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두번째 날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커피를 한잔.
숙소가 참 좋았던게, 라운지에서 커피랑 차를 맘대로 타먹을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먹고 나서 설거지는 꼭 해놓아야 하지만요.
7시 반쯤 되서 출발했습니다.
숙소 근처 자판기에서 캔 단팥죽을 팔길래 하나 사봤는데, 맛은 그냥 우리나라에서도 파는 레토르트 단팥죽 맛이더라고요.
근데 엄청 달아요 으으...
둘째날 첫번째 행선지는 신사인 칸다묘진.
그런데 가는 도중에 신사가 하나 보이길래 여기도 잠깐 들렀습니다.
배불뚝이 너구리가 인상적이었어요.
칸다 강을 건너가면 바로 앞에 보이는 건 아키하바라!
여기서 직진하면 아키하바라입니다만, 아키하바라는 나흘째 하루를 통으로 써서 돌아볼 예정이었기에 여기서는 왼쪽으로 꺾어서 갑니다.
쭉 걸어가다보니 왼쪽 멀리 도쿄대 의대가 보이더군요.
일본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건물!
그리고 숙소에서 한 30분 정도 걸은 끝에 칸다묘진에 도착했습니다.
칸다묘진은 일본 3대 축제 중 하나인 칸다 마츠리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5월달에 열리는 축제라서 이번 여행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도쿄 전체를 총괄하는 신사로, 일본에 있는 어지간한 유적이 그렇듯 지진과 전쟁통에 다 무너졌다가 현대에 새로 지은 건물입니다.
저 사자탈은 점괘를 뽑아주는 자판기인데, 사자가 춤추고 소리를 내더라고요.
신기하긴 했는데 굳이 점을 볼 생각은 없었기에 구경만 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건 칸다묘진 3대 신 중 하나인 다이코쿠텐, 한국 발음으로는 대흑천(大黒天)입니다.
칠복신 중 하나로, 재물과 가정의 행복, 남녀의 인연을 담당하는 신이라는군요.
2000년대 들어 세운 사자상, 그리고 망한 점괘를 뽑은 이들의 한이 담긴 조형물입니다.
흉한 점괘를 뽑으면 저기다 묶어서 액운을 떨쳐내는거죠.
왼쪽 아래에 있는 건 칸다묘진 3대 신 중 하나이자, 칠복신 중에서도 인기 있는 에비스입니다.
어업과 풍년을 담당하는 신으로, 유명한 에비스 맥주가 바로 이 신의 이름을 따왔죠.
칸다묘진 3대 신 중 나머지 하나는 타이라노 마사카도인데, 이건 실존 인물을 신으로 모시는 거라 굳이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건 신사에서 키우는 조랑말이에요.
신마(神馬) 아카리쨩이라고 이름도 붙여놨더라고요.
귀여웠습니다.
칸다묘진은 아키하바라 근처이기도 하고, 러브라이브 애니메이션에도 등장한 덕에 오타쿠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곳입니다.
러브라이브의 경우 등장 캐릭터 중 한명이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바람에 팬들 사이에서는 성지로 자리잡았다네요.
그래서인지 걸려있는 에마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뒷면에 러브라이브 캐릭터들이 인쇄되어 있는 게 꽤 보였습니다.
애니메이션 흥행을 관광업에 잘 활용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군요.
칸다묘진을 다 돌아봤으니, 이제 다음 행선지는 도쿄 돔입니다.
칸다묘진에서 도쿄 돔까지도 걸어서 한 20분 정도 걸려요.
천천히 걸어가는 사이, 일본에서 최초로 의과대학을 설립한 준텐도 대학이 눈에 들어옵니다.
현대에도 의학 쪽에 강세를 보이는 학교죠.
도쿄 돔에 도착해서, 우선 도쿄 돔 호텔에 티켓 수령차 들렀습니다.
안에는 벌써부터 예쁜 트리가 우뚝 서 있고, 울트라맨도 있더라고요.
나와보니 도쿄 돔 아니랄까봐, 자판기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입니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도쿄 돔!
