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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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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젊을 적 깊은 산속 마을에 살고 있었다.


마을에는 그닥 평판이 좋지 못한 의사가 딱 한 명 있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도 알고 지내던 나이 지긋한 남자가 맹장염에 걸리자, 어쩔 수 없이 그 의사에게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름 처치를 잘못한 탓인지, 그만 복막염이 일어나고 말았다.


시내 병원으로 옮겨 장세척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하지만 한겨울인데다 눈이 엄청나게 오는 지역이라 버스는 이미 끊겨 있었다.




운 좋게도 우연히 마을에는 육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소달구지에 환자를 태워 시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는 진통제를 맞고, 담요를 칭칭 감싼 채 달구지에 올랐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통증 때문에 마구 뒹굴다 담요는 다 풀려 버렸다.


입에서는 계속 의사를 원망하는 말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 의사가 제대로 처치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하고 잔뜩 앙심을 품은 것이었다.




너무 날뛰는 그를 견디다 못해, 의무병 한 명이 그의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결국 환자는 저녁 무렵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의무병이 몇번이고 확인했지만 완전히 죽은 후였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 병원까지 데려갈 필요도 없다는 판단 하에, 그의 사체를 도중 어느 민가에 내려 놨다고 한다.


마을에서 사람을 보내 사체를 인수해 가라는 것이었다.


그 집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담요로 사체를 감싸 널빤지에 올리고 마굿간에 사체를 안치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집 주인이 사체에 향을 올리려는데, 담요만 남아있고 사체가 사라졌다.


사체는 마을, 수술을 했던 의사 집 앞에서 발견되었다.


환자는 꽁꽁 얼어 붙은 채, 두 눈을 치켜뜨고 의사네 집 현관 앞에 눈투성이가 되어 우뚝 서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 광경을 본 의사는 혼비백산해 그대로 자빠져 허리를 다치고 말았다고 한다.


그게 원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의사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몇번이고 그 의무병이 죽음을 확인했을 뿐더러, 폭설이 내리는 와중에 밤부터 아침까지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도착할 거리가 아니었다는 걸 강조했다.




그 후 그 마을은 계속 의사 한 명 없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 진료소에 아무리 새 의사가 들어와도, 모두 1년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둬 버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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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03rd]벚꽃무늬 기모노

괴담 번역 2015. 10. 2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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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는 100년 넘은 벚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벚나무가 꽃을 피우면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다만 괴상하게도, 그 귀신에 대한 소문은 "벚꽃무늬 기모노를 입고 있다" 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었다.




목격한 사람에 따라 남자인 경우도, 여자인 경우도 있고, 어른이라는 사람도, 아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는 미라나 해골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나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와 함께 그 귀신을 봤다.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이 함께 있었는데 그 중 나와 A, B 세 명만 귀신을 목격했다.


점심시간에 다같이 놀고 있는데, 갑자기 A가 벚꽃나무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벚꽃무늬 기모노를 입은 남자애가 있어! 유치원생인가?]




그 말에 나도 벚꽃나무를 바라봤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인건 벚꽃무늬 기모노를 입은 예쁜 어른 여자였다.


곧이어 옆에서 B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다른 세 친구들에게는 보이지 않는지, 그저 우리와 벚나무 사이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계속 바라보고 있자, 귀신은 씩 미소지으며 이리 오라고 손짓하기 시작했다.


[무슨 손짓을 하고 있는데?]




하지만 A와 B의 말이 각각 나와 달랐다.


A는 이 쪽은 보지도 않는다고 하고, B는 위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B는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일단 내 눈에는 여자 밖에 안 보이는데다 무서운 분위기도 없었기에 나는 다가가보았다.




그러자 귀신은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나와 맞춘 후, 벚꽃나무 쪽을 가리켰다.


귀신이 가르킨 쪽을 보자 흰 나비가 2마리, 얽히듯 날고 있었다.


이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싶어 눈을 돌리니, 어느새 그녀는 사라진 후였다.




