와 처녀의 허리를 껴안고 숲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강간하려 했다.

그러나 처녀는 울부짖으며 끝내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놈은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칼을 빼 처녀를 찔러 죽였다.



또 입을 막기 위해 유모까지 죽이고, 담을 넘어가 관가 뒷산에 암매장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해가 지나도록 이 사건의 진상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증언을 들은 사또는 정식으로 감영에 이 사건을 보고했고, 그 날로 주기를 때려 죽였다.



처녀의 시체가 묻힌 곳을 파보니 얼굴색이 살아 있는 것 같았고 여기저기 핏자국이 낭자했다.

사또는 의복과 관을 갖춰 제대로 시신을 수습하고, 본가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시체를 들고 나가 선산 앞에 장례를 지낸 뒤 대나무 누각을 부숴버리고 대나무 숲을 베어버렸다.



그리하여 읍이 드디어 안정을 찾았고, 사또가 신통하다는 칭송이 전국에 떠들썩했다.

이후 사또는 변방의 방어사와 병사, 수사를 옮겨 다니다 평안도 통제사까지 이르렀다.

어디를 가던 밀양에서의 소문이 함께 따라다녀, 명령하지 않아도 부하들이 알아서 일하고 예를 갖춰 편하게 잘 다스렸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22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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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朱旂. 교룡이 그려지고 방울이 달려있는 붉은 깃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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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저는 경상북도 의성의 사또였다.

하루는 잔치를 벌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때는 여름철이었는데, 갑자기 미친듯이 바람이 휘몰아치고 지나갔다.



이익저는 급히 잔치를 그만두게 하고 감영으로 가서 감찰사를 만나 돈 5천냥을 꿔서 그 돈으로 햇보리를 샀다.

그 해는 풍년이 들어 보리 값이 무척 쌌다.

그는 보리를 사서 각 동에 나누어 잘 봉해두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것을 지키게 하였다.



7월 초 어느 저녁 이익저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심부릉종을 불러 후원에 가서 풀잎 하나를 따오게 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럼 그렇지! 역시 생각했던 대로구나!] 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난데없이 혹독한 서리가 내려 초목이 모두 시들어 못 쓰게 되어 버렸다.



그 해 가을 영남 전체의 들에 푸른 초목이 하나도 없고 죄다 말라 죽은 곡식 뿐이었다.

조정에서는 백성들을 위하여 비축한 곡식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곡식을 나누어 주어도 곡물 값은 계속 뛰어올라 초여름에는 3, 4전 하던 보리 한 가마 값이 무려 300전 가까이 치솟았다.



이익저는 보관해 두었던 보리로 의성 사람들을 구하였고, 나머지 보리는 내다 팔아 꾸어왔던 5천냥을 모두 갚았다.

이는 이익저가 바람을 보고 앞일을 점치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익저는 이웃 읍의 사또로 옮겨 갔는데, 그 때 감찰사는 조현명이었다.



이익저가 일이 있어 감영에 가서 감찰사를 알현하는데, 수염과 머리카락이 단정하지 않고 마구 헝클어져 머리카락이 망건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였다.

이익저가 물러나자 감찰사는 이익저를 따라온 아전을 잡아들어 사또의 모습이 흉하도록 가만히 있던 죄를 꾸짖었다.

그러자 이익저가 감찰사를 다시 뵙기를 청하고 들어가 사죄하며 말했다.



[제가 늙고 기운이 다 되어서 수염과 머리카락을 미처 정리하지 못해 윗분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습니다. 이 같은 죄를 짓고 어찌 사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님께 이를 고해 저를 파면시켜 주십시오.]

감찰사가 말했다.

[조금 전 일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저 의식에 불과한 것인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부하가 상관을 섬기는 도리를 알지 못하였으나, 어떻게 하루라도 그 일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빨리 임금님께 알리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이익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사또께서 끝내 저를 파직시키지 않으실 것입니까?]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이익저가 말했다.



[사또께서는 부하에게 꼭 해괴한 일을 시키셔야겠습니까?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이익저는 즉시 하인을 불러 말했다.

[내 삿갓과 도포를 가지고 오너라.]



이익저는 곧 사모관대를 벗고 부신을 풀어서 감찰사 앞에 놓은 뒤 크게 꾸짖었다.