일본 야구의 심장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가 준우승을 차지한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도 바로 이곳에서 개최됐었죠.
하지만 야구 시즌도 다 끝난 겨울, 왜 도쿄 돔을 왔느냐...
그것은 바로 도쿄 돔 시티라는 놀이공원이 옆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쿄에는 요미우리 랜드나 후지큐 하이랜드, 디즈니랜드나 하나야시키 같은 놀이공원이 잔뜩 있지만, 여기만큼 도심 중심에 자리잡은 규모 있는 놀이공원이 또 없습니다.
중심 바큇살이 없는 관람차 빅-오와, 그 관람차를 뚫고 지나가는 롤러코스터 썬더돌핀이 이 놀이공원의 상징입니다.
이거 타려고 한국에서 이미 티켓도 끊어왔었습니다.
30,000원 정도 가격에 놀이기구 4번 탑승과 우주박물관 관람이 가능한 티켓이죠.
그런데 너무 일찍 왔어요...
놀이동산 개장이 10시부터인데, 아직 30분 정도 남은 시점에 도착해버렸거든요.
어쩔 수 없이 주변을 좀 돌아다녔습니다.
분수대도 보이고, 난데없이 카드캡처 사쿠라 전문점도 있고...
야구장답게, 야구 박물관이랑 야구 관련 메가스토어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근데 이놈의 놀이공원이 10시를 넘겨서도 문을 안 열더라고요.
결국 지칠대로 지친 나머지, 먼저 문을 연 메가스토어랑 야구 박물관이나 먼저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메가스토어는 기본적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메인으로 삼고, 곁다리로 일본 야구 대표팀이나 여타 프로팀 물품을 판매하고 있더군요.
대만 출신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 중인 양다이강, 일본 발음으로 요 다이칸 선수의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인 메이저리거 코너도 흥미롭더군요.
마에다 켄타, 다나카 마사히로, 다르빗슈 유 세 선수 모두 올해 만만치 않은 시즌을 보냈는데, 내년에는 더 좋은 모습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이어서 들어간 야구 박물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은 프로야구 역사가 길다보니 어르신들이 옛 추억을 돌아볼겸 많이 찾아오시는 것 같아요.
윗줄은 작년 오릭스 버팔로즈의 크리스 마레로가 기록한 일본 프로야구 통산 100,000번째 홈런볼과 배트, 일본시리즈 우승컵입니다.
각 구단별 유니폼과 선수 용품, 감독 메세지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 두개가 아랫줄 물건들입니다.
닛폰햄 파이터즈 소속으로, 현재 일본 야구의 신성인 오타니 쇼헤이 선수의 글러브와 스파이크.
그리고 이승엽 선수의 기록을 깨고,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작성했던 야쿠르트 소속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56호 홈런볼입니다.
일본 프로야구 전설들 속에서, 하리모토 이사오라는 이름으로 걸려 있는 장훈 선수를 발견했습니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 속에서도, 끝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하며 일본 프로야구에서 전설을 써 나갔던 위대한 선수죠.
오른쪽 위 사진 중, 두번째 배트가 바로 장훈 선수의 3,000 안타 기록 배트라고 합니다.
아래쪽 사진은 장훈 선수와도 절친했던 오 사다하루, 왕정치의 일본도입니다.
타격 연습을 위해 저 일본도로 볏짚을 베면서 훈련했다고 하는데, 지금 와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훈련법이죠.
그야말로 낭만과 전설의 시대였던 셈입니다.
야구 박물관에는 일본을 거쳐간 한국인 선수들의 물품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타자의 경우 이종범, 이승엽, 이대호 세 선수의 배트가 있더라고요.
이종범 선수는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이승엽 선수는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이대호 선수는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배트입니다.
투수는 선동렬, 박찬호, 오승환 세 선수의 글러브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선동렬 선수는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박찬호 선수는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오승환 선수는 한신 타이거즈 시절 글러브네요.
해외에서 한국 선수들 물건을 보니까 새삼 더 반가웠습니다.
