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동창회 소식을 알리는 편지가 왔다.
중학교 동창회로, 20살때 한번 만났던 친구들이다.
어느덧 10년이 지나, 이제는 서른이 됐다.
어릴적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이제는 왕래가 뜸해졌다.
오랜만에 만나 옛 정을 되살리고 싶어, 참석하기로 했다.
동창회 당일, 꽤 많은 친구들이 나와 왁자지껄 사는 이야기도 늘어놓고, 어릴 적 추억도 풀어놓았다.
정말 즐거운 모임이었다.
서른살쯤 되니 아저씨 아줌마가 다 된 친구들도 있고, 머리가 벗겨진 친구도 있다.
새삼 다들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나 스스로도 아저씨가 됐다는 건 애써 무시하면서.
결혼한 친구들이 꽤 많아서, 아직 미혼인 나는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께도 연락을 드렸던 모양이지만, 지병 때문에 거동이 어려우셔서 아쉽게 못 오셨다고 한다.
서서 식사하는 곳에서 가볍게 1차를 마친 뒤, 2차는 술집으로 향했다.
반 조금 넘는 인원이 2차에 참여했다.
나도 다음날 일이 없었기에, 조금 과음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2차에 따라갔다.
조금 취기가 돌고, 다들 1차 때보다 개방적이고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던 그때.
새로운 참가자가 나타났다.
A였다.
A는 중학교 시절 친구가 많지 않은 녀석이었다.
나 역시 그와 이야기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하지만 10년 전 동창회에도 참석했었고, 그때는 나름대로 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다만 중학교 시절부터 겁먹은 듯한 태도라, 이야기하다 왠지 모르게 말문이 막혀 맥이 끊기곤 했다.
하지만 다들 술도 들어갔겠다, 기분이 거나해진 친구들은 A를 반가이 맞이했다.
[이야, A잖아! 어떻게 된거야, 갑자기 난입이냐!]
간사인 B가 먼저 말을 건넸다.
B는 나와 사이가 좋아, 지금도 가끔이나마 연락을 하는 몇 안되는 동창이다.
다른 친구들도 제각기 [오랜만이다! 앉아, 앉아!] 라던가, [지금 분위기 딱 좋은데 잘 맞춰왔네.] 라면서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A는 B에게 이끌려, 자리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나는 A를 보고 새삼 놀랐다.
전혀 늙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조금 힘이 없어보였지만, 10년 전 동창회 때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마가 조금 넓어져가는 내 입장에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A는 이전보다도 더 과묵해져 있었다.
무언가 말을 걸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는 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뭐 마실래?] 하고 B가 물었지만, 고개를 끄덕일 뿐 대답이 없었다.
[일단 생맥주 한잔 시키지 그럼. 안 마시면 내가 먹는다.]
하지만 A는 그렇게 시킨 생맥주도, 안주에도 손 하나 대지 않았다.
그쯤 되자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나말고 다른 녀석들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하던 일이 안 풀려 우울증에 걸린 건 아닌가 걱정했다.
그래서 가급적 밝은 어조로 말을 걸었다.
[이야, 그나저나 A 너는 정말 늙지도 않았네. 부럽다. 나는 완전 아저씨가 다 됐어.]
A는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러자 다른 친구 몇도 거들었다.
[그러니까! 한눈에 알아보겠더라니까. 전혀 안 변했지 뭐야. 뱀파이어라도 되는 줄 알았어!]
[안 늙는 체질도 있더라니까.]
A는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
B도 한마디 거들 생각이었는지 입을 열었다.
[아니, 혹시 A는 진짜 사람이 아닌 거 아냐?]
결코 바보취급 하거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고, 그저 농으로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 한마디에, 그제껏 미소만 띄우던 A의 표정이 달라졌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눈을 크게 뜨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 모습에 놀란 B는 곧바로 [아, 내가 말실수를 했나보네. 기분 나빴어? 미안, 미안.] 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듯, A는 계속 벌벌 떨 뿐이었다.
다른 녀석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다들 이쪽을 바라봤다.
나는 역시 마음에 병이 있는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냉정하기 짝이 없게, B의 가벼운 농담에 과민반응해서 분위기를 깨버린 A를 책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정말 미안해. 마음 풀고 다시 마시자.]
B는 다시 사과했다.
다른 녀석들은 아까 일은 잊은 듯, 다시 잡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A의 떨림은 점점 커져서, 의자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나도 말을 걸었다.
[야, 괜찮냐?]
그러자 A가 기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웃는 듯, 화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등과 손등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하고, 일정한 박자로 박수를 친다.
"우와, 뭐지 이녀석. 무섭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A는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절규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그대로 달아났다.
그 순간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괴물 같던 그 얼굴.
우리 동창회 멤버들은 물론이고, 다른 손님과 점원까지 다들 놀라서 망연자실했다.
다시 술을 마실 분위기도 아니고, 결국 그날은 그대로 모임이 파했다.
훗날, B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심상치 않은 모습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자기 때문인 거 같아 죄책감도 들어, A네 집에 연락을 해봤단다.
B는 A의 가족에게 동창회에서 있었던 일을 에둘러 전하고, 혹시 연락을 받은 건 없냐고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그것이 사실인지, 어디 있는 가게인지 되묻더니, 한참 있다 A가 10년 전 실종됐다고 말하더라는 게 아닌가.
10년 전 동창회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이번 동창회 초청장을 받기는 했지만, 가족들은 바빠서 답장을 잊고 있었단다.
10년 전 사라진 A가, 동창 중 누구와도 연락이 없던 A가, 어떻게 동창회 2차 자리를 알고 찾아온 것일까.
나는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돌이켜보면 10년 전 동창회 때, A가 말문이 계속 막혔던 건 사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꺼내놓지 못해서는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A는 행방불명 상태라고 한다.
건강하지는 않더라도, 부디 어디에선가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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