[내가 부신을 차고 있었기 때문에 여지껏 너에게 허리를 굽혔지만, 이제는 부신을 풀어버렸다. 너는 바로 내 옛 친구의 아들놈이 아니냐? 나와 네 부친은 죽마고우로 같은 베게를 베고 자고, 먼저 장가 가는 사람이 신부의 이름을 알려주기로 했던 사이였다. 너의 아버지가 나보다 먼저 장가를 가서 너희 어머니 이름을 나에게 말해줬던 그 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나를 이렇게 괄시하다니, 너는 아버지를 잊어버린 불효자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단정하지 않은 것이 상관과 부하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가 늙도록 죽지 않아 먹고 사느라 네 부하가 되었다만, 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결코 이렇게는 못할 게다. 너는 개돼지만도 못한 놈이구나.]

이익저는 말을 마치고 비웃으며 나갔다.



감찰사가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못하고 있다가 이익저의 집에 달려가 간곡히 애걸했다.

[어르신, 이 무슨 일입니까? 이 못난 것이 어르신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으니 부디 사퇴하지 말아주십시오.]

이익저가 말했다.



[부하가 공관에서 상관을 질책하고 욕을 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아전과 백성을 대하겠습니까?]

이익저가 매섭게 떨치고 일어나니 감찰사는 어쩔 수 없이 사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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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시절 임진왜란 때문에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황제의 명령을 받아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었다.

이여송은 평양에서 승리를 거두고 성 안으로 들어가 쉬었다.

그런데 이여송은 평양의 경관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다른 마음을 품어, 선조를 설득해 그 곳에서 살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어느 날 이여송은 대동강 옆의 연광정에서 수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잔치를 열었다.

그 때 강변의 모래사장을 검은 소에 탄 노인 한 명이 지나갔다.

보초병들이 큰 소리로 노인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섰으나, 노인은 그것을 다 들으면서도 못 들은척 하며 소고삐를 잡고 천천히 지나갔다.



이 모습을 보고 이여송이 몹시 화를 내며 그 노인을 잡아오라 일렀다.

그러나 소가 느릿느릿 걷는데도 도저히 병사들이 따라잡지를 못했다.

이여송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직접 천리마를 타고 칼을 찬 채 노인의 뒤를 쫓았다.



소가 바로 앞에 보이는데다 말이 나는 듯이 달리는데도 노인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노인을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몇 리를 가서 한 산촌으로 들어가자, 노인이 타고 있던 검은 소가 시냇가 버드나무에 매여 있었다.

이여송은 노인이 이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에서 내려 검을 차고 들어갔다.



노인은 마루 위에서 일어나 이여송을 맞이하였다.

이여송이 화가 나서 꾸짖었다.

[너는 어떤 늙은이길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이리 건방지느냐! 나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백만 군대를 거느리고 너희 군대를 구하러 왔다. 네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건방지게 소에 탄 채 우리 군대 앞을 지나가느냐?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비록 산촌의 노인네이나 어찌 장군의 위대함을 모르겠습니까? 오늘 제 행동은 오직 장군을 누추한 이 곳에 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게 간절한 부탁이 있는데 장군께 말씀 드릴 방법이 없어서 이런 계책을 쓴 것입니다.]

이여송이 물었다.



[부탁이 무엇이냐? 말해보거라.]

노인이 말했다.

[저에게 불초자식이 둘이 있는데, 글 읽고 농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강도짓만 하며 부모의 가르침을 듣지 않습니다. 어른에게 대하는 태도도 알지 못하는 한심한 놈들이지만 제 기력이 쇠해서 아들들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장군의 용맹이 세상을 뒤덮으실만 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장군의 위엄을 빌려 이 패륜아들을 없애버리려 합니다.]



이여송이 말했다.

[아들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뒷마당의 대나무 숲에 있습니다.]



이여송이 칼을 차고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두 소년이 함께 책을 읽고 있었다.

이여송이 큰 소리로 질책하였다.

[너희가 이 집의 패륜아들이냐? 너희 아버지가 너희를 없애라하니 이 칼을 받아라!]



말을 마치고 검을 휘둘러 아이들을 내리치는데, 소년들은 목소리 하나,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죽간으로 칼을 막아내서 도저히 소년들을 해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소년이 죽간으로 칼날을 내리치자 칼날이 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동강이 나 버렸다.

이여송은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흘렸다.



조금 있자 노인이 들어와 아이들을 꾸짖었다.