일본 야구가 낳은 대스타, 스즈키 이치로 코너도 한켠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 3,000 안타, 미일 통산 4,359 안타...
국적을 떠나, 그저 대단한 선수입니다.
그 너머에는 WBC 우승 기념 코너가.
일본은 초대 WBC와 2회 WBC를 연속 우승했죠.
우리나라도 충분히 우승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기에 더욱 아쉬웠던 대회들입니다.
일본도 우승이 정말 기뻤던지, 당시 선발 멤버 유니폼, 트로피 뿐 아니라 우승하고 나서 뿌렸던 색종이까지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좀 샘나더라고요 ㅠㅠ
도쿄 돔은 우리나라 동대문 운동장처럼,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고라쿠엔 야구장을 밀어버리고 지은 구장입니다.
그래서 고라쿠엔 야구장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잔뜩 옮겨져서 전시 중이었어요.
일본 어르신분들은 이런 거 하나하나 보면서 추억에 젖으시더라고요.
지금 와서 봐도 불펜 투수를 실어나르던 카트는 참 귀엽고 센스 있는 디자인입니다.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장훈 선수.
아래에 있는 배트 박스는, 실제로 스폰지 배트를 들고 프로 투수의 공을 쳐볼 수 있는 체험형 코너입니다.
저도 시도해서 안타를 하나 쳤어요!
유쾌한 코너였습니다.
일본 야구 박물관은 입장료 600엔을 받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공식 어플을 설치하면 100엔을 할인해주는 행사가 진행 중이라 저는 500엔만 냈고요.
야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쯤 방문할 법 하긴한데, 한국어 팜플렛이나 가이드가 없다는 점은 참고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어 소개문도 없기 때문에, 일본어 소개문을 어느 정도 이해하실 정도는 되어야 더 쉬운 관람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튼 이렇게 야구 박물관을 돌아보고 다시 놀이공원으로 갔는데...
아이고 맙소사.
바람이 너무 세게 부는 통에 썬더돌핀이 운행 중지 중이었습니다 ㅠㅠ
이거 하나 타려고 한국에서 왔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하지만 별 수 있겠어요, 날씨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신 옆에 있는 관람차, 빅-오를 타기로 했습니다.
여기 관람차는 독특하게 안에 노래방 기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관람차를 타는 동안 노래를 부를 수가 있습니다.
한류 열풍 덕에 한국 가수가 부른 노래도 꽤 있으니, 찾아가시면 일본 하늘 위에서 한국 노래를 신나게 부르시는 것도 좋을 거 같네요.
저도 판타스틱 베이비랑 TT를 부르고 왔습니다 너무해 너무해.
빅-오는 80m 높이까지 올라갑니다.
도쿄돔을 내려다보는 경험은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게 아니죠!
혼자 타서 우울했지만, 날도 맑고 풍경은 참 좋았습니다 흑흑...
내린 뒤 지나가다 봤던 바이킹.
저는 바이킹은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갔습니다.
사실 이 놀이공원이 썬더돌핀 빼면 성인 남성이 혼자 탈 놀이기구가 마땅치가 않아요...
하지만 바람은 여전히 쌩쌩 불더라고요 ㅠㅠ
어쩔 수 없이 또 방황하다 발견한 점프샵.
일본 최고의 만화잡지 소년 점프 관련 상품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루피랑 나루토를 만났긴 했는데, 딱히 제 취향에 맞는 물건은 없어서 구경만 하고 나왔습니다.
벽에는 만화가들 싸인이 쫙 걸려있더라고요.
하지만 바람은 멈추지가 않습니다...
바람아 멈추어다오 ㅠㅠ
방황하다 마주친 메이저리그 카페, 에비스, 슈퍼전대 포스터.
그리고 하도 심심해서 스카이 플라워라는 놀이기구를 하나 더 탔습니다.
이것도 바람이 세서 운행 중지였는데, 마침 근처에 가니까 딱 운행 시작하더라고요.
일종의 곤돌라인데,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가 뚝 떨어지는걸 2번 반복합니다.
