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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11st]산축제

괴담 번역 2015. 11. 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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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휴가를 받았다.


단 이틀 뿐이니, 날 찾는 전화가 올 일도 아마 없겠지.


보너스도 나왔겠다, 어머니에게 뭔가 맛있는 거라도 먹여드려야겠다.




그리 생각하고 교토 키부네(貴船) 쪽 여관에 전화를 걸어봤다.

 

 

 

 


 

가와도코(川床) 성수기였지만 평일이라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리니 무척 기뻐하며 쿠라마(鞍馬) 쪽도 돌아보고 싶다고 하셨다.




내게 이견이 있을리 없다.


데마치야나기역에서 쿠라마역까지 약 30분.


그 사이 경치는 바둑판 같은 도시에서 뒷동산을 지나, 깊숙한 산 속으로 변해간다.




쿠라마에서 산을 넘어 키부네로 빠지는 코스는, 발에 맞는 신발만 있으면 가족끼리도 2시간 전후면 다녀올 수 있다.


당일치기라면 반대로 키부네에서 쿠라마로 나와 쿠라마 온천에 들렀다 돌아갈 수도 있고.


그 날 역시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짐을 들고 걷기도 귀찮아, 숙소에 부탁해 맡기고 쿠라마산으로 향한다.


위풍당당한 신사 입구에 발을 들여놓자,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었다.


나를 향해 낙엽들이 데굴데굴 날아온다.




낙엽 질 계절은 아니건만, 어머니와 함께 산에 오면 반드시 이런 일이 생긴다.

 

 

 


 

[텐구가 꽃을 뿌리는구나.]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텐구란 놈, 귀찮은 녀석이군.


도중에는 케이블카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걷는 편을 더 좋아하신다.


군데군데 비탈이 섞인 참배길을 지나, 본전으로 향한다.


 

 

 


 


유키신사를 지나자, 앞에 있던 거목 중간에 있던 가지가 미묘하게 휜다.


이것 역시 매번 겪는 일이다.

 

 

 

 


 

쿠라마사 금당에서 참배를 하고, 안쪽 사원을 향해 오솔길을 걷는다.

 

 

 


 



마왕전 앞에, 몸집은 작지만 품위 있어 보이는 노인이 혼자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꽃이 피면, 말하지 않아도 산에는 찾아온다네. 쿠라마산에 벚꽃 소용돌이...]


언령이 주변 나무에 퍼져가는 것 같아, 무심코 발을 멈추고 노래에 푹 빠졌다.




마지막 노랫가락이 여운을 남기고 하늘로 사라지자, 우리처럼 발을 멈추고 노래를 듣던 사람들이 다같이 탄성과 박수를 올렸다.

 

 


 

 

노인은 생긋 웃고, 오오스기곤겐(大杉権現) 쪽으로 갔다.

 

 

 

 

쿠라마산을 내려와, 키부네강을 따라 걷는다.




한여름 대낮인데도 공기가 서늘해 기분 좋다.

흐르는 강 위에 가와도코가 몇 보인다.


주말에는 사람들로 흘러넘치겠지만 오늘 같은 평일은 그렇지도 않다.




조금 먼 곳에는 청명한 흐름 속, 강까마귀가 작은 물고기를 쫓아 물로 뛰어든다.


왜가리도 가만히 사냥감을 기다린다.


어느덧 길게 자란 참억새가 흔들리는데, 그 위를 잠자리들이 돌아다닌다.




키부네신사에 참배하러 가는 사람은 많지만, 오쿠미야까지 찾는 이는 드물다.

 

 


그 고요함을 즐기며, 오쿠미야 선형석 옆 작은 사당에 손을 모은다.


동생들도 데려왔으면 좋겠다 싶지만, 평일에 갑작스럽게 일정을 잡은 내가 잘못이다.




학생이면 몰라도 사회인이 그렇게 일을 멋대로 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어머니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뒤돌아보니, 아까 마왕전 앞에서 노래하던 노인이 이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자, 노인도 싱긋 웃으며 한 손을 든다.




[아까 전에는 좋은 노래를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아니, 부끄럽구만.]


노인은 겸손히 고개를 흔들고 나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부모자식끼리 여행 온건가? 좋구만. 좋은 날에 여길 찾아왔어. 오늘은 산축제가 있거든.]


[어머, 축제를 하는건가요?]


축제라는 말을 듣자 어머니는 눈에 띄게 신이 났다.




노인은 가르쳐주었다.


[오늘 밤, 가와도코에 불이 다 꺼지면 이 앞에서 열린다네. 산축제는 때가 맞아야만 열리는 데다 한밤 중에 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많지. 만약에 올 거라면 유카타를 입고 오는 게 좋을걸세. 그래야 춤을 출 때도 어울릴테고 말이야.]


어머니는 이미 가고 싶어 두근대는 듯 했다.




젊을 적에는 춤에 푹 빠져있었다니 그럴만도 한가.


뭐, 괜찮겠지.


나는 춤 같은 건 관심 없지만, 기왕 왔으니 어울려 드려야지.




강줄기 따라, 복숭아 같이 둥근 등불이 점점이 켜져있다.


우리말고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쿠미야에 가까워짐에 따라, 피리 소리가 어디선가 흘러와 바람을 탄다.




산축제는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그런 춤이나 추는 건 아닌 것 같다.