나중에 B에게 물어보니 B는 벚꽃무늬 기모노를 입고 두 다리로 걷는 개 요괴를 보았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나는 물론이고 A도, B도 벚꽃나무 귀신은 본 적이 없다.


보는 사람에 따라 모습이 바뀌는 귀신이라는 건 정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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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02nd]뜀틀

괴담 번역 2015. 10. 26.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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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잠시, 자원봉사 비슷하게 지역 마을회관에 주 2회 방문했었다.


오후부터 밤까지, 아이들이 방과후 갈 데 없어 놀러오곤 하는데, 그걸 감시하고 정리를 도우는 일이었다.


거기에는 장난감이나 실내용 외발 자전거 같은 놀이도구가 꽤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은 바로 뜀틀이었다.


10단 가량 되는 거대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왜 여기 뜀틀이 있나 의아했었다.




그 뜀틀은 남루한 모양새로 장난감 창고 구석에 박혀있었다.


근처의 학교가 폐교 조치되면서 받아온 것이라 한다.


그 곳에서의 봉사활동은 2년 가량 이어졌다.




하지만 내가 사정이 생겨 이사하게 되면서 그것도 마지막을 맞았다.


마지막날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니, 아이들은 편지와 종이로 접은 꽃 같은 걸 건네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밤이 깊어져, 아이들을 돌려보낸 후, 나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불을 끄고 마을회관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런데 장난감 창고에서 덜컹하고 소리가 났다.


잠시 텀을 두고 덜컹덜컹, 또 소리가 난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는데...




혹시 내가 오는 마지막날이니, 누가 숨어서 장난이라도 치는건가 싶었다.


하지만 마을회관은 불이 꺼져 완전히 깜깜하다.


당연히 창고도 불이 꺼져있다.




아이들이라면 무서워서 숨어있질 못할 것이다.


나는 다시 불을 켜고 창고로 갔다.


문을 열자, 인기척은 없었다.




아까 전까지 들려왔던 소리가 거짓말인 것처럼 아주 조용했다.


하지만 소리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나는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이 숨을만한 곳을 대충 살펴봤지만 아무도 없다.




마지막으로 뜀틀에 눈을 돌렸다.


등골이 오싹했다.


단과 단 사이, 손을 넣는 틈새 사이에 손이 나와 있었다.




나와있다고는 해도 손가락 뿐.


손가락 열개가 틈새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손가락은 아이 손가락이었다.




겁에 질린 와중에도 나는 "아, 역시 이 안에 숨어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뜀틀로 다가갔다.


그러자 손가락은 슥 뜀틀 안으로 들어간다.


어차피 들켰으니 말이라도 좀 하지...




나는 뜀틀을 들어올렸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름이 끼쳐 말도 안 나왔다.




겨우 자신을 억누르며, 뜀틀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후, 나는 빠르게 문까지 걸어가 불을 껐다.


문을 잠그려는 순간, 누군가가 뜀틀을 뛰어넘는 듯한 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쏜살같이 도망친 후, 나는 다음날 그 동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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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니는 과식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갑자기 언니의 식사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원래 꽤 잘 먹는 편이었지만, 간식을 먹는 일도 잦아지고 식사량도 매끼 2인분은 족히 먹을 정도였다.




스스로 운동은 조금 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식욕은 더해갈 뿐이었다.


이전까지는 평범한 표준체형이었던 언니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즈음 되니 누가 봐도 비만으로 변해버렸다.


나는 희미하게나마 언니가 과식증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지만, 다른 가족, 특히 어머니는 언니에게 거의 관심이 없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언니는 성격이 얌전한데다 부모님이랑 잘 맞지를 않았다.


그 탓에 학교나 친구에 관한 이야기는 잘 꺼내질 않았었다.


하지만 성적은 평균 정도였고, 운동신경도 꽤 좋은 편이었다.




친구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자주 집에 데려오거나 놀러가기도 하고, 누구에게든 싫은 표정 보이지 않고 잘 지내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여름 무렵이 되자 그것도 점점 뜸해져 갔다.


