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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557th]한밤 중의 연회

괴담 번역 2015. 4. 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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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조촐하고 아담한 여관에서 묵었다.


꽤 벽지에 있는 곳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적고, 조용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스탭들도 배려와 준비성이 좋고, 뜰도 아름다울 뿐더러 방도 깨끗했다.




나무랄 것 하나 없는 훌륭한 여관이다.


산 속에 있기 때문에 밤 늦게까지 놀 수 있는 곳도 없어, 날이 바뀔 무렵이 되자 여관 안은 무척 적막했다.


일찍 잠자리에 든 나는, 새벽 2시 넘어 웬지 모르게 눈을 떴다.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 문득 적막한 여관 안을 탐험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방 문을 열자 복도는 불이 꺼져 어두웠다.


비상구를 가리키는 초록색 등만이 한적한 복도를 비출 뿐이다.




여관치고는 부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에너지 절약 때문인가? 여관도 큰일이네...] 하고 시덥지 않은 생각을 하며 나는 담력시험 하듯 탐험에 나서고 있었다.


갑자기 눈 앞에서 사람이 움직인 것 같아, 나는 그 곳을 바라봤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아래, 다른 방 문 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여관 직원 아저씨가 보였다.




철컥철컥하고, 작게 금속음이 들려온다.


설마 도둑질을 하러 방에 들어가려는 것인가 싶은 생각에, 나는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문을 열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문에 작은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있었다.


웬지 보면 안 되는 것을 봐 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서 있었다.


열쇠를 다 잠근 것인지, 아저씨가 내 쪽으로 걸어온다.




이 앞에 있는 건 내 방이다.


저 사람은 나를 방 안에 가둘 작정인게야.


그렇게 생각하니 온몸이 굳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것 같으니 절대 발견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하지만 내 옆을 지나가는 순간, 아저씨는 너무나도 쉽게 나를 알아채고 말았다.


아저씨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손목시계를 보더니 [어쩔 수 없네... 같이 좀 와주세요!] 라며 나를 억지로 끌고 어딘가에 데려가려 했다.




놀라 도망치려했지만, 곧 다른 직원 몇 사람이 다가와 나를 둘러쌌다.


개중 한 사람이 토치를 손에 든 채 [무사히 돌아가고 싶으면 절대 소리를 지르지 마셔야 합니다!] 라고 말했기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잠잠히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도착한 곳은 연회장이었다.




불이 모두 꺼진 어두운 여관임에도, 그곳만은 모든 불이 전부 켜져 있었다.


여관 직원들과 현지 주민 같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고, 그 뿐 아니라 테이블 위에는 지역 특산 요리 같은 게 잔뜩 놓여 있어 언제라도 연회가 시작될 수 있게 준비가 끝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대충 빈 자리에 내가 앉게되자, 40대쯤 된 아줌마가 내게 다가왔다.




[운이 나빴네요. 진정하고 있으면 괜찮을테니, 조금만 힘내요.]


곧이어 무서운 표정을 한 아저씨가 내 옆에 앉더니, 강한 어조로 말했다.


[연회가 시작되면 그저 즐겁게 먹고 마시기만 하게. 뭐, 이미 즐거울 터이지만. 도중에 새로 손님이 오더라도, 그 사람을 신경쓰면 안 되네. 신경이 쓰이면 차라리 보지 마. 다만 만약 보게 된다면, 눈을 돌릴 때 부자연스럽게 행동해서는 안 되네. 결코 즐거운 분위기를 깨서는 안 돼. 한 해에 단 한 번, 반드시 맞아야 하는 상대이니 절대로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되는거야.]




이윽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아줌마들은 나를 배려하려는 듯 요리도 권하고, 맥주도 따라주었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젓가락으로 깨작대는 게 고작이었다.




다들 표면적으로는 즐거워하고 있는 듯 했지만,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괜히 잠에서 깨서 이게 뭔 일인가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와중, 갑자기 방 안 온도가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함께 어두운 복도 저 편에서, 저벅, 저벅하고 발소리가 천천히 가까워온다.




다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 척 하는 것인지, 지금까지 이상으로 즐거운 듯 떠들고 요리를 먹고 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맛있는 요리를 열심히 먹는 척을 했다.


곧 발소리가 바뀌었다.




나무로 된 복도에서, 다다미가 깔린 연회장으로 올라온 것이다.


요리만 바라보고 있는 내 시야 한구석에, 2개의 다리가 지나가는 게 언뜻 보였다.


검다... 아니, 그보다는 '어둡다'는 표현이 어울릴 이상한 존재감의 다리였다.




아이나 여자 다리처럼 가늘지만, 굉장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가로로 길게 놓은 테이블을 빙 둘러 걸어, 내 대각선 정면 쪽에 가서 방석 위에 앉았다.


나는 접시 위의 요리를 어떻게든 먹으며, 비명을 지를 것 같은 걸 어떻게든 참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답답하고 차가운 공기가 사라졌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주변에는 방금 전까지 어색하게 지어낸 웃음을 짓고 있던 사람들이, 안도의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이제 끝났어.] 라고 옆에 있던 아줌마가 말을 건네자, 그제야 내 몸에서 힘이 풀렸다.


그 후, 무서운 체험을 공유한 사람끼리의 진정한 연회가 시작되었다.


방금 전까지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던 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서로 술을 나눴다.




이상한 체험을 공유했기 때문인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이상한 연대감이 들었다.


방에 걸려 있던 자물쇠는 날이 밝기 전에 모두 회수한 듯 했고, 아마 숙박객 중에도 자신들이 밤 동안 갇혀 있던 걸 알아차린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아침이 밝았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 못다 잔 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방 밖으로 나와보니 아무 일 없는 평범한 보통 여관으로 돌아와 있었다.


규정 시간보다 조금 늦게 체크아웃했지만, 여관 사람들은 [너는 이제 우리 동료야. 언제라도 좋으니 다시 찾아와.] 라며 다들 나와 배웅해 줬다.




다들 내가 떠나는 것이 아쉬운 듯 진심으로 배웅해 줬고, 나 역시 그들과 헤어지는 게 안타까웠다.


이미 그들은 내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 사건 탓에, 강한 정이 생겨났던 것이다.




다만 그렇더라도, 내가 그 여관에 갈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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