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평양

320x100


선조 시절 임진왜란 때문에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황제의 명령을 받아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었다.

이여송은 평양에서 승리를 거두고 성 안으로 들어가 쉬었다.

그런데 이여송은 평양의 경관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다른 마음을 품어, 선조를 설득해 그 곳에서 살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어느 날 이여송은 대동강 옆의 연광정에서 수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잔치를 열었다.

그 때 강변의 모래사장을 검은 소에 탄 노인 한 명이 지나갔다.

보초병들이 큰 소리로 노인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섰으나, 노인은 그것을 다 들으면서도 못 들은척 하며 소고삐를 잡고 천천히 지나갔다.



이 모습을 보고 이여송이 몹시 화를 내며 그 노인을 잡아오라 일렀다.

그러나 소가 느릿느릿 걷는데도 도저히 병사들이 따라잡지를 못했다.

이여송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직접 천리마를 타고 칼을 찬 채 노인의 뒤를 쫓았다.



소가 바로 앞에 보이는데다 말이 나는 듯이 달리는데도 노인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노인을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몇 리를 가서 한 산촌으로 들어가자, 노인이 타고 있던 검은 소가 시냇가 버드나무에 매여 있었다.

이여송은 노인이 이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에서 내려 검을 차고 들어갔다.



노인은 마루 위에서 일어나 이여송을 맞이하였다.

이여송이 화가 나서 꾸짖었다.

[너는 어떤 늙은이길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이리 건방지느냐! 나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백만 군대를 거느리고 너희 군대를 구하러 왔다. 네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건방지게 소에 탄 채 우리 군대 앞을 지나가느냐?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비록 산촌의 노인네이나 어찌 장군의 위대함을 모르겠습니까? 오늘 제 행동은 오직 장군을 누추한 이 곳에 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게 간절한 부탁이 있는데 장군께 말씀 드릴 방법이 없어서 이런 계책을 쓴 것입니다.]

이여송이 물었다.



[부탁이 무엇이냐? 말해보거라.]

노인이 말했다.

[저에게 불초자식이 둘이 있는데, 글 읽고 농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강도짓만 하며 부모의 가르침을 듣지 않습니다. 어른에게 대하는 태도도 알지 못하는 한심한 놈들이지만 제 기력이 쇠해서 아들들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장군의 용맹이 세상을 뒤덮으실만 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장군의 위엄을 빌려 이 패륜아들을 없애버리려 합니다.]



이여송이 말했다.

[아들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뒷마당의 대나무 숲에 있습니다.]



이여송이 칼을 차고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두 소년이 함께 책을 읽고 있었다.

이여송이 큰 소리로 질책하였다.

[너희가 이 집의 패륜아들이냐? 너희 아버지가 너희를 없애라하니 이 칼을 받아라!]



말을 마치고 검을 휘둘러 아이들을 내리치는데, 소년들은 목소리 하나,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죽간으로 칼을 막아내서 도저히 소년들을 해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소년이 죽간으로 칼날을 내리치자 칼날이 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동강이 나 버렸다.

이여송은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흘렸다.



조금 있자 노인이 들어와 아이들을 꾸짖었다.

[어린 것들이 어찌 이리 무례하냐!]

노인이 소년들을 물러나게 하자 이여송이 노인에게 말했다.



[저 패륜아들의 힘이 대단해서 당해낼 수가 없소. 그대의 부탁은 들어주기 힘들 것 같구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말은 장난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10명이 와도 저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황제의 뜻을 받들어 우리나라를 구하러 오셨으니, 왜구를 없애서 우리나라를 다시 안정되게 하시고 본국으로 개선하시어 이름을 역사에 남기시면 이것이 곧 영웅이 아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이런 위대한 일은 하지 않으시고 평양에 눌러 앉을 생각이나 하시니, 이것이 어찌 장군님에게 어울리는 일이겠습니까? 오늘 제가 꾸민 일은 장군님께 우리나라에도 인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장군님이 만약 계획을 고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낭비하신다면 늙은 몸이 장군의 목숨을 뺏으러 갈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시길 바랍니다. 산에 묻혀사는 늙은이의 말이 당돌할지 모르나 장군이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이여송은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어트린 채 기운 없이 있다가 이내 [예, 예.] 하고 군중으로 돌아갔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9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
320x100


합천 사또 아무개는 나이가 60이 되도록 아들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외아들을 지나치게 아끼고 글조차 가르치지 않아 아이가 13살이 되었는데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수준이었다.

그러던 도중 전부터 사또와 친하게 지내던 해인사의 큰 스님 한 분이 관청에 찾아와 수령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이가 이미 다 자랐는데 아직도 글조차 못 읽으니 나중에 크면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글을 가르치려고 해도 워낙 건방져서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매를 들기에는 마음이 약해져서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후회가 막심합니다.]