나는 걱정이 되어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괜찮아? 너무 많이 먹는 거 같아.]


[응? 뭐가? 괜찮아, 괜찮아. 나중에 운동할 거니까!]


언니는 웃으며 얼버무릴 뿐이었다.




어머니는 점점 살이 쪄가면서도 끝없이 먹어대는 언니가 보기 싫었는지 고함을 쳤다.


[너는 집안 살림을 다 들어먹을 작정이니! 더 먹어 댈거면 집에서 나가버려!]


언니는 조금 슬픈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 없이 다음날부터 평범한 정도로 식사량을 줄였다.




언니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식사량을 유지했다.


나도 과식증이 이렇게 쉽게 낫는건가 싶어 의아하면서도, 다행이라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이 쉽게 풀릴리가 없다.




그로부터 2주 가량 지난 8월 어느날, 새벽 1시 너머였다.


나는 영 잠이 오질 않아 물을 마시려고, 2층 내 방에서 내려와 1층 거실로 갔다.


거실 불을 켜려고 하는데, 안쪽 부엌에서 잘그락하고 소리가 들려왔다.



 

그 뿐 아니라 어렴풋한 빛도 보였다.


혹시 도둑이라도 들었나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몰래 부엌을 살펴봤다.


거기에 있던 건 언니였다.




언니는 반쯤 열린 냉장고 앞에 앉아서는, 일심불란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질겅질겅, 껌을 씹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불을 켜자, 언니가 뭘 먹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날고기였다.


어머니가 사 온 쇠고기를, 언니는 익히지도 않고 마구 뜯어먹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언니가 앉은 주변에는 닭고기, 채소, 햄, 날달걀, 마가린, 소스와 마요네즈 같은 조미료들이 잔뜩 흩어져 있었다.


뒤쪽 서랍도 열려, 건어물과 핫케익 믹스 같은 것들도 마구 널려 있었다.


그리고 언니가 토한 듯한 엄청난 양의 구토물이 바닥 가득 쏟아져 있었다.




나는 패닉에 빠져 언니의 어깨를 잡으며 날고기를 뺏었다.


[언니! 왜 그래! 뭘 먹는거야! 왜 그러는거야!]


하지만 언니는 이제껏 본 적도 없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듯한 눈초리로 나를 보며 대답했다.




[응? 아, 괜찮아. 아하하. 괜찮아.]


말투만은 평상시와 같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대답이었다.


어떻게 봐도 망가져 버린 것 같은 언니의 모습을 보자, 도저히 공포를 참을 수 없어 나는 울부짖었다.




도와달라거나 부모님을 부르지도 못하고 단지 울고 있자, 그걸 듣고 부모님이 뛰쳐나왔다.


[뭐니, 이게! 너 뭐하고 있는거야!]


[야, 이게 무슨 일이야!]




부모님은 제각기 설명을 구했지만, 나는 계속 울고 언니는 이전처럼 조금 슬픈 듯한 얼굴로 침묵할 뿐이었다.


그 후 다시 토하기 시작한 언니를 보고 부모님은 서둘러 언니를 병원에 데려갔다.


곧바로 위세척을 받았지만, 위장에 균이 들어갔을 우려가 있어 회복할 때까지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런 사건이 터지자 그제야 간신히 부모님도 언니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듯 했다.


퇴원 후에는 지금까지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게 거짓말 같이 느껴질 정도로 언니를 신경쓰기 시작했다.


언니는 날뛰거나 폭언을 하는 것 하나 없이, 그 후에도 이전과 변함없이 웃는 얼굴로 우리를 대했다.




지금까지 이상했던 것들에 관해서는 [나도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미안해.] 라고 인정하기도 하고, 정신적인 치료도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언니는 진학을 위해 공부에 힘쓰고, 나도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이전보다 조금 상냥해진 부모님과 함께, 아무 일 없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지난 겨울.


언니는 자살했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그 날은 일요일로, 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친구네 집에 놀러갔던 터였다.