[어린 것들이 어찌 이리 무례하냐!]

노인이 소년들을 물러나게 하자 이여송이 노인에게 말했다.



[저 패륜아들의 힘이 대단해서 당해낼 수가 없소. 그대의 부탁은 들어주기 힘들 것 같구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말은 장난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10명이 와도 저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황제의 뜻을 받들어 우리나라를 구하러 오셨으니, 왜구를 없애서 우리나라를 다시 안정되게 하시고 본국으로 개선하시어 이름을 역사에 남기시면 이것이 곧 영웅이 아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이런 위대한 일은 하지 않으시고 평양에 눌러 앉을 생각이나 하시니, 이것이 어찌 장군님에게 어울리는 일이겠습니까? 오늘 제가 꾸민 일은 장군님께 우리나라에도 인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장군님이 만약 계획을 고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낭비하신다면 늙은 몸이 장군의 목숨을 뺏으러 갈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시길 바랍니다. 산에 묻혀사는 늙은이의 말이 당돌할지 모르나 장군이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이여송은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어트린 채 기운 없이 있다가 이내 [예, 예.] 하고 군중으로 돌아갔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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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학 이병태가 임금님의 명을 받아 경기도 동쪽과 강원도를 암행어사로서 순찰하게 되었다.

강원도 홍천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읍내와 거리가 10리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홍천은 순찰 구역이 아니었기에 이병태는 그냥 지나가려 하였다.



그리하여 한 마을 앞에 도착했는데, 몹시 배가 고파 어느 집 문 앞에서 밥을 구걸했다.

그러자 한 여자가 나왔다.

[남자가 없는 집이라 무척 가난합니다. 집에 시어머니가 계시는데도 아침 저녁을 굶고 있는데 나그네에게 줄 밥이 있겠습니까?]



이병태가 물었다.

[남편은 어디에 갔습니까?]

여자가 말했다.



[알아서 어디 쓰시려고 하십니까? 우리 남편은 바로 이 읍의 이방인데, 요망한 기생에게 홀려 어머니를 박대하고 아내를 쫓아냈습니다.]

여자가 이렇게 말하며 끊임 없이 원망의 말을 쏟아내자 방 안에 있던 노파가 말했다.

[며늘아, 무슨 이유로 쓸데 없는 말을 해서 남편의 흉을 보느냐?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니?]



이병태가 그 모습을 보며 몹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는 읍내로 들어가 이방을 찾아갔다.

마침 시간이 낮 12시였다.



이방의 집에 들어서니 이방이 마루 위에 앉아 점심밥을 먹고 있었고, 그 옆에는 기생이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이병태는 마룻가에 턱 걸터 앉으며 말했다.

[나는 서울에서 온 과객이오. 우연히 이 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밥 한그릇 얻어 요기라도 때울 수 있게 해주시오.]



그 당시는 전국에 흉년이 들어 조정에서 쌀을 나누어 주어야 할 정도로 힘든 시절이었다.

이방은 한참 동안 이병태를 아래 위로 훑어 보더니, 종을 불러 시켰다.

[조금 전에 새끼 낳은 개에게 주려고 쑤었던 죽이 남아 있느냐?]



[있습니다.]

이방이 말했다.

[이 거지놈에게 그 죽이나 한 그릇 주어라.]



조금 있자 종이 술지게미와 쌀겨를 넣어 끓인 죽 한 그릇을 가져와 이병태의 앞에 던졌다.

이병태가 분노하여 외쳤다.

[그대가 비록 넉넉하게 살고 있다한들 한낱 이방일 뿐이고, 내 비록 구걸하고 있다한들 양반이다. 양반인 내가 밥을 구걸하면 그대는 먹던 밥이 아니라 새로운 밥을 지어 내놓거나 먹던 밥을 덜어서라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짐승들이 먹고 난 찌꺼기를 사람에게 주다니 이 무슨 행패냐!]



이방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병태를 바라보다 욕을 했다.

[네놈이 양반이면 어찌하여 사랑방에 있지 않고 이따위로 돌아다니느냐? 지금은 흉년이 심하여 이 죽도 사람들이 먹지 못해 굶는데 네놈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감히 그따위로 말을 하느냐!]

이방은 죽사발을 들어 이병태를 때렸다.



이병태의 이마에서 상처가 나 피가 흐르고, 온 몸에 죽이 끼얹어졌다.

