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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야담



퇴계 이황 선생의 외할아버지는 경상도 상주에 살았다.


집이 부유하고 그의 사람됨이 후덕하여 조화를 이루었으니, 고을에서는 그를 영남의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몹시 불고 눈이 많이 내린 엄동설한이었다.




퇴계 선생의 외할아버지 댁 문 밖에서 한 아병을 앓는 여자가 남루한 옷을 입고 하룻밤 재워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녀의 모습과 행동거지가 어찌나 흉악하고 추하던지, 사람들은 모두 코를 막고 얼굴을 돌렸다.


온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내저어 그녀를 몰아 쫓아내고, 문 밖에서 한 발자국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퇴계 선생의 외할아버지가 말하였다.


[그 여자를 쫓아내지 말거라. 저 여자가 비록 안 좋은 병을 앓고 있다지만, 날이 저문데다 이런 엄동설한에 어찌 사람을 내쫓는단말이냐? 만약 우리 집에서 이 사람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느 집에서 받아주겠느냐.]


밤이 깊어지자 그 여자는 추워 죽겠다고 울부짖었다.




노인은 차마 그 모습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그녀를 자신의 방 안으로 들여 윗목에서 자게 하였다.


그 여자는 노인이 잠든 틈을 타 조금씩 아랫목으로 내려오더니, 발을 노인의 이불 속에 넣기도 하였다.


그 때마다 노인은 잠에서 깨어나 양손으로 조심스레 그 여자의 발을 들어 이불 밖으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서너차례 이어졌다.




날이 밝자 그 여자는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대로 가버렸다 며칠 뒤 다시 왔다.


하지만 노인은 조금도 안 좋은 기색은 내비치지 않고 여전히 여자를 자신의 방에서 재웠으니, 온 집안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 몹시 걱정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자가 다시 찾아왔는데, 갑자기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전에 문둥병 걸리고 남루한 차름새는 온데간데 없었다.




노인 역시 놀라서 물었더니 여자가 대답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천상의 선녀입니다. 잠시 선생님 댁에 들러 선생님의 마음가짐을 시험해 보았을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노인이 놀라서 선녀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니 여자가 말했다.




[저번에 며칠 밤을 이불 속에서 손과 발이 마주쳤는데 어찌하여 제 얼굴도 제대로 못 보십니까? 저는 이미 선생님과 전생에 인연이 있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노인과 선녀는 함께 동침하였다.


이렇게 열흘 정도를 지내자 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고, 혹자는 여자가 도깨비가 아니냐는 말을 했으나 노인은 동요되지 않고 한결 같이 성심껏 대하였다.




그러다 하루는 여자가 말했다.


[오늘 나는 선생님과 헤어져야만 합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인간 세계에 귀양 온 기한이 다 차기라도 했소? 아니면 나의 정성과 예의가 처음만 못해서요?]


여자가 말했다.


[모두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사정을 말씀 드릴 수는 없으니 한 가지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반드시 이를 지켜주셔야만 합니다.]




다짐을 받은 뒤 여자가 말했다.


[안뜰에 산을 등지고 집을 한 칸 지어 정결하게 도배한 뒤, 굳게 자물쇠를 채워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선생님과 같은 성씨의 임산부가 아이를 낳으려 할 때 그 자물쇠를 열고 산실로 사용하게 하십시오.]


여자는 말을 마치고 문을 나섰는데,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노인은 이 일을 기묘하게 여기고 그녀의 말을 따라 안뜰에 산을 등지고 집을 한 칸 지었다.


비록 급하거나 절박한 일이 있어도 그 곳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자손 중 임신하여 해산에 임박한 사람이 있으면 그 안에 들어가 있게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어김없이 몹시 고통스러워 하며 아이를 낳지 못했고, 다른 방으로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를 낳았다.




노인은 여자의 말이 맞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겼으나, 그럼에도 그 집을 마음대로 이용하지는 않았다.


노인의 사위는 경상도 안동 사람이었다.


노인의 딸이 처음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을 때쯤, 사위는 아내를 데리고 처가로 왔다.




노인은 그들을 맞아 집 안에서 거처하게 하였는데, 아이를 낳을 때가 되자 갑자기 딸의 몸에 병이 생겨 앓아 누웠다.


온갖 약을 써서 치료하려 하였으나 효과가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온 집안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런데 하루는 딸이 아버지에게 청하였다.




[제가 어릴 때 들었는데, 선녀가 우리 집에 내려왔을 때 산실을 하나 지어 놓으라고 했다면서요? 지금 제가 아이를 낳을 때가 됐지만 병에 걸려 살 도리가 안 보입니다. 하지만 혹시 그 방에 들어가면 살아날 길이 있는 건 아닐까요? 저를 그 방으로 옮겨주세요, 아버지.]


노인이 곰곰히 생각해보니 선녀가 옛날에 말했던 [선생님과 같은 성씨의 임산부]란 바로 자기 딸이었다.


비록 며느리와 손자 며느리일지라도 그들은 모두 자신과는 성이 달랐기 때문에 그 산실에 들어가서도 아이를 낳지 못하고 고통에만 시달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은 비록 다른 집에 시집을 갔더라도 본래 성이 자신과 같으니, 분명 효험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제야 노인은 선녀의 말이 바로 딸을 가리켰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딸을 마당의 산실로 옮기니, 들어간지 며칠 만에 몸의 병이 나았다.




또 순산하여 아들을 얻었으니 그가 바로 퇴계 이황 선생인 것이다.


퇴계 선생은 동양의 위대한 유학자가 되어 문묘에 배향되었으니, 위대한 현인이 태어날 때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73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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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선시대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인데...
    사실 옮겨놓고 자료를 찾다보니 좀 애매하네요.
    여기서는 퇴계 선생의 산실을 외할아버지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남아 있는 퇴계산실(경상북도 문화자료 60호)의 문화재 설명에 따르면 퇴계의 할아버지 이계양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이야기에서는 퇴계의 외할아버지 집이 상주라고 하는데, 실제로 퇴계태실은 안동에 있어서 이 또한 차이를 보이는군요.
    옛날부터 전승되던 이야기다 보니 차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후대에 퇴계 선생의 탄생을 칭송하기 위해 만들다 보니 오류가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오류입니다.

