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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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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무렵, 친구 A에게 전화가 왔다.


[야, 지금 어디 있냐?]


[집인데.]




[미안한데 지금 너네 집에 좀 가야겠다. 미안해.]


[응? 괜찮아.]


10분 후, A가 왔다.




[미안하다, 야.]


[괜찮다고. 뭔일 있냐?]


갑작스럽게 찾아온 건 좀 당황스러웠지만, A랑은 오랜 친구 사이다.




이 정도 가지고 체면 차릴 사이도 아니고, 나는 우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왔다.


[마실래?]


A는 [고마워.] 라며 받았다.




[이상한 걸 주워버려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A는 가방에서 수건을 꺼냈다.


[웅~ 웅~ , 웅~ 웅~]




수건 안에는 뭔가 있는 듯 했다.


휴대폰인가?


수건을 펼치니, 안에 있는 건 역시 휴대폰이었다.




전화가 와서 진동하고 있었다.


[절대로 받으면 안 돼.]


[주운 거야, 이거?]




A는 [응.] 이라고 말하고, 휴대폰을 열었다.


착신 내역이 200건 넘게 찍혀 있었다.


나는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또 전화가 걸려온다.


[웅~ 웅~ , 웅~ 웅~]


[받으면 어떻게 되는데?]




[왠지 좀 위험한 놈인거 같아서.]


확실히 그랬다.


휴대폰을 꺼내놓고 한동안 지켜보고 있었지만, 끝도 없이 계속 전화가 걸려온다.




누가 이렇게 전화를 거는걸까.


휴대폰을 잡으려는데, A가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지갑에서 종이조각을 꺼냈다.




"080-XXXX-YYYY" 라고 써 있었다.


[전부 이 녀석이 건 전화야.]


[무섭다... 장난 아닌데? 이거 경찰에 갖다줘.]




[벌써 한밤 중이잖아. 내일 가야지.]


그래놓고 둘이서 술이나 퍼마셨다.


그 사이에도 휴대폰은 웅웅 울리고 있었다.




A는 [우와, 시끄럽네.] 라고 말하더니 휴대폰을 수건으로 싸서 가방에 던져 넣었다.


우리는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늦은 밤까지 TV를 보고 잤다.


다음날 아침, 경찰에 갔다.




그 무렵쯤 되니 휴대폰도 조용해진 터였다.


얼마나 전화가 왔을지 신경쓰여 확인해보니, 7백건이 넘었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이거 주운 물건인데요.]


A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아, 네. 유실물인가요? 잠깐 이야기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주웠는지, 어떤 모습으로 놓여있었는지, 언제 주웠는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경찰 아저씨는 휴대폰을 살펴보며,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휴대폰을 책상에 올려두고, 서류에 무언가를 썼다.


메이커나 색깔, 기종 같은 걸 적는거겠지, 아마.


그때, [웅~ 웅~] 하고 휴대폰이 울렸다.




힐끗 번호를 봤다.


080-XXXX-YYYY.


경찰 아저씨는 [오...] 하고 조금 놀란 듯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그러더니 [네, 여기 경찰인데요.], [그러십니까.] [예... 알겠습니다.] 하고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나는 경찰이 의외로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이라고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휴대폰 주인인 것 같습니다. 지금 찾으러 온다네요.]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경찰서를 나가려는 나와 A에게, 경찰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혹시 괜찮으면 한시간 후에 와주실래요? 원래 주인이 답례를 하고 싶다던데요.]


순간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지만, 결국 나는 한시간 후 A와 함께 다시 경찰서에 오기로 했다.




한시간 뒤, 경찰서에 들어서자 웬 남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20대 후반쯤 되어보였다.


[와,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경찰 아저씨와 그 남자, 나와 A는 한동안 [고맙습니다.], [아뇨아뇨.] 뭐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는 경찰서에서 나와 우리에게 권했다.


[자네들, 배고프지 않나? 뭐라도 좀 먹자구. 좋은 가게가 있어.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추천할만한 가게야.]




