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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할아버지 성묘를 갔다 돌아왔다.


성묘를 마친 후, 할머니댁에서 식사를 하고 왔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식사 후 할아버지가 읽던 책들을 뒤적였다.




초판본 같은 다자이 오사무 전집을 찾아냈지.


그런데 그 전집을 꺼낸 뒤편에 작은 미닫이 문이 달려 있었다.


거길 열어보니 끈으로 묶인 만화책 정도 크기의 샛노란 수첩이 있었다.




할머니에게 그걸 보이며, [이게 뭐에요?] 라고 여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20여년 가량 심령현상이나 초자연적 현상을 연구했던 연구노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아버지도 딱히 숨길 내용은 아니라고 하셨다며, 내가 가져가도 된다고 허락해주셨다.




안에는 이런저런 장소나, 사념이 어떻느니 하는 잘 알 수 없는 이야기투성이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시처럼 느껴지는 짧은 글이 있었다.


맨위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입에 담거나 그 내용을 이해하면, 영적인 현상 내지는 감정의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문장."


흥미가 동해 여기 옮겨 써 본다.




첫번째


눈을 뽑고 입을 엮어 하늘을 본다


바다는 불이 되어 하늘을 굽네


그의 갈 길을 보여주지 않으매


안내하기 이른 길은 길다


앞은 있어도 뒤는 없으니


벼랑을 등지고 그저 걸을 뿐


끝은 무한하고 끝이 없나니


어둠에 빛에 하늘은 없고


모두 무너지리라




두번째


가리킵시다 떨어집시다


가리킵시다 떨어집시다


가리킵시다 떨어집시다


죽읍시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이 수첩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쓰고 있었다고 한다.


쓸데없는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과 이 문장에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할아버지는 폐렴으로 돌아가셨지만 왠지 모르게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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