60m 까지 올라가는데, 고라쿠엔 시절부터 있던 유서 깊은 놀이기구라고 하더라고요.
좀 춥긴 했지만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서 인상 깊었습니다.
어느덧 점심때.
점심은 회전초밥을 먹었습니다.
해선 미사키코라는 프랜차이즈 회전초밥집인데, 마침 놀이공원 바로 옆에 있더라고요.
이거저거 해서 9 접시 먹었는데, 맛있었습니다.
1,780엔 나왔던걸로 기억하네요.
밥을 먹고 나와도 바람이 멈추질 않더랍니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티켓에 포함되어 있는 코스, 우주박물관 TenQ로 향했습니다.
입장하면 상영하는 영상이 있는데, 영상 시작 시간을 맞춰 들어가야 해서 잠시 대기했습니다.
우주박물관답게 기념품점에서는 우주식을 판매하고 있더군요.
일본인 우주인의 싸인이나 UFO 모양의 조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기껏 들어간 우주 박물관은... 그저 그랬어요.
저는 일본어 안내문이라도 읽을 수 있지만, 아예 일본어를 모르신다면 진짜 별 거 없이 걷다가 나오실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저처럼 결합 티켓을 구매하셨다면 들릴만 하겠습니다만, 아니면 따로 가시는 건 별로 추천할 일이 못되는 거 같아요.
여기 단독 입장 티켓은 무려 1,800엔입니다.
우주를 정말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면, 단독 입장은 지양하고 다른 데 돈을 쓰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우주박물관을 나섰는데 아직도 바람이... 응?
바람이 잦아든데다 갑자기 썬더돌핀이 시운전을 시작합니다!
신나서 달려가서 맨앞에 줄을 섰습니다.
시운전 결과에 따라 운행 시작 여부가 결정된다는 직원의 말을 믿고, 30여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운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날 9시 30분에 도쿄 돔에 도착했는데, 6시간 기다린 끝에 3시 30분에 마침내 맨처음으로 썬더돌핀에 탑승했습니다 흑흑.
썬더돌핀은 정말 끝내주는 롤러코스터였습니다.
360도 회전만 없을 뿐, 틸팅 노선에 급강하, 폭포수 커브에 놀이기구와 건물 관통까지 롤러코스터에 넣을 수 있는 재미는 다 우겨넣은 느낌이에요.
2번 탔는데, 지금도 또 타고 싶습니다.
롤러코스터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거 하나를 위해서라도 도쿄 돔 한번 찾아가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썬더돌핀의 한을 풀었으니, 이제 마음 편히 다음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다음 목적지는 일본 축구 박물관!
그렇습니다, 저는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히히.
가는 길은 20분 정도 걸린다고 나오는데, 언덕길을 끼고 있어서 실제로는 그보다 더 걸립니다.
도중에 지장보살님이 여섯분 계시더라고요.
아무튼 겨우겨우 도착한 일본 축구협회!
축구협회 건물 지하로 일본 축구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안에 들어서니 우선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들 기념품이 맞이하더라고요.
인터밀란에서 뛰는 나가토모 유토, 프랑크푸르트에서 뛰는 하세베 마코토의 A매치 100 경기 기념 유니폼.
그 아래에는 도르트문트에서 뛰는 카가와 신지의 축구화입니다.
일본은 프로리그가 3부까지 구축되어 있는데, 개중 이미 완전히 자리를 잡은 J1과 J2는 각 팀 유니폼과 마스코트, 구단 용품이 한자리에 전시되어 있더라고요.
국내 프로축구보다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자리잡은 걸 보면 참 부럽다는 생각 뿐입니다.
일본 축구 박물관 티켓은 재미있게도 뒷면이 2002 한일 월드컵 티켓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조별리그 일본과 러시아 경기 티켓인데, 일본에서도 2002 한일 월드컵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작은 재미이지만 이런 것 하나하나가 참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입장료는 500엔이에요.
박물관 안에도 이것저것 구경할 게 많았습니다.
왼쪽 위에 있는 건 J리그 우승 트로피입니다.
