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시절, 나는 소풍을 가게 되어 버스에 타고 있었다.
버스가 빨간 불로 멈춰서자, 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지고 옆자리도 뒷자리도 한결같이 잠을 자는 것 같이 되었다.
빨간 불은 시간이 지나도 파란 불로 바뀌지 않았고, 차 안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창문 쪽에 앉아 있던 내가 밖을 내다보니, 횡단보도 앞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모녀가 서 있었다.
파란 불인데도 건너지 않는 모녀가.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케케 묵은 느낌이 든다.
고개를 숙인 채여서 얼굴은 두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와 딸은 손을 맞잡고 쭉 거기에 서 있었다.
갑자기 차 안에 소리가 되돌아 왔다.
떠들어대는 목소리, 버스 엔진 소리...
교차로를 지날 때에 한 번 더 뒤돌아봤지만 모녀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년쯤 지난 뒤였을 것이다.
초등학생이 된 나는 사회 시간에 그 일을 선명하게 다시 떠올리게 됐다.
수업의 내용은 전쟁에 관련된 것이었다.
선생님이 준비한 자료는 흑백이었지만 그 날 내가 본 모녀와 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 많이 찍혀 있었다.
방공 두건을 쓴 채 몸뻬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그 때에서야 처음으로 나는 온 몸에 오한이 도는 것을 느꼈다.
어린 내가 그 광경을 보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은,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 것은 전쟁을 몰랐던 탓일까?
내가 사는 도시는 비교적 큰 거리에는 전쟁 도중 공습을 많이 받아 완전히 불타 들판이 되었던 장소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나는 그 이후에도 여러가지 영적 현상이라 할 만한 것을 우연히 겪었지만 그다지 믿고 있지는 않다.
자신의 기억이 마음대로 이미지를 바꿔서 생각하는 것으로 치부하곤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사건만은 나조차도 부정할 수 없는 기이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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