[사대부 집안의 자제는 어릴 적에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세상에서 버림 받은 사람이 됩니다. 그저 오냐오냐 하면서 공부조차 시키지 않았으니 이것이 옳은 것입니까? 아드님의 사람됨을 보니 어떤 일이든 하기만 하면 할 수 있을 터인데 이처럼 포기하시다니 안 될 일입니다. 소승이 가르쳐 볼테니 사또께서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스님의 뜻을 몰라 부탁할 엄두를 못 냈지, 전부터 원하던 일입니다. 스님께서 만약 그 아이를 깨우쳐 지식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다면 그만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살리고 죽이는 것은 스님의 마음대로 하시고, 무조건 엄하게 공부를 시키십시오." 라는 내용의 문서를 만들어 도장을 찍은 뒤 소승에게 주십시오. 또 일단 절로 데려간 후에는 결코 집에서 연락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옷과 먹을 것은 소승이 마련할테니 만약 아이에게 보낼 것이 있다면 제 제자들이 오갈 때 저에게 직접 보내서 제 허락을 받도록 하십시오. 알아 들으시겠습니까?]

[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사또는 즉시 스님이 말한대로 문서를 만들어 주고, 그 날로 아이를 절에 보낸 뒤 연락을 끊었다.

아이는 버르장머리가 없어 절에 간 후에도 이리저리 쏘아다니며 늙은 중들을 멸시하고, 욕을 하며 뺨까지 때리는 등 못하는 짓이 없었다.

하지만 큰 스님은 이를 보면서도 마치 못 본 것처럼 아이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4, 5일이 지난 어느 아침, 큰 스님은 고깔과 도포를 차려 입고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았다.

그 앞에 제자 3, 40명이 경전을 펴고 앉아 있는데 예절과 몸가짐이 가지런하고 엄숙했다.

큰 스님이 스님 한 분에게 아이를 잡아오라 시켰더니, 아이는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욕을 퍼부었다.



[한갓 너희 같은 중놈들이 어떻게 양반을 모욕하는거냐! 내가 집에 돌아가면 아버님께 아뢰어 너희들을 때려죽일테다! 원수 대머리 중놈들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죽일테다!]

아이는 계속 욕을 하며 한사코 오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큰 스님은 아이를 꾸짖으며 여러 스님들에게 아이를 묶으라고 시켰다.



스님들이 아이를 묶어서 큰 스님 앞에 데려다 놓으니, 큰 스님이 이전에 사또가 썼던 문서를 내보이며 말했다.

[너희 아버님께서 이것을 써서 내가 주셨으니, 이제부터 너의 생사는 오직 내 손에 달려 있다. 너는 양반집 아들이면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 채 온갖 나쁜 짓만 골라서 하니 살아서 어디다 쓰겠느냐? 이대로 가다가는 너희 집안까지 말아먹고 말테니 잔말 말고 내가 주는 벌을 받아라.]

큰 스님은 말을 마치고 송곳 끝을 불에 달구어 시뻘겋게 만든 후 그것으로 아이의 넓적다리를 찔렀다.



아이는 너무 아파 기절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큰 스님이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송곳으로 다시 찌르려 하자, 아이는 애걸하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큰 스님 말씀만 듣겠습니다. 제발 다시 찌르지 마세요.]



큰 스님이 송곳을 손에 든 채 아이를 꾸짖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다가 두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묶인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책상 앞으로 데려와 천자문을 가르치고, 그 다음날부터 일과를 정해서 조금도 쉬지 못하게 하고 공부만 시켰다.

아이는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데다 원래 머리가 좋았던지라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달았고, 열을 배우면 백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4, 50일만에 천자문과 역사책을 모두 떼서 훤히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밤낮으로 공부를 쉬지 않고, 게으름 피우지 않으며 성실히 하니 1년여 만에 학문이 크게 진전되었고, 3년만에 공부에 도가 텄다.

아이는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내가 양반이면서도 산 속의 중들에게 이런 치욕을 당한 것은 모두 공부를 안 해서이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하면 꼭 이 중놈들을 때려 죽여서 이 한을 씻고 말테다.]

아이는 오직 이 생각을 하며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기를 쓰고 공부를 했던 것이다.

큰 스님은 아이에게 과거 공부까지 시킨 후, 아이를 불러 말했다.



[이제 그대의 글은 과거에 합격할 만하오. 과거에 합격하여 큰 벼슬을 해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고, 남에게 밀리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소승은 이제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가겠소.]

그 말을 마친 뒤 큰 스님은 아이를 돌려보내고 떠났다.

