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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제갈공명을 찾아서 - 용산구 보광사

잡동사니 2017. 1. 1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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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용산구로 이사를 왔습니다.


살다보니 느끼게 되는게, 이상하게 이 동네에는 점집이 많더라고요.


집 근방 5km 안에 정말 점집만 30개는 넘게 있는 거 같습니다.


가끔 한강에 나가서 걷다보면, 한남동 쪽에 있는 신목 앞에서 굿판이 벌어지고 있을 때도 있고요.




알아보니 한강 근처기 때문에 예로부터 교역이 많아서 온갖 신을 모시는 믿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용산구청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문화재로 등록된 무속 관련 시설과 거기서 모시는 신만 해도 한가득이더라고요.


조선 태조 이성계, 임경업, 김유신, 남이, 단군왕검, 그리고 수많은 동네 부군님들...


지금은 동작구로 옮겼지만, 관우를 모시던 남관왕묘도 원래 용산에 있었고요.





그 많고 많은 신당 중, 집 근처 보광동에 흥미로운 곳이 있더라고요.


바로 촉의 승상이었던 제갈공명을 모시는 보광사였습니다.


사실 관우 신앙이야 워낙에 유명할 뿐 아니라, 당장 동관왕묘가 떡하니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니 누구나 알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제갈량을 신으로 모시는 곳은 그리 많이 보질 못했습니다.


저도 여기말고는 남산 자락에 있는 목멱산 와룡묘 밖에 못 본 거 같아요.


사당이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늘에야 발걸음을 옮겨봤습니다.





전화로 먼저 연락을 드리고 찾아갔는데, 흔쾌히 와도 된다고 말씀해주시고 반갑게 맞아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주한 브루나이 대사관저 맞은편으로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니 금세 나오더라고요.


큰 규모는 아니고, 한칸짜리 사당이 있는 게 전부입니다.


무후묘라는 간판이 있어 바로 알아볼 수 있더라고요.




중앙에는 제갈공명 존영이 모셔져 있고, 양옆에도 둘씩 다른 신들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좌측 신들은 동네 부군인 거 같은데, 우측 신은 장수 생김새에 무기를 들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삼국지에 관련된 이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뒤에서 빛이 비쳐서 제대로 된 제갈공명 사진을 찍지 못한게 못내 아쉽습니다.


향 한개피 피워 올리고, 올 한해 건강하고 무탈하게 보낼 수 있기를, 그리고 지력 100 중 얼마만이라도 좀 나누어주십사 간절히 빌고 왔습니다 ㅠ.ㅠ





개인적으로 삼국지도 좋아하고, 무속 신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보니 찾아가보게 됐는데, 상당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역시 보광동에 있는 김유신 사당이나 이성계를 모신다는 서빙고 부군당에 한번 찾아볼까 싶네요.


혹시나 제갈공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존경하시는 분이라면 남산 와룡묘와 더불어 한번쯤은 찾아가 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승상님의 기운을 받았으니 이제 저도 조금은 똑똑해졌으면 좋겠네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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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산마루에 온갖 잡신들을 모신 사당이 있었는데, 그 효험이 꽤 영험했다.

산 주변 마을을 다스리는 이들이 이 곳을 지날 때면 반드시 가마에서 내려 절을 한 뒤, 돈을 모아 신들에게 굿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나중에 이상한 재앙을 맞곤 했다.



그러던 와중 한 관찰사가 새재 너머의 마을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는 성품이 강하고 과단성이 있어서, 무슨 화를 입을까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그가 새재를 넘다 사당 앞에 도착하니, 아전들이 몰려들어 예전 사또들의 일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관찰사는 그런 요사스러운 짓은 말도 안 된다고 물리친 뒤 말을 타고 한달음에 그 곳을 지나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갑자기 바람이 세게 휘몰아치더니, 난데없이 비가 관찰사가 탄 가마에만 집중적으로 내렸다.

