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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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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아버지가 자살하셨다.

이유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도 모르던 것이었다.

엄청난 금액의 빚.



하지만 우리 집은 빚을 지고 살만큼 가난하지 않다.

그 빚은 왜, 어째서, 누구를 위해서 빌린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호인이었던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해 고액의 빚을 떠맡았다는 것 뿐.



그 사람에게 위협이라도 당한 것일까?

어쩔 도리가 없다는 생각에 자살을 택하신 것일까?

보험금으로 빌린 돈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셨을까...



나로써는 결코 알 수 없는 일 뿐이었다.

유서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묵묵하게 말이 없으신 분이었다.



아버지는 모든 진실을 껴안고 돌아가신 것이다...

어머니는 6년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내게 남은 가족이라곤 누나와 친조부모님 뿐이다.



조부모님은 쇼크를 받으신 탓인지 그 전까지는 멀쩡하셨는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셨다.

누나는 계속 울기만 한다.

나 역시 아버지의 사체를 발견했을 때부터 그저 우두커니 정신을 놓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 어째서에요...]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것을 안 후 가족이나 친척 앞에서도 억지로 밝게 행동해왔다.

하지만 그런 나도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는 저렇게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화장하기 한참 전부터 아버지 영정 곁에는 꽃이나 공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 많은 숫자로 보아 아버지가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사랑 받고 있었는지가 전해진다.

가족이나 친척은 물론, 친구나 직장 동료, 근처의 사람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생각을 담아 아버지에게 남긴 물건들이다.

그러나, 다음날 영정 곁의 물건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우선, 모든 꽃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꽃 자체는 시들지 않았지만, 줄기 방향이 일정하게 구부러지고 모두 고개를 숙여버린 것이다.

그 다음날에는 꽃 부분을 가위로 잘라낸 것처럼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있고, 꽃잎도 여기저기 날아가 있었다.

바쳐 놓은 과일도 어느새 모두 물러있었다.



양초는 잠시 눈을 돌리면 금새 꺼져 버리고, 향은 불을 붙이자마자 꺼져버린다.

아버지의 영정도 제대로 세워놨건만 금새 쓰러져 버린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사죄하고 싶으신걸까?



그렇지 않으면 원한이 남아서 떠나지 못하시는걸까?

진실은 아버지만이 알고 계실것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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