집에 돌아간 아이는 그제야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한 뒤 서울로 올라가 과거 시험에 도전한지 3년만에 드디어 과거에 합격했다.



그리고 벼슬 자리에 오른지 수십년만에 드디어 경상도 관찰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경상도 관찰사가 되자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드디어 해인사의 중놈들을 때려죽여서 젊은 날의 한을 갚으리라.]



관찰사는 경기도의 각 읍을 돌아다니며 처벌 도구를 잘 챙기게 했다.

그리고 곤장을 만들고, 곤장을 잘 치는 사람 3, 4명을 골라서 자신을 따라오게 했다.

절에 도착하면 바로 중들을 때려 죽이려는 생각에서였다.



관찰사의 행차가 홍류동에 이르자, 큰 스님이 스님들을 데리고 길가에 나와 관찰사를 맞이했다.

관찰사는 큰 스님 일행을 보더니 곧 가마에서 내려 큰 스님의 손을 잡고 정성스레 인사 했다.

큰 스님이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늙은이가 다행히 죽지 않고 사또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말을 마치고 함께 절에 들어가는데 큰 스님이 말했다.

[소승이 자는 방은 바로 사또께서 지난날 공부하시던 그 방입니다. 오늘 밤은 방을 옮겨 소승과 같이 나란히 누워 주무시지요.]



관찰사가 흔쾌히 허락하여 같은 방에서 자게 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큰 스님이 물었다.

[사또께서는 어려서 제게 공부를 배울 때 소승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과거에 급제해서 관찰사가 되시고도 그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실은 절에 올 때만 해도 그럴 작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저를 때려 죽이지 않으시고 가마에서 내려 인사를 하신 것입니까?]

[원한을 한시도 마음 속에서 잊은 적이 없었는데, 스님의 얼굴을 뵙자 마자 원한이 눈 녹 듯 사라지고 기쁜 마음만 남았습니다.]

[소승이 예상한 대로 입니다. 사또는 높은 자리까지 오르실 분이십니다. 모년 모월 모일에 사또께서 평양 감사가 되실 터인데, 그러면 소승이 스님 한 분을 보내겠습니다. 사또께서는 잊지 말고 반드시 예우해 주십시오. 마치 소승을 본 것처럼 생각하고 이렇게 한 방에서 같이 주무십시오. 꼭 이 말을 잊지 말고 지키셔야 합니다.]



관찰사가 알겠다고 하니 큰 스님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것은 소승이 사또를 위해 평생 운수를 연도 별로 적어둔 것입니다. 언제 돌아가실 지, 몇 품의 지위까지 오를지 환히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금방 말씀드렸던 평양 감사가 된 후의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절대 잊지 마십시오.]

관찰사는 감사한 마음에 모두 기억하겠노라고 맹세했다.



관찰사는 다음 날 쌀, 베, 돈, 나무 등을 절에 한껏 시주하고 절을 떠났다.

그 후 몇 년이 지날 무렵, 과연 관찰사는 평앙 감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지기가 아뢰었다.



[경상도 합천군 해인사에서 왠 스님이 와서 감사님을 뵙겠다고 합니다.]

감사는 문득 큰 스님의 말씀을 생각해내고 그를 즉시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까이 오게 한 후 큰 스님의 안부를 물었다.



상을 같이 두고 저녁밥을 먹은 뒤, 밤이 되자 같은 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방 구들이 너무 뜨거워서, 감사는 스님과 자리를 바꿔 눕게 되었다.

잠에 빠져 정신이 몽롱한데, 갑자기 비린 악취가 났다.



놀란 감사가 손으로 스님을 더듬어 보니, 스님이 있던 곳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바로 아랫 사람을 불러 촛불을 들고 살펴보니 스님의 배가 칼에 찔려 내장이 모두 튀어 나와 있고, 피가 흘러 방바닥이 온통 피 투성이였다.

감사는 깜짝 놀라 급히 시체를 수습하게 했다.



다음 날 아침 철저히 조사해보니, 그것은 감사가 아끼던 기생 때문이었다.

그 기생은 어느 관노와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그 때문에 관노가 감사에게 원한을 품고 자는 사이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관노는 당연히 감사가 아랫목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죽였으나, 거기 있던 것은 스님이었다.



감사는 관노와 기생을 법으로 엄히 다스리고, 스님의 시체를 수습해서 해인사로 보냈다.

이것은 큰 스님이 이러한 횡액을 미리 알아서 일부러 스님을 보내 감사가 받을 횡액을 대신 받게 했던 것이었다.

그 후 감사의 인생은 모두 큰 스님이 주셨던 종이에 적힌 것과 똑같았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3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 글을 읽으신 후 하단의 손가락 버튼 한 번씩 클릭 해주시면 번역자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