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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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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 알고 있겠지만, 크툴루 신화라는 게 있다.


H.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여러 작품들을 후대에 뭉퉁그려 부르는 이름이다.


거기에 관해 기묘한 일을 겪어 이야기 해 보려 한다.




2년 전 즈음, 세컨드 라이프의 일본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었었다.


나도 새로운 것에 홀려 한창 빠져 있었는데, 거기서 [TheFacelessGod] 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녀석이 있었다.


보자마자 아, 이 녀석도 꽤 괴짜구나 싶어 말을 걸었다.




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만, The Faceless God, 얼굴 없는 신이란 니알라토텝이라는 가공의 신을 가르킨다.


그 외에도 기어오는 어둠이라던가 하는 수많은 별명을 지닌 존재다.


크툴루와 그레이트 올드 원이라 불리는 공포를 부르는 신들은 전부 수면을 취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이 니알라토텝만은 건재하여 접촉하는 인간에게 광기와 혼돈을 가져와 파멸시킨다는 것이다.




[뭐하시는 겁니까? 이런 곳에서. 트라페조헤드론 같은 데 간 거 아니었슴까?]


[그렇지. 그 덕에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서 말이지.]


[애초에 왜 이런 곳에?]




[100년 정도 전까지는 꽤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최근에는 지구에 안 왔었네. 오랜만에 왔더니 이런 꼴이야.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그는 이런 식으로 완전히 롤플레잉에 빠져 있는 듯했다.


재미있어보여 반쯤 놀리는 심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원작에 꽤 빠삭한듯, 왠만한 설정은 다 꿰고 있어서 금새 친해지게 되었다.




보통 그렇게 다른 누군가의 시늉을 하는 녀석이라면 대개 곧 설정 구멍을 보이고 자폭하기 마련이지만, 그 녀석은 이상하게도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그 뿐 아니라 괴상하게도 내가 로그인하면 맨날 들어와있고, 언제나 내가 먼저 로그아웃했다.


그 당시에는 [이 새끼는 집에만 쳐박혀 사나...] 싶었을 뿐이었지만.




이러저러해서 몇 달 정도 지나자, 그는 [여기서 나가고 싶다.] 는 말을 자주 꺼내게 되었다.


나는 슬슬 그가 세컨드 라이프에 질려가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마침 나도 세컨드 라이프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럼 슬슬 때려칠까. 또 어디선가 만나면 그 땐 잘 부탁한다구.] 라고 메세지를 보낸 후, 막 탈퇴하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그가 말을 걸었다.


[헤어지는 김에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가르쳐 주지 않겠나?]




처음으로 니알라토텝 같지 않은 말이었다.


이전에 대화를 나누던 도중, 내가 프로그래머라는 걸 알려줬었던 걸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기분 좋게 가르쳐 주고 세컨드 라이프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바로 3주 전, 전혀 연락이 없던 그에게서 메일이 왔다.


제목은 성과 발표.


내용은 [고맙다. 그대들의 덕분이다.] 라는 한 줄 뿐이었다.




그 메일에는 첨부 파일로 JAVA 어플리케이션이 있었지만, 실로 괴상했다.


바이러스 검사를 해봤지만 멀쩡한 파일이다.


설마 나한테 프로그래밍을 배울 정도의 녀석이, 아직 백신 DB에도 오르지 않은 신종 바이러스를 보낼리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나는 그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브라우저에 뜬 것은 [Hello World] 라는 한 줄 뿐.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나는 당시 같이 세컨드 라이프에서 채팅에 참여하곤 하던 친구 두 명에게 메일을 받았는지 물었다.


그러자 다들 같은 메일을 받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거참, 2년이나 공부를 했는데 고작 만든 게 "Hello World" 한 줄이야?] 라며 다들 비웃었다.


하지만 메일이 오고 나서 한 주가 지난 지지난주, 친구 한 명이 [그 녀석이 보낸 "Hello World"가 무슨 뜻인지 알겠어.] 라는 메일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게다가 지난 주에는 또 다른 친구가 [화염 같이 타오르는 3개의 눈이...] 라는 메일을 보낸 후 연락이 끊겼다.




두 명 모두 면식 없는 온라인 친구이기에 그의 메일에 편승해 나를 놀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오늘로 꼭, 두 명의 친구가 연락이 끊긴지 1주일째다.


지금 생각이 닿은 건데, [Hello World] 라니, 꽤 무서운 말인데...?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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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4th]404호

괴담 번역 2010. 8. 2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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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를 빌리고 싶습니다만...]

 

그 우스꽝스러운 녀석이 말했다.

 

기묘한 것을 요구하는 녀석은 자주 있지만 이 녀석은 그 중에서도 요구도 외견도 특별히 더 이상했다.