    안동 퇴계태실의 모습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elegant0302/1791
  2. 역시 위대한 인물은 탄생 비화부터 남다른 법이로군요.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인덕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일까요?

    ... 뭐, 그렇다고는 해도 선녀님이 너무 강렬한 인내심 테스트를 연이어서 해버린 것 같기는 하지만서도;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훌쩍 떠나가는가!;; )

  3. 역사에 이름을 남긴사람은 이름을 남겨서 특별한 이야기로 만들어진걸까요

    특별한 이야기가이 실화여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걸까요

    dogdrip.net으로 퍼갈게요
  4. 후대의 조작이죠.. 우리 조상님은 이러이러하게 대단했다.
    한국은 그래도 요괴를 퇴치하고 솔방울로 전쟁터에서 1만명의 적을 베어넘긴,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일본보단 덜하지만 후손들의 조상 떠받들기는 어느 나라건 심해서....
  5. 군대를 갔다왔더니 네이트 한국학이 없어져서 청구야담을 못 올린다는 슬픈 전설이...
    • 아... 나름 재밌게 읽고있던 카테고리 글들인데 오래된거길래 번역괴담에 집중 해주시는 줄 알았더니 한국학 게시판에 없어진거였군요 ㅋ...

      올려주신 글들 잘읽고가요!
  6. 아마 일본이나 서양이라면 이해를 못 했겠지요? 결혼하면 성을 바꾸는 체제니까.
  7. 아마 일본이나 서양이라면 이해를 못 했겠지요? 결혼하면 성을 바꾸는 체제니까.



백문 밖에 사는 권진사는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공부에는 뜻이 없고 오로지 놀러다니기만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사마천처럼 세상을 유람하는 풍취가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는 전국을 두루 돌아다녀 안 가본 곳이 없었으며, 명산대천과 경치 좋고 조용한 곳은 모조리 찾아갔고 어떤 곳은 두세번 가기도 하였다.




그가 어느날 춘천 기린창에 갔는데, 그 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권진사가 주막에 앉아 있는데 약립을 쓰고 소를 탄 어떤 사람이 주막에 오더니 그 곳의 주모에게 물었다.


[저 방 손님은 어떤 양반이오?]




주모가 말하였다.


[저 분은 서울에 사시는 권진사님입지요. 전국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유람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저희 집에도 3번이나 오셨기에 편히 지내고 계십니다.]


[저 양반이 잘 아는 게 있소?]




[풍수지리학에 꽤 통달하셨지요.]


[그럼 내가 혹시 저 분을 좀 모셔갈 수는 없겠소?]


[아마 괜찮을 겁니다.]




잠시 뒤 주모가 방에 들어가 권진사에게 고했다.


[어느 마을에 사는 첨지가 진사님의 재주를 듣고 지금 진사님을 모셔가겠다고 청하고 있습니다. 진사님께서는 의심하지 마시고 잠시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권진사는 주막에만 며칠을 있어 심심했기에 바로 대답했다.




[이 곳에서 멀지만 않으면 한 번 놀고 오는 것을 내 어찌 마다하겠소?]


이에 첨지라는 자가 와서 권진사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진사님의 명성을 들은지 오래입니다. 제가 지금 소를 타고 왔으니 잠시 누추한 제 집으로 가시는 게 어떠실지요?]




권진사가 물었다.


[첨지의 집이 이 곳에서 몇 리나 되오?]


[이 곳에서 30리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같이 소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첨지는 고삐를 잡고 뒤에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정오 무렵이었다.


타고 있던 소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었다.




대략 3, 40리쯤 갔을 때 권진사는 첨지에게 물었다.


[영감께서 사시는 마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려.]


[제가 사는 곳은 아직 멀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몇 리쯤 온 것이오?]


[80리 정도 왔습니다.]


권진사는 몹시 이상히 여기며 말했다.




[지금 이곳까지 거의 100리를 왔는데도 마을이 아직도 멀리 있다니요? 그럼 어째서 처음에 30리라고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영감은 나를 속여 데려가서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막 주인은 내가 30리쯤 되는 마을에 산다고만 알지, 내가 진짜 사는 곳은 알지 못합니다.]


권진사는 마음 속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와버린터라 그냥 가기로 했다.




마을로부터 30리 정도 나오자 그 후에는 계속 깊은 산과 골짜기였다.


낙엽은 사람 정강이까지 차올라 있는데, 그 사이에 단지 작은 길 하나만 나 있었다.


오후 세네시쯤 되자 첨지가 소를 멈추며 말했다.




[잠시 내려서 요기나 하고 가시지요.]


권진사는 소에서 내려 물가에 가서 앉았다.


미리 가져온 도시락을 먹고 물을 떠서 마신 뒤 다시 소를 타고 갔다.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시간은 황혼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뒤 멀고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이 부르는 소리가 나자 첨지가 [왔네!] 라고 크게 소리쳐 대답했다.


권진사가 소의 등 위에서 보니 수십명이 횃불을 들고 고개를 넘어오는데, 모두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이 횃불을 가지고 권진사와 첨지 가는 길을 인도했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자 어렴풋한 가운데 한 큰 마을이 있고, 닭과 개 짖는 소리, 다듬이 방망이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곧 어떤 집에 도착해 소에서 내려 문 안으로 들어가니, 방과 창이 정교하고 깨끗하였으며 용마루와 처마가 앞이 탁 트여 널찍하였으므로 산골 촌사람들이 사는 곳 같지 않았다.




그 다음날 마을을 두루 살펴보니, 인가는 200여호 되는 것 같았고 앞에 펼쳐진 평야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모두가 기름진 땅이었다.


