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야마 타케시는 교토 출신인데, 당시 교토에서는 일본인과 재일 한국인 간의 사이가 극단적으로 나빴다고 합니다.
고등학생 사이에도 패싸움이 줄을 이었다고 하고요.
그래서 1961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마츠야마 타케시는 이런 갈등을 스포츠로 해결하고자, 조총련계 학교와의 축구 친선전을 학교에 제의했다고 합니다.
친선전은 성황리에 치뤄졌는데, 당시 이 경기에서 조총련계 학생들이 응원가로 불렀던 노래가 바로 임진강이었습니다.
이 노래를 감명깊게 들은 마츠야마 타케시는 오랫동안 그 곡조를 기억하고 있다가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에게 전해주게 된 것이죠.
임진강은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두번째 싱글로 1968년 2월 21일 발매됩니다.
하지만 공연에서 워낙 호평을 받았던 곡임에도, 임진강 싱글은 곧 판매중지 조치를 받게됩니다.
조총련 측에서 원곡이 북한 노래임을 알리고, 작사자와 작곡가를 명확히 할 것, 그리고 원곡의 번역을 그대로 살릴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츠야마 타케시는 가사를 번역하면서 2연의 정치적 내용을 들어내고, 그 부분에 민족의 아픔을 담아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총련 측의 항의로 인해, 북한 체제의 찬양적 내용이 있다는 게 드러나자 결국 정치적 이유로 이 곡은 일본에서도 금지곡이 됩니다.
막 한일협정으로 국교를 정상화한 터였기에, 북한 노래가 널리 불리는 것을 한국 정부에서 원치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이후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는 임진강의 멜로디를 역재생해서 너무 슬퍼 참을 수 없다라는 곡을 싱글로 내기도 했습니다.
일본 학생운동에서도 자주 부르던 노래였지만, 학생운동 바람이 잦아들면서 임진강 또한 잊혀져 갔죠.
이 노래가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진 이후에서였습니다.
2002년 재발매 된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임진강 싱글은, 2002년 오리콘 순위에서 연간 14위를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국내에 이 노래가 알려지게 된 것은, 또 한참 후의 일입니다.
군사정권 내내 북한 체제 찬양을 이유로 들을 수가 없었거든요.
제대로 임진강이라는 노래가 알려지게 된 것은, 90년대 들어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몰았던 김연자 덕분이었습니다.
김연자는 이 노래를 2001년 홍백가합전에서도 부르며,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노래를 발굴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죠.
김연자 버전은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와 다르게, 남북분단 현실을 직접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 더 절절하게 가사를 번안하기도 했고요.
더불어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 노래는 2004년작 영화 パッチギ!(박치기!)의 OST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판 임진강의 작사가, 마츠야마 타케시가 쓴 소년 M의 임진강(少年Mのイムジン河) 이라는 작품입니다.
60년대 재일 한국인의 삶을 담아낸 영화 안에서, 임진강은 그 애환을 그대로 드러내는 매개체로 나타납니다.
한일 양국에서 다시 한번 이 노래가 조명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오랜 세월 한국, 북한, 일본 세 나라에서 참 고초도 많았고 사랑도 받았던 노래입니다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은 모두가 하나였을 겁니다.
남에서는 북을, 북에서는 남을, 일본에서는 이제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고국을.
그 시절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노래라고 생각하면, 들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곤 합니다.
음악으로나마 그 마음들이 하나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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