 

얼굴은 거무스름하고, 등은 구부러져 있다.

 

목소리는 무리해서 짜내는 것 같은 불쾌한 목소리였다.

 

게다가 이 더운 날씨에도 온 몸을 감싸는 시커먼 코트를 입고 있다.

 

[아, 그러니까 몇 번이나 말씀 드렸잖습니까. 이 건물에는 404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길하다고 건물 주인이 빼 버렸어요. 여길 보세요.]라고 말하며 나는 건물의 조감도를 보여줬다.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벌써 몇번째인지 모른다.

 

[알고 있습니다... 404호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빌리겠다는 겁니다.]

 

이 녀석은 바보인건가?

 

아니면 어딘가의 야쿠자가 분란을 일으키려고 일부러 보낸 것일까?

 

장난이 아니다.

 

이 쪽은 열심히 일해왔을 뿐인데.

 

[몇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없는 방이니까 빌려드릴 수 없어요.]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돈은 지불하겠습니다. 그 쪽에서는 404호를 나에게 빌려준다는 서류만 만들어서 나와 계약해주면 됩니다. 방은 없어도 괜찮으니까요.]

 

이 녀석은 미치광이다.

 

틀림 없다.

 

나는 울화통이 터져서 언성을 높여버렸다.

 

[이봐, 당신 적당히 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거야. 장난이라면 어서 돌아가!]

 

시끄러운 것을 알아차린 소장이 사무실에서 느릿느릿 걸어 나온다.

 

공연히 화를 내고 있던 나는 소장에게 지금까지의 경위를 지껄이듯 이야기했다.

 

나에게서 모든 경위를 들은 소장은 [손님,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라며 지금까지 내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아 이상한 손님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 미안하지만 자네는 자리를 비켜주지 않겠나?]

 

자, 소장이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자.

 

말도 안 되는 것이 틀림 없다.

 

없는 방을 빌린다니,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나는 사무실의 안에 틀어박혀 소장이 언제까지 참을지 보자고 생각하며 귀를 기울였다.

 

[아뇨, 저희 쪽이 실례했습니다...]라고 소장이 사과하는 것이 들렸지만 드디어 소곤소곤하는 목소리만 들리게 되었다.

 

언제쯤 끝날지 언제쯤 끝날지 30분도 넘게 기다리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을 때.

 

[이봐, 어서 일어나.]

 

소장이 나를 깨웠다.

 

[이 손님에게 404호실을 빌려 드리게.]

 

바보인가, 소장은?

 

이 여름의 더위 때문에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것인가?

 

[그렇지만 소장,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평소처럼 하게. 서류를 만들어서 수속을 밟아. 서로 404호실에 대해서는 의견이 통했어. 아무런 문제도 없어!]

 

충격이었다.

 

[건물주에게는 어떻게 말할 겁니까?]

 

[아까 물어봤다. 집세만 지불한다면 자잘한 것은 상관않겠다고 하더라.]

 

엉망진창이다.

 

[관청에는 뭐라고 말할 겁니까?]

 

[없는 방이니까 보고하지 않으면 돼. 입만 잘 단속하면 된다.]

 

당신이 그러고도 소장이냐?

 

[문제는 모두 해결된 것 같군요... 그럼 서류를 만들어 주십시오. 돈은 여기 있습니다.]

 

검은 코트의 남자가 음침한 목소리로 말하며 눈 앞의 가방을 열고 지폐 뭉치를 꺼냈다.

 

[예. 즉시 만들어 드리겠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봐, 자네, 빨리 하게!]

 

기분 나쁜 소장 녀석 때문에 마지못해 나는 이 바보스러운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서류를 만드러 놈에게 사인을 요구한다.

 

놈은 손까지 시커멓다.

 

필적이 이상해서 읽기 어렵지만 이름은 Nyaru hotep이라던가 하는 것 같다.

 

수속이 끝났다.

 

[그럼 끝난 것 같군요. 이제부터 이사를 준비해야 하니까 이것으로 실례하겠습니다.]

 

그 놈은 사무소에서 나갔다.

 

[소장님, 이상해요. 아무리 봐도 범죄와 연관된 것 같습니다. 말려들면 큰일이에요.]

 

[이상해도 이상한대로 괜찮아. 돈을 지불하니까 괜찮잖아. 없는 방을 빌리는 일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이 많아.]

 

[그렇지만 이사라고 말했잖아요. 남의 방에 무리해서 얹혀 살거나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면 바로 내쫓아야지. 빌려준 것은 어디까지나 404호니까. 404호라면 좋지만, 그 이외에는 안 돼.]

 

 

벨을 누르니 시꺼먼 놈이 방 안에서 나타났다.