그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자 20여리라고 하였으니, 이 곳은 사람들이 모르는 세상 밖 무릉도원이었다.


또 벽을 사이에 둔 대여섯간의 방에서는 밤마다 책 읽는 소리가 들려 물어보니, 마을의 젊은이들이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며 놀지 않고 주경야독하며 모여서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권진사가 팔도를 두루 유람하면서 소원이 무릉도원을 한 번 보는 것이었기에 너무 기쁜 나머지 첨지에게 무릎을 꿇고 물었다.


[주인께서는 신선이십니까, 귀신이십니까? 이 마을은 무슨 마을입니까?]


첨지가 놀라서 말했다.




[진사님! 어째서 갑자기 존댓말을 하십니까! 나는 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대에는 경기도 고양에 살았는데, 우리 증조부께서 마침 이 곳을 찾아서 이사를 왔습니다. 그 때 친가 외가 친척을 통틀어 따라오고 싶어했던 30여호가 따라왔지요. 일단 이 곳에 온 후에는 세상과 연을 끊기로 하고 경서 몇 권과 소금, 양념만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땅을 개간하고 논을 만들어 먹을 것을 해결하였고, 결혼은 이 안에서 해결해서 우리끼리 살고 있습니다. 자손이 번성하여 이제 마을에 집만 200채 가까이 됩니다.]


[먹고 입는 것이여 이 안에서 농사 짓고 베 짜는 것으로 한다고 하여도, 소금 같은 것은 어찌 하십니까?]


[진사님께서 어제 타셨던 소는 하루에 200여 리를 갑니다. 저희 증조부께서 이 곳에 오실 때 데려온 소가 새끼를 낳은 것인데, 이처럼 잘 걷는 소가 매년 한 마리씩 태어납니다. 이웃 마을에 다닐 때는 이 소를 타고가서 소금을 사옵니다. 산에 노루, 사슴, 멧돼지, 산양이 있으니 그 고기를 먹고, 산 주변에 벌꿀통 300여개를 치고 있는데 주인이 없이 서로 양보하며 쓰고 있습니다.]




하루는 첨지가 소년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권진사님을 모시고 물고기나 좀 잡아오거라.]


그 소년들 중 어떤 소년은 겨와 쭉정이를, 어떤 소년은 뾰족하게 깎은 막대기를 가지고 일제히 한 연못에 모였다.




물 속에 겨를 풀어 넣고 그것이 아래로 가라앉자, 소년들은 일시에 몽둥이를 가지고 수영하며 내리쳤다.


조금 지나니 한 자나 되는 물고기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무슨 고기냐고 묻자 [목멱어] 라고 하였는데, 붕어와 비슷하였으나 흰 비늘이 있었다.




권진사는 한 달 가량 그 마을에 머물며 모든 것을 구경하였다.


그 마을을 떠날 때 첨지는 거듭 부탁했다.


[이 마을은 춘천도, 또 낭천도 아닙니다. 이 너른 들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몇 리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데다 사람들이 이곳에 온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진사님이 이 곳에 오셨던 것도 다 인연이니, 이 산을 나가신 후에도 다른 사람에게 이를 알리지 마십시오.]




권진사가 말했다.


[나도 집에 돌아가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첨지가 말했다.




[쉽지 않을 것이오. 쉽지 않을 것이오.]


권진사는 산을 나온 이후 늙도록 집에서 머물며 매일 탄식하였다.


[내 평생에 한 번 진짜 무릉도원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만 속세일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까닭에 집안 사람들을 데리고 그 곳에 가지 못하였구나!]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70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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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느하루의밤 2012.07.12 22:18 신고
    조선시대는 역시 신기한 일화가 많네요 ㅋ
  2. 무릉도원이라고는 해도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상태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지는 못하는군요.

    혹시, 이 이야기의 저자는 이상을 품고 살되 당면한 현실에 마주하며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살 수 있어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낙원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의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_=)y=3

    p.s - 이번 이야기는 평온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가 감돌아서 그런지 여러번 보게 되네요. 매번 재미있는 이야기 소개해주셔서 잘보고 있습니다~ :D
  3. 순간 물고기 이름이 못먹어 인줄
  4. 매번 잘보고갑니다
  5. 매번 잘보고갑니다
  6. 끝까지 정주행했는데정말 재밌네요 아근데 못먹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지,목멱어는 왠지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귀가밝아지는그런 명약같은 물고기일듯 하네요
  7. 오 신기하군요
  8.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 춘천에서 100리 정도에 넓은 평야면 철원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아니면 양구 쪽 일수도 잇구
  9. 근대 풍수지리학을 잘아는 권진사를 델고 뭐해는지 안나와서 아쉽네요 무덤자리 아니면 집자리였을까요?



옛날 호남에 한 선비가 있었다.


그 선비의 누이동생이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한 지 사흘만에 남편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선비 집에서는 장례를 치르고 과부 누이동생과 함께 시댁으로 보냈다.




그 선비도 누이동생의 뒤를 따라 강을 건넜는데, 슬프고 참담한 심정을 참을 수 없어 시를 지었다.


[강 위의 배에게 묻노라. 옛부터 지금까지 장가를 든 자는 몇 명이고, 시집은 간 이는 또 몇 명인가? 그럼에도 이런 행차는 없었을 것이다! 붉은 깃발이 앞서고 흰 가마가 뒤따르니, 청상과부에 백골신랑이로구나. 강 위의 배야, 천천히 가거라. 신랑의 혼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 강 위의 배야, 어서 가거라. 신랑 집에는 10년간 외아들만 기르신 어머님이 계신다더라. 아침 저녁으로 기다리던 아들은 오지 않고 백골만 오니, 이 원통함을 누구에게 다시 물을꼬! 창창하고 어린 계집종들은 배에 기대 울며 말하고, 저 원앙은 여전히 쌍쌍으로 날아 북산의 남쪽으로 날아가는구나!]


선비가 이렇게 시를 써서 관 앞에 놓았다.