나와 A는 남자가 사주는 밥을 얻어먹으러 갔다.


미국적인 가게였다.


메뉴는 스테이크.




남자는 밝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광고 대리점에서 일하고 있고, 이 가게 점장과도 아는 사이란다.


이 가게 점장은 다른 가게도 여럿 가지고 있는데, 그 가게 광고를 자기가 맡았다며 엄청난 기세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메뉴를 선택할 때, 나와 A는 어느 걸 먹을지, 일본식 소스가 좋을지 망설이고 있었다.


[이봐, 뭐하는거야, 자네들. 이게 좋아, 이게. 굽는 정도는 어느 정도로 할래? 여기는 레어가 좋다고. 이걸로 해. 이게 커서 먹는 맛이 있다고. 저기, 실례합니다. 주문 좀 하려는데요.]


남자는 무척 파워풀했다.




그런 식으로 먹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묘하게 칭찬에 능숙했다.


나와 A에게 몇번이고 [잘하네, 잘하네.] 하고 말했다.




[아, 그래. 자네들 휴대폰 전화번호 좀 알려주지 않겠나? 이걸 기회로 친구 삼아 지내자고.]


좋다고 내가 대답하려는 순간, A가 그것을 막았다.


[아뇨,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괜찮아요.]




왠지 휴대폰 번호 알려주기를 꺼려하는 듯 했다.


그러고보니 A는 평소보다 과묵한 듯한 느낌이었다.


남자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우리는 맞장구만 칠 뿐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지만.




A가 끈질기게 거절하자, 남자는 한순간 울컥 화가 난 듯했지만, 곧바로 웃어보였다.


[뭐, 자네들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을테니까 신중한 거겠지. 괜찮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말게. 그럼 슬슬 가볼까.]


그리고는 남자는 일어났다.




엥? 잠깐만, 난 아직 다 못 먹었는데?


내 고기가...


남자는 이미 식사를 마친 듯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남자는 갑자기 허둥대고 있는 듯했다.


나와 A는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괜찮아. 맛있었겠지. 이 가게 또 놀러오라고. 그럼 다시 만날지도 모르지.]




우리는 그대로 헤어졌다.


[야, A. 너 왜 그래? 배라도 아프냐?]


[아니, 좀 신경 쓰이는게 있어서.]




[뭔데?]


A는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마 그 남자는 휴대폰 주인이 아닐거야. 애시당초 그렇게 끈질기게 몇백번을 전화하다니 정상이 아니지. 아마 저 사람,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있을거라고.]




A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이랬다.


그는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았고, 우리를 이유도 없이 마구 칭찬해댔다.


거기에 우리가 먹는 속도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데다 완전히 격식 차리지 않고 우리를 대했던 것이다.




게다가 언뜻 친절해 보였지만,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를 우리한테 강요한 거나 마찬가지였고.


우리가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자 울컥한 모습과, 그 직후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까지 죄다 근거가 된다는 게 A의 말이었다.


[스스로 "성격 좋은 호청년"을 연기하는 것 같았어. 답례로 스테이크를 사준다는 그 행동 자체는 친절해 보이지만, 메뉴를 자기 마음대로 정해버렸지. 게다가 우리가 먹는 와중에도 계속 말을 걸어왔고. 마구 칭찬을 해댔지만 그건 우리한테 호감을 사려고 일부러 한 게 아닐까. 게다가 휴대폰 번호를 갑자기 물어오는 것도 부자연스러워. 우리가 다 먹지 않았는데도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이야. 애시당초 답례랍시고 우리 의견도 묻지 않고 가게로 끌거온 것부터가 친절을 가장한 자기중심적 행동이야.]




나는 [그럴지도 모르겠네.] 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휴대폰 주인, 아마 그 사람한테 스토킹 당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룻밤에 7백번이나 전화가 걸려오다니,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나는 만약 번호를 알려줬으면 어떻게 됐을까 싶어 등골이 오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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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57th]A병동

괴담 번역 2016. 1. 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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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제사로, 올해부터 어느 시골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약제사는 나까지 모두 셋.