집에 돌아왔다가 [친구네 집에 뭘 두고 왔네. 가지러 갔다 올게.] 라고 말하고 다시 나갔던 게 마지막이었다.


그 전날도, 심지어 집을 나가기 직전까지도 언니에게 뭔가 변화는 없었다.




이전보다 조금 밝아졌을 뿐,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었다.


언니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산속에서, 나무에 줄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


옆에 떨어져 있던 받침대 옆에 [미안해요.] 라고 쓴 유서를 남긴 채.




그 후 장례식도 있고, 이런저런 일로 분주했기에 언니의 방은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겨우 모든 일들이 끝나고 조금 안정을 찾을 무렵, 나는 부모님과 이야기해 언니 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서랍 안을 정리하다 뒤죽박죽 쑤셔 넣어져 있던 봉제인형과 잡동사니 속, 3권의 노트를 발견했다.




화려하지 않은 표지에는 아무 것도 써 있지 않았다.


나는 별 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오늘은 XX를 먹었다. OO도 먹었다. KK에 가서 TT도 먹었다. 물론 가장 큰 사이즈로. 아... 배 아파.]




[저것이 또 내 이야기를 무시한다. 그 쓰레기 이야기만 들어대고. 빨리 죽어.]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같은 장소에 모여드는 걸 보면 기분 나빠. 벌레만도 못한 것들. 개미만도 못한 것들. 트럭이라도 날아와 받아버리면 좋겠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거기에는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자세하게 적혀있는 한편, 우리 가족과 학교 교사, 친구들의 언행과 거기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붉은 볼펜으로 노트 가득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일기였던지 거의 매일 페이지 하나를 가득 채울만큼 글이 적혀 있었다.


가장 오래된 날짜는 언니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날이었다.




그 뿐 아니라 그 가장 오래된 노트 첫 표지에는, "6권 더 있었지만 태워버렸어." 라고 적혀 있어, 이전부터 이런 걸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니가 죽은 마지막날 일기에는 날짜와 더불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페이지 한가운데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은 모양새로, 언니가 생긋 웃으며 목을 매달고 있는 그림이.




지금은 나도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다.


물론 언니가 저런 말로를 걷게된 건 분명 내게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언니와 같은 방법으로 목숨을 끊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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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00th]친구의 비밀

괴담 번역 2015. 10. 2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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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무렵, 나는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완전히 혼자 따돌려지거나 한 것은 아니라 친구들과 종종 이야기는 나눴지만, 여자아이들이 모이면 생기기 마련인 그룹들 중,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왕따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것 정도라고 할까요.




말을 건네면 다들 받아는 주지만, 그렇다고 내가 먼저 다른 아이한테 말을 거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웃사이더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내 심정을 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던 것 뿐이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해, 종종 이야기하다가 당황할 때도 잦았습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저 "아, 그렇구나." 하는 정도 생각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오고 나니 다들 그런 이야기에만 관심을 갖고 떠들어대서, 나는 그 화제에 전혀 끼어들지 못했던 겁니다.




아마 나만 아직도 어린아이였던 거였겠죠.


그 무렵 유행해서 다들 가지고 다니기 시작하던 휴대폰도 없었기에, 나는 같은 반 커뮤니티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아이였습니다.


우리 반에는 딱 한 명, 다들 가까이 가길 꺼리는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딱히 성격이 나쁘거나 이상한 점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걔네 어머니가 문제였습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수문이 잔뜩 퍼져있었던 것입니다.


중학생이라고는 해도 그 무렵쯤 되면 다들 그런 소문에 귀를 기울이고, 악의에 찬 호기심으로 바라볼지언정 가까이 다가갈 생각은 아무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부터가 아웃사이더였던데다, 그런 소문에 워낙 둔감했기에 그런 건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그 아이와 이야기할 때도 그저 평범하게 말을 섞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점차 그녀는 나말고 이야기 할 상대가 없었던지, 쉬는시간마다 내게 다가와 말을 걸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나도 걔네 어머니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됐지만, 나는 평범하게 그녀와 친구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친구가 나 뿐이었던 것처럼, 내게도 친구라곤 그녀 뿐이었으니까요.