그리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길게 부르짖었더니, 잠시 뒤 홀연히 긴 무지개가 강 가운데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관 위까지 뻗치더니, 이윽고 관이 스스로 쪼개졌다.


관 안에서는 죽었던 신랑이 다시 일어나서 살아났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도다.


이 이야기는 괴담에 가깝지만 워낙 신묘한 일이라 특별히 잠시 기록해 둔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62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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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통하고 애잔한 마음이 가득 담긴 시구와 탄식, 그리고 절절한 부르짖음이 신령을 감동시킨 것이었을까요?

    아무튼 시집을 간 누이에게는 정말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군요. 저 당시에 저런 상황이면 평생 솔로 아닌 솔로로 살아야만 했을테니 ( + 시집 살이... -_-;; )
  2. 따지고 보자면 선비도 [유교]의 [사제]나 다름 없을테니 부활 주문을 쓸 수 있었던 걸까요???
  3. 어느하루의밤 2012.07.03 09:52 신고
    마지막 줄이 깨알같네요ㄲㄲ
  4. 월래 3일장을 치르죠 그것이 혹시 다시 살아 돌아 올지 모른다는 기다림
  5. 49재를 치르는 이유가, 7일동안 7명의 지옥의 판관에게서 재판을 받는답니다. (신과함께에서 나왔죠 ㅋㅋ) 그런데 죽은지 49일 동안은 완전히 죽은 상태가아니고 중음에 머물고있답니다. 중음에서 다시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내려와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편히 가라고 49재를 치르는 듯 합니다.
  6. 고왕관세음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시방관세음 일체제보살 서원구중생 칭명실해탈 약유박복자 은근위해설
    但是有因緣 讀誦口不轍 誦經滿千遍 念念心不絶 火焰不能傷 刀兵立摧折
    단시유인연 독송구불철 송경만천편 념념심부절 화염불능상 도병입최절
    恚怒生歡喜 死者變成活 莫言此是虛 諸佛不忘說
    에로생환희 사자변성활 막언차시허 제불불망설

    모두 부처님께 기도하여 복된 삶 사시며 부처님 시봉 잘 하시길 바랍니다.



피재길은 의원집 아들이다.


아버지는 종기를 치료하는 의원이었는데, 온갖 재료를 섞어 용한 약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피재길은 아버지의 기술을 전수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보고 들었던 것으로 여러 방법을 피재길에게 가르쳐 주었다.


피재길은 의서를 읽은 적이 없고 다만 약재를 모아 달여서 고약 만드는 방법만 알 뿐이었다.


아는 것이 없다보니 모든 부스럼과 상처에 이 약을 팔아서 먹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피재길이 마을에서 의술을 행하기는 해도 감히 의사 축에 끼지는 못했다.


사대부들이 피재길의 고약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 약을 써 보니, 효험이 자뭇 훌륭했다.


1793년 여름, 정조 대왕께서 머리에 부스럼이 나셨다.




온갖 침과 약을 다 써 보았으나 오랫동안 효과를 보지 못하고 끝내는 얼굴과 목의 여러 부분까지 점점 부스럼이 퍼지게 되었다.


그 때는 한여름이라 왕의 심기가 편치 못하였다.


모든 궁중의 의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조정의 신하들은 날마다 줄을 지어 왕의 처소에 문안하였다.




그런데 신하 중 피재길의 약의 효험을 본 이가 있었기에 임금께 그 사실을 알렸다.


임금께서는 분부를 내려 피재길을 대궐에 불러 들여 물으시니, 피재길은 천한 사람인지라 임금님 앞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며 땀을 흘리느라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이를 보며 좌우의 여러 의원들은 모두 남몰래 비웃었다.




임금께서 피재길에게 앞으로 다가와 진찰하여 보라고 하시며 말씀하셨다.


[두려워 할 것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술을 모두 내가 발휘해 보거라.]


피재길이 대답했다.




[소인에게 다른 재주는 없으나, 딱 한가지 시험해 볼 처방이 있나이다.]


임금께서 피재길에게 물러나서 약을 지어오라고 명하셨다.


피재길은 웅담을 여러 약재와 섞은 뒤 볶아서 고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임금님의 환부에 붙여 드렸다.


임금께서는 며칠이면 병이 치유될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피재길이 대답했다.




[하루가 지나면 통증이 잦아 들 것이고, 사흘이 지나면 부스럼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그의 말대로 되었다.


임금께서는 글을 지어 의원들에게 널리 알리셨다.




[고약을 붙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이 씻은 듯 없어졌다. 놀랍게 요즘 세상에도 이런 숨겨진 기예와 비방을 가진 의원이 있었으니, 가히 명의라 부를 만하고, 이 약은 신이 내린 약이라 할 만 하구나! 피재길의 노고를 어떻게 치하해야 할 지 의논해 보거라.]


의원들은 우선 피재길을 내침의로 임명한 뒤, 6품복을 내리고 정직을 제수할 것을 청하였다.


임금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시고 곧 피재길을 나주의 감목관으로 임명하셨다.




이에 조정의 모든 의원들이 다들 놀라 탄복하였고, 두 손을 마주 잡고 공손히 서서 피재길의 의술을 찬양하였다.


그리하여 피재길의 명성이 나라 안에 가득 퍼지게 되었으며, 웅담 고약은 마침내 천금의 비방이 되어 세상에 전해졌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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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조는 이 이야기의 배경인 1793년으로부터 7년 뒤인 1800년, 종기로 사망하게 됩니다.
    피재길의 웅담 고약이 그 때는 안 들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양반보다 낮은 계급인 중인인데다, 제대로 의술을 배운 것도 아니어서 야매로 의원일을 하던 피재길이 임금님을 만나서 벌벌 떠는 게 이 이야기의 포인트입니다 어헣
    • 그러고보면 항상 이런 이야기에서 어의들은 안습 담당이로군요;

      마치 건담 같은 작품에서 정규군이 별달리 손도 써보지 못하고 펑펑 터져나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려나요...[...]
  2. 어떤 분야이든 극의(極意)로 통달하면 곧 지고의 길로 이어진다더니...