이병태는 분통함을 참고 그 집에서 나와 그대로 암행어사 출두를 외쳤다.

마침 그 읍의 사또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곡식을 횡령하여 서울로 보낸 것이 발각되었다.



이로 인해 사또는 봉고파직당하고, 이방과 기생은 곤장으로 때려 죽였다.

한 여자의 원망이 한 읍을 뒤흔들어 놓았으니, 옛 말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는 것은 바로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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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읍내에 한 여자가 살았는데, 시집을 간 뒤 갑자기 매일 밤 어느 남자가 들어와 강간을 해댔다.

여자는 온 힘을 다해 거부하려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남자는 매일 밤마다 반드시 찾아왔는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남자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남편이 있을 때도 여자를 강간했는데, 매번 그 고통이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자는 그 남자가 귀신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딱히 물리칠 방도가 없어 끙끙 앓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며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는데, 묘하게도 여자의 5촌 숙부를 보면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여자가 숙부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숙부가 말했다.

[그러면 내일 그 놈이 오거든, 몰래 무명실을 바늘에 꿰어 놨다가 그 놈 옷깃에 꿰매버리거라. 그러면 그 놈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겠지.]

그래서 여자는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다음날 그 계책에 따라 여자는 바늘에 실을 매어서 남자의 옷소매 아래에 찔러 두었다.

여자가 소리를 치자 그녀의 숙부가 들어왔고, 귀신은 놀라 달아났다.

그러자 무명실 뭉치가 슬슬 풀리기 시작했고, 숙부는 그 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따라가보니 실이 지하로 들어가 있었기에 땅을 파 봤더니, 그 안에는 썩은 나무 밑둥이 하나 있었다.

밑둥 아래 실이 매여져 있었고, 밑둥 윗머리에는 총알만한 크기의 보라색 구슬이 하나 있었는데 그 광채가 눈부셨다.

숙부는 구슬을 뽑아 주머니에 넣고, 그 나무 밑둥은 불에 태워 버렸다.



그 이후 귀신은 여자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밤, 숙부의 집 앞에 어떤 이가 찾아와 애걸하였다.

[그 구슬을 제발 돌려주세요. 만약 돌려만 주신다면 부귀공명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숙부는 구슬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 사람은 밤새도록 빌다가 갔는데, 며칠 동안 계속 이렇게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또 와서 말했다.



[그 구슬은 저에게 무척 소중한 것이지만, 당신에게는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가 다른 구슬로 바꿔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이 구슬은 당신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겁니다.]

그래서 숙부는 [그럼, 한 번 보여주시오.] 라고 대답했다.

그 귀신이 밖에서 검은색 구슬 하나를 방으로 들여 보냈는데, 지난번 보라색 구슬만한 크기였다.



숙부는 그 검은색 구슬도 자신이 챙기고, 보라색 구슬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귀신은 통곡하며 그 곳을 떠났고, 이후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숙부는 이후 사람들에게 늘 구슬을 자랑했으나, 그 사용법을 알지는 못했다.



귀신에게 구슬의 사용법을 묻지 않았던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그 후 숙부가 외출했다가 술에 취해 길바닥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 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구슬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이것은 틀림 없이 귀신이 다시 구슬을 가지고 간 것일 것이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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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사또 아무개는 나이가 60이 되도록 아들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외아들을 지나치게 아끼고 글조차 가르치지 않아 아이가 13살이 되었는데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수준이었다.

그러던 도중 전부터 사또와 친하게 지내던 해인사의 큰 스님 한 분이 관청에 찾아와 수령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이가 이미 다 자랐는데 아직도 글조차 못 읽으니 나중에 크면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글을 가르치려고 해도 워낙 건방져서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매를 들기에는 마음이 약해져서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후회가 막심합니다.]