아마 필시 그녀도 그걸 은연 중에 알아차리고, 안심하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아이와 온갖 이야기를 했지만, 가족에 관한 이야기만은 꺼내지 않았습니다.


아마 나도, 그 아이도 의도적으로 그 화제를 피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아이와 친해진 후에도, 나는 종종 그 아이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한밤 중에 집 근처를 지나가노라면 괴성이 들려온다느니.


도둑 고양이를 잡아 집 안으로 질질 끌고 갔다느니.


신흥 종교에 푹 빠져 제정신이 아니라느니.




남편을 자살로 몰아넣었다는 둥,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소문이 난무했습니다.


개중에는 아무 근거 없는 험담도 분명 섞여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소문들보다도 더 무서운 것을, 그녀의 집에서 보고 말았던 것입니다.




서론이 꽤 길어졌지만,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그렇게 친한 친구였던 그 아이와의 인연이 끊어지게 된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그 해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날, 그 아이가 감기 때문에 학교를 쉬었습니다.


그녀가 학교를 쉬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학교에서 외톨이로 남은 쓸쓸함을 느끼며, 새삼 그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되씹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내 머릿 속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네 집에 프린트물을 가져다 주러 가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집과 그 아이네 집은 반대 방향이었기에, 원래대로라면 집이 가까운 다른 친구가 프린트물을 가져다 줄 예정이었습니다.


불운하게도 그 역할을 맡았던 남자 아이는, 흔쾌히 내게 그 역할을 양보해 주었습니다.


[너희들 사이 너무 좋은 거 아니야? 그렇게까지 말하면 뭐, 어쩔 수 없지.]




남자 아이는 헤실헤실 웃고 있었으니, 내심 꽤 안도하고 있었던 듯 합니다.


선생님에게서 그 아이네 집 위치를 전해듣고, 그 아이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프린트물을 가져다주겠다고 자청한 건 모두 호기심 때문이었으니까요.


그 아이네 집이 보고 싶다는 호기심.


설마 소문만큼 두려운 곳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집으로 향하게 되자, 내가 하는 일이 혹시 그녀를 배신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까지는 아예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녀는 자신의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나에게는 더요.




살짝 후회가 되기 시작했지만, 그 날 받았던 게 꽤 중요한 프린트물이었기에 전해주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터벅터벅 걸어, 그 아이네 집에 도착했습니다.


자그마한 단독주택이었습니다.




조금 오래되기는 했어도 거리 풍경에 녹아들어있는 평범한 집을 보자, 나는 조금 자신을 되찾았습니다.


분명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별 문제 없는 평범한 집일거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리고 천천히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2층 방 창문이 덜컥 열렸습니다.


그 아이였습니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나를 보다가, 고개를 안으로 쓱 들이넣었습니다.




곧이어, 계단을 급히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문이 자자한 어머니 대신 그 아이가 나오는 것에 안도하며, 나는 그 아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스륵... 스르륵...




미닫이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소리일까 싶었지만, 곧바로 문이 열리고 그 아이가 나왔습니다.


감기가 아직 다 낫지 않은 것인지,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




[A야, 무슨 일로 온 거야?]


[이거... 프린트물 가져다 주려고 왔어.]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딱히 이상한 기색도 없었습니다.




나는 안심하고 프린트물을 건네주었습니다.


어서 기운을 차리라던가, 이런저런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눈 후,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별 일 없이 프린트물을 전해 준 것에 마음이 놓인 나는, 편한 마음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집을 떠나려던 차에, 나는 이상한 걸 보고 말았습니다.


현관에서 바로 왼쪽 방 커튼이 열려 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아까 그 미닫이문 소리가 들렸던 방인가 싶어, 별 생각 없이 나는 곁눈질로 그 방을 쳐다봤습니다.