    꾸준히 연금술(?) 스킬을 쌓아 특수 영약(!) 제조법을 익히고 명성을 얻음으로써 벼슬 자리에까지 나가게 되었군요.

    물론 어느정도 운도 있었다고 봐야겠지만 그래도 이정도라면 준비된 인재에게 하늘이 합당한 보상을 준 것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 :D
  3. 1800년 정조가 종기로 죽었을 때 피재길이 정조의 치료에 참여했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피재길은 무산부로 귀양을 갔다가 1832년(순조 3년) 2월에 석방되었다.

    ------------------------------------------------------------------------------------------------------
    아이고...뜬금없이 임금님께 불려갔다가 끝내는 무려 32년 동안 귀양살이를ㅠ_ㅠ 이게 왠 날벼락인가요...
  4. 청구야담 오랫만에 보는군요!
    청구야담 앞으로도 많이 올려주세요-
  5. 어느하루의밤 2012.06.30 23:32 신고
    아버지의 약제술을 모두 이어받았다면 정조를 살릴수도 있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 은 무슨..아버지기술 하나 얻어받아서 그걸로 먹고살다 끝내 상받고 후일 귀양가는 인생인가요 ㅋㅋ
    이거 좋은 이야기인가요 ㅋㅋㅋ
  6. 야메가 이렇게 해피해질 리가 없어! 라고 생각한 순간 댓글에 후일담이...
  7. 정조는 종기가 아니라 독살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독에는 고약이 들을리가 없으니 효혐이 없었겠죠
    • 정조 독살설은 주류 학계에서는 인정도 안 해주는 낭설에 가까워서... 몇몇 책 잘 파시는 분들이 흥미성으로 주장해서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가능성은 낮을 것 같습니다.



봉조하 최규서가 젊을 적에 용인에 살았는데, 한 민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과거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친구들이 모두 놀러가고 최규서만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거동과 모습이 뛰어나게 훌륭한 한 관인이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들어오더니 상석에 가서 앉았다.




최규서가 그의 옷을 보니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옷이었다.


몹시 괴이하게 여긴 최규서가 물으니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고려 때의 선비라오. 실은 내 집이 이 민가의 서쪽 방 밑에 있는데, 이 집 주인이 아침저녁으로 내 집 위에서 불을 때서 견딜 수가 없구려. 손자 한 놈은 그만 한 쪽 허벅다리가 다 타 버렸을 정도라오. 그대가 나를 위해 이 집을 옮겨서 우리 집안을 도와주지 않겠소?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 비록 죽은 넋이나 반드시 결초보은 하리다.]




최규서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친구들과 내가 함께 있을 때 말하지 않고 하필 나 혼자 있을 때 찾아온 것이오?]


[다른 사람들은 정신력이 약하여 말하기가 어려웠소. 그대는 다른 이들보다 재주가 훨씬 뛰어난 까닭에 그대가 혼자 있는 틈에 이렇게 찾아온 것이오.]




최규서가 흡족해하며 말했다.


[내 한 번 해보리다.]


이 말을 들은 관인은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다음날 최규서는 주인을 불러 물었다.


[혹시 네가 이 집을 지을 때 무언가 이상한 것을 보지 않았느냐?]


주인이 대답했다.




[서쪽 방 아래가 무덤이 아닌가 의심이 갔습니다만,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옛 무덤 위에 방을 만들면 심신이 안정된다길래 그대로 방을 만들었습니다.]


최규서가 말했다.


[내가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만약 자네가 서둘러 이사가지 않는다면 반드시 큰 화를 입을 것이네.]




주인이 이사갈 돈이 없다고 하자, 최규서는 곧 엽전 15 꿰미를 빌려와서 그 날로 이사를 가게 했다.


그 후 관인이 밤을 틈타 최규서의 집으로 찾아와 감사하는데, 몹시 기뻐하며 감격하였다.


관인이 말했다.




[그대는 반드시 큰 귀인이 되어 오복을 두루 얻을 것이오. 다만 지위가 판서에 이르렀을 때는 반드시 사퇴해야만 제대로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에게 닥칠 화 또한 어마어마할 것이외다.]


최규서는 이 말을 항상 마음 속에 담아두다가, 관인의 말에 따라 판서가 되자 곧 사퇴하였다.


그리고 은퇴하여 용인에서 즐거이 살았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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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견 사소하거나 황당해보이는 누군가의 청원에도 귀를 기울이고, 이를 살피어 나름의 해결책까지 추진해 줄 수 있는 행동력이라...!

    과연 성공하고 대접받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모양입니다~ :D



이여송의 동생이자 명나라의 제독이었던 이여매의 후손 아무개는 힘이 장사였고 검술이 뛰어났다.


일찍이 전라도 완산 진영에 부임되어 가게 되었는데, 금강에서 한 부인과 같은 배를 타고 건너가게 되었다.


강 중류에 이를 무렵 어떤 중이 강둑에 도착하여 뱃사공을 부르며 말했다.




[어서 이리와 배를 대시오.]


뱃사공이 중을 태우기 위해 배를 돌리려고 하자, 아무개는 화를 내며 뱃사공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중이 하늘로 뛰어 오르더니 공중을 날아 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부인의 가마가 있는 것을 보고는 안을 들여다보며 말하였다.


[제법 예쁜데?]


중이라는 사람이 부인을 희롱하며 온갖 방자한 말을 늘어놓는 꼴을 보자 아무개는 한 주먹에 중을 때려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금방 중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본 터라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어 내심 참고 있었다.


이윽고 배에서 내려 육지에 도착하자, 아무개는 중을 꾸짖으며 말했다.


[네가 비록 하찮은 중이지만, 엄연히 중과 속인이 다르고 남녀가 유별하다. 그런데 어찌 감히 부인을 희롱하느냐!]




그리고 아무개가 가지고 있던 철편으로 온 힘을 다해 때리자 중이 그 자리에서 죽어 나자빠졌다.