[사대부 집안의 자제는 어릴 적에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세상에서 버림 받은 사람이 됩니다. 그저 오냐오냐 하면서 공부조차 시키지 않았으니 이것이 옳은 것입니까? 아드님의 사람됨을 보니 어떤 일이든 하기만 하면 할 수 있을 터인데 이처럼 포기하시다니 안 될 일입니다. 소승이 가르쳐 볼테니 사또께서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스님의 뜻을 몰라 부탁할 엄두를 못 냈지, 전부터 원하던 일입니다. 스님께서 만약 그 아이를 깨우쳐 지식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다면 그만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살리고 죽이는 것은 스님의 마음대로 하시고, 무조건 엄하게 공부를 시키십시오." 라는 내용의 문서를 만들어 도장을 찍은 뒤 소승에게 주십시오. 또 일단 절로 데려간 후에는 결코 집에서 연락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옷과 먹을 것은 소승이 마련할테니 만약 아이에게 보낼 것이 있다면 제 제자들이 오갈 때 저에게 직접 보내서 제 허락을 받도록 하십시오. 알아 들으시겠습니까?]

[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사또는 즉시 스님이 말한대로 문서를 만들어 주고, 그 날로 아이를 절에 보낸 뒤 연락을 끊었다.

아이는 버르장머리가 없어 절에 간 후에도 이리저리 쏘아다니며 늙은 중들을 멸시하고, 욕을 하며 뺨까지 때리는 등 못하는 짓이 없었다.

하지만 큰 스님은 이를 보면서도 마치 못 본 것처럼 아이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4, 5일이 지난 어느 아침, 큰 스님은 고깔과 도포를 차려 입고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았다.

그 앞에 제자 3, 40명이 경전을 펴고 앉아 있는데 예절과 몸가짐이 가지런하고 엄숙했다.

큰 스님이 스님 한 분에게 아이를 잡아오라 시켰더니, 아이는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욕을 퍼부었다.



[한갓 너희 같은 중놈들이 어떻게 양반을 모욕하는거냐! 내가 집에 돌아가면 아버님께 아뢰어 너희들을 때려죽일테다! 원수 대머리 중놈들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죽일테다!]

아이는 계속 욕을 하며 한사코 오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큰 스님은 아이를 꾸짖으며 여러 스님들에게 아이를 묶으라고 시켰다.



스님들이 아이를 묶어서 큰 스님 앞에 데려다 놓으니, 큰 스님이 이전에 사또가 썼던 문서를 내보이며 말했다.

[너희 아버님께서 이것을 써서 내가 주셨으니, 이제부터 너의 생사는 오직 내 손에 달려 있다. 너는 양반집 아들이면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 채 온갖 나쁜 짓만 골라서 하니 살아서 어디다 쓰겠느냐? 이대로 가다가는 너희 집안까지 말아먹고 말테니 잔말 말고 내가 주는 벌을 받아라.]

큰 스님은 말을 마치고 송곳 끝을 불에 달구어 시뻘겋게 만든 후 그것으로 아이의 넓적다리를 찔렀다.



아이는 너무 아파 기절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큰 스님이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송곳으로 다시 찌르려 하자, 아이는 애걸하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큰 스님 말씀만 듣겠습니다. 제발 다시 찌르지 마세요.]



큰 스님이 송곳을 손에 든 채 아이를 꾸짖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다가 두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묶인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책상 앞으로 데려와 천자문을 가르치고, 그 다음날부터 일과를 정해서 조금도 쉬지 못하게 하고 공부만 시켰다.

아이는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데다 원래 머리가 좋았던지라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달았고, 열을 배우면 백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4, 50일만에 천자문과 역사책을 모두 떼서 훤히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밤낮으로 공부를 쉬지 않고, 게으름 피우지 않으며 성실히 하니 1년여 만에 학문이 크게 진전되었고, 3년만에 공부에 도가 텄다.

아이는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내가 양반이면서도 산 속의 중들에게 이런 치욕을 당한 것은 모두 공부를 안 해서이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하면 꼭 이 중놈들을 때려 죽여서 이 한을 씻고 말테다.]

아이는 오직 이 생각을 하며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기를 쓰고 공부를 했던 것이다.

큰 스님은 아이에게 과거 공부까지 시킨 후, 아이를 불러 말했다.



[이제 그대의 글은 과거에 합격할 만하오. 과거에 합격하여 큰 벼슬을 해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고, 남에게 밀리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소승은 이제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가겠소.]

그 말을 마친 뒤 큰 스님은 아이를 돌려보내고 떠났다.

집에 돌아간 아이는 그제야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한 뒤 서울로 올라가 과거 시험에 도전한지 3년만에 드디어 과거에 합격했다.



그리고 벼슬 자리에 오른지 수십년만에 드디어 경상도 관찰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경상도 관찰사가 되자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드디어 해인사의 중놈들을 때려죽여서 젊은 날의 한을 갚으리라.]