우승컵 형태인 K리그와는 다르게 쉴드 형태인데 크기가 상당하더라고요.
그 옆에는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 선발 베스트 일레븐입니다.
저기 빈 자리에 직접 들어가 선수들과 어깨동무하고 파이팅을 다질 수 있도록 만들어뒀더라고요.
2002 한일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들의 축구용품도 전시 중이었습니다.
잉글랜드의 간판이었던 데이비드 베컴의 축구화, 그리고 이 대회 MVP를 수상했던 골키퍼 올리버 칸의 장갑.
4강 신화를 써내려간 전설의 유니폼을 일본 와서 보니까 감회가 새롭더군요.
한일 월드컵 우승팀 브라질, 1998년 처음 월드컵에 진출했던 일본 국가대표팀 유니폼도 있었습니다.
오른쪽 아래는 일본 국가대표팀이 각급 대회에서 수상한 페어플레이 트로피래요.
축구 박물관이니만큼 일본 국가대표팀이 따온 트로피도 잔뜩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개중 윗줄 두개가 참 묵직한 대회들인데, 왼쪽은 2011년 여자 월드컵 우승, 오른쪽은 2014년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 우승 트로피입니다.
우리나라도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은 2010년 우승한 적이 있지만, 아직 성인 대표팀에서는 그만한 성적이 나오지 못하고 있어 아쉽네요.
언젠가 성인 대표팀에서도 월드컵 제패를 꿈꿔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아랫줄 왼쪽은 아시안컵, 오른쪽은 곧 개최를 앞둔 동아시안컵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번 대회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무르며 아시안컵 우승을 또 미루게 되었는데,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성적을 내온 일본이 참 부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시안컵을 우승해야 컨페드레이션즈 컵도 나가보고 그럴텐데 ㅠㅠ
다음달 동아시안컵에서는 대표팀이 간만에 우승컵 드는 모습이 보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축구 박물관 로비에 전시되어 있던 일본 대표 선수들의 발자국입니다.
왼쪽 위는 미우라 카즈요시, 오른쪽 위는 나카무라 슌스케, 왼쪽 아래는 엔도 야스히토, 오른쪽 아래는 다카하라 나오히로.
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일본 대표팀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던 이름들인데, 모두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더라고요.
개중 마흔 넘은 나이에도 축구 선수로 뛰고 있는 미우라 카즈요시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 뿐입니다.
이렇게 축구 박물관 감상이 끝났으니 이제 또 이동할 때가 됐습니다.
롯폰기 힐즈로 갈 생각이었는데, 근처 지하철이 롯폰기로 바로 가는게 없어서 결국 노기자카역까지 간 다음 걸어서 이동하기로 합니다.
근데 노기자카는 이름에 고개라는 뜻의 사카(坂)가 들어가는만큼 경사가 좀 있더라고요...
차라리 환승을 해서라도 롯폰기로 바로 갔어야 했습니다 ㅠㅠ
가는 길에 자판기를 봤는데, 자판기 한정으로 팔리는 메론소다가 무과즙이더라고요.
우리나라는 해당 재료가 들어가지 않으면 상품명에 표기를 못하는데, 일본은 또 다른 모양입니다.
결국 수상한 무과즙 메론소다는 거르고 탄산수를 마셨는데, 탄산이 어마어마하게 세더라고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른쪽 아래는 노기자카역에 내려서 걸어가다 마주친 국립신미술관.
여기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별전을 하고 있어서 가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스케쥴을 짜봐도 시간이 안 맞더라고요.
화요일날 쉬고 10시부터 6시까지만 운영하는, 여행객 입장에서는 정말 아쉬운 시간대의 전시였습니다 ㅠㅠ
또 20분 가량 걸어서 겨우 도착한 롯폰기 힐즈.
롯폰기는 긴자와 더불어 도쿄의 대표적인 부촌 중 하나인데, 그 중심에 있는 롯폰기 힐즈는 문화예술과 온갖 비싼 가게들이 모여있는 복합단지입니다.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모리 빌딩에는 미술관과 전망대가 유명한데, 저는 이번에 그걸 보러 온 게 아니라 밑에서 사진만 한장.
