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x100
옛날 선조 임금 때 1584년 1월에 한양 선비 이생이 강릉에 일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걸음이 느린 말을 타고 피곤하게 길을 가다 깊숙한 두메 산골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사람은 사람대로 지치고 말은 말대로 피곤한데, 날은 저무는데 머무를 곳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다행히 숲 속에서 한 목동을 만나게 되어 길을 물었더니, 목동은 언덕 너머를 가르키며 말했다.
[이 언덕을 넘어가면 아무개 양반집이 있습니다. 그 곳을 빼면 주변에 사람 사는 곳은 없습니다.]
선비가 목동의 말을 따라 언덕을 넘어갔더니 세칸짜리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어떤 한 노인이 나왔는데, 나이는 60여세 정도였고 머리에는 다 떨어진 모관을 쓰고 있었고 한 소년이 옆에서 노인을 모시고 있었다.
노인이 선비를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이렇게 깊은 시골에 손님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선비가 산에 왔다 길을 잃어버린 사정을 설명하자 노인은 그 집에서 묵고 가는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노인은 조용히 앉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선비 또한 가볍게 말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여서 그냥 방 한 쪽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시중을 들던 소년이 저녁밥을 차려와서 먹었다.
황혼녘이 되자 노인은 소년에게 말했다.
[날이 벌써 저물었는데도 아직까지 오지 않는다니 몹시 이상하구나. 네가 문을 열고 멀리 내다보거라.]
소년이 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더니 말했다.
[지금 막 앞 시냇가를 건너 오십니다.]
노인은 눈을 크게 뜨고 선비를 보며 말했다.
[부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옆에서 입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잠시 뒤 두 사람이 왔는데, 한 사람은 평범한 선비였고 다른 한 사람은 스님 옷을 입은 늙은 스님이었다.
방에 들어온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입을 다물었다.
노인은 소년에게 정화수 한 그릇을 떠오게 해서 소반 위에 올리고 향로에 향을 살랐다.
그 후 세 사람이 모두 북쪽으로 꿇어 앉아 주문 같은 것을 한참 외웠는데 선비는 아무리 들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기를 몇시간 하다가 노인이 소년을 불러 말했다.
[문 밖에 나가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거라.]
소년이 밖으로 나갔다 곧 들어와서 말했다.
[별 하나가 지금 동쪽에서 떨어져서, 그 빛이 온 땅을 밝히고 있습니다.]
노인과 두 손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참 동안 응시하다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늘이 내린 수명이니 이것을 어찌하겠는가!]
선비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어서 엉겁결에 물었다.
[주인께서는 무슨 일로 한숨을 쉬십니까?]
[숙헌이 곧 죽게 생겼기에 내가 이 두 손님과 함께 하늘에 기도하며 경을 외어서 그 분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했던 것이라오. 운이 좋아야만 했는데, 끝내 아무런 효험이 없겠습니다. 조금 전 별이 떨어졌으니 이미 숙헌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비가 물었다.
[숙헌이 누구입니까?]
[율곡 이이라는 분이오.]
[제가 이번달 초에 서울에서 출발할 때 그 분은 병조판서를 맡고 있었고 몸도 건강하셨는데요?]
[7, 8년 뒤 왜구가 우리나라를 침범할텐데, 숙헌이 살아 계신다면 그 난리를 능히 막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우리백성들은 모두 고깃조각이 될 것입니다. 살아날 방도가 없습니다.]
조금 뒤 두 손님이 집을 나서는데 안색이 정말 처참했다.
선비가 물었다.
[나라가 그렇게 난리를 맞게 된다면 저같은 불쌍한 선비는 어떻게 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만약 충청남도 당진이나 면천으로 간다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겁니다.]
선비가 또 물었다.
[저 두 손님은 누구십니까?]
[선비 분의 이름은 말해 줄 수 없고, 스님은 바로 백제 때 고승인 검단대사님입니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다른 곳에 퍼트리면 안 됩니다.]
선비가 한양에 돌아와 수소문해보니 과연 율곡 이이가 별이 떨어지던 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선비는 곧 충청남도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7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청구야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구야담][12th]이유가 귀신을 쫓아내다(逐邪鬼婦人獲生) (5) | 2012.01.17 |
---|---|
[청구야담][11th]네 선비의 관상(會琳宮四儒問相) (14) | 2012.01.14 |
[청구야담][9th]귀신에게 곤경을 당한 양반(饋飯卓見困鬼魅) (28) | 2012.01.05 |
[청구야담][8th]우 임금을 만난 포수(問異形洛江逢圃隱) (4) | 2012.01.01 |
[청구야담][7th]병자호란을 예언한 이인(覘天星深峽逢異人) (2) | 2011.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