 

[아아, 지난 번 당신입니까... 무슨 용건이십니까?]

 

[아니, 당신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거지? 빌리는 건 404호라는 계약이었을텐데.]

 

[보시면 알겠지만 404호입니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라도 있나요?]

 

시치미 떼지 마, 이 녀석.

 

[장난 치지 마. 이상한 일을 했다간 경찰이 찾아와서 귀찮아져. 빨리 짐을 챙겨서 나가.]

 

[유감스럽지만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일 따위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잘 확인해 보세요.]

 

나는 4층의 방의 개수를 셌다.

 

조감도에서는 401호에서 405호까지의 방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404호는 존재하지 않으니 방은 4개인 셈이다.

 

방이 4개니까 문도 4개.

 

단순한 계산이다.

 

그러나 문은 어째서인지 5개 있었다.

 

[그럼 이제 된 것 같으니 저는 들어가 보지요...]

 

놈은 [쾅]하고 문을 닫아버렸지만 나는 절대로 납득할 수 없었다.

 

짜증이 나서 다른 모든 방에 알아보기로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퇴거자가 나오게 되어 그 건물에 방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다.

 

일주일 전을 떠올리며 4층에도 들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로 4층에 가니... 거기에는 404호가 있었다.

 

아마 전에 그 녀석이 남의 방에 억지로 정착하고 방 번호를 다르게 쓰고 있는 것일 것이다.

 

소장님, 역시 성가시게 되었잖아요.

 

 

401호 거주자

 

[어라, 404호실은 없던 건가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있잖아요. 아마 처음부터 있던 거 아닐까요?]

 

402호 거주자

 

[404호입니까? 확실히 처음에는 없었는데요. 어느 사이에 사람이 사는 것 같네요. 조금 이상하지만 딱히 이 쪽에 폐가 되는 것도 아니고...]

 

403호 거주자

 

[옆 방? 이사 왔을 때 인사하러 왔는데 그닥 이상한 건 모르겠던데?]

 

405호 거주자

 

[옆 방 사람이요? 흑인인데 멋있어요. 마치 배우 같던데.]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층에 가 보면 문은 모두 4개다.

 

4층만 5개 있다.

 

404호만 어딘가에 툭 튀어 나와 있기라도 한건가?

 

관리인에게도 물어보자.

 

 

관리인

 

[404호실에 이사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실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 사람과 4층에 가보니 정말 있는 거 아닙니까. 깜짝 놀랐지만 세상에는 별 일이 다 있잖아요. 서류도 빈틈이 없고 건물주도 괜찮다고 하니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무엇인가 변한 것은 없습니까?]

 

[손님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묘하게 밋밋한 얼굴의 사람이 많았어요. 전에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을 때 상담소를 하고 있다는 것 같았어요. 여러 사람의 고민을 들어 주고 있다고 하더군요.]

 

 

옆 방 놈들도 관리인도 모두 이상하다고는 생각지 않는 것 같다.

 

도시 사람들이 타인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은 정말인 것 같다.

 

한 번 더 가보기로 하고 놈의 방 벨을 다시 누른다.

 

[또 당신입니까... 적당히 해 주셨으면 싶은데요.]

 

[조금 방 안을 보여주지 않겠어?]

 

[거절합니다... 나는 돈을 내고 이 방을 빌렸습니다. 당신이 멋대로 들어올 권리는 없습니다...]

 

그 말대로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무리해서 안을 보려고 놈을 밀어젖히고 방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 때 [쾅]하고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부딪혔다.

 

뭐지 이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마치 방탄 유리라도 붙어 있는 것 같다.

 

[방에 용건도 없이 들어가는 것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나는 관리 회사의 직원이야.]

 

[그렇다고 해도 무단으로 출입할 권리는 없습니다.]

 

젠장.

 

그 말대로다.

 

놈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이 내렸다.

 

[오. 여기다, 여기야. 저기, 404호죠? 아, 안녕하십니까. 주문하신 물건을 가지고 왔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방입니다. 운반해 주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택배 기사는 내가 튕겨나간 공간을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뭐야, 어째서 저 놈은 지나가는 거야?]

 

[저 사람은 짐을 운반하는 게 일이니까요. 방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지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나도 들어갈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봐도 방법이 없다.

 

일단은 물러서기로 하지만 절대로 저 방 안을 보고 말테다.

 

어떤 마술인지는 몰라도 트릭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계략을 파헤치자.

 

 

그 이후로 일이 영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떻게든 놈을 당황시키려고 여러가지 수를 생각해봤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너, 요즘 붕 떠서 이상한 거 같은데.]

 

소장이 말을 걸었다.

 

[아, 사실은]하고 지금까지의 일을 말해 주었다.