그게 실수였던 겁니다.


다다미가 깔린 방 가운데.


몸집이 작은 여자가, 양손으로 무언가를 위로 들어올린 채 휘청거리며 간신히 서 있었습니다.




마치 전구를 가는 것 같은 모습으로요.


손에 들고 있는 건 고양이였습니다.


아니, 혹시 개였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확실히 죽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게 뭐지?


갑자기 그간 들어온 소문들이 생각나며 두려워지기 시작해, 나는 쏜살같이 달려 도망쳤습니다.




그 때 등 뒤에서, 커튼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날, 그 아이는 학교에 나왔습니다.


나는 어제 본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 직접 물을 수도 없어 속앓이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였기에, 나는 혹시 그저 전구를 갈고 있던 어머니를 내가 잘못 본 건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쉬는시간이 되어, 그 아이가 다가왔습니다.


[오늘은 말이야, 엄마까지 감기에 걸려서 드러누워버리셨지 뭐야. A 넌 괜찮아?]




간접적인 이야기긴 했지만, 그 아이가 자기 가족에 관해 입에 담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놀라는 한편, 강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기 직전, 4교시, 그녀는 수업 도중 쓰러져 양호실로 옮겨졌습니다.




아무래도 감기가 다 낫지 않았음에도 무리해서 학교에 나왔던 것 같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사실 38도 가까이 열이 올라 실제로는 움직이면 안 될 몸상태였던 겁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선생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집으로 비틀비틀 돌아갔습니다.




집은 학교 근처이니 괜찮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 관해 생각하는 사이, 나는 기분 나쁜 생각 하나를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혹시 무리를 하면서까지 학교에 온 건, 학교를 쉬면 내가 집으로 찾아오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생각을 그런 식으로 하기 시작하니, 모든 게 그렇게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평소에는 말 한 마디 없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오늘 꺼낸걸까?


혹시 그건 내 신경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한 건 아닐까?




그만 두면 좋을텐데, 기분 나쁜 생각은 마치 증식하는 것처럼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어제 들었던 커튼 소리...


그건 혹시 2층에서 날 내려다보던 그 아이가 닫은 커튼 소리였던 건 아닐까...?




그런 의문들 속에서도, 우리 둘 사이는 한동안 그대로 유지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던, 그녀는 그녀고, 내가 있어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나도 묻지는 않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걸로 됐고, 그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12월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또 학교를 쉬었습니다.


선생님은 또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쯤 되자 나와 그 아이를 무슨 커플 비슷한 것으로 여기고 있어, 당연히 선생님도 내게 프린트물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무렵에는 조금씩 그녀도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전만큼 기피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까지 나서서 내게 부탁을 해오니, 거절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나는 싫다고 몇 번이고 머릿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난번처럼 터벅터벅 그 아이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우편함에 넣어버릴 생각이었습니다.


그 편이 그녀에게도 편할 테니까요.




그러는 사이, 그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현관문 앞에 누군가가 웅크려 앉아 있었습니다.


그 아이였습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나는 놀라 물었습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을 들고,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프린트물, A가 가져다 주러 올거라고 생각했거든...]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튼 고마워.]




뭔가 이상했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녀는 프린트물을 내 손에서 빼앗듯 잡아챈 후,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프린트물로 입을 막더니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괜찮아. 괜찮으니까...]


그리고 그 아이는 다시 웅크려 앉았습니다.




손에 든 프린트물은 토사물로 잔뜩 더러워져 있었고, 옷도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다는거야! 됐으니까 가만히 있어.]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나는 현관으로 고개를 돌려, 그 아이의 어머니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실례합니다! 안에 누구 안 계신가요!]


[A야, 부탁할게. 나는 괜찮으니까 그만 해...]




A는 눈물 고인 눈으로 부탁했지만, 나는 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우정이라고 할까, 오기 같은 것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픈 그녀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든, 우리는 친구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나는 초조해짐과 동시에, 그녀의 어머니에게 강한 적개심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딸이 이렇게 아픈데 어머니란 사람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면서요.