막내인 나는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어느날, 평소처럼 저녁이 되어 외래 진료는 끝나고, 병동에서 온 오더를 보고 주사약 제조를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오더가 까다로운 게 많아, 병동에 직접 문의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자니 시간이 꽤 늦어버렸다.


게다가 그날 안에 약품 회사에 발주를 넣어야 할 약이 있어서, 그 발주서까지 만들어야 했다.




식당에 저녁밥 주문을 넣어놓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며 발주서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전화가 왔다.


하지만 수화기를 들어도 아무 말이 없다.


[약제실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하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전화기에는 A병동 간호센터로 번호가 찍힌다.


전화기가 고장났나 싶어, 일단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곧 다시 전화가 온다.


받아보면 아까 전처럼 아무 말이 없다.


이게 두세번 반복되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약제실에서 나와 A병동에 찾아가보기로 했다.


A병동은 5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누른다.




2층, 3층, 4층...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린 순간, 나는 떠올렸다.


이 병동, 아직 공사 중이라 문을 안 열었었지...




여기저기 테이프가 굴러다니고 어두컴컴한 플로어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엘리베이터 문 정면에 있는 간호센터에, 간호사 같은 사람이 한명 서 있었다.


화재 경보기의 붉은 램프 불빛에, 간호 모자를 쓰고 가디건을 입은 뒷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무얼하고 있는건가 싶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다, 나는 심장이 덜컹했다.


그 간호사의 몸이 반쯤 투명해, 반대편에 있는 게 비쳐보이는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마구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릴 때까지 그저 눈 감고 견뎠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오듯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발주는 해놔야했다.


종종걸음으로 약제실로 돌아가 미친 듯 발주서를 쓴 후 팩스에 넣으려는 순간, 또 전화가 왔다.


벨소리와 함께, 붉은 램프가 깜빡인다.




무시했다.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 보고 싶지 안았다.


팩스가 보내진 걸 확인하고, 나는 불도 안 끈채 약제실에서 나와 문을 잠궜다.




불 꺼진 약제실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하니, 사무과 직원이 [왜 불을 켜놓고 퇴근하세요.] 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사과를 하면서, 나는 [A병동에도 전화가 걸리나요?] 라고 물었다.




[어? 의료국에서도 같은 문의가 있었는데... 아직 공사중이니까 당연히 전화는 안 되죠. 왜들 그런걸 물어본담.]


그렇다는 것이었다.



 

 

Illust by 느림보(http://blog.naver.com/loss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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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56th]봉사활동

괴담 번역 2016. 1. 5.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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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체험한 이야기다.


지역 장애아동 시설에서 피아노 연주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반짝반짝 작은 별 같은 동요를 연주하며 아이들과 같이 노래하고, 밖에서 술래잡기나 줄넘기도 같이 했다.




교실에서는 그림도 함께 그렸고.


아이들 중 마스오카군이라는 5살 정도 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유독 나를 따랐다.


마스오카군이 그린 그림도 나와 술래잡기 하는 그림이라, 무척 기뻤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되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돌아와 가방을 열자, 마스오카군이 그려줬던 술래잡기 그림이 들어있었다.


마스오카군이 선물로 몰래 준건가 싶어 기뻤지만, 선생님이 그린 그림은 교실에 장식하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마스오카군의 그림을 돌려줄 생각으로, 시설에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마스오카군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와 버렸어요. 지금 가져다 드려도 괜찮을까요?]


하지만 돌아온 선생님의 대답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우리 시설에 그런 아이는 없는데요?]


[그, 저랑 같이 술래잡기 하고 그림도 그려준 마스오카군입니다.]


나는 다시 확인을 부탁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대답은 매한가지였다.


[다른 아이랑 헷갈린 거 아닌가요?]