아무개는 중의 시체를 강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개는 전주에 도착해 감사를 알현하고, 금강에서 있었던 일을 말한 뒤 영내에 머물렀다.




몇개월이 지나자 성문 밖이 떠들썩하는데 그 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다.


감사가 의아해하며 그 까닭을 묻자, 문지기가 들어와 아뢰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떤 중이 들어와 사또를 뵙자고 합니다. 저는 말리려고 했지만 제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드옵니다.]




이윽고 중이 들어오더니 마루 위로 올라와 감사에게 인사했다.


감사가 말했다.


[너는 어디 사는 중이며,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왔느냐?]




중이 말했다.


[소승은 강진 사람인데, 비장 이아무개가 지금 이 곳에 있습니까?]


감사가 말했다.




[어찌하여 그것을 묻느냐?]


[이비장이 때려 죽인 스님은 바로 소승의 스승님입니다. 그렇기에 소승은 원수를 갚으러 왔습니다.]


[이비장은 지금 서울에 갔다네.]




[언제 돌아옵니까?]


[한 달을 기간으로 잡고 갔으니, 다음달 10일쯤에는 돌아오겠지.]


[소승은 그 때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그가 재주를 부려 도망칠지라도 제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테니,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러더니 중은 즉시 작별 인사를 하고 갔다.


감사는 이비장을 불러 중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대는 그 중과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이비장이 말했다.


[소인은 집안이 가난하여 고기를 먹는 일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 탓에 기력이 허합니다. 만약 하루에 큰 소 한 마리씩 한 달간 30마리만 먹을 수 있다면 저 중 따위가 어찌 두렵겠습니까?]


감사가 말했다.




[그거라면 천금 정도의 돈만 쓰면 될텐데 어려운 일도 아니구나!]


감사는 즉시 고기를 관리하는 아전에게 분부하여 날마다 이비장에게 소 한마리어치 고기를 주게 했다.


이비장은 또 황색 비단으로 좁은 소매를 댄 자주색 비단 전투복을 만들어 줄 것을 청하니, 감사가 그렇게 해 주었다.




이비장은 또 대장간에 찾아가 쌍검을 만들게 했는데, 백번이나 단련해서 만든 검이었기에 쇠도 자를 정도로 예리하고 단단했다.


이비장이 10일 동안 열마리 소를 먹자 살이 엄청 찌더니, 20일 동안 20마리의 소를 먹자 몸이 다시 수척해졌다.


그리고 한 달 동안 30마리의 소를 먹자 살이 찌지도, 마르지도 않아 보통 사람과 똑같았다.




이비장이 힘을 기르며 기다리니, 중이 약속한 날짜에 다시 와서 감사를 알현하고 말했다.


[이비장이 왔습니까?]


[이제 막 돌아왔네.]




이비장은 마침 옆에 서 있다가 중을 꾸짖으며 말했다.


[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네놈이 어찌 그리 당돌하냐!]


곧바로 중이 말했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오늘 나와 어디 누가 죽나 겨루어보자!]


중은 뜰로 내려가더니 바랑 속에 말아 넣어 두었던 검을 꺼내 손으로 그것을 폈는데, 그 검이 바로 상장검(霜長劒)인 듯 했다.


이비장 역시 뜰로 내려가 전투복을 입고, 손에는 한 쌍의 백련검(百鍊劒)을 든 채 송곳 신발을 신었다.




서로 상대하여 싸우기를 몸을 뒤척였다가 춤을 추기도 하고, 서로 물러났다 다시 달라 붙었다.


이윽고 검광이 번쩍번쩍 하다가 마침내는 은 항아리 모습을 이루더니, 두 사람이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뜰에 모여 앉았던 구경꾼들은 모두 혀를 차며 승패가 갈리기만을 기다렸다.




날이 저물자 하늘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더니, 곧이어 중의 몸뚱이가 선화당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성문 밖에 중의 머리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모두 이비장이 이겼다는 것을 알았으나, 날이 어두워지도록 이비장은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의심하게 괴이하게 여겼다.


이비장은 저녁 늦게서야 검을 짚고 내려왔다.


감사가 일의 연유를 물으니 이비장이 대답했다.




[다행히 사또 어르신의 은혜를 입어 고기를 먹어 원기를 보충하고, 전투복을 입어 중의 눈을 어지럽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끝장 났을 것입니다.]


감사가 물었다.


[중의 머리가 땅에 떨어진지 오래 되었는데 그대는 왜 이리 늦게 왔는고?]




이비장이 말했다.


[소인이 검을 쓰며 싸우다 보니 기분이 들떴습니다. 문득 조상님들이 계신 고국산천이 그리워져 농서성의 선영에 가서 한바탕 통곡하고 왔습니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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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계속 보다 느낀건데 청구야담은 인과가 뚜렷하지 않은 특징이 있군요!
    근데 번역괴담에 비해 인기가 적은듯...
  2. 국가 기관의 든든한 지원으로 전력차를 극복하다니... 'w')

    역시 세상은 예산이 지배하는 모양입니다; [/먼산]
  3. 바보다.... 2012.04.22 08:42 신고
    꼭 고기를 먹어야 힘 썼다면 당연 중의 전투력이 더 뛰어났군요. 더구나 한달 삼십마리라...
  4. 이건 그야말로 개소리군요...
  5. 저는 이런류의 얘기도 재밌어요! 뭔가 기이하고 전통스런 느낌?ㅋㅋ고전 설화 매니아라 더 좋아하는듯!
  6. 저는 이런류의 얘기도 재밌어요! 뭔가 기이하고 전통스런 느낌?ㅋㅋ고전 설화 매니아라 더 좋아하는듯!
  7. 고려시대 혹은 조선시대 무협소설이 이런 느낌이였을까요...



충청북도의 조광일이라는 사람이 옛날 홍주에 잠시 살았었다.