[잠깐 안에 들어갔다 올게.]


[안돼!]


그 아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실례합니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우선 그 아이가 토한 걸 치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닦아낼 도구를 찾기 위해, 현관 맞은편에 보이는 복도 끝, 화장실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복도 왼쪽, 지난번 내가 봤던 그 미닫이문이 달린 방에서였습니다.




역시 이 안에 있는건가?


친구를 위한 마음 때문에 두려움이 사라져 있던 상태였기에, 나는 과감히 그 미닫이문을 열어제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 아이의 어머니인 듯한 여자는 있었습니다.




지난번과 같은 포즈로, 역시나 죽은 고양이를 들어올린 채요.


하지만 그런 괴이한 모습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더욱 두려운 것이 그 방 안에 있었던 겁니다.


문을 열었는데도 그 아이의 어머니는 내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손에 들린 고양이를 따라, 내 시선은 천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 천장에는, 커다란 얼굴 하나가 붙어 있었습니다.


눈, 코, 입.




딱 그것만요.


눈썹도, 머리카락도 없었습니다.


그저 가죽으로 만든 가면이 천장에 붙어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에 나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충격 때문에 뇌가 제대로 된 판단조차 내리지 못해, 나는 소리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만든 걸까, 저걸?




눈썹도, 머리카락도 없는 얼굴은 그게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은 그저 바닥만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는 사이 그 아이의 어머니가 내게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자.] 라고 말하며, 내게 고양이의 시체를 건넸습니다...


나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와중에 미친 듯 달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바깥에 주저앉아 있던 그 아이는 내 얼굴을 보고 모든 것을 알아차린 듯 했습니다.


[A야, 아니야! 가지마! 저건 우리 엄마가 만든 거야! 우리 엄마가 이상한거야! 엄마가 이상한 것 뿐이라고!]


그녀의 절규를 뒤로 한 채, 나는 도망쳤습니다.




감기 때문에 아픈 그녀를 버려두고요.


하지만 이미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봐 버렸던 겁니다.




그게 만든 게 아니라는 증거를요.


그 방에서 도망치기 직전에, 천장에 달린 얼굴은 눈을 깜빡거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그녀는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나는 그저 그 날 봤던 광경이 너무나 무섭고 무서워서, 잊기위해 노력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그녀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 사건 이후 그녀와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져, 이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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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나는 미국 어느 대도시의 다운타운에 살고 있었다.


나는 올빼미족이었지만, 룸메이트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내가 일어날 즈음이면 그 녀석은 잠자리에 들었기에, 한밤 중에는 언제나 혼자 지루한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때울 겸, 기나긴 밤을 밖에 나가 산책하며 보냈다.


이런저런 사색을 하며 밤거리를 걷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4년 가량, 한밤 중 혼자 걸어다니는 걸 습관으로 삼고 있었다.




무섭다는 생각은 한 적 없었다.


룸메이트한테 [이 동네는 마약밀매 하는 놈들도 예의바르다니까.] 라고 농담을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어느밤, 단 몇분 사이에 그런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 날은 수요일로, 시간은 새벽 1시와 2시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아파트에서 멀리 떨어진 공원 근처를 걷고 있었다.


경찰차의 순찰 경로이기도 해서 별 걱정도 없었다.




특히나 조용한 밤이었다.


차도 별로 없고, 주변에 걷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원 안도 밤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슬슬 집에 돌아갈까 생각하며 걷고 있던 도중, 나는 처음으로 그 남자를 발견했다.


내가 걷는 길 저 멀리, 남자 그림자가 보였다.


남자는 춤을 추고 있었다.




기묘한 춤이었다.


왈츠를 닮은 느낌이었지만, 하나의 움직임을 끝낼 때마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춤추며 걷고 있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그는 내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술이라도 진탕 마셨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가능한 한 차도 가까이 붙어서 그 남자가 지나갈만한 공간을 확보했다.




그가 가까워져 올수록, 우아한 움직임이 확실히 눈에 들어온다.