종국에는 [혹시 다른 시설 아이랑 착각하신 건 아닌가요?] 라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바로 한두시간 전까지 같이 있었던 아이를 착각할리 없다.


몇번을 물어도 선생님의 대답은 같았다.


그런 아이는 없다고.




선생님은 그날 내가 사내아이랑 노는 모습 자체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지만, 머릿속이 새하얬다.


술래잡기 그림에는 검은 크레파스로 [또 놀자.] 라고 써 있었다.




갑자기 그게 기분 나쁘게 느껴져, 그 날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 그림을 가지고 시설을 찾아갔지만, 마스오카군에 관한 모든게 사라져 있었다.


명찰이 있었던 자리, 신발장 모두 비어 있었다.




그리고... 가방에 분명히 넣었던 그림도 어느새인가 사라진 후였다.


시설과 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외부 아이가 우연히 들어온 게 아닐까하고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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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55th]구사령문

괴담 번역 2016. 1. 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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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쓰기에는 좀 그런 이야기지만...


어느 스레에서 읽은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쇼크를 받아 쓰게되었습니다.


아마 그 이야기를 읽은 분이라면 이걸 보고 알아차리실 수도 있겠죠.




결코 뭘 까발리거나 할 생각은 아니기에 구체적으로 언급은 않겠습니다만.


또, 그 이야기에 나온 지역은,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부터 내가 논할 이야기의 지역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이니셜로 봤을 때 바로 옆에 있는 현인 것 같네요.




그 이야기의 묘사는 아무리 봐도 내가 알고 있는 지역을 나타낸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이 이야기는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지만, 일부 장소를 특정짓는 부분은 기술을 피하려 합니다.


내 고향 지역은 산이 많습니다.




야생 곰이 사는 걸로도 유명한 지역이죠.


봄부터 가을에 걸쳐서는, 도시에서 온천을 찾거나 관광을 하러 많은 이들이 찾아옵니다.


이 주변 마을들은 예로부터 산나물을 뜯어다 파는 등 산에서 생계를 해결해 온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산에서 곰을 만나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무서운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오죠.


하지만 그 곰과 쌍벽을 이루는 괴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산에 들어갈 경우, 대개 곰을 쫓아내려 방울을 몸에 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는 예로부터 곰을 쫓아낼 때 방울을 다는 것말고 다른 걸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전해내려오곤 했습니다.


상세한 방법에 관해서는 명확한 말이 없었지만, 나도 어릴적부터 방울말고 다른 걸로 곰을 쫓아내려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었습니다.


까딱하다가는 열어서는 안되는 "령문"을 열어버린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 령문은 "구사령문(九死霊門)"이라 불리곤 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급사령문(急死霊門)"이라 부르기도 한다는군요.


이 령문의 끝에는, 명계로 이어지는 거대한 령도가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변을 지나가는 온갖 생명체의 영혼을 마치 블랙홀처럼 끌어들여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령문은 한번 열리면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닫지 못하고, 언제 그것이 열릴지 또한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일정 숫자 이상의 영혼을 집어삼키던가, 아니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던가 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어느새 스스로 닫힌다는 말이 전해질 뿐입니다.




그 령문은 한 사람 이상의 영혼을 산 제물로 바쳐 열린다고 합니다.


개문이 되는 조건으로 확실히 알고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1. 저녁부터 이튿날 아침 사이, 어슴푸레할 때와 완전한 어둠 사이의 시간일 것.


2. 한 명 내지는 두 명 정도의, 적은 인원만 산에 들어설 것.


3. 특정한 리듬으로 어떤 소리를 낼 것.


4. 개문 직전까지 의식을 유지할 것.




이외에도 다른 조건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실제 이 령문이 열렸을 때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아득한 옛날, 이 령문이 수많은 비극을 만들어 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올 뿐입니다.