그는 옛부터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부잣집에는 가본 적이 없고, 조광일의 집에도 잘 사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소탈하고 정직해서 이치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직 병을 고치는 것을 취미로 삼았는데, 그의 의술은 옛 방식인 탕약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작은 가죽주머니 하나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 안에는 철침 수십개가 들어 있었다.


긴 것, 짧은 것, 둥근 것, 모난 것 등 모양이 다른 여러 침을 써서 종기를 터트리고, 부스럼과 혹을 치료하고, 피가 막힌 것을 통하게 하고, 중풍을 고치며 늙은 이에게 기력을 되찾게 하는 등 그 효과가 매우 뛰어났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침은" 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침술에 정진하여 답을 얻은 자라는 뜻이었다.


어느날 맑은 새벽, 조광일이 일찍 일어났더니 남루한 옷을 입은 노파가 엉금엉금 기어와서 집의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아무개입니다. 어느 마을에 사는 백성 아무개의 어머니인데, 제 아들놈이 병에 걸려 죽을 지경이니 그 놈 목숨 좀 살려주세요!]




조광일이 바로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서 앞장서세요. 따라가겠습니다.]


즉시 일어나 노파의 뒤를 따라가는데, 조광일이 당황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이렇듯 조광일은 다른 이들의 병을 돌보느라 바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하루는 비가 내려 길이 진흙탕이었는데, 조광일이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고 바삐 길을 가자 어느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 어딜 그리 바삐 가십니까?]




조광일이 말했다.


[어느 마을에 사는 아무개의 아버지가 병이 들어서 내가 지난 번에 침을 한 번 놓아주었소. 그런데 효과가 없기에 오늘 다시 침을 놓기로 했지요. 그래서 지금 가서 침을 놓으려는 것이오.]


그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께 그것이 무슨 이익이 된다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조광일이 웃으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같다.


그의 사람됨이 이와 같았다.




어느 사람이 조광일에게 물었다.


[의술이라는 것은 천한 기술이고 마을은 비천한 자들이 사는 곳이오. 어찌하여 당신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서도 귀하고 잘 사는 사람들과 지낼 생각은 하지 않고 천한 백성들이나 쫓아 다니는 것이오? 왜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


조광일이 웃으면서 말했다.




[대장부가 벼슬길에 나아가 정승이 되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의사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정승은 정치로서 사람을 구하지만, 의사는 의술로 사람을 살려냅니다. 그 지위는 엄청나게 다르지만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하지만 정승은 때와 운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또, 임금님의 녹을 받으며 책임을 맡기 때문에 하나라도 잘못이 있으면 바로 벌을 받게 되지요.]


조광일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의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술로 자신의 뜻을 행하고, 언제나 뜻을 이루지요. 설령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라면 그냥 두고 가도 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의술을 즐기는 것입니다. 내가 의술을 행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귀천을 가리지 않는 것이지요. 나는 세상의 의사들이 자신의 의술만 믿고 사람들에게 교만하게 굴고, 술과 고기를 대접하고 여러번 청을 해야 겨우 왕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광일이 말했다.


[또 그렇게 가더라도 귀하고 권세 있는 집이나 부잣집일 뿐이지요. 만약 가난하고 권세 없는 자는 병들어도 거절당하고, 백 번을 청해도 일어나지조차 않으니 이것이 어찌 사람이 할 도리입니까? 내가 오로지 마을에서만 있으며 귀한 이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저런 간악한 의사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함입니다. 저 귀하고 잘 사는 사람들이 어찌 우리보다 힘들겠소? 하지만 마을의 백성들은 불쌍하고 가난합니다. 내가 침을 놓으며 사람을 고친 것이 10여년입니다. 어느 날은 대여섯 사람을 치료하기도 하여 한 달이면 열댓명을 살려냈고, 온전히 건강을 되찾게 해 준 사람만 수천명은 될 것이오. 내가 올해 40살이니 앞으로 수십년을 더하면 만명은 살릴 수 있겠지요. 그 정도는 해야 내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 조광일은 뛰어난 의술을 가졌으면서도 부귀공명을 바라지 않았고, 널리 베풀면서도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위급한 자에게는 반드시 달려갔고, 언제나 가난하고 미천한 이들을 먼저 치료했으니 그 어질음이 다른 이보다 훨씬 크도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55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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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이야기를 보니, 세간의 명예와 영광보다는 소박한 일상속에서 나름의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나름 매력적으로 느껴지네요.

    한편으로는 ' high liskᆞhigh return 보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 역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겠구나 ' 하는 생각도 듭니다~ :D
  2. 정말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분이시네요.
  3. 부귀보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을 한다니, 뜻깊은 이야기네요
  4. 정말 본받아야 하고,현대에도 필요한 마인드 같아요!
  5. 정말 본받아야 하고,현대에도 필요한 마인드 같아요!


정조 대왕 때 1782년에서 1783년 사이에 영남 안찰사 김아무개가 가을에 순시를 하다가 함양에 도착해 위성관에 머물렀다.

안찰사는 심부름꾼들과 기생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방에서 혼자 잠을 잤다.

한밤 중 인적이 고요한데, 침실의 문이 슬쩍 열렸다가 닫히더니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김공이 잠에서 깨어나 물었다.

[너는 누구냐? 사람이냐, 귀신이냐?]

[저는 귀신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깊은 밤에 다른 사람 하나 없는데 어찌 이렇게 수상하게 움직이는가? 혹시 나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인가?]

[간절히 아뢸 일이 있나이다.]

김공이 일어나서 사람을 불러 불을 켜려고 하자 그 사람이 말했다.



[그러지 마십시오. 만약 제 모습을 보신다면 안찰사께서 틀림없이 놀라고 두려워하실 것입니다. 어두운 밤이라도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김공이 말했다.

[그대는 얼마나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기에 불도 켜지 못하게 하는가?]




[제 온 몸이 털투성이이기 때문입니다.]

가면 갈 수록 그 사람의 말이 괴이하였기에 김공이 다시 물었다.

[그대가 과연 사람인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온 몸에 털이 나게 되었단 말인가?]