몹시 키도 크고, 팔다리도 쭉쭉 뻗어 있는 사람이었다.


오래 된 느낌의 수트를 입고 있었다.




그는 춤추며 점점 가까이 왔다.


얼굴이 분명히 보일 정도의 거리까지.


그의 눈은 크고 흉포하게 열려 있었고, 마치 만화 캐릭터처럼 웃는 채였다.




그 눈과 미소를 본 나는, 그 녀석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반대편으로 건너갈 마음을 먹었다.


나는 도로를 건너려, 순간 그 남자에게서 눈을 뗐다.


그리고 열심히 걸어가 반대편에 가까스로 도착한 후, 뒤를 돌아보고 멈춰섰다.




그는 반대편 길 한가운데에서 춤을 멈추고, 미동도 않은채 한발로 서 있었다.


그는 나와 평행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얼굴은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눈은 변함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입에는 여전히 기묘한 미소를 띄운채.


나는 완전히 겁에 질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보고 있는 동안에는 그 녀석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나와 남자 사이 거리가 반 블록 정도 떨어지자, 나는 앞에 장애물 같은 게 없는지 확인하려 잠깐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내 앞에는 차도, 장애물도 전혀 없었다.




다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주 잠깐, 나는 안도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곧 사라졌다.


남자는 내 바로 옆에 와 있었으니까.


반쯤 몸을 구부린채,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어두운 덕에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남자는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내가 남자에게서 눈을 뗐던 건 고작해야 10초 정도였다.


그 사이에 그는 엄청난 속도로, 소리도 없이 내 옆까지 다가온 것이다...




나는 충격을 받아 한동안 가만히 서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춤을 추는게 아니라, 발가락을 세운 자세로 몹시 과장되게 걸어왔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 살금살금 걷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다만 만화와 다른 게 있다면, 남자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도망을 치던, 주머니 속의 방범 스프레이를 꺼내던, 휴대폰으로 신고라도 하던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웃는 얼굴의 남자가 소리없이 다가오는 사이, 나는 완전히 얼어붙어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남자는 나와 차 한 대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섰다.


그는 아직 웃고 있었다.




눈은 변함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어떻게든 소리를 지르려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그대로 말할 요량이었다.




화를 내며 "무슨 짓이야!" 라고 외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입에서 나온 건 [무슨.......] 하는 울음소리 같은 것 뿐이었다.


공포의 냄새라는 걸 맡을 수 있는 걸까?




과연 어떨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공포라는 건, 들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그 때 느꼈다.


내가 낸 소리는 공포라는 감정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걸 스스로 들으면서, 나는 더욱 겁에 질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내 소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그저 우뚝 서 있었다.


웃는 얼굴 그대로.




영원한 것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고, 그는 휙 몸을 돌렸다.


무척 천천히, 또 춤추며 걸어간다.


나에게서 멀어져 간다...




이제 두 번 다시 그에게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떠나가는 그를 그저 바라봤다.


남자의 그림자가 점점 작아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바라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를 눈치챘다.




남자의 그림자가 작아지질 않는다.


그리고 춤도 멈췄다.


공포와 혼란 속에서, 나는 남자의 그림자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내게 돌아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춤을 추는 것도, 발가락을 세워 걷는 것도 아니었다.


달려오고 있었다.




나도 남자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더 밝고, 차도 드문드문 보이는 도로로 나왔다.


도망치며 뒤를 돌아보았지만,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없었다.




그리고 집까지 이어진 나머지 길을, 언제 그 웃는 얼굴이 튀어나올까 벌벌 떨며 걸었다.


항상 어깨 너머, 뒤를 바라보며.


결국 그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 날 밤 이후로도 6개월 가량 더 그 도시에서 살았지만, 밤에 산책을 나가는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그 얼굴에는 무언가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는 취한 것도, 약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완전히 미친 것처럼 보였을 뿐.


그리고 그건, 차마 볼 수 없는, 너무나도 두려운 것이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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