저 멀리 도쿄 타워가 빛납니다.
왼쪽 아래에 있는 거미는 마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롯폰기 힐즈의 랜드마크입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거미를 밀어주더라고요.
저거 밑에 들어가보면 안에 알까지 배고 있어서 더 징그러워요.
천천히 걸어내려오면 TV 아사히가 보입니다.
계획에는 없지만 또 안 들어가 볼 수가 없죠.
60년 역사의 방송국으로, 특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강세를 보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맞이해주는 건 TV 아사히의 마스코트, 고엑스팬더, 그리고 밝게 빛나는 거대한 트리.
아래쪽에 있는 건 배우 쿠로야나기 테츠코가 40년 넘게 진행 중인 전설적인 토크쇼, "테츠코의 방" 스튜디오를 재현한 것입니다.
쿠로야나기 테츠코 옆에 있는 버튼들을 누르면 육성이 흘러나오더라고요.
쿠로야나기 테츠코는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창가의 토토" 를 쓴 바로 그 분입니다.
책은 유명한데 정작 일본에서 유명한 배우라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가 않더라고요.
TV 아사히의 간판 애니메이션 쌍두마차, 짱구와 도라에몽.
두 작품 모두 작가 사후에도 애니메이션이 이어지며,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롯폰기 힐즈에 왜 왔느냐 하면, 바로 이걸 보러 왔던 겁니다.
매년 삼성 갤럭시에서 주최하는 일루미네이션 행사가 있거든요.
도쿄타워와 롯폰기 힐즈 사이, 케야키자카를 전부 빛으로 물들이는 "롯폰기 힐즈 케야키자카 일루미네이션" 입니다.
길 전체가 빛으로 확 물들어 있는데,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하루 종일 걸어서 지친 와중에도, 저 거리를 걸어 올라갈 때는 참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하얀 불빛이 빨갛게 변하는 것까지 구경한 뒤, 모리빌딩을 통해 롯폰기 힐즈를 빠져나옵니다.
롯폰기 힐즈는 워낙 비싼 가게들 밖에 없어서, 저처럼 가난한 여행자는 뭘 사먹을 수가 없어요.
결국 나와서 한참을 방황하다가, 우리나라에서 소문이 자자한 라멘 프랜차이즈, 이치란 라멘에 들어갔습니다.
이치란 라멘은 중앙에 뿌려져 있는 저 매운 소스로 유명한데, 확실히 저 소스 덕분에 돈코츠 라멘 특유의 느끼한 맛이 좀 잡히는 느낌이더군요.
다른 라멘 프랜차이즈보다 한국 사람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맛있게 먹었어요.
소화도 시킬겸, 천천히 롯폰기를 걸어다니다 서점이 보이길래 쓱 들어가봤습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알고 책도 좋아하니 서점은 보이면 들어가보고 싶더라고요.
괴담 번역을 취미로 하고 있다보니 괴담 관련 서적부터 뒤적거려 보고, 잡지나 문고본도 천천히 돌아봤습니다.
개중 특이한 게 바로 저 노기자카 46 문고였어요.
노기자카 46은 일본 아이돌 그룹인데, 롯폰기 근처 노기자카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올해 들어 코단샤 문고와 제휴를 맺어, 책 표지를 아이돌 멤버들이 장식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동네 아이돌이라고 롯폰기 쪽 서점에서 코너를 크게 내준 걸 보니 뭔가 유쾌한 마음에 사진도 찍어왔습니다.
롯폰기역에서 숙소까지는 또 지하철 한방에 가더랍니다.
이번 여행은 참 숙소가 교통이 편리해서 좋았어요.
오는 길에 패밀리마트에 들려서 야식을 사왔습니다.
겨울 한정으로 나온 귤맛 호로요이랑 우유 푸딩, 그리고 슈크림!
맛있게 또 잘 먹고, 사흘째 여행을 위해 지친 몸을 침대에 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