[저는 원래 상주에 살던 우씨 성의 주서입니다. 중종 때 명경과에 급제하여 한양에서 벼슬을 얻은 뒤, 정암 조광조 선생의 제자가 되어 여러해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스승께서 기묘사화 때 목숨을 잃으시고 여러 유생들이 잡혀갔지요. 저는 한양에서 도망쳤는데 만약 고향집으로 간다면 바로 잡혀들어갈 것 같아 지리산으로 갔습니다. 여러 날을 굶주리고 피곤한데다 난생 처음 골짜기에 들어갔기에 먹는 것마저 힘들었습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물가변에 혹시 풀이라도 있으면 뽑아 먹었고, 산과일이 있으면 따 먹었습니다. 먹을 때는 배가 좀 부르는 것 같더니, 똥을 눌 때면 모두 설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렇게 6개월 정도를 지냈더니 점차 온 몸에 털이 나기 시작하더니 그 길이가 몇 마디가 될 정도였습니다. 걸음걸이도 빨라져 마치 나는 것 같아, 천길 절벽도 뛰어넘을 수 있어 무슨 원숭이 같이 되었지요. 나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띄면 괴물로 몰려 죽을 것 같아 산에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 목동을 보더라도 몸을 숨겼지요.]



그 사람은 목이 메인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깊은 계곡, 겹겹이 쌓인 바위 사이에서 오랜 세월을 살며 혹시 달이 밝게 뜨면, 혼자서 지난날 배웠던 경서를 암송하곤 했습니다. 제 신세를 생각하니 너무나도 한심하여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고향의 부모와 처자가 모두 세상을 떠났을 것을 알기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사나운 호랑이나 독사도 무섭지 않고, 단지 사냥꾼이 무서워 낮에는 숨어다니고 밤에만 나다녔습니다. 이렇게 괴물의 꼴이 되어버렸지만 마음 속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계속 말했다.



[언제나 세상 사람을 한 번 만나, 세상일을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괴상한 모습으로는 차마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마침 어르신의 행차가 이 곳에 오신다는 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와서 뵙는 것일 뿐입니다. 저에게 다만 조광조 선생의 자손이 몇이나 되는지, 선생이 돌아가신 뒤 그 명예가 회복되고 결백함이 밝혀졌는지만 알려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합니다.]

김공이 말했다.

[정암 선생은 인조 때 명예가 회복되어 종묘에 그 신위가 배향되기까지 하셨습니다. 사액서원도 여러 곳에 있고 그 댁 자손들은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조정에서도 높은 자리에 올라갔으니 걱정 마십시오.]



김공은 내친김에 기묘사화 당시의 일에 관해 물었다.

그 사람은 하나라도 빠트리거나 잊어버린 것 없이 모든 사실을 낱낱이 말해 주었다.

또 처음 도망칠 때 그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서른 다섯이었습니다.]

[그럼 기묘년으로부터 지금까지 300여년이 흘렀는데, 그렇다면 그대의 나이는 거의 400살에 가깝겠구려!]

[저는 그 동안 깊은 산에서 세월을 보내서 나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김공이 물었다.

[그대는 지리산에 산다고 하셨지요. 그대가 사는 굴과 이 곳의 거리는 상당히 멀텐데 어찌 그렇게 빠르게 오신 것이오?]

[기운이 날 때는 아무리 험한 절벽이라도 원숭이가 뛰어 놀듯 넘어다닙니다. 한순간에 몇십 리를 달릴 수 있지요.]



김공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라며 음식을 대접하려 하자 그가 말했다.

[음식은 필요 없습니다. 굳이 주시려거든 과일이나 좀 주시지요.]

하지만 하필 방 안에 과일이 없었다.



밤중에 과일을 구해오라고 하기도 힘들었기에 김공이 말했다.

[지금 하필이면 과일이 없구려! 내일 밤 그대가 다시 온다면 그 때 과일을 준비해 놓겠소. 내일 오실 수 있겠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즉시 방을 나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김공은 그가 다시 온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병이 났다고 핑계를 대고 하루 더 위성관에서 머물렀다.

그 날 아침과 점심 식사에 나온 과일을 모두 챙겨놓고 그 사람을 기다렸다.



과연 밤이 깊어지자 그가 다시 왔다.

김공이 일어나 그를 맞이하고, 과일을 내어주니 그가 크게 기뻐하며 과일을 모두 다 먹었다.

[덕분에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김공이 물었다.

[지리산 안에 과일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대는 먹을 걱정은 없는 것이오?]

[매년 가을 낙엽이 질 때면 밤중에 주워 모아둔 과일이 서너 무더기는 되는데, 그것으로 먹고 삽니다. 처음 풀만 먹을 때의 괴로움은 이제 극복했습니다. 과일만 먹어도 기력이 펄펄 넘칩니다. 사나운 호랑이가 바로 앞에 있더라도 손발로 때려 잡을 수 있습니다.]



김공과 그 사람은 기묘년 사건에 대해 한바탕 이야기를 더 하고 헤어졌다.

김공이 평생 한 번도 다른 이에게 이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죽기 전에야 비로소 자기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 옛날에 털이 난 여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명하여 이 일을 글로 써서 알리게 하였다.

지금 세상에 모인의 이야기가 퍼진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다.



Illust by 엥비(http://blog.naver.com/junk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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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와 제가 첫 댓글이네요 ㅋ
  2. 2등이네요 ㅋ
    혼코와 10화 기다리고 있어요^^
  3. 등수놀이뻐큐머겅 2012.03.24 07:41 신고
    범이네요 저건
  4. 기구한 사연을 거쳐 결국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거듭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것만큼이나 잃은 것들도 적지 않겠군요.

    그래도 저렇게 살아보는 것 역시 나름 괜찮을 듯 싶습니다~ '~')y=3
  5. 빅풋일까요...^^;;;
  6. 오..굉장히 흥미롭군요...달밤에 그 두분들의 대화가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