또, 만약 모든 조건을 채워 령문이 열려버렸다고 해도, 낮이나 밝을 때에는 딱히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어슴푸레해지면 령도가 입을 열고, 밝아지면 령도가 일시적으로 막힌다는 거지요.


구사령문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8명의 사령과 한명의 문지기에 의해 열리는 령문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입산한 사람이 조건들을 모두 채운 후, 어떤 리듬으로 소리를 울리는게 시작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둘러싼 여덟 방향에서 순서대로 어떤 대답이 돌아온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멀리서 둘러싸듯 들려오는 그 대답은, 서서히 좁혀들어와 결국에는 그 정체가 보일만큼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문이 열린 령도 안쪽에 시선을 뺏기면, 그 순간 마지막 사령인 문지기가 그 사람을 습격합니다.


그 영혼을 산 제물 삼아, 령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태어나 단 한번도 귀신 같은 건 본 적이 없었기에 그 이야기는 전혀 믿질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와 무적 유사한 이야기를 보게 되서 이걸 적는 겁니다.


그 사람이 적은대로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단순한 방법만으로 령도는 열려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에서 추론하건대, 아마 그는 개문 직전 우연히 기절했기에 령문이 열리지 않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마을에 내려오던 이야기에도, 마지막에 어떠한 이유던 정신을 잃은 이는 령문에 끌려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요.


만약 그 구사령문이 열렸다고 하면...


그리고 그 이후, 아무것도 모르고 산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 희생당한 건 아닐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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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블로그 찾아주시는 분들은 이미 알아채셨겠죠?


12월 31일부터, 블로그에 새로운 스킨이 적용되었습니다.


2015 티스토리 스킨 공모전 대상 수상작 "Square" 를 제작한, "그렇고 그런 이야기 (http://wallel.com/) 의 운영자 wallel 님께서 직접 커스텀 스킨을 제작해주셨습니다 ㅠ_ㅠ


덕분에 블로그에 더욱 어울리는 옷을 맞춰주게 된 것 같아 감사하고 기쁘네요.


새로운 스킨과 함께, 새해에는 더 재미있고 무서운 이야기 전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스킨 배경 이미지를 제작해주신 슬락님과 스킨을 만들어주신 wallel 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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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54th]거목

괴담 번역 2016. 1. 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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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이전, 내가 여행지에게 겪은 일이다.


N현 어느 온천에 차를 타고 2박 3일짜리 여행을 갔었다.


가는 도중, "숲의 거인 100선"이라고 써진 간판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전국 국유림에 있는 나무 중 100위 안에 들어가는 거목이 있는 듯 했다.


딱히 거목에 대한 흥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나는 빨려들어가듯 그 자리에 차를 세웠다.




차 뒷좌석에 아내와 아이를 두고, 혼자 잠시 보러나섰다.


입구에는 거목에 관한 정보가 조금 기재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시선을 돌려, 초록색 융단 같이 펼쳐진 길을 따라 올라간다.




몇굽이 돌아 500m 정도 나아가자, 거목이 있는 곳을 알리는 표지판이 하나 덜렁 있었다.


그 앞으로 펼쳐진 길은 폭이 50cm 정도 뿐인데다, 잡초투성이라 근래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거의 없었다.


이런 좁은 길로 가야 하는건가...




그날은 날씨도 우중충하고, 시간도 어느새 저녁 무렵이었기에 주변은 어둑어둑했다.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길을 올랐다.


곰이 나온다는 관광 안내소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라 조금 쫄아, 막대기를 주워 적당히 소리를 내가며 나아간다.




잠시 후, 땀이 뻘뻘 나면서도 어떻게든 거목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이게 100개 안에 들어가는 나무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서서히 다가간다.


비석이 하나 있어, 수령이 천년이 넘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갑자기 [덜컹...] 하는 소리가 멀리서 울려퍼졌다.


아까 전까지 내가 곰을 쫓으려 여기저기 두들기던 소리와 비슷하지만, 더 강한 소리였다.


나 말고도 누가 이 숲에 있는건가?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지금 내가 온 길 쪽이 아니었다.