 

[흠, 너 그런 짓은 안 된다. 손님의 프라이버시에 깊이 하고드는 짓은 좋지 않아.]

 

[그렇지만 놈은 살고 있어요. 404호에.]

 

[확실히 이상하지. 그렇지만 집세는 확실히 지불하고 있다. 관리 회사로써 그 이상 무엇을 기대하는 거야?]

 

[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생각하지 않는다.]

 

[왜지요?]

 

[돈은 지불하고 있으니까.]

 

말이 영 통하지 않는다.

 

[손님에게 폐를 끼치거나 하는 일이 있다면 너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있지는 않을거야. 자, 시시한 것에 신경쓰지 말고 똑바로 일해.]

 

시시해?

시시한 것인가?

 

소장도 관리인도 다른 거주자들도 이상하다.

 

 

그리고 결국 나의 의문도 풀릴 날이 왔다.

 

한 달이 지나고.

 

[아, 이봐. 전의 그 404호실이 퇴거한다고 한다. 가서 확인 수속하고 와.]

 

됐다.

 

드디어 볼 기회가 생겼다.

 

이것은 트러블이 생기지 않을 훌륭한 기회다.

 

반드시 트릭을 파헤칠테다.

 

[아무쪼록 실례되는 일은 하지마.]

 

404호의 벨을 누른다.

 

[아, 나갑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발을 내디딘다.

 

좋았어!

 

이번에는 튕겨나가지 않고 그대로 방에 들어왔다.

 

이렇게 쉽게 들어오다니, 조금 맥이 빠진다.

 

[빨리 확인을 마쳐주시지 않겠습니까?]

 

흑인 녀석이 뭐라고 말해대지만 알 바 아니잖아?

 

나는 드디어 들어온 방 안을 차분히 둘러봤다.

 

무엇인가 이상한 것은 없을지, 어딘가 묘한 곳은 없는지 필사적으로 찾았다.

 

하지만 약 1시간 동안 찾았지만 어디에도 이상한 곳은 없다.

 

지극히 보통인 방이다.

 

나는 완전히 난감해졌다.

 

[졌다. 항복이야.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정말로 알고 싶어. 가르쳐주지 않겠나?]

 

[무슨 이야기지요...]

 

[이 방 말이야. 어떻게 방이 새롭게 생겨난거지?]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계약이기 때문에 방이 생겨난 거지요. 계약 종료와 동시에 방은 사라집니다... 이미 확인은 끝났겠지요. 나는 이제 돌아갈 겁니다. 당신은 어쩔 겁니까?]

 

시치미 떼지마, 이 자식.

 

뭐가 계약이라는 거야.

 

비밀을 말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겠지.

 

분명 무슨 비밀도구라도 장착한 것일 것이다.

 

절대로 찾아낸다.

 

[아, 돌아가라고. 확인은 끝났어. 깨끗하네.]

 

[같이 돌아가시지 않겠습니까...]

 

이런 기분 나쁜 놈과 함께 걷는 것 따위 싫다.

 

[쿠쿠... 그렇다면, 먼저...]

 

그리고 놈은 방을 나갔다.

 

그로부터 놈이 돌아간 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방 안을 살펴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밖도 어둑어둑해져서 아무래도 벌써 저녁인 것 같다.

 

[일단 돌아갈까.]

 

나는 문을 열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잠금장치를 아무리 돌려도 안 된다.

 

나쁜 예감이 든다.

 

창문을 열려고 했지만 이것도 열리지 않는다.

 

베란다로도 나갈 수 없다.

 

문득 시계를 본다.

 

오후 3시.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밖은 어두워져 간다.

 

밖에서 걷는 소리가 난다.

 

4층의 다른 거주자가 복도를 걷고 있는 것 같다.

 

문을 두들겨 [저기요! 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외쳤다.

 

그 사람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 지나쳐간다.

 

도대체 왜 밖이 어둑어둑한 것일까.

 

지금은 아직 3시인데, 왜 어두워진 것일까.

 

밖을 보면 그 동안 보아온 광경과는 전혀 다르다.

 

여태까지는 그저 보통의 평범한 거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공간만이 보일 뿐이다.

 

그로부터 벌써 반 년이 지났다.

 

놈의 말이 생각난다.

 

[계약 종료와 동시에 방은 사라진다...]

 

어쩌면 방은 사라지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계약 종료라는 것은 내가 방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 방을 나가는 것이다.

 

즉 내가 이 안에 있는 한 이 방은 존재할 수 있다...

 

방은 나를 죽게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냉장고 안에는 언제나 먹을 것이 가득하다.

 

어째서인지 물도 나오고 전기도 통한다.

 

 

여기에서 나가고 싶다.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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