그 모습을 보자 주변 사람들은 귀신의 소행이라며 몹시 두려워했다.



관찰사는 마부에게 명령해 사당에 불을 지르라고 시키고, 명령을 거르스는 자들을 죽였다.

아랫 사람들이 마지못해 그 명령을 따라 사당을 태우니, 곧 사당은 싸늘한 재가 되었다.

관찰사는 그대로 새재를 내려와 문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관찰사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새재의 신이오. 새재 사당에서 제삿밥을 먹은지 100년이 넘었소. 그런데 당신은 예도 올리지 않은데다 내 집까지 태워버렸으니, 나는 당신의 맏아들을 죽여버릴 것이오.]

관찰사가 노인을 꾸짖으며 말했다.



[요망한 귀신이 사당에 눌러 앉아 사람을 괴롭히니, 내가 왕명을 받들어 요사한 것을 제거했다. 이것은 내 직분인데 네가 감히 나를 협박해서 두려워하게 하려 하느냐!]

귀신은 화를 내며 가 버렸다.

그러자 주변에서 관찰사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큰 아드님께서 여행의 피곤함 때문에 병이 드셨는데, 갑자기 위독한 지경에 이르셨습니다!]

관찰사가 가서 아들을 보니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관찰사는 곡을 하고 아들의 염을 한 뒤, 곧 관청에 들어섰다.



그 날 밤 귀신이 또 관찰사의 꿈에 나타나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내 사당을 불태운 것을 회개하고 새로 사당을 지어주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당신의 둘째 아들이 죽을 것이오.]

관찰사는 여전히 의연한 모습을 지키며 지난 번처럼 귀신을 꾸짖어 물리쳤다.



아침이 되자 관찰사가 눈을 뜨기도 전에 집안 사람이 와서 둘째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고 고했다.

관찰사는 매우 슬퍼하며 아들의 장례를 치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찰사의 꿈에 귀신이 또 나타나 말했다.



[첫째를 죽이고 또 둘째를 죽였으니 당신의 자식은 점점 줄어갈 것이오. 이번에는 셋째 아들이 죽을 것이오. 하지만 당신이 불쌍해서 내가 기회를 주려하니, 빨리 내 사당을 지어주면 셋째 아들의 목숨은 살려주겠소.]

하지만 관찰사는 이 말을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귀신은 점점 화를 내며 온갖 협박을 하고, 끝내 좋은 말로 달래기까지 했다.



관찰사는 화가 나서 칼을 빼어들고 귀신을 베려고 했다.

그러자 귀신은 뒤로 물러나더니 뜰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말했다.

[저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저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오직 미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어르신의 두 아드님은 수명이 다하여 돌아가실 예정이었기에 제가 그것을 알고 어르신을 협박한 것입니다. 하지만 셋째 아드님은 그 지위가 높이 오르고 오랫동안 건강하실테니 제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어르신께 온갖 공갈 협박을 한 것이었지만, 어르신께서는 끝내 올바름을 지키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르신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관찰사가 딱히 여기며 말했다.

[네가 오랫동안 황폐한 사당에 살면서 지냈는데, 내가 어찌 네 집을 마음대로 부수고 싶었겠느냐? 네가 너에게 화가 났던 것은 요망한 술수로 사람들을 희롱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네가 그것을 자백하니 불쌍히 여길 수 밖에 없구나. 내가 새로 너의 집을 지어주마. 하지만 만약 네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다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괴롭힌다면 당장 부숴버릴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귀신은 감동하여 흐느끼며 절하고 돌아갔다.



관찰사는 다시 사당을 세우고 그가 꿈에서 본 귀신의 모습을 흙으로 빚어 세워 두었다.

그 이후에 문경새재를 넘어 다니는 사람들은 귀신에 대한 근심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관찰사의 셋째 아들은 오랫동안 살면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 갔으니, 귀신의 말이 과연 맞았다.



Illust by 엥비(http://blog.naver.com/junknb)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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