다시 덜컹하고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 방향에서 들려온 것인지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거목 너머, 반대쪽 방향이다.


하지만 슬쩍 봐도 거목 뒤쪽은 막다른 길이라, 그 이상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어둡고 깊은 숲이 계속 펼쳐져 있을 뿐.


우물우물하는 사이, 또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금 전과 또 다른 방향에서 들려온 듯 했다.




그 소리는 마치 처음 들렸던 소리에 호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숲에 메아리쳤다.


소리의 여운이 사라져 갈 무렵, 지금까지 소리가 들려왔던 곳들과는 다른 곳에서 또 [덜컹...] 하고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습기찬 흙에서 올라오는 안개가 더 자욱해졌다.


금방 막 올라온 길인데, 갑자기 싹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나는 뒷걸음질쳤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무슨 신호 같은 것일까?


하지만 그 나무를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는 하나 들리면, 다른 장소에서 또 하나가 들려왔다.


그게 끝났다 싶으면 또 다른 곳에서 소리가 들려와, 계속 멈추지 않고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 소리가 나를 향해,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는 걸.


숲 입구부터 여기까지는 1km는 족히 떨어져 있었다.




지금부터 서둘러 돌아가도 차가 있는 곳까지 갈 무렵에는 완전히 어두워져 버리겠지.


왜 이런 시간에 여기 왔는지 후회하며, 나는 소름이 끼치고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소리는 더욱더 범위를 좁혀 내게 다가온다.




만약 소리를 내는 게 사람이라고 해도, 대여섯명 정도가 아닌 듯 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열명 정도는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거목을 관찰할 틈도 없이, 지금까지 왔던 길을 서둘러 돌아가기 시작했다.




올 때는 한 굽이 돌았는데 곰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게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 굽이 너머, 소리를 내고 있는 존재가 있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 걸 필사적으로 떨쳐내며, 나는 묵묵히 온 길을 되돌아갔다.


그 사이에도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 내게 다가오고 있다.


문득 어느 분기점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 앞에서 왠지 모를 무섭고 기분 나쁜 기색이 느껴져, 나는 발을 멈췄다.


아니, 기색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그저 작은 위화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풀이 스치는 작은 소리였을까?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봐선 안될 듯한 생각이 들었다.




소리는 계속 범위를 좁히며 내게 가까워져 온다.


뒤를 돌아본다.


몇분 전, 내가 있던 부근에서 한층 더 커진 소리가 들려온다.




더 이상 망설일 틈은 없었다.


어디 도망칠 곳도 없다.


나는 기합을 넣고, 분기점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늙은이 한 사람이 발밑에 손을 뻗어 무언가를 주우려는 듯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야구모자 같은 모자를 쓰고, 사냥 때 입을법한 주머니가 많은 재킷과 넉넉한 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발목 부근을 보니 장화 같은 구두를 신고 있었고, 그 근처에서 무언가를 주우려고 손을 뻗은 채였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아,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걸었다.


얼굴 표정은 모자 챙에 가려 전혀 보이질 않았다.


늙은이는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굴이 보일 무렵까지 일어서자, 무슨 특수효과를 보는 것마냥, 몸이 서서히 얇아지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우리 차 바로 옆 자갈길에 누워있었다.


등짝에 느껴지는 따끔따끔한 통증 때문에 깨어난 듯 했다.




걱정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는 낯선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던 아내가, 걱정이 된 나머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 같다.


이 부근에서는 황혼 무렵 거목을 보러가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종종 나같은 외지인이 알지도 못하면서 숲에 들어섰다, 나처럼 기절한 상태로 발견되곤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찾아갔을 무렵은 가을이었지만, 여름에도 밤에는 꽤 추운 동네다.


발견되는게 늦었더라면 동사했을지도 모를 터였다.




소리의 정체는 결국 지금도 모르지만, 혹시 그 부근에서 죽은 귀신들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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