안쪽 키부네다리 옆에서 왼쪽으로 꺾어, 산 속으로 이어진 좁은 길로 들어서자, 피리 소리는 더욱 확실히 들려온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잔잔한 멜로디를 여러개의 피리가 함께 불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나무 사이에서 수많은 흰색 제등과 그 불빛이 보였다.


체육관 정도 넓이의 공터에서, 피리 소리에 맞춰 수십명의 사람들이 춤추고 있었다.


옷은 흰 바탕에 감색 물흐름 무늬의 유카타다.




여자는 다홍색 띠를 메고, 남자는 검은 바탕에 금색 비늘 무늬가 들어간 띠를 메고 있다.


신나게 춤을 춘다기보다는, 우아하게 춤을 추는 듯한 사뿐사뿐한 움직임이다.


보통 축제 때 추는 춤에서 느껴지는 활기찬 느낌은 전혀 없었다.




우리보다 먼저 와 곁에서 춤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둥글게 손 잡고 춤추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그 중 한 사람과 손을 마주 잡았다.


아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앞에서 낮에 만난 그 노인이 미소를 띄우며 조용히 나와 어머니에게 다가왔다.


[아아, 오셨구만.]


[안녕하세요. 이상한 축제네요.]




노인은 이상한 말을 했다.


[저 안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게야.]


만나고 싶은 사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나는 멍해졌다.


옆에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달려갔다.


[어머니?]




어머니가 달려간 저 편에, 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친가에 살 무렵 언제나 보던 사람이다.


사진 속에 서서 웃고 있던, 나와 무척 닮은 청년.




내가 2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였다.


죽을 힘을 다해 아버지에게 달려가는 어머니를, 춤추는 이들이 공기처럼 비켜서 지나가게 해준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춤을 춘다.




어머니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불과 3년 가량이었던 아내로서의 나날과, 그 몇배는 될 어머니로서의 시간.


지금,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어머니는 말문이 터진 듯 계속 이야기하고, 아버지는 조용히 미소지으며 때때로 맞장구를 치고 있다.




두 사람 사이 눈물은 없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내게는 들리지 않지만, 분명 말로서 시간을 녹이고 있으리라.


시간을 넘어 부모님은 연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부모님의 모습이다.


아, 아버지는 저렇게 웃는 분이었구나.


어머니가 저렇게 수줍어 하는 모습도 있었구나.




그 기나긴 세월을 넘어, 아직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을 보니, 무심코 가슴이 뜨거워진다.


아버지가 권해 어머니도 춤에 참여한다.


꽤 잘 춘다.




정말로 즐거운 듯 춤추고 있다.


내 머릿 속에서는 샤미센 소리가 울고, 악사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니, 다정하고 다정하구나. 저기에 날아오르고 여기에 날아오르니, 저기도 여기도 바람이 펄럭펄럭대네. 날개와 날개를 맞댄 소매가 물든 모양은 꽃이로구나...]




부모님의 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어머니는 나를 떠올렸는지 아버지의 손을 놓고 내게 다가왔다.


처음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버지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걸까.


대범하고 의젓한 동생과 무척 비슷한 분위기의 아버지는, 당황해 말도 못하는 나를 아무 말 없이 꼭 껴안았다.




나보다 꽤 홀쭉한 몸이지만, 강하고 따뜻했다.


아버지에겐 이렇게나 확실한 존재감이 있는걸까.


[많이 컸구나...]




만감이 가득한 아버지의 말.


가슴이 감상으로 가득 차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간신히 입에서 나온 것이라곤...




[아버지...]


[응.]


따뜻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처럼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아까 어머니가 마구 이야기를 하던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완전히 신이 나 아버지에게 친구에 관해, 일에 관해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런 건 내 일이고, 다른 사람한테는 이야기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 왔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조차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어머니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아버지의 조용한 대답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기뻤다.


아이가 부모에게 하루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기분을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내 이야기가 잠시 멈추자, 아버지는 쓸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구나. 더 함께 있고 싶지만 이제 슬슬 가야할 거 같아.]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싫다고 떼쓰며 잡아봐도 소용 없는 일.




소중한 이에게 걱정을 끼칠 뿐이다.


그래, 이미 알고 있다.


웃으며 배웅하자.




[너희한테 힘이 되어줄 수 없어 애석하구나...]


[괜찮아요. 걱정마. 내가 있으니까.]


장남인걸.




나는 엄지를 세워 아버지에게 보이며, 잘난 척 하며 허세부렸다.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상냥한 시선을 보낸다.


아버지는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럼, 이제 가볼게.]


아버지는 춤의 고리 안으로 향한다.


[아버지.]




부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아버지가 되돌아 본다.


[나,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는 기쁜 듯 웃고, 그대로 연기가 사라지듯 자취를 감추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아버지가 자취를 감춘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단념한 듯 고개를 저으며, [돌아가자꾸나.] 라며 나를 재촉했다.


이튿날 아침, 아직 자고 있는 어머니를 방에 두고 안쪽 키부네다리 옆까지 가 보았다.


다리 옆, 산으로 이어진 오솔길은 역시 없었다.




그 노인이 말한 산축제는 때가 맞아야만 열리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것은 나와 어머니가 본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나고 싶던 사람을 만나고, 전하고 싶던 마음을 전했다.




행복한 여행이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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