관찰사는 경기도의 각 읍을 돌아다니며 처벌 도구를 잘 챙기게 했다.

그리고 곤장을 만들고, 곤장을 잘 치는 사람 3, 4명을 골라서 자신을 따라오게 했다.

절에 도착하면 바로 중들을 때려 죽이려는 생각에서였다.



관찰사의 행차가 홍류동에 이르자, 큰 스님이 스님들을 데리고 길가에 나와 관찰사를 맞이했다.

관찰사는 큰 스님 일행을 보더니 곧 가마에서 내려 큰 스님의 손을 잡고 정성스레 인사 했다.

큰 스님이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늙은이가 다행히 죽지 않고 사또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말을 마치고 함께 절에 들어가는데 큰 스님이 말했다.

[소승이 자는 방은 바로 사또께서 지난날 공부하시던 그 방입니다. 오늘 밤은 방을 옮겨 소승과 같이 나란히 누워 주무시지요.]



관찰사가 흔쾌히 허락하여 같은 방에서 자게 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큰 스님이 물었다.

[사또께서는 어려서 제게 공부를 배울 때 소승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과거에 급제해서 관찰사가 되시고도 그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실은 절에 올 때만 해도 그럴 작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저를 때려 죽이지 않으시고 가마에서 내려 인사를 하신 것입니까?]

[원한을 한시도 마음 속에서 잊은 적이 없었는데, 스님의 얼굴을 뵙자 마자 원한이 눈 녹 듯 사라지고 기쁜 마음만 남았습니다.]

[소승이 예상한 대로 입니다. 사또는 높은 자리까지 오르실 분이십니다. 모년 모월 모일에 사또께서 평양 감사가 되실 터인데, 그러면 소승이 스님 한 분을 보내겠습니다. 사또께서는 잊지 말고 반드시 예우해 주십시오. 마치 소승을 본 것처럼 생각하고 이렇게 한 방에서 같이 주무십시오. 꼭 이 말을 잊지 말고 지키셔야 합니다.]



관찰사가 알겠다고 하니 큰 스님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것은 소승이 사또를 위해 평생 운수를 연도 별로 적어둔 것입니다. 언제 돌아가실 지, 몇 품의 지위까지 오를지 환히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금방 말씀드렸던 평양 감사가 된 후의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절대 잊지 마십시오.]

관찰사는 감사한 마음에 모두 기억하겠노라고 맹세했다.



관찰사는 다음 날 쌀, 베, 돈, 나무 등을 절에 한껏 시주하고 절을 떠났다.

그 후 몇 년이 지날 무렵, 과연 관찰사는 평앙 감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지기가 아뢰었다.



[경상도 합천군 해인사에서 왠 스님이 와서 감사님을 뵙겠다고 합니다.]

감사는 문득 큰 스님의 말씀을 생각해내고 그를 즉시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까이 오게 한 후 큰 스님의 안부를 물었다.



상을 같이 두고 저녁밥을 먹은 뒤, 밤이 되자 같은 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방 구들이 너무 뜨거워서, 감사는 스님과 자리를 바꿔 눕게 되었다.

잠에 빠져 정신이 몽롱한데, 갑자기 비린 악취가 났다.



놀란 감사가 손으로 스님을 더듬어 보니, 스님이 있던 곳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바로 아랫 사람을 불러 촛불을 들고 살펴보니 스님의 배가 칼에 찔려 내장이 모두 튀어 나와 있고, 피가 흘러 방바닥이 온통 피 투성이였다.

감사는 깜짝 놀라 급히 시체를 수습하게 했다.



다음 날 아침 철저히 조사해보니, 그것은 감사가 아끼던 기생 때문이었다.

그 기생은 어느 관노와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그 때문에 관노가 감사에게 원한을 품고 자는 사이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관노는 당연히 감사가 아랫목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죽였으나, 거기 있던 것은 스님이었다.



감사는 관노와 기생을 법으로 엄히 다스리고, 스님의 시체를 수습해서 해인사로 보냈다.

이것은 큰 스님이 이러한 횡액을 미리 알아서 일부러 스님을 보내 감사가 받을 횡액을 대신 받게 했던 것이었다.

그 후 감사의 인생은 모두 큰 스님이 주셨던 종이에 